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4
‘하인혁이 사표? 임현서가 매듭을 확실하게 짓긴 했나 보네?’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서
그저 대충 놀라는 척 반응을 보이는 래원.
– 래원이 네 연출 노트랑 콘티, 편집 기밀 빼돌렸다던데? 미친놈 아니냐?
“에효···.”
– 하인혁 그 새끼가 래원이 널 신입 시절부터 질투하는 건 알았는데···. 허어, 참···.
“아···. 그랬긴 했죠···.”
– ··· 래원이 너 뭐냐?
“네?”
– 왜 안 놀래? 화 안 나냐? 나도 이렇게 짜증 나 죽겠는데?
“··· 지금 제가 화내서 뭘 어쩌겠어요···. 사표 썼다면서요? 그럼 그걸로 된 거죠.”
전화 너머로 황태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도래원 이 새끼, 하여간 대인배야.’
황태수의 이 같은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래원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나쁜 소식은 이걸로 끝인가요?”
– 어. 임현서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있는데···. 갓 입사한 핏덩이가 뭘 알겠냐?
“그렇죠.”
– 이번 거 터진 것도 현서가 결국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서 솔직히 털어놓은 거라···. 그래서 며칠 동안 드라마국이 발칵 뒤집혔었잖냐···.
“아···. 그랬어요?”
– 암튼 임현서는 적당히 타일러서 내쫓든, 데리고 정신 교육 다시 시키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래원아.
“네, 현서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 하인혁이 들어가기로 한 내년 상반기 편성이 공석이 됐는데, 그건 내가 차차 고민해봐야지···.
“그리고 좋은 소식은 뭐예요, 선배?”
– 좋은 소식은,
나쁜 소식도 이렇게 신나는 소식인데,
좋은 소식은 또 얼마나 굉장할지···.
벌써 기대가 되는 래원이었다.
전화 너머로 황태수 국장이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딴 건 아니고, 감독판 DVD 관련된 좋은 소식인데···.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35화 – 리디북스
“아, 그러고 보니 감독판 DVD 곧 시중에 풀리죠?”
– 그래. 모레부터.
“근데 좋은 소식이라는 게⋯.”
– 이미 완판이다.
“⋯? 아직 판매 시작도 안 한 게 완판이라뇨?”
– 지금 찍어놓은 거 전량 예약 판매 완료고, 심지어 예약 판매량이 오버 돼서 예약 대기까지 잔뜩 걸려있다고!
“헐⋯.”
래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완판. 예약 판매 완료. 예약 대기.
이런 것들은 유명 아이돌 음반이나,
세계적인 영화의 감독판 DVD에나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래원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단어였고, 앞으로도 상관없을 줄 알았던 말들이었으니까.
– 몬테카를로, 밴프 효과가 컸나 보더라. 축하한다! 껄껄껄!
전화 너머로 황태수가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밴프는 못 탔는데 도움이 됐다고요?”
– 못 타서 노이즈 마케팅도 되고 효과가 좋았던 것 같아.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분노하는 분위기야. 네가 능력도 실력도 되는데, 시상식 정치 싸움 때문에 못 탔다고 생각하거든.
“하하하. 그러면 계속 그런 척해야겠네요? 덕분에 의욕이 불타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으로 또 노려보죠, 뭐!”
– 아직 다음 작품을 논하기에는 이르다. 성적 낼 게 더 남았어. ‘서울 드라마 페스티벌’, ‘에미상’에도 출품했으니까.
“매번 감사합니다, 선배.”
– 하인혁 그 새끼는 주제를 알아야지⋯. 어디 도래원 너를 넘보냐?
사람의 사회적 가치는 자기 스스로 주장할 수 없다.
주변에서 정해주는 거랄까?
지금 래원이 그랬다.
하인혁과 사회적으로 같은 급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사건을 굳이 래원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처리함으로써 증명해내었다.
황태수와의 통화 이후에도,
어디서들 래원이 귀국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지인들의 축하 연락이 빗발쳤다.
래원은 지금 같이 밴을 타고 이동 중인 옆좌석의 민세라와 함현우의 대화를 통해, 곧 그 출처를 알 수 있었다.
“하여간 우리나라는 국제 시상식 엄청 좋아해.”
“그러게. 벌써 떴네?”
“국뽕의 민족아니랄까봐⋯.”
래원과 팀의 귀국 소식을 각종 언론사에서 앞다투어 보도한 터라, 이들의 이름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래원은 쏟아지는 연락에 전부 다 답신을 할 수는 없었고,
래미, 골드 버튼 단톡방, 김윤하 작가와 옥영임 작가, 그리고 차여름&가을 자매의 메시지 정도에만 인사를 보냈다.
하지만,
[윤지협] 래원아, 축하한다! 자랑스러운 새끼! 근데, 너 조심해야 되겠다. 듣자 하니 너를 두고 뒤에서 뭔 짓 꾸미는 사람들이 있다더라.이 메시지는 보자마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던 래원이었다.
“지협 선배, 메시지 그게 뭔 말이에요?”
– 혹시 너 지금 주변에 드라마국 사람들 있냐?
전화를 받자마자 평소의 그답지 않게 몸을 사리는 윤지협이었다.
“아뇨. 없어요.”
– ⋯ 이 (전)국장님이랑 김 부국장님이 너를 두고 뭔가 꾸미는 것 같다는 말들이 있어.
“저를요? 왜요?”
– 왜긴⋯. 배미란 사장님, 황 국장님을 무너뜨리려면 너부터 해치워야 하니까 그러겠지.
“아⋯.”
래원은 어느새 의도치 않게
SBC 드라마국 사내 정치 싸움의 중심에 서게 됐다.
– 어쩔 수 없어. 낭중지추⋯. 이젠 네가 아무리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널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다.
윤지협이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래원을 향한 걱정을 내뱉었으나,
오히려 래원은 쿨하게 반응했다.
“할 수 없죠. 열심히, 요리조리 잘 피해볼게요.”
– 크하하. 그래라. 자세 좋다!
“뭐.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고 더러워서 피해야 하는 거니까요⋯.”
– 그래. 도래원 너라서 안심이다, 인마!
“근데 선배는 지금 제 걱정하실 때가 아니잖아요? 지금 선배 코가 석자예요! 선배도 이제 슬슬 복귀각 잡으셔야죠.”
– 그..그래야지⋯. 우리 아들내미 생각해서 빨리 복귀해야지.
“맞아요. 카봇도 사주셔야 하고, 초등학교 학부형 되실 준비도 하셔야 하잖아요?”
– ⋯ 너 왜 내 뼈를 때리고 그러냐? 네 걱정해서 연락한 사람한테?
“뼈 때리는 게 아니라요⋯. 가만있자, 안 그래도 내년 초에 편성 하나 공석 난 거 있거든요?”
– 저..정말?
“네. 그거 태수 선배가 어떻게 채울지 골머리 앓으시던데, 누가 채가기 전에 일단 제가 한 번 말씀드려볼게요.”
– ⋯ 야,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매번 신세 져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에이, 이게 뭐가 신세에요? 서로 좋은 거죠.”
하인혁이 떨어져 나간 편성 공석에 윤지협 선배가 들어간다면,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것 아니겠는가?
어느덧.
래원과 배우들을 실은 홍보팀의 밴이 래원의 집 앞에 도착했다.
“감독님, 쉬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따로 날 잡아서 우리끼리 회포 풀어요!”
배우들의 배웅을 받으며,
래원은 밴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래원의 집 앞에서 누군가 래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하인혁이었다.
“⋯ 인혁 선배?”
초췌한 얼굴의 하인혁.
순간,
그가 래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다, 래원아. 근데⋯ 근데 말이야⋯.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어. 아무리 해도 해도 널 못 따라잡겠는데 어떡하냐?”
“선배, 술 마셨어?”
“조금. 조금 마셨다.”
“하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만든 나의 길이 이거라면, 선배의 길은 따로 있는 거야. 그걸 본인이 노력해서 개척했어야지. 왜 나를 따라잡고 따라할 생각을 해?”
이렇게 못난 새끼 때문에 전생에 그토록 가슴앓이를 했었다고 생각하니,
래원은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잘못했다⋯.”
하인혁은 급기야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래원은 넘어가지 않았다.
하인혁이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거나 자존심을 굽힐 때는,
뭔가 얻어낼 게 있을 때임을 래원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일말의 동정심 따위 생기지 않았다.
“왜? 왜 이제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는데? 내가 국장님께 전화해서 선배 사표 수리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주길 바라?”
“아⋯아니, 그⋯그건 아니고⋯.”
하인혁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아니면, 드라마국 사람들한테 선배랑 잘 해결했으니 다시 사이좋은 드라마국으로 돌아가자 말해주길 바라는 건가?”
“래원이 너는 무슨 말을⋯.”
“절대 그렇게는 안 하니까, 허튼짓 시간 낭비 말고 돌아가.”
“⋯⋯.”
“잘 가, 인혁 선배.”
래원은 하인혁에게 작별을 고하며,
그에게 당하고만 살았던 자신의 전생과도 작별했다.
차갑게 몸을 돌려 쌩하니 집 안으로 들어온 래원.
18년간 묵었던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해졌다.
하인혁과 악연을 맺고 산 세월은 전생과 이생을 모두 합하면 햇수로 18년이었으니까.
하인혁은 계속해서 땅바닥을 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사죄의 눈물이나 후회의 눈물이 아닌, 분노의 눈물이었다.
자기 잘못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자는, 애초에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법이다.
하인혁은 깨닫지 못했다.
지금 하인혁의 가슴 속에는 래원과 임현서를 향한 분노가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그뿐.
하인혁은 속수무책이었다.
래원은 어느새 하인혁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가버렸기 때문이다.
* * *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다.
설사 그 상대가 과거의 적이었대도 말이다.
이 (전)국장과 김 부국장은 사내에 도는 은밀한 소문처럼 주기적으로 회동을 하고 있었다.
한 때, 서로를 향해 칼날을 세웠던 두 세력은 이제 같은 배를 타고 래원의 연이은 수상을 배 아파했다.
오늘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여의도가 아닌 강남의 조용한 한정식집이었다.
작은 룸에 자리 잡은 이 (전)국장과 김 부국장은 벌써 둘도 없는 아군이 되어 있었다.
“형님, 라라랜드 촬영 소식 들었어?”
“들었지. 아오! 그걸 요리조리 피해서 헌팅지 협조를 받아내냐?”
이 (전)국장의 물음에,
김 부국장이 불같이 성을 냈다.
“거의 좌초될 뻔했는데, 막판에 임현서 그 신입 놈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지?”
“어휴. 하여간 ‘라라랜드’ 본부장 그 새끼는 엉덩이가 가벼워서 어디에 쓰려 그러는지⋯.”
요컨대,
팀이 놀이공원 헌팅지 섭외에 애를 먹었던 것은
이 두 사람이 미리 손을 써둔 탓이었다.
“듣자하니, 요즘 찍는 중인데 촬영도 잘되고 있는 거 같더라고?”
“어휴⋯. 그냥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로 큰코다치겠어. 우리가 힘을 모아야 돼, 이 국장.”
“국장은 무슨⋯. 이 빠진 호랑이지 뭐⋯.”
“얼래? 웬 약한 소리냐? 우리가 다시 국장 자리 꿰차야지!”
“우리?”
“뭘 또, 날을 세우고 그러냐! 너든 나든. 국장은 물론 사장자리까지 앉아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지⋯. 나도 형님도 여기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이대로 꺾일 수는 없지⋯.”
“우리 드라마국에서 도래원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활개 치는 꼴, 나는 더 못 보겠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러다 황태수가 차기 사장, 도래원이 차기 국장이 되겠어!”
“그렇지. 지금 같은 기세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우리가 설 자리 더 없어지기 전에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이 (전)국장과 김 부국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고는 잔을 맞대었다.
“올해까지는 그냥 당해줬지만, 내년 편성부터는 어림도 없어!”
“내가 그동안 너무 가마니, 만만이로 살았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보여준다, 내가!”
두 사람은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술로써 의지를 다졌다.
이 (전)국장과 김 부국장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만나며 감정을 소모하고 열등감과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동안,
래원은 촬영장과 편집실을 오가며 여름을 생산적으로 불태웠다.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의 촬영이 50% 가까이 완성되는 중이었다.
그 사이,
황태수 국장이 추진하며 손수 출품했던 ‘서울 드라마 페스티벌’과 ‘에미상’ 본선에 래원의 가 노미네이트되는 희소식도 들려왔다.
지난번처럼 언론과 주변에서 신나게 떠들어준 덕에,
오히려 래원 본인은 차분하게 지금 하는 드라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8월이 되었고,
제작 발표회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는 첫 방송이 한 달여 남짓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9월에는 관련 ‘서울 드라마 페스티벌’과 ‘에미상’ 시상식 스케줄까지 앞두고 있었다.
바쁜 스케줄 속에,
[홍 대표] 도 피디, 말복 전에 같이 땀 빼기 라운딩 고고? 내가 저녁에 몸보신 제대로 시켜줄게!래원은 시간을 내어 홍 대표의 부름에 응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하남 어느 골프장의 그늘집.
오늘 오랜만에 라운딩을 위해 뭉친 래원, ‘JC ENM’ 홍 대표 그리고 ‘다이아샌드’ 이선필이 자리를 잡았다.
홍 대표는 이제 대놓고 황태수는 빼놓은 채, 래원과 이선필만 불렀더랬다.
9홀을 돌고 들어온 그늘집에서,
세 사람은 점심으로 막걸리와 김치를 곁들인 두부와 순대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