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7
래원의 오늘 스케줄은 시사회였다.
바쁘게 영화 홍보 스케줄을 소화하는 사이 어느덧 12월이 온 것이다.
래원은 전생에 이 영화가 누린 영광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생에는 그 현장을 직접 느껴보고자 했다.
이러한 자리 또한 래원에게는 공부가 될 테니까.
떠들썩한 포토월을 지나 객석에 자리했다.
잠시 후, 암전이 되고 시작한 영화.
달고나 게임은 오랜만에 다시 봐도 수작이었다.
외딴 섬에 모인 100여 명의 사람들.
그들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삶의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이들이다.
이 100여 명의 곧 미지의 존재에 의해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분명 오락물인데 동시에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축소판 같은 설정이 나오면서 블랙 코미디의 향기가 느껴졌다.
‘다시 봐도 신선하다⋯.’
뻔한 데스 게임물의 공식대로 흘러가는 듯했으나, 각 등장인물의 서사를 차례로 조망하며 휴머니즘을 불러일으키는 전개를 함께 가져가고 있었다.
게임의 설계자를 놓고 관객과 밀고 당기면서 서스펜스 또한 끝까지 잃지 않았다.
‘역시 이번 생에서도 대박감이야!’
래원이 기억하는 대로였다.
시사회가 끝난 후, 다음날 영화계는 으로 들썩였다.
처음에는 다소 호불호가 갈렸는지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평이 극과 극을 달렸으나,
평단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동민과 김혜미가 극찬을 내놓으며 평론가 평점은 상향 평준화됐다.
이 때문에 예매율이 수직으로 상승하며 사흘 만에 예매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개봉 하루 전의 일이었다.
게다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들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선수끼리는 대박작을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개봉하자 반응은 뜨겁다 못 해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개봉 하루만에 박스 오피스 1위를 찍은 것은 물론,
이미 상영관 점유율 1위인데, 거기에 SNS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 그 많은 상영관이 매진되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와의 대화에 끼려면 관람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슈 몰이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1주일 만에 450만 관객 동원? 미친⋯.”
이 개봉한 후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강채령의 입에서 감탄사를 가장한 욕이 튀어나왔다.
이 기세라면 다음 주에, 크리스마스가 오기도 전에 이미 손익 분기점을 넘길 것이라는 예측 기사도 쏟아졌다.
그녀는 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래원과 안정원의 강력한 주장이 없었다면 분명 과 이 붙었을 테니까.
“두 사람은 대체 어떻게 대박을 예견한 거야? 대본만 봐도 감이 오나⋯? 신기하네.”
뭐가 됐든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데스 게임물이라 편견만 빼면, 나름 천만 영화 공식을 충족하는 영화였잖아? 방학 시즌, 가족 영화, K신파, 대기업 배급사⋯. ”
강채령의 말대로 천만 영화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었다.
1. 방학 시즌에 개봉할 것
2. 10대 자녀부터 60대 이상 어르신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는 가족 영화일 것
3. K신파 요소를 포함할 것
4. 국내 5대 배급사를 만날 것
“그래도 시놉만 봐서는 가족 영화라거나 신파가 들어있을 줄은 전혀 몰랐지⋯. 그저 흔하디흔한 일본식 데스 게임물일 줄 알았는데⋯.”
15세 이상 관람가이긴 해도 10대들의 SNS를 도배할 만큼 인기몰이 중이었고, 60대 노년층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전통 놀이가 등장해서 어르신들에게도 호응이 높았다.
“흐음⋯. 그럼 우리 영화는 어떠려나?”
천만 영화의 공식에 을 하나씩 대입해보는 강채령이었다.
한편,
“이선필이!”
“넵, 대표님.”
불금 답게 오늘도 이선필은 JC ENM 홍 대표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이거..이거! 누구 아이디어야, 엉?”
홍 대표는 기분이 좋은지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일찌감치 취해버렸다.
“네?”
“탑스타 일기장 말이야! 호기롭게 2월에 채다훈 감독이랑 붙게 해서, ‘달고나 게임’ 피한 거 누구 아이디어냐고오!?”
이에 이선필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자신 한 명만 빼놓고, 도래원과 안정원 그리고 강채령까지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달고나 게임이 이렇게 잘 될 줄 누가 알았냐고!’
이선필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아.. 그..그야.. 만장일치로 정했죠, 다..같이.”
“우리 이선필이! 요즘에 이쁜 짓만 한다니깐?”
“더 여..열심히 하..하겠습니다.”
이선필의 등을 두드리며 술잔을 채워주는 홍 대표.
“어우, 그때 12월, 1월, 2월 중으로 개봉 일정 잡을 거라고 했을 때.”
“네⋯.”
“채다훈이 피해서 12월로 정했어 봐. 우리는 지금 초상집이야 초상집!”
이선필은 홍 대표의 말대로 상상해 보니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이선필 본인의 말대로 12월 개봉을 했다면, 래원이나 다른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고나 게임’과 붙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영화느은⋯ ‘달고나 게임’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려서 박스 오피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라고!”
지금 홍 대표가 이토록 기분이 좋은 것은 비단 의 선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를 더 신바람 나게 한 소식이 있었으니,
“그리고 오늘 내가 또 엄청난 걸 들은 게 있잖아.”
“어떤⋯?”
“궁금해?”
“넵.”
홍 대표는 비밀스러운 정보를 푸는 대화를 즐겼고, 이선필은 늘 그랬듯 홍 대표의 입맛에 맞게 대응해주는 중이었다.
“채다훈 감독 신작에 대한 소문! 껄껄껄!”
대외비를 본격적으로 털어놓기 전에 일단 한 번 크게 웃고 시작하는 홍 대표였다.
같은 시각,
안정원 역시 그녀의 집에서 소식을 관전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놀랍지 않네.”
자축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레드 와인을 한 병 따더니 잔에 또르르 따르는 그녀.
“그럼 이제 우리 영화 대박만 지켜보면 되는 건가?”
입술 사이로 붉은 와인을 삼키며 이를 찬찬히 음미하다가,
“내년 2월이 너무 기대되는데?”
두 눈을 빛내는 안정원이었다.
그때,
띠리링——
테이블 위에 올려둔 테블릿에서 알람음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드라마 기획안이네. 공대생의 사랑 방정식?”
이는 래원에게 들어온 수많은 차기작 기획안 중 하나였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214화 – 리디북스
* * *
“⋯ 지금 뭐라 그러셨어요, 안 실장님?”
래원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 전화가 잘 안 들리세요? 차기작 드라마 기획안 하나 포워딩 메일 드렸다고요. 공.대.생.의 사.랑.방.정.식! 임상순 작가님 작품이요!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드라마 .
마치 어린 시절 나를 괴롭히던 동네 골목대장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얼마든지 상대를 때려눕힐 수 있는 힘과 덩치를 갖게 됐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나를 옥죄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16부작 드라마 은 전생에 하인혁이 백상예술대상을 탔던 바로 그 작품이었으니까.
전생에서도 임상순 작가와 그의 소속사는 이번 생에서처럼 래원에게 먼저 제안을 했더랬다.
그때는 SBC 드라마국 소속 PD로서 이 기획안을 받았었고, 하인혁이 이를 빼앗아 가다시피 했다.
그때보다 일찍 래원을 찾아온 드라마 .
덕분에 래원은 기획안을 열어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만약에 내가 잭슨 브로랑 이 작품을 만든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백상은 물론, 트로피 수집이 취미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각종 시상식에 차고 넘치게 다녀본 래원이었다.
게다가 임상순 작가는 때 제 발로 찾아온 그를 래원이 직접 기용해서 작업한 바 있었다.
때문에 지금의 래원 정도 되는 감독이 굳이 에 연연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래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드라마와 영화 기획안이 잔뜩 쌓여있었으니까.
허나,
어쩌면 전생에 대한 복수 혹은 보상 심리가 발동하는 것일까?
래원의 시선은 계속해서 기획안 파일에 머물고 있었다.
“괜찮은 작품이기는 해.”
성급히 결정하기보다는 일단 지금의 감정을 차분히 느껴보기로 했다.
다른 작품도 함께 검토해보면서 말이다.
기다리면 불순물은 가라앉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테니까.
그때가 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요새 홍보팀이 도 감독님 많이 귀찮게 하죠?”
“아뇨. 감독으로서 개봉 앞두고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인데요, 뭐.”
이선필이 래원과 단둘이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해뒀어요. 홍보팀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은 알아서 하라고. 홍보 업무랍시고 잡스러운 것까지 도 감독님한테 가지 않게 손 썼습니다.”
이선필은 손수 양꼬치를 구워가며 사람 좋은 척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치이이이익——
“자아, 다 익었네요.”
먹음직스럽게 익은 양꼬치 하나를 래원의 앞접시에 먼저 덜어주더니, 칭다오 맥주도 잔에 채워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우리 영화가 ‘달고나 게임’이랑 안 붙게 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어요. 그렇죠?”
“⋯ 네.”
그때 회의에서 자기 혼자 끝까지 2월 개봉을 반대했던 일이 마음에 걸려서 이러는 건가 싶다.
“안그래도 지난 주에 홍 대표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뭐를요?”
“우리 개봉 일정 최종적으로 2월로 정리한 거 누가 주도했는지를⋯요.”
“아⋯.”
“만.장.일.치로 정리된 거라고 말씀드렸죠!”
“⋯ 하하하. 네에⋯.”
이선필 본부장 빼고 만장일치였더랬다.
이는 속 빼놓고 전한 모양이었다.
구태여 이렇게까지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 걸 보니 홍 대표한테 입 다물어 달라는 소리다.
‘오늘 저녁을 사주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그것도 꼴랑 양꼬치랑 칭따오로⋯. 뭐, 맛은 있네.’
자기도 멋쩍었는지 계속해서 래원의 눈치를 살피는 이선필이었다.
“그리고 빅 뉴스를 하나 물어왔습니다.”
래원은 양꼬치를 맛있게 뜯으며 이선필을 쳐다보았다.
“채다훈 감독 영화 말입니다.”
“⋯?”
“지금 거기 제작사랑 배급사에 쉬쉬하고 있답니다. 내부 시사회 했는데 자기네들도 너무 지루해서 졸고 난리도 아니었다고요⋯.”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맞는 말이었다.
시나리오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채다훈 감독의 연출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작품이었으니까.
“그렇다던가요? 뭐,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래원이었다.
이선필이 이를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래원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굳이 티를 낼 필요는 없었기 때문.
“우리 영화 잘 되라고 신이 돕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래원은 이선필의 이러한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접 닥치기 전에는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전생에 없던 래원의 영화가 이생에는 개봉을 앞두고 있듯, 언제 어디서나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법이었다.
“그래도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거죠. 우리 영화든, 채다훈 감독 영화든⋯.”
* * *
올해에도 어김없이 연말이 찾아왔고,
어김없이 길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래원의 집에도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12월이 되고 나서 래원과 래미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밤늦게까지 꾸며놓은 트리였다.
“오빠, 나 오늘 늦어.”
래미는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부리나케 현관문을 나섰다.
“오늘도? 무슨 스케줄인데?”
“오후 늦게까지 화보 촬영이랑 인터뷰 있고, 저녁은⋯ 재윤 오빠랑 먹기로 했어.”
바쁜 와중에 데이트는 절대로 빼먹지 않는 커플이었다.
한창 좋을 때다.
“⋯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웅웅! 오빠도 좋은 하루 보내라.”
철컥——
현관문이 닫히고 이 넓은 집에 래원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도 바쁘다, 뭐.”
집에 있어서 몸이 한가해 보일 뿐,
래원의 작업실에는 검토해야 할 기획안과 대본이 한가득이었다.
래원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작업실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이번 차기작 드라마는 래원의 마음을 끄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시청자들을 타겟으로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게다가 막대한 자본의 서포트를 받을 기회였기에, 이왕이면 블록버스터나 규모 큰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 앉아만 있었던 탓인지 몸이 찌뿌둥하게 느껴졌다.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는 빈 커피잔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래원은 커피를 추가로 내리며 TV를 켜보았다.
켜자마자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화면 가득 떴다.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한 민세라의 모습이었다.
“확실히 얼굴이 많이 피었어. 전성기네 전성기.”
커다란 화면으로 보니 그녀의 변화가 확연히 드러났다.
이전의 삶에서는 늘 차갑고 뚱한 표정만 짓고 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밝아진 그녀였다.
배미란 사장의 부고 이후 많이 힘들어했으나, 배우답게 작품으로 이겨낸 민세라.
역경은 배우를 더욱 성숙하게 해주었고, 연기력 또한 눈에 띄게 늘었더랬다.
“민세라 전성기 넘기기 전에 한 작품 더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