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38
“(정리하면, 두 분은 자신이 카메오라는 거에 얽매이지 마시고 그 장면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주시면 됩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 연기도 화려하게 해주시고요, 표정 연기도 마음껏 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벌써 촬영이 기대되는데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벤 질렌과 주디 라이즐의 표정이 더욱더 밝아졌다.
래원은 그들의 얼굴을 보며 오늘 회의의 목적을 소기 달성했음에 뿌듯했다.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감독의 능력이자 의무기 때문이다.
지이이이잉——
그때, 래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 차여름 작가 ]오랜만에 온 연락이었다.
단순 안부차 연락이었다면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차여름 작가가 무슨 일이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회의를 잘 끝내는 것이 먼저였기에, 서둘러 버튼을 누르고 무음 모드로 바꾸는 래원이었다.
* * *
“스포츠 드라마 4부작이요?”
작가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올 때, 그 용건은 십중팔구 ‘작품’이었다.
차여름 또한 그랬다.
– 네, 정확하게는 바둑 천재 자매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포츠 드라마요.
회의를 끝내자마자 회신 전화를 건 래원은 뜻밖의 부탁을 받았다.
– 제 대본은 아니고요. 우리 보조작가 중에 제일 경력 오래되고 실력 괜찮은 아이가 쓴 건데, 내 식구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객관적으로 잘 썼더라고요. 밀어주고 싶어서요.
본인의 대본이 아니면서 태도가 거침이 없는 걸 보니, 래원한테 직접 연출 의뢰를 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 후배 감독님들 중에 괜찮은 분, 이 대본에 잘 맞을 만한 분 계시면 소개 좀 부탁드려요, 도 감독님!
바둑 천재 자매가 주인공인 스포츠 물.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유찬이나 지혜영한테 토스하기에는 입봉 작가의 4부작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래원의 앞에서는 여전히 재롱떠는 동생들이지만 그래도 감독상 하나씩은 거머쥔, 남들 보기에는 어엿한 실력파 감독들이었으니까.
래원이 뭐라 답을 하지도 않았는데 차여름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며 즉시 대본을 보내주었다.
래원은 태블릿으로 대본 파일을 열어보았다.
시놉시스와 앞부분 몇 장만 읽어볼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느덧 태블릿 화면을 슬라이드하던 래원의 손가락이 마지막 페이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짜 잘 썼네⋯. 신인 작가의 투박함이 있지만 감독이 커버할 수 있는 정도야.”
기본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의 매력이 상당했다.
흡인력있는 장면 배치도 인상적이었다.
차여름이 함부로 아무거나 추천을 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면⋯. 신인 감독 애 중에 싹수가 좀 보이는 애 하나 잘 찾아서 물색해봐야겠는데?”
그때,
지이잉——
문자가 왔다.
차여름에게서 온 것이었다.
[차여름] 참! 도 감독님, 이 대본 주인공 캐스팅됐어요. 류소현/류지현 자매가 하고 싶대요! 계약은 아니고 구두로요.“뭐? 류소현, 류지현이 한다고?”
형제나 자매가 연예계에 발을 디딘 케이스는 많았지만, 류 자매처럼 두 명 모두 스타 반열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유일무이한 스타 자매였다.
게다가 캐릭터 이미지에도 찰떡이었다.
바둑 천재 자매.
차분하고 이지적인 언니와, 적극적인 말괄량이 동생.
“이거 대본도 괜찮은 데다 캐스팅까지 이렇게 갖춰진 거면⋯ 완전 남인 놈한테 주기는 아까운데?”
그렇다고 유찬이나 지혜영에게 내밀 수는 없었다.
지금은 래원의 B팀과 C팀 노가다를 뛰어주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내년을 위해 차기작 미니시리즈를 준비 중이었으니까.
래원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원래 여기를 편집점으로 생각했었는데⋯. 뒤에 프레임까지 더 써도 되겠는데요?”
래원의 말에 편집 감독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래원은 자신이 찍은 커트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선오]의 지휘하는 손짓이랑 벤 질렌이 연주에 한껏 몰두한 표정이 같이 잡히니까 꽤 드라마틱하네요?”
“그럼 이 프레임까지 쓰면 될까요?”
“네, 그리고 아까 [선오]랑 벤 질렌의 대기실 투샷을 여기에 회상으로 이어 붙일게요.”
벤 질렌과 주디 라이즐과 함께한 촬영 이후,
래원은 편집 감독과 함께 어두운 편집실 안에 틀어박혀서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전체 사전 제작이라 하더라도, 촬영 일정 중간중간 편집을 해줘야 했다.
이는 래원이 지난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었다.
편집을 한꺼번에 하기에는 양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러프하게라도 편집을 해두고, 촬영을 다 끝내고 1화부터 디테일하게 손보는 것이 일의 효율 면에서도, 결과물 퀄리티 면에서도 유리했다.
특히 지금 편집 중인 특별출연 협연 시퀀스는, 드라마 중간중간 잘라 들어가지만 어쨌든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래원은 편집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조금 전 커트는 [선오] 감정선이 잘 살아서 좋고, 지금 이 커트는 [선오]는 약간 아쉽지만 [주디 라이즐]의 바이올린 연주 에너지가 너무 좋네요.”
래원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 고충에 동참하기라도 하듯 편집 감독이 거들었다.
“주인공을 살리냐, 할리우드 카메오를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네요?”
고민하던 래원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할 수 없네요. 둘 다 살려야겠어요. [선오]가 잘 나온 커트 사이에 [주디 라이즐]의 카덴차 커트를 병치시켜서 팽팽하게 힘을 실어주면, 이 시퀀스의 의도도 잘 살 거 같아요.”
둘 다 살리는 대신 분량이 늘어나고 말았다.
뒤에 어딘가에서 간략하게 편집을 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장면은 두 인물 모두 살려야 한다고 판단한 래원이었다.
“카덴차라는 게, 독주를 말씀하시는 거죠?”
“네네, 원샷이요.”
편집 감독의 손이 다시 바삐 움직였고,
래원은 눈으로 다시 한번 편집본을 쫓으며 자신의 판단을 되새김질했다.
다음 편집으로 넘어가기 전,
래원을 살피던 편집 감독이 문득 웃으며 말을 건넸다.
“도 감독님은 배우들을 사랑하시네요.”
“네?”
“그냥 그게 느껴져요. 배우를 아끼신다는 게요. 화면에서도, 편집하실 때의 눈빛에서도요.”
“제가 배우들을 아껴야, 시청자들도 우리 배우들, 우리 드라마의 캐릭터들을 아껴주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새삼 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하며 점점 당연하게 여기게 됐지만 분명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수백 수천 수억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거요. 기적 같은 일인 거 같아요.”
편집 감독이 느닷없이 건넨 말에,
래원도 피식 웃으며 거들었다.
“그러게요.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힘든데 말입니다.”
래원의 얼굴은 씁쓸하게나마 미소짓고 있었으나, 동시에 가슴 속에는 비장함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해내야지. 이번에도 시청자들이 우리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들어야지.’
* * *
이제 늦가을이 완전히 지나가고 길거리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다.
래원은 패딩 코트를 여미며 캐리어를 끌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늘은 의 마지막 촬영지인 비엔나 로케이션을 떠나는 날이었다.
공항에 도작하자마자 빠르게 탑승 수속을 마친 후, 비지니스 클래스 라운지에 앉아 대본과 콘티를 점검하는 래원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제작PD 안정원 실장과, 조연출 임현서가 래원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앉았다.
한껏 집중한 래원에게 말을 시키지는 않고, 대신 둘이 조곤조곤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누나, 우리 잘하면 크리스마스를 비엔나에서 보낼 수 있겠어요.”
“으음⋯. 그러네. 찍다 보면 연말 되는 거 순식간이겠구나. 촬영이 딱 1주일만 지체되면 현서씨 말대로 될 거 같은데?”
앞의 촬영들이 예상보다 순탄하게 흘러온 덕에 비엔나에서 쓸 수 있는 일정도 예산도 넉넉한 편이었다.
게다가 꼼꼼함을 잊지 않는 래원의 성정과,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촬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주일 정도 길어지는 것은 상당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촬영이 딜레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강 대표님이 시원하게 한턱 쏘실 일은 없을까요? 촬영 종료 기념 보너스 휴가 같은 거요.”
“하하하. 글쎄⋯.”
“저는 그분 성격을 아직 잘 모르지만, 누나는 친하시잖아요. 가능성 없어요?”
“사적으로만 친하지. 나도 제작 피디가 처음이고, 채령 언니도 제작은 처음이라⋯.”
비엔나의 겨울.
래원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워커홀릭 대열에 드는 안정원과 임현서가 한껏 들뜨는 것이 당연했다.
곧이어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선배님, 가시죠.”
래원과 안정원, 임현서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 세 명이 다른 스텝이나 배우들보다 사흘 정도 먼저 떠나는 일정이었다.
미리 만나볼 손님들도 있고, 촬영지를 사전에 체크하며 다른 스텝과 배우들을 기다리는 게 이들의 일이었으니까.
“환영합니다. 즐거운 비행 되십시오.”
세 사람은 승무원의 환대를 받으며 비즈니스석에 들어섰다.
“저어, 혹시⋯ 도래원 감독님, 맞으시죠?”
객실 승무원 하나가 다른 손님들이 아직 탑승하지 않은 틈을 타서 래원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네, 안녕하세요.”
래원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생소하고 귀찮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안 하게 될 만큼 익숙해졌더랬다.
“셀카 하나만 같이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요.”
승무원이 휴대폰을 건네며 래원의 옆에 나란히 섰다.
래원은 그것을 들고 팔을 길게 뻗어 투샷을 찍어주었다.
찰칵——
“감사합니다. 감독님 실물이 훨씬 멋지세요! 다음 드라마도 기대할게요! 즐거운 비행 되세요.”
“네, 고맙습니다.”
그 승무원이 총총총 신난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지자,
“래원 선배! 와⋯. 방금 그 승무원 완전 이쁘던데요?”
임현서가 흥분을 애써 누르며 말했고,
래원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짜식⋯.”
이럴 때보면 임현서는 영락없는 20대였다.
잠시 후, 승객이 모두 탑승하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수면 안대를 끼며 잠을 청하는 래원이었다.
비행 내내 밀린 잠을 잘 생각이었다.
“현서야 밥 나올 때 깨워라.”
“넵, 선배님.”
두 번의 식사와 몇 차례 간식이 제공되며,
12시간쯤 흘렀을까.
밀린 피로가 다 풀린 건지 래원은 어느새 말똥말똥한 눈으로 비엔나에서의 일정표를 체크했다.
그사이 래원을 실은 비행기가 구름 속을 뚫고 내려가 지상을 향해 몸을 낮추기 시작했고,
산과 강 그리고 그 주변에 집과 건물들이 레고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이 광경을 마주하자 반가움이 밀려들었다.
“오랜만이다, 비엔나.”
래원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비엔나 행이었다.
래미와 여행차 들렀던 빈의 첫인상,
로케이션으로서의 두 번째 인상, 그리고 이번 를 찍기 위해 오늘 다시 만난 빈.
이번 비엔나의 풍경이 한층 여유롭게 느껴지는 건,
비엔나를 바라보는 래원에게 전보다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푹 잔 덕분인지 의욕이 샘솟았다.
힘찬 발걸음으로 기내에서 내려 짐을 찾고는 출국 게이트를 나서는데,
“어머! 도 감독님! 저기 좀 보세요!”
안정원이 놀라 소리치며 가리킨 곳.
그곳에는 뜻밖의 인사가 직접 래원의 일행을 마중 나와 있었다.
그것을 본 임현서도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저분이 그분이죠? 나나 크루거.”
그랬다.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단장이자 이사직을 맡고 있는, 클래식 음악계의 대모 ‘나나 크루거’.
그녀가 직접 나와 수행원들과 함께 래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 래원 선배 뭔데요. 선배 여기서 귀빈이에요?”
“귀빈은 무슨⋯.”
래원은 임현서의 너스레를 장난스레 맞받았지만, 속으로는 솔직히 놀라고 있었다.
‘어우, 바쁘신 분이 직접 나오실 줄이야⋯.’
칸 영화제에서 만났던 그녀는 블랙 드레스 차림이라 고혹적인 미중년의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긴 주름치마를 덕인지 푸근하고 귀여운 아주머니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안정원 실장도 예상 못 했던 일인지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수행원 보내신다고만 연락하셨지. 직접 공항에 나오신다는 말씀은 없으셨는데⋯.’
그때, 나나 크루거도 래원을 발견했는지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도래원 감독님!)”
몹시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하는 그녀였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238화 – 리디북스
“(원래는 우리 직원들만 보내려고 했다가, 미팅이 취소돼서 마침 짬이 났지 뭐예요.)”
나나 크루거가 래원을 반기며 말했다.
“(덕분에 도 감독님 이렇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도 보고 좋네요.)”
“(저도 비엔나에서 처음 만난 분이 크루거 단장님이셔서 좋습니다. 빈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고혹적인 도시라는 걸, 지금 느끼고 있거든요.)”
일순간 나나 크루거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래원도 작정하면 사람 마음을 들었다가 놓는 데에는 선수였다.
때문에 꼭 필요할 때에만 쓰는 기술이었다.
오는 정이 있으니 돌려줘야 할 정도 있는, 지금 같은 때 말이다.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시죠? 배부터 채워드려야겠네요.)”
나나 크루거나 수행원 중 하나에게 뭐라뭐라 지시를 내리자,
그가 래원의 일행을 데리고 리무진으로 안내했다.
래원의 뒤를 따르던 임현서와 안정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갑자기 분위기 리무진⋯?’
‘와아, 진짜 크다⋯.’
나나 크루거도 함께 리무진에 탑승했다.
“(세 분 입맛에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보아하니 오늘 나나 크루거의 공항 마중과, 지금 향하는 식사 자리는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닌 듯했다.
원래는 호텔에 데려다주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어느 레스토랑을 가야할지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래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어디를 가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장님과 함께 빈에서라면, 뭐든 맛있을 거 같은데요?)”
이에 나나 크루거의 얼굴에 다시 한번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잠시 생각을 고르던 그녀는 운전 기사에게 식당 하나를 지시했다.
가스트하우스 레스토랑(Gasthaus restaurant).
래원도 들어본 적 있는 유명 식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