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8
28 – 37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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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도약을 위해서
‘배 사장님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는 분이 아니신데···. 래원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보군.’
황태수는 배 사장의 반응이 수긍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래원의 목표, 래원의 꿈.
단기적인 목표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건 드라마로 연출 입봉을 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내 작품으로 더 많은 사람들,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는 것.
그곳까지 단계 단계 밟아나가고 싶었다.
‘빠르게 치고 올라갈지 언정, 첫 단추부터 허투루 끼우고 싶진 않아!’
래원은 목표에 이르는 각 과정에서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게 있다고 생각했다.
“먼 목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지금은 단막극 입봉을 준비해보고 싶습니다.”
“단막극이면···?”
“2부작이나 4부작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미란 사장은 래원을 신입PD 선발 면접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녀가 드라마국 PD 시절부터 간직해온, ‘드라마란, 사람이다’ 라는 모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응시자가 바로 래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최측근인 황태수가 부장으로 승진한 후, 그가 점찍은 후배가 도래원이었음을 알고는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에 기뻤다.
그런데,
지금 래원의 이 대답은 의외였다.
‘이 친구 정도의 낭중지추(囊中之錐)라면, 8부작이나 16부작을 바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배 사장은 래원이 입사하자마자 조연출로 합류했던 드라마 에서 래원의 활약을 전부 전해들어 알고 있었다.
하이라이트 티저와 예고편, 그리고 갑작스러운 C팀 감독 데뷔와 조연출 졸업까지 말이다.
게다가 이번 드라마 에서 역시 B팀 감독으로서, 아니 그 이상으로 충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래원이었다.
그런 래원이 2부작이나 4부작 정도의 단막극을 다음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그릇이 작은 놈이거나, 반대로 그릇이 너무 커서 대기만성(大器晩成) 타입이거나.’
배 사장은 후자의 생각에 무게를 약간 더 두었으나,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라고 생각했다.
“황 부장, 지금 단막 대본 돌고 있는 거랑, 앞으로 들어오는 기획안이든 대본이든 전부 도 피디한테도 챙겨줘.”
“네 알겠습니다.”
“도 피디, 황 부장 괴롭혀서 괜찮은 작품 잘 골라서 준비해 봐. 이건 긴급 편성이고, 4월 말이 될 거야.”
“긴급 편성이요?”
래원이 물었다.
이 긴급 편성은 현재, 배미란과 황태수만 알고 있는 따끈따끈한 이슈였다.
“4월 말에 편성됐던 수목 미니가 5월 초로 미뤄지는 바람에, 1주에서 2주 정도 공백이 생겼거든.”
“이 국장님 한테는 제가 말씀 드릴까요?”
“아니. 내가 말하지. 황 부장은 ‘재벌의 세계’ 마무리로 정신 없을 테니.”
래원은 이같은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래원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말할 타이밍.
“저, 그리고 또···. 이번에 제가 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배 사장과 황 부장이 래원을 쳐다보았다.
“제 단막극 입봉의 연출부는, 제 동기들이랑 꾸리고 싶습니다.”
유찬과 지혜영. 두 사람을 조연출로 두고 셋이 함께 차기작을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 * *
며칠 후, 래원과 래미의 집.
막바지 촬영 일정 속에서 간만에 함께하는 저녁 식탁이었다.
어쩐 일인지,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도래미, 왜 오빠한테 이야기 안 했어?”
심상치 않은 목소리의 래원.
오늘 낮에 래미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진로 탐구 보고서. 래미만 안 내서 연락드려요. 학년 초에 내줬던 건데···. 0점 처리할 수는 없으니 다음 주까지 지도 좀 부탁드려요.
“······”
지금 래미는 래원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지만, 래원은 그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방송국 일로 바쁜 래원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거고,
꿈이 없기에 보고서 숙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조차 못 잡고 있을 것이다.
사실 래원이 지금 화가 난 것은 래미 때문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이 진로 탐구 보고서의 존재조차 몰랐던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또래보다 의젓해 보이는 래미지만 고작 16살짜리였다.
한창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다.
‘래미가 과거에는 그럼 그냥 0점을 받았던 거야?! 나한테 말도 못 하고?! 하아···.’
래원의 얼음장 같은 반응에 래미는 계속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 숙인 채 된장국만 떠 먹고 있었다.
래원은 이를 눈치채고 의식적으로 목소리와 표정을 풀었다.
분명 래미가 잘못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래미야, 너 오빠 촬영장 와 볼래?”
“재벌의 세계 촬영장?”
“어.”
“그치만 진로 탐구 보고서는, 오빠가 아니라 내 장래 희망이랑 관련된 걸로 써야 하는데?”
“너랑 관련 지어서 써 보면 되지. 저번에 대본에도 관심있어 했잖아. 오빠가 콘티짜는 거 보고 어떻게 찍는 건지도 궁금해했고.”
“그렇긴 한데···.”
“장래희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 편하게 생각해.”
“내가 그런 데에 가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도래원 동생인데! 너, 보고서 빵점 받을 순 없잖아. 네가 와서 볼 만한 촬영 스케줄 몇 개 카톡 보낼 테니까, 내일까지 골라서 답줘.”
“알았어.”
래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걸 보고, 래원도 덩달아 안심이 됐다.
“아, 그리고 래미야, 너 예술고 입시 원서 한 번 넣어보는 거 어때?”
“예술고? 갑자기?”
말이 나온 김에 혼자 생각해왔던 예술고 진학에 대해 제안해보는 래원.
“너 그동안 몇 번 연예 기획사에 캐스팅도 됐었잖아. 그렇다구 네가 공부에 취미가 있거나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아아, 오빠! 밥 먹을 땐 팩트 폭행 금지! 소화 안 된다고!”
“잘 생각해 봐. 입시는 오빠가 도와줄게. 붙으면 좋고, 아니면 그냥 일반고 가면 되지.”
“예술고···? 알겠어. 한 번 생각해 볼게.”
래원은 래미를 향해 빙긋 웃었다.
래원 본인의 꿈에는 안정적으로 차례차례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제는 래미의 꿈을 함께 찾고 돌봐줘야 할 때였다.
* * *
“하인혁이 고거, 이번에 잘 망했습니다, 아주.”
“최고의 기대주 어쩌고 할 때부터 신경 쓰였는데, 잘 됐지 뭐. 걔한테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거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콧대가 한 번은 꺾여 봐야지.”
이 국장과 문 부장 대화.
그리고 임장호 PD도 듣고 있었다.
세 사람은 지하 구내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한 후,
커피를 한 잔씩 손에 들고 건물 앞 화단 벤치 앉았다.
SBC 드라마국 ‘이 국장 라인’의 핵심 축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지금 ‘김 부국장 라인’의 후배 하인혁 PD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다.
최근에 그가 찍었던 입봉작, 송년 특집 4부작을 대차게 말아먹어서 애국가 시청률을 찍었다는 소식을 디저트로 삼고 있었던 것.
“이제 그짝 라인에서 신경 쓰이는 건 하인혁보다는 도래원이지?”
이 국장의 말.
이에 문 부장과 임장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지난주까지도 인터넷 게시판이랑 기자들 계속 난리였던 거, 장호 너도 알지? 도래원이한테 다들 왜 그리 관심들이 많은 거야! 짜증 나게! 그나마 황 부장이 먼저 기자들 커트하고 처신을 잘해서 내가 가만히 있긴 했는데···. 얼마 안 남은 거 잘 좀 해보자, 장호야.”
“네, 국장님.”
이 국장의 핀잔 같은 격려에
임장호는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차라리 도래원이 됨됨이가 글러 먹은 쓰레기라면 대놓고 미워할 수 있어서 편했을 거다.
하지만 도래원은 임장호가 옥영임 작가와 싸울 때도, 기회로 여기고 더 튀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B팀 감독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임장호의 입지를 건드리지 않았다.
‘실력과 인성을 다 겸비한 놈이라서! 경우가 바른 놈이라서! 더 싫다!!’
지금 자신의 감정이 그저 그런 ‘질투’ 일 뿐이라는 것을 임장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더욱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갈증에 목이 탔다.
임장호는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빨아 마셔보았지만, 시원하기는커녕 씁쓸하기만 했다.
그의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 * *
“우와. 여기 분위기 괜찮네?”
래원과 지혜영.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여의도가 생겼을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름 전통있는 바(Bar)였다.
여의도 방송가, 증권가 그리고 국회 손님들을 상대하는 입 무거운 바텐더들이 상주하는 곳.
래원과 지혜영이 바에 들어서자 그들이 눈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안내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고,
잠시 후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왔다.
“축하해. 이번 드라마 끝까지 잘 버텨낸 거. 수고 많았다, 지혜영.”
“고마워. 오빠네도 얼마 안 남았네. 마무리 잘 해.”
뭔가를 망설이던 지혜영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있잖아, 오빠. 나 아무래도 방송국 일이 적성에 안 맞나봐.”
“그게 뭔 소리야?”
래원이 놀라서 반문했다.
과거에 지혜영이 갑작스레 퇴사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 일 나한테는 아닌 것 같아. 내가 자존심도 너무 세고, 굽힐 줄도 모르고···.”
“하인혁 때문에 그래?”
“꼭 하인혁 선배 때문만은 아니야. 저번에 임장호 선배 조연출 할 때도 내가 오빠한테 일일이 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많이 힘들었어.”
“임장호 선배도 모시기 힘든 타입이야. 내가 알지.”
지혜영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지금 드라마국에서 직속 사수로 모시기 가장 까탈스러운 두 사람은 공공연히 임장호와 하인혁이다.
“아니. 아무래도 문제는 나인 것 같아. 오빠도 말로는 힘들다고 하지만 이번에 임장호 선배랑도, 저번에 하인혁 선배 밑에서도 잘 해냈잖아. 난 매번 트러블만 만들고···. 도저히 못 하겠어.”
지혜영은 담담하게 말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중간중간 울먹임이 섞여 나왔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
전형적으로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갖는 사고의 흐름이었다.
래원은 화가 나고 답답했다.
지혜영에게 자신이 가진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그녀가 자존심을 다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지혜영이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내 래원에게 보여주었다.
“너, 그거···?”
지혜영이 손에 든 하얀 종이 봉투 두 개.
하나는 사직서, 하나는 휴직서였다.
“고민을 좀 더 해보려고, 둘 중에 뭘 낼지. 결심이 서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후련하게 내 버리려고 갖고 다니는 거야.”
과거의 지혜영은 이 두 개의 봉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사직서를 꺼냈었나 보다.
“야! 네가..네가 그걸 왜 내! 쉬든 관두든 하는 건 하인혁이어야지! 네가 왜!!”
지혜영은 대답 없이 그저 술잔을 들어 입에 댈 뿐이었다.
래원도 화를 삭이며 잔 아래 얕게 찰랑거리는 술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고는, 운을 뗐다.
“혜영아, 내가 손 써 본다고 했었지? 다음부터는 하인혁이랑 얼굴 볼 일 없게 만들어주겠다고.”
“···그랬었지. 근데 그게 가능해? 신입인 우리한테 선택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리 차기작, 같이 하자. 유찬이랑 셋이서 한 팀으로.”
“그럼 얼마나 좋아. 근데 그게 우리가 하고 싶다고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
“이미 결정 났어. 우리 셋, 차기작 같이 하는 걸로.”
“···정말?”
“어. 이젠 선배들 눈치 안 봐도 돼.”
“진짜? 진짜지?”
“그렇다니깐. 너 자존심 굽힐 필요도 없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오빠랑 하는 거면 무슨 작품이든 다 좋아!”
“하하하. 그럼 이건 이제 필요 없지?”
래원이 지혜영의 손에 들린 두 개의 봉투를 빼앗으며 물었다.
지혜영이 활짝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부우우욱——
찌이이이익——
래원도 웃으며 그 두 개의 봉투, 사직서와 휴직서를 찢어버렸다.
속이 다 시원해졌다.
‘지금 혜영이한테는 방송 일을 즐기면서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할 기회가 필요해.’
지혜영의 퇴사를 막았으니, 이제는 더 큰 도약을 만들어 줄 차례였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 래원 자신에게도 커다란 도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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