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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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미의 재능 (2)
* * *
드라마 14화 초반에 잠깐 얼굴을 비췄을 뿐인 래미는 세간의 호기심을 끌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와 드라마 관련 커뮤니티에 래미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반응들이 올라왔다.
방영 다음 날 아침.
래원은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 소리에 잠에서 깼다.
폰 속에 여러 알람이 많이 있었지만,
가장 급해 보이는 것은 캐스팅 디렉터한테 온 카톡이었다.
[신 디렉터] 감독님ㅠㅠ 기자들이나 관계자들한테 래미 양에 대해 묻는 연락 계속 오는데ㅠㅠ [래원] 에고.. 계속 함구 부탁드릴게요. 래미가 아직 어려서 이런 관심은 독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ㅎㅎ [신 디렉터] 네, 미성년자고 일반인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하고 있어요. [래원] 감사합니다ㅎㅎ지이이이이잉——
이번에는 옥영임 작가의 전화였다.
“네, 작가님!”
– 자기 동생이라며? 객석 소녀!
“아···. 네.”
– 어머머, 그렇게 예쁜 동생 있다고 왜 말 안 했어?
“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 다른 게 아니구, 나 지금 16화 대본 탈고하고 있거든? 여기에 자기 동생 한 번 더 출연시키면 어떨까 해서 전화한 거야. 사람들 반응이 좋더라구. 내가 보기에도 신선하고 순수하니 매력있더라.
“마지막 화예요? 무슨.. 역할로요?”
– 14화랑 똑같이 재성이 동생 팬, 성악가 지망생으로! 사인회에 잠깐 등장시키려고. 대사도 있어.
“따로 연기 배운 애가 아니라서 대사까진 힘들 거 같은데요···?”
– 그냥 사인회에서 ‘언니, 팬이에요!’ 하는 류의 간단한 대사야.
“그냥 보조 출연자 중에서 쓰···.”
– 안 돼! 나름 중요한 역할이란 말야! 우리가 끝없는 욕망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드라마잖아?
“그렇죠.”
– 마지막 회에서 이 메시지를 확실하게 찍어주려면, 재성이 동생 또한 욕망의 노예가 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근데 자기처럼 되고 싶다는 소녀팬이자 성악 학도 후배를 만나서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한다는 거죠?”
– 아, 역시 도 피디! 내가 이래서 자기를 좋아하잖아. ‘나두 그냥 노래만 불러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지금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지.
“그런 전개는 좋은데, 그 자극제 역할을 래미한테 맡기시겠다구요···?”
– 응, 딱 이잖아! 자기 동생 순수한 이미지에도 맞고, 이번에 이슈화된 거보면 분명 반응도 좋을 거야! 내 막장 드라마에 신선한 순수함 한 스푼 이랄까?
“아, 그래도 작가님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
– 어머머, 도 피디답지 않아. 결단력 없이 왜 이래? 일단 지금 시간 없으니까 그렇게 쓰고 탈고할 거야, 난.
래원이 뭐라고 더 대꾸할 사이도 없이 전화를 띡- 끊어버린 옥영임 작가.
‘옥 작가님처럼 까다로운 분이···. 우리 래미가 마음에 들긴 하셨나 보네.’
하지만 래원은 기쁘기 보단 걱정이 앞섰다.
‘래미가 한 번 더 출연하는 게··· 괜찮을까? 우리 드라마를 위해서도, 래미를 위해서도 말이지.”
똑똑똑—
때마침 들려온 래미의 노크 소리.
래미는 래원의 방문을 열고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일어난 거 같아서 나오라구. 아침 안 먹어?”
“······”
지금 아침밥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래원은 래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대뜸 물음을 던졌다.
“도래미, 너 촬영장 와보니까 어땠어?”
“재밌었어!”
미간에 인상까지 찌푸린 래원의 얼굴과 달리,
래미의 반응이 너무 투명하고 맑아서 래원은 순간, 피식- 했다.
“하하, 재밌었어?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데?”
“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로 성악가 지망생이 된 거 같았거든. 재밌구 신기한 느낌이었어. 그리구, 감독님 소리 들으면서 ‘레디, 액션!’ 외치는 오빠도 멋있었구, 거기 있는 사람들 다 멋있어 보였어.”
상기되어 이야기를 꺼냈던 래미의 목소리가, 갑자기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꿈이 있는 건 멋있고 재밌는 거구나, 부럽다···. 뭐, 그런 생각도 들구.”
“야, 도래미! 앞길 창창한 녀석이, 뭐가 부럽냐! 꿈이야 앞으로 가지면 되는 건데.”
“그래서 말인데 오빠, 나···.”
쭈뼛쭈뼛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래미.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말해 봐.”
“저번에 오빠가 말했던 예고 원서 넣어볼래. 연기과 있는 학교로.”
래원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곧바로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미리 찾아둔 ‘예화 예술고등학교’ 원서 파일을 열고는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력에도 한 줄 적어넣었다.
– SBC 드라마 단역 출연.
“자소서랑 실기 준비, 면접 준비는 앞으로 같이 차근차근히 해보자.”
“어? 여기 보니깐 추천서도 받아야 하는데? 이거 우리 담임 선생님이 써 줄까? 내가 예술고 지원하는 거 전혀 생각도 못 하실 텐데.”
“학교 선생님 말구, 오빠가 방송국 선배나 아는 제작사 쪽에 부탁해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진짜?? 그래 주면 완전 땡큐지···! 근데 원서 마감 다음 주까지고 실기랑 면접 일정도 시간이 너무 촉박해. 괜찮을까? 잘 할 수 있을까?”
“조급하게 굴면 아무 도움도 안 돼.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해. 너 원래는 예술고 생각 없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럼 떨어지면 일반고 가면 되지, 뭐. 연기 배우고 싶으면 연기학원 보내줄게.”
래원의 말에 래미는 부담을 덜었는지 싱긋이 웃었다.
“그래애! 까짓거, 즐기면서 해보지 뭐! 도래미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도래미는 도래원 동생이니까.”
주말 아침부터 이 작은 반지하 집에서 두 남매의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터져 나왔다.
* * *
연휴의 SBC 드라마국은
한산하다 못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래원은 도서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몇 개의 대본을 정독하고 있었다.
오늘은 래원에게 촬영이 없는 오프이면서, 휴일이다.
한마디로 쉬는 날까지 반납하며 출근을 했다는 말이었다.
“하아, 오늘은 꼭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 보고 있는 4부작 대본 중에서 차기작을 골라야 했다.
“김윤하, 김윤하···.”
래원이 지금 되뇌이고 있는 건, 대본 표지에 적힌 작가의 이름이었다.
지난 삶에서 래원의 첫 단막극 입봉과 미니시리즈 입봉을 함께 했던 동갑 작가다.
당시 단막극은 시청률도 반응도 그럭저럭 봐줄 만 했지만, 미니시리즈는 단 7화 만에 조기종영했다.
래원에게는 동료였고 한 팀이었던 김윤하.
그녀는 매번 실력에 비해 운이 따라 주지 않는 작가였다.
그래서 래원에게 ‘김윤하’는 아픈 이름이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니까.”
그때는 둘 다 30대 중반에 처음 만나 같이 일을 했지만, 지금은 27살이다.
그때의 래원은 경험이 없었고 운은 더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지금 이 작품에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이,
과거의 실패 때문에 생긴 오기나, 김 작가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은 아닌지 자문해보며 대본을 읽고 또 읽어보는 래원.
4부작 단막극 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드라마로, 유산을 놓고 터지는 거대한 음모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동경에서 그림 유학을 마치고 경성으로 돌아온 남자 주인공은,
우연히 혼마치의 밤거리를 헤매는 한 여인을 만나고 그녀를 돕는다.
그녀는 독특한 레이스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다음 날, 주인공은 어느 후작의 대저택으로 향한다.
경성 변두리에 지어진 외딴 대저택으로 동서양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뒤섞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입주 교사로 일하며, 이복 자매에게 유화와 일본어를 가르친다.
그 후로 주인공이 이 이복 자매와 함께 각종 미스터리한 일에 연루되는 전개가 이어진다.
“아무리 봐도 나쁘지 않아.”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 훌륭한 대본이었다.
물론 신인 작가 특유의 투박하고 설익은 느낌이 다분했지만,
이는 뻔하지 않고 통통 튀는 재미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흡인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잠깐, 이거? 영화 이랑 너무 비슷한데···. 아! 그럼 이게 그 대본이야?”
래원은 과거, 김윤하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당돌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재생되는 것 같았다.
‘저 아직 정식 작가로 입봉 못 했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영화 원작자가 저거든요. 그거 제가 난생처음 쓴 단막극 대본을 감독님이 각색한 거예요.’
훗날 천만 관객을 돌파하게 될 영화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소위 ‘감독의 예술’이라 시나리오 단계부터 감독의 수정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때문에 영화가 잘 되어도 대부분의 공이 작가가 아닌 감독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특히나 이 영화는 당시에 감독과 배우들만 상을 받았으니 말 다 했다.
그래서 원작자 크레딧을 달고서도 그 영화의 유명세 덕은 거의 보지 못했던 김윤하 작가.
물론, 이는 당시에 그녀가 워낙 신인이고 인지도가 없던 탓도 있었다.
어쨌든 그 천만 영화의 원작 대본이 지금 래원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었다.
“처음 쓴 거치고는 훌륭해.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대본이다. 이건 분명 잘만 다듬으면 수작이 될 거야!”
래원은 결국, 김윤하 작가의 을 차기작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녀를 곧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 * *
오늘 오전 촬영을 끝으로, 드라마 촬영 일정은 이제 마지막 회 분량만 앞두고 있었다.
래원은 오랜만에 금요일 오후 시간을 홀로 집에서 여유 있게 즐겼다.
밖에서 불금을 보내는 대신, 집에서 참치 계란말이를 굽고 김치찌개를 끓여 두고는 래미를 기다렸다.
래원은 이런 소소한 행복이 좋았다.
“우와아아!! 안 그래두 칼칼한 김치찌개 먹고 싶었는데! 낮에 애들이랑 까르보나라 파스타 먹었거든. 맛있긴 했는데 너무너무 느끼하더라.”
집에 오자마자 재잘거리며 식탁으로 달려든 래미.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너 진짜 괜찮겠냐?”
“뭐가?”
“다음 주 촬영.”
래원은 어젯밤 래미에게, 옥영임 작가가 밀어붙이는 16화 대본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대사도 있다는 말에, 오히려 래미는 흔쾌히 ‘웅, 할래!’ 라고 답했다.
래원의 걱정과는 다르게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의욕적인 태도를 보였던 래미.
지난번의 경험이 래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았다.
“웅, 어젯밤에도 말했잖아. 난 하고 싶어! 재밌을 거 같아! 드라마에 피해 안 가게 열심히 준비할게! 대사도 다 외웠어!”
래미는 보란 듯이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저도 언니처럼 노래할 수만 있으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시겠죠? 완전 팬이에요!”
래원의 앞에서 검사를 받듯 대사를 쳤다.
“어때?”
피식-
심각했던 래원의 얼굴에 근육이 풀리며 웃음이 떠올랐다.
“잘 외웠네.”
“너무 오바했나? 톤을 좀 낮출까?”
“네가 며칠 전에 그랬잖아. 우리 촬영장 왔을 때, 꿈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고.”
“웅.”
“오빠한테 그 이야기를 했던 그 감정, 그 호흡으로 그때 그 텐션까지만 치면 돼. 그게 너의 진심이었으니까.”
“알겠어. 대사에 더 진심을 담으라는 거지? 월요일 촬영까지 연습 더 해볼게!”
래원의 말에, 래미는 힌트를 얻은 것처럼 신이 나서 눈을 반짝였다.
지이이이이잉—
래원의 전화가 느닷없이 요란하게 울렸고,
“누구지? 모르는 번호인데?”
래원은 의문의 전화를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원더빅 엔터테인먼트 박현만 입니다. SBC 도래원 피디님 되시죠?
원더빅의 박현만 대표에게 직접 걸려온 전화.
래원은 놀란 기색을 감추며 통화를 이어갔다.
“네, 그런데요.”
– 동생분 일로 연락드렸습니다. 피디님께서 도래미 양의 친오빠 되신다고 들어서요.
“네, 맞습니다만, 우리 래미는 무슨 일로···?”
– 저희 회사에서 래미 양을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잠깐 시간 내주시면 직접 만나 뵙고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피디님.
“······”
재벌의 세계를 보고 연락한 건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래미가 원더빅 캐스팅 명함을 받아온 적이 있었네! 그때 연락을 안 주니까 다시 수소문 한 건가?’
래원은 시선을 들어서 앞에 앉아 있는 래미를 빤히 보았다.
무슨 전화냐는 듯, 커다란 두 눈에 물음표를 띄우고 래원을 쳐다보는 래미.
‘래미가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놔둬도 되는 걸까?’
재능과 운이 모두 따라주는 자만이 겨우 살아남는 연예계.
래원 역시 PD의 안목으로 래미의 가능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지금은 오빠로서 걱정이 더 앞섰다.
– 도 피디님? 왜 말씀이···. 아, 혹시 피디님 지금 잘 안 들리는 거 같은···.
“아, 아닙니다. 잘 들립니다, 박 대표님. 좋습니다. 한 번 뵙죠. 제가 다음 주 초까지는 일정이 꽉 차 있어서요, 다음 수요일 이후로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래원은 박현만 대표와 약속을 잡고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박 대표는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래미 없이, 보호자인 래원과 단 둘이서만 미팅을 하고 싶다고 했으나 래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무슨 전화인데 얼굴이 그렇게 심각해?”
래미가 입 안에 계란말이를 오물거리며 말간 얼굴로 물었다.
“너 방학이 언제부터지?”
“오늘.”
“오늘? 벌써?”
“웅, 오늘 방학식 했어.”
“아···.”
“방학은 갑자기 왜?”
“그럼 이제 시간 많겠네?”
“그렇지, 뭐.”
“그럼 너도 오빠랑 같이 가자.”
“어딜?”
“어딘진.. 다음 주에 알려줄게. 너를 위한 곳이야. 목요일 낮에 시간 꼭 비워 놔.”
“웅, 알겠어. 월요일은 촬영, 목요일은 어딘지 모르지만 오빠랑 약속. 빨랑 다음 주 됐으면 좋겠다.”
해맑게 웃는 래미를 보며,
래원은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원더빅 엔터테인먼트.
현재는 국내 TOP3 안에 드는 굴지의 연예 기획사이고, 훗날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업계 넘버원으로 성장해서 세계적인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키워낸다.
주력 분야는 아이돌 가수 매니지먼트.
‘그런 박현만 대표가 우리 래미를 키워보고 싶다고? 그 말인즉슨, 래미한테서 아이돌로서의 가능성을 봤다는 건가···? 아니, 대체 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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