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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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2)
“어? 근데 이거···.”
“왜? 무슨 문제 있어?”
래원은 화면 속 시놉시스 파일과 대본 파일을 번갈아 클릭해보았지만, 아무리 해봐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경고창만 뜰 뿐이었다.
“아 씨···. 파일이 깨졌나? 안 열리는데요?”
“그래? 외장하드 자체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디지털 포렌식. 지금 당장 의뢰하러 가야겠어요. 작가님, 오늘 협조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김윤하 걘 좋겠다. 입봉작부터 대체 무슨 복이니. 피디가 작가를 이렇게나 철석같이 믿어주고! 백방으로 뛰면서 도와주고!”
“하하하. 한 팀인데요, 당연한 거죠.”
“한 팀? 적과의 동침이 아니고? 이 바닥에 그 당연한 걸, 당연시 안 하는 피디들이 많으니까 문제지.”
“···에이, 안 그래요.”
“암튼 도 피디, 자기는 나랑도 작품 꼭 한 번 해야 해? 안 그럼 나 정말 삐질 거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옥 작가님 대본으로 찍게 해주시면 제가 영광이죠.”
래원의 마지막 말에,
옥 작가는 비로소 뾰로통하던 표정을 풀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도 피디, 보면 볼수록 너어어어무 탐나는 감독이란 말이지···.’
* * *
어제오늘, 인터넷 커뮤니티는 어디든 ‘레장여 표절’ 시비 건으로 난리였다.
[ 레장여 표절이다? 아니다? 다들 어케 생각함? ]ㄴ 빼박 표절 아님?
ㄴ 작가가 쌩신인이라며ㅋㅋ 이렇게라도 데뷔하고 싶었나 봄ㅋㅋ
ㄴㄴ ㄹㅇ 작감이 신인이랄 때부터 불안했는데
ㄴ 이제 막 전역해서 팬들한테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고 쉬지도 못하고 작품 들어간 우리 수호는 무슨 죄?
ㄴㄴ ㅇㄱㄹㅇ 이 진흙탕에서 우리 수호 당장 빼내오고 싶엉ㅠㅠ
ㄴ 초호화 캐스팅으로 대체 이게 뭔 짓임?
ㄴ 존나 기대하고 있었는데ㅜㅜ 다 된 밥에 표절 뿌리냐고ㅜㅜ
한편,
SBC 드라마국의 팀 회의실.
이곳에서 오늘 긴급 비상 회의가 소집됐다.
이 국장, 김 부국장, 황태수 부장, 도래원, 원더빅 박현만 대표,
그리고 주연 배우 엄하늘, 양수호, 민세라까지.
이 드라마의 성패가 본인의 커리어에 직결되는 8명의 핵심 인사가 모였다.
김윤하 작가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드라마와 우리 각자에게 예상치 못한 큰일이 터졌습니다. 생각보다 치명적일 수 있는 사안이라, 여러분들 개인의 의견도 듣고, 다 같이 머리를 맞대보면 뭐라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담당 책임 프로듀서인 황태수CP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민세라가 팔짱을 끼고 귀찮게 여기까지 왜 불렀냐는 투로 입을 열었다.
“더 볼 것도 없이, 표절 맞는 거 아니에요? 지금 여론도 다 그쪽 편이잖아요.”
양수호도 혼잣말을 하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투덜댔다.
“이래서 신인 작가 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는데···.”
원더빅 박현만 대표는 화를 꾹꾹 눌러서 참고 있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김 작가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아무리 입봉을 빨리하고 싶어도, 창작자가 자존심도 없답니까? 작가님 한 분의 과욕과 불찰 때문에 이대로 투자금을 허공에 날릴 수는 없습니다! 작가 교체해서 문제가 되는 부분만 수정해서 갈 수는 없나요?”
“작가 교체요? 흐흠. 그 부분은 검토해보겠습니다.”
이 국장과 김 부국장은 드라마국의 수장으로서, ‘작가의 말을 믿고 조금 더 지켜보자’는 둥의 말을 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두 사람 역시 김윤하 작가가 표절한 게 맞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래원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작가님이 표절 안 했다잖아요! 왜들 같은 팀원 말은 안 믿고, 상대 말만 믿으시는 거죠?”
평소답지 않게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엄하늘.
그녀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는 김 작가님은 잘 몰라도 도 감독님은 믿어요. 그치만 이번 사안은 감독님 말씀에 쉽게 수긍하기가 어렵네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논란이 되고 있는 연극 공연을 찾아봤는데, 우리 드라마 초반부랑 설정이 비슷하긴 했거든요.”
다들 김윤하 작가를 탓하는 분위기 속에서,
오직 래원만 그녀를 지지하고 있었다.
이에 래원은 옥영임 작가의 작업실에서 발견한 외장하드와 파일, 그리고 디지털 포렌식 이야기까지 꺼내려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무리 확실한 증거라도 눈앞에 직접 들이밀어야, 그 가치를 발휘하는 법.’
그래서 지금 이 분위기가 답답했지만, 디지털 포렌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함구하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자신의 주장을 굽힐 생각은 없는 래원이었다.
“절대 표절 아닙니다!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 있습니다. 김윤하 작가님이 결백하다는 걸.”
맞은 편에서 이를 듣고 있던 민세라는,
래원의 이 말에 갑자기 원더빅 미팅룸에서 캐스팅 문제로 그와 단둘이 이야기했던 때가 떠올랐다.
‘전혀요.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세라 씨가 잘 해내실 거란 걸.’
왠지 그때 래원이 건넸던 말이 지금 이 순간에 겹쳐 들리는 것 같았다.
‘저번에 나한테도 비슷하게 말했었는데···. 도래원 피디, 원래 사람을 쉽게 믿는 타입인가? 뭐, 두고 보면 알 수 있겠지.’
민세라는 팔짱을 풀고 도래원을 가만히 탐색하듯 쳐다보았다.
호기심 반, 의문 반의 눈빛이었다.
* * *
비상 회의가 끝난 후,
래원은 곧장, 옥영임 작가 외장하드의 디지털 포렌식을 의뢰해둔 업체로 다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포렌식이 끝나길 기다리는 그 몇 시간 동안 시계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복구 다 됐습니다. 확인해보시겠어요?”
업체 직원의 말에
래원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마우스를 잡았다.
[시놉시스_김윤하_오카무라 대저택] [단막극 대본_김윤하_오카무라 대저택]두 개의 파일을 살펴본 결과,
시놉시스와 대본에서 지금의 전체 플롯과 현재 등장인물의 뼈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파일의 마지막 수정일도 2015년 12월로 찍혀있었다.
“예스!!! 감사합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했다.
래원의 가슴이 뻥 뚫리고 속이 시원해졌다.
래원은 곧바로 ‘레장여’ 단톡방에 이 반가운 소식을 공유했다.
[래원] 디지털 포렌식 결과 표절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15년 12월 작성일이 증명된 시놉시스와 초고를 찾았습니다. [황CP] 확실하냐?래원은 첨부 파일을 띄웠다.
[래원] 외부로 유출 금지입니다. 이 방에서만 봐주세요. 이 증거 자료는 지금 언론에도 뿌릴 겁니다. [황CP] 수고했다. [엄하늘] 래원 감독은 틀리는 법이 없네요ㅎㅎ 다행이에요, 이번에도 감독님이 맞아서ㅎㅎ [유찬] 연출부에서 알립니다! 수정된 촬영 스케줄 오늘 저녁까지 재공지하겠습니다스텝 및 배우들의 이모티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오리,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고양이, 나팔을 부는 사자, 야광봉을 흔드는 강아지 등등···.
하지만 양수호와 민세라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래원은 이제 김윤하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님! 단톡방 보셨어요?”
– 네.. 흐흑.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피디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 네? 뭐..뭘 어떻게 해요?
“맞고소 가셔야죠, 작가님.”
– 구..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요? 대본이 도저히 손에 안 잡혀서 희곡 구해서 읽어봤거든요. 일제강점기 경성 배경이랑 초반 인물 구도만 비슷하더라구요. 이 정도야 우연히 겹친 거 같아요. 우리 드라마의 결말이나 후반의 핵심 반전이랑은 유사성이 없어보였어요.
“아···. 그럼 굳이 문제 삼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세요?”
– 네. 저는 그냥 수..수정고 쓰는 거에 집중할래요. 그러고 싶어요. 알아보니까 그 연극 제작사 영세한 곳이던데···. 그들이랑 똑같은 사람 되기도 싫구요.
래원은 김윤하 작가의 선택을 존중했다.
시련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지금 김윤하 작가가 어제와는 다른 사람처럼, 왠지 모르게 강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인 듯 했다.
그리고 래원은 그동안 래원 안에 있던 작은 의문이자 죄책감,
‘과거 이 대본을 원작으로 각색했던 천만 영화, 그건 표절 이슈가 없었나? 내가 미처 기억해내지 못했던 게 아닐까?’
역시 털어낼 수 있었다.
그때 당시 그 천만 영화는 감독이 각색을 많이 했었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시나리오 작가나 원작자가 보면 ‘이건 내가 쓴 게 아니에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극 중 배경도 1970년 군부 독재로 각색했기에, 불행 중 다행으로 표절 시비는 피했던 것 같다.
결국,
믿음이 다른 믿음을 낳았고
그 믿음은 또 진실을 증명해냈다.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래원의 귓가에 김윤하 작가가 전에 해준 말이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 연홍의 대사 ‘진실을 이길 수는 없지요.’가 결국 제가 이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말이자, 이 대본을 처음 쓰면서 제일 먼저 쓴 대사였죠.
래원은 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다던 이야기, ‘그 어떤 것도 진실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뜻을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레장여, 명작 소리 듣게 정말 잘 만들어보고 싶다!’
* * *
SBC 옥상 정원에 마련된 흡연 구역.
김 부국장과 황태수는 이곳으로 담배를 피러 올라오는 길에, 래원이 단톡방에 띄운 소식을 접했다.
두 사람은 찡그렸던 미간 주름을 풀고, 소리쳤다.
“와! 태수야! 표절 아니란다!”
“하···. 부국장님, 저 십 년 감수했습니다, 진짜.”
지금 담배가 문제가 아니었다.
황태수는 단톡방에 답장하고 이모티콘을 띄웠다.
김 부국장은 얼른 폰을 열어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보았다.
정정 기사가 시시각각 발 빠르게 쏟아지고 있었다.
[ ‘경성 유산’ 측, ‘레장여’ 표절 소송 취하 ] [ SBC 아무 문제 없어. 예정대로 4월 29일 방영! ] [ 경성 유산, ” 김윤하 작가님께 죄송하다.” ] [ 연극 – 도둑이 제 발 저린 꼴? ] [ 연극 올해 재공연 앞두고 벌인 노이즈 마케팅?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실시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ㄴ 와ㅅㅂ 이건 선 넘었네ㅋ
ㄴ 뭐야? 지네가 표절해놓고 선수 친 거?
ㄴ 방영도 하기도 전 드라마를 시놉만 보고 멱살 잡을 때부터 알아봤다ㅋㅋ
ㄴ 우리 수호 드라마에 이렇게 먹칠을 한다고?
ㄴ 간만에 복귀하는 애한테 너무 한 거 아님?
ㄴ 소송 취하하고 정정기사만 내면 다냐고!!!
ㄴ 이게 나라냐?????
ㄴ 생 사람 잡아 놓고는 오리발 내미는 거 보소ㅋ 사과문은 없음?
ㄴ 와. 가만히 있던 사람들 뺨때리고 튄 꼴이네?
ㄴ 이렇게 쉽게 입 닦는다고? 사과는 안 함?
ㄴ 그 연극 공연 다신 못하게 해준다ㅋㅋ
이윽고 뿔난 시청자들과 배우 팬들이
연극 제작사 측 메일과 SNS로 항의를 쏟아냈다.
그 영향과 압박이 굉장했는지, 연극 측은 순식간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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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은 김윤하 작가님께서 2015년 12월에 초고를 작성한 것으로 저작권이 인정됨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저희의 연극 의 일제강점기 경성 배경과, 일부의 인물 설정만 우연히 겹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두 작품의 결말과 후반부 전개는 완전히 다르기에 표절로 보기는 힘들며,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놉시스만 보고 섣불리 표절 소송과 방송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던 것에 사과드립니다.
관계자 분들과, 이 드라마를 기대하고 계신 시청자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깊이 사죄드립니다.
또한, 올해 예정돼 있던 연극 재공연은 전면 취소되었음을 알립니다.
– – –
이 사과문까지 읽은, 김 부국장과 황태수는 그제야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상쾌한 얼굴로 연기를 내뿜으며 껄껄껄 웃었다.
왠지 담배 맛이 달게 느껴졌다.
“태수야, 너네 드라마 잘 되려고 이러나 보다. 방영도 하기 전에 이게 뭔 해프닝이냐.”
“그러게요. 어쩌면 전화위복이 될 것도 같습니다.”
“맞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노이즈 마케팅이 됐다. 난리 통에 이 드라마 하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까지 다 알게 됐으니···.”
“다행입니다, 정말로. 다들 김윤하 작가가 신인이라고 못 믿고 몰아가더니···. 결국 다 틀리고 딱 한 사람만 맞았네요.”
“딱 한 사람? 누구?”
황태수가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빙긋 웃었다.
“누구겠어요. 도래원이죠.”
“짜식···. 이제 자기 이름 걸고 하는 드라마는 또 얼마나 잘 뽑아낼지!”
김 부국장 역시 래원을 떠올리며 기대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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