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76
그러자 래원을 제외한 세 사람이 래미에게 관심이 생긴 듯이 질문을 건넸다.
“[현세민]처럼 아빠는 아니지만, 저도 나이 차 많이 나는 오빠랑 같이 살아요. 절 키워주다시피 했죠. 그래서 [현세민]이 낯설지 않아요. 뭔지 잘 알아요, 그 마음. 아빠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응석도 부리고 싶은 그 마음이요.”
래원은 래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래미는 진지함과 진솔함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현세민]을 연기할 때 요구되는 덕목이었다.“글쎄요, [현세민]의 행동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나 저라면 [이소이] 선생님께 아빠와의 관계를 직접 물어봤을 거 같아요. 제 성격이 원래 답답한 걸 못 참기도 하고요, 그래야 사람 간에 오해가 안 생기니까요.”
질답이 충분히 오간 후,
캐스팅 디렉터가 래원의 눈치를 살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가보셔도 됩니다.”
래미가 꾸벅 인사하고 나가자,
래원은 그제야 참았던 탄식을 내뱉었다.
“저 친구는 안 돼요.”
“네?”
래원의 단호한 말투에 물음표를 띄우는 세 사람.
“··· 왜 그러세요, 도 감독님? 마음에 안 드셨어요? 연기 괜찮던데···?
“도 감독님이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아까 밥 먹으면서 그러셨잖아요, 신인은 주관과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맞아요. 연기도 잘하고, 자기 생각이나 감정도 확실한 친구던데요?”
아사무사 넘어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실은 저 아이···.”
결국 래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 동생입니다. 친동생.”
“네에?? 대박!”
“그러고 보니 감독님이랑 느낌이 비슷했던 거 같아요.”
“말도 안 돼. 근데 왜 성이 다르지? 예명인가요?”
“서류 단계에서 저한테 안 들키려고 가명이랑 가짜 사진을 쓴 것 같아요.”
래원이 래미를 잘 아는 만큼, 래미도 래원을 잘 알았다.
래미는 래원이 분명 허락 안 해줄 것을 알았기에 나름 짱구를 굴린 것이었다.
“와우! 그렇게까지?”
“동생분 열정이 대단한데요?”
“우리 드라마가 꼭 하고 싶었나 봐요.”
“··· 하아,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사과하실 일은 아니에요, 래원 감독님.”
“맞아요. 됨됨이, 실력, 마스크 뭐 하나 안 빠지고 출중하던데요 뭐.”
“별로 문제 될 거 없을 거 같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래원에게는 큰일이었지만
세 사람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럼 다음 지원자 만나보겠습니다.”
래원은 래미 문제는 잠시 잊고 남은 오디션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절대 안 됩니다!”
상석에 앉은 래원이 힘주어 소리쳤다.
지금 차 자매 작가들과 캐스팅 디렉터가 한목소리로, [현세민] 역에 래미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넷은 오디션을 모두 끝낸 후, 최종 결정 회의 중이었다.
래원이 목소리는 냉랭했다.
“백번 양보해서, 오디션 지원서에 쓴 가명은 예명일 수 있다 쳐도, 가짜 사진을 쓴 건 용납할 수 없어요. 드라마 오디션이 애들 장난인가요?”
“도 감독님, 동생분께 화나신 건 이해되는데···. 그치만 저는 동생분 마음도 이해가 가요.”
“저도요. 도 감독님 힘 안 빌리고 오직 자기 능력으로만 오디션 보고 싶었다잖아요···.”
“그래도 안 됩니다. 분명 뒷말이 나돌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의도나 과정 따위 헤아려 주지 않아요. 결국은 결과만 놓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니까.”
드라마에 감독의 친동생이 배우로 출연한다?
게다가 원래 활동하던 배우도 아닌데 데뷔작으로?
낙하산 논란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드라마는 물론, 래미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
“하고 많은 배우 중에! 왜 하필! 감독의 친동생이냐고 욕하겠죠.”
“하고 많은 배우 중에! [현세민] 역에 가장 적합한 배우가 하필! 도 감독님 친동생인 걸 어떡해요?”
“··· 하아.”
래원의 깊은 한숨.
이에 캐스팅 디렉터와 차 자매가 다시 차분히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도 감독님 우려처럼 처음에는 말이 나돌 수도 있지만, 래미 씨가 실력으로 불식시킬 거라고, 저는 믿어요.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니까요.”
“저도요. 래미 씨가 연기로 결과를 증명해 보일 거 같아서 크게 걱정 안 돼요. 자아가 단단한 친구처럼 보였어요.”
“전 신선해서 좋았어요.”
“맞아요. 마스크도 그렇고 연기도 기존에는 없던 스타일이랄까요?”
“어? 지금 막 찾아봤는데 전에 때 단역으로 나왔네요? 그때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요. 근데 대체 뭐가 문제죠?”
“감독님 동생이라는 이유로 제외시킨다면, 이건 역차별 아닌가요?”
래원을 제외한 세 사람은 완강했다.
“··· 그럼, [현세민] 역은 결정을 보류하죠. 파리 로케 출국 전까지 더 고민해볼게요.”
“네.”
차 자매와 캐스팅 디렉터 역시 래원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감독으로서, 그리고 도래미 배우의 보호자로서 말이다.
“그럼 [이소이] 역으로 넘어갈까요?”
래원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은 [이소이] 역할 최종 후보 5명의 파일을 펼치며 한마디씩 했다.
“뭐, 5명 모두 나쁘지 않았어요.”
“네, 고맙게도 다들 주조연급 배우들이 오디션에 와줘서···.”
“그러게요. 남주 중심 작품이라 여캐 캐스팅은 마음을 비웠었는데···.”
“아무래도 엄하늘이 합류했던 게 신의 한 수였죠. 엄하늘도 하는데 못 할 게 뭐 있냐는 심산들이었던 거 같아요.”
“연기력은 비등비등했고, 스타성이나 이미지를 생각하면 전 류소현 배우에 한 표 던지고 싶어요.”
“저도요, 작가님. 함현우랑도 잘 어울릴 거 같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엄하늘과 밸런스도 맞을 거 같아요.”
래원은 상석에서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래원 역시 류소현이 가장 마음에 들었으나,
혹여 이 호감이 전작부터 이어온 사적인 친분에 의한 것인지 자기 검열 중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군.’
래원의 우려와 자기 검열은 기우에 불과했다.
결국 만장일치였으니까.
“그럼, 류소현으로 결정하죠. 이견이 없는 듯하니.”
“좋습니다. 지금 바로 류소현 측에 연락할게요.”
“네!” “네넵!”
이제 이것으로 드라마 캐스팅은 단 하나의 배역만 남겨둔 상태가 되었다.
* * *
“도래미, 나한테 할 말 없어?”
“미안···.”
래원은 래미와 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저녁 일정을 내일로 미루고 곧장 집으로 왔다.
“그치만 꼭 하고 싶었어! 그 역할, 그 드라마.”
“야, 그래도 오빠가 감독인데 어떻게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럴 수가 있어?!”
“미안해. 근데 솔직하게 말했으면 오빠가 허락 안 해줬을 거잖아.”
“하아···. 원더빅에서도 알아?”
“··· 아니.”
“너, 계약으로 묶인 몸이야. 회사에서 허락 안 해주면 못 하는 거 알잖아.”
“그래서 가명으로 오디션 본 거야. 오디션 붙고 나면 오빠도, 박 대표님도 설득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엄마 이름으로 원서를 넣었어?”
“··· 나 어릴 때 엄마가 그랬단 말이야. ‘우리 이쁜 래미도 저런 데 나오면 좋겠다.’ ··· 입버릇처럼 그랬다고···.”
“······.”
래원도 기억하고 있었다.
생전에 엄마가 TV드라마를 보며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으니까.
“오빠, 나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 연습실에서 하는 거 말고, 카메라 앞에서.”
“브라이트 걸스는 어쩌고?”
“그것도 하고, 오빠 드라마도 하고 싶어. 나 잘 해낼 수 있어! 정말이야.”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욕심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애가 지난 생에는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산 거지?’
순간 래원의 눈앞에 과거의 래미가 겹쳐 보였다.
지금처럼 밝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늘진 얼굴로 씁쓸하게 웃던 29살의 래미.
래원은 울컥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래미를 타일렀다.
“래미야, 네 마음은 알겠는데 지금은 아이돌 데뷔에만 집중하고 연기는 나중에 또 기회가 올 거···.”
“내가 이런 역할을 또 언제 만나보겠어. 나랑 나이대도 비슷하고 캐릭터나 상황도 닮았잖아.”
래미는 꽤 완고했다.
“나라고 그런 고민도 안 해보고 오디션 지원했을 거 같아? 나한테 이건 다시 오기 힘든 기회야. 포기할 수 없어.”
“······.”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오빠. 욕심나는 드라마에 나한테 딱 맞는 배역 오디션이 뜬 걸 발견했는데, 그게 우연히 오빠 드라마였던 것 뿐이니까.”
“··· 네 뜻, 잘 알겠어. 일단 오빠가 박 대표님이랑 이야기해볼게.”
이윽고,
래원과 래미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래원은 생각을 정리한 후에 박현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그간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고 래미 문제로 연락드렸습니다.”
– 아, 네. 혹시 감독님네 드라마 오디션 말씀이실까요?
“··· 네? 어떻게···?”
래원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프러덕션 내부에서만 알고 있는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 세라가 말해줬어요. 자기 때 같은 실수하지 말라면서요.
“민..세라요?”
– 네, 세라가 래미 오디션 준비를 도와줬나 보더라고요.
“아···. 그랬나요?”
– 세라가 딱 래미같은 케이스였거든요. 배우의 재능과 아이돌의 가능성을 겸비한 케이스요. 그때 배우의 싹을 잘라버리고 문걸즈에만 집중하게 했던 게, 화근이었죠.
“······.”
– 세라를 일찍부터 연기랑 아이돌 둘 다 시켰으면 아마 문걸즈도 해체 안 하고 더 오래 갈 수 있었을 거라면서 항상 후회했거든요.
“반대로, 배우나 아이돌 둘 다 이도 저도 아니게 돼버릴 될 위험도 있지 않나요?”
이것이 래원의 본심이었다.
오빠로서 래미가 걱정됐다.
그렇게 된다면 상처 입는 건 래미가 될 테니까.
– 저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근데 이 업계 돌아가는 걸 오래 지켜보니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면···.”
– 신인 아이돌이 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팬들을 ‘입덕’ 시킬 멤버가 필요해요. 입덕 멤버는 우리가 의도해서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타이밍과 운이 따라야 하죠. 말 그대로 하늘이 점지해주는 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멤버들한테서 매력을 발견하고, 그걸 키워주는 것뿐이에요. 누가 걸릴지 모르니까요.
“그 말씀은···.”
– 세라 말처럼 래미가 감독님 드라마로 데뷔하게 된다면, 대중들에게 래미의 매력은 연기력과 마스크로 각인 될 겁니다.
“그게 브라이트 걸스에 악재가 아니라, 호재로 작용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시죠?”
– 사회 심리학적으로도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얼굴을 자주 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낀다고 해요. 그런 면에서 드라마로 얼굴 알리고, 브잇걸로 무대에 서는 게 괜찮은 전략 같아요. 그리고 세라처럼 다수의 아이돌이 배우로 전향하는 마당에, 이제 그 반대 케이스도 나올 때가 됐고요.
래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익숙한 것에 호감을 느끼는 건, 긍정적인 인상을 줬을 때 한정일 텐데요? 저희 드라마 출연이 래미의 첫인상을 안 좋게 만들 수도 있지 않나요?”
– 도 감독님이 그렇게 안 두실 거잖아요.
“네?”
– JC그룹한테 250억 투자받았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그 어렵다는 월미도88한테 판권 따내신 분도 감독님이시고요. 도 감독님이라면, 제 입장에서 래미의 시작을 믿고 맡길 이유가 충분한데요? 친오빠라는 건 떼어 놓고 생각하더라도요.
박현만 대표의 논리와 믿음은 확고했다.
캐스팅 디렉터, 차 자매 작가 그리고 래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걱정하는 것은 오직 래원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래원은 드라마를 책임지는 연출 PD이자 래미의 하나뿐인 보호자였으니까.
‘내 걱정이 기우인 걸까? 내가 래미를 위해서 반대하는 게, 오히려 역차별이자 래미의 가능성을 짓밟는 행동이 되는 걸까?’
박현만 대표까지 이렇게 나온 이상,
결정권은 온전히 래원의 손에 달려있었다.
“고민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대표님.”
– 감독님 근데, 래미. 잘했나요? 오디션장에서?
“··· 네, 잘했습니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아주 잘 이요.”
지난 회의에서는 차마 스텝들 앞이라 내놓지 못한 래원의 본심이, 이제야 솔직하게 튀어나오고 말았다.
* * *
며칠 후,
드골 공항으로 떠나는 인천 공항의 기내.
래원은 로케이션 헌팅지를 답사하기 위해 출국하는 중이었다.
차여름, 차가을 작가와 배태람 촬영감독 그리고 함현우까지 함께였다.
– 이 비행기는 파리까지 가는 한국 항공 ***편 입니다. 기장과 저희 승무원은 여러분을 목적지인 파리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래원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만들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떠나기 전까지 [현세민] 캐스팅을 확정 지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차 자매 작가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옆자리에서 조용히 래원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이륙합니다. 좌석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라며,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는 꺼주십시오.
지이이잉—
그때,
래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래미가 보낸 장문의 문자였다.
[래미] 오빠, 나 이번에는 오디션으로 내 연기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걸로 만족하려 해. 곰곰이 생각해봤어. 감독님이 내 오빠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 연기를 제대로 봐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오빠가 현장에서 나 때문에 신경 쓰는 상황이나 내가 폐 끼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ㅠㅠ 오빠의 1호 팬으로서 그건 싫거든ㅠㅠ 올해는 브잇걸 준비에 올인할게! 대신 내가 할 만한 작은 단역 같은 거 있으면 꼬옥 나한테 기회 주기! 캐스팅 디렉터님이랑 박현만 대표님께는 내가 연락 드릴게. 유럽 잘 다녀와! 내 선물 잊지 말고!래원의 코끝이 찡해졌다.
휴대폰을 끄며 눈을 감았다.
‘래미한테 편하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강해지고 싶어. 래미를 생각해서라도, 이 드라마는 무조건 성공시킨다.’
* * *
약 11시간쯤을 상공에서 보낸 후,
래원을 실은 비행기는 프랑스 파리 북부의 샤를 드 골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래원을 비롯한 팀이 기내에서 내리며 휴대폰을 켜자,
지이잉— 까똑! 까똑!
지잉— 지잉— 지이잉—
문자 알림을 쏟아내며 요란하게 울리는 5대의 휴대폰.
“도 감독님, 우리 캐스팅 릴리즈 됐나 봐요.”
“와우! 포털 반응 장난 아닌데요?”
“기사랑 댓글도 완전 대박 뜨겁네요.”
래원의 휴대폰은 아직 공항 와이파이 신호를 잡지 못했는지 버벅거렸다.
“제 폰은 아직 먹통이네요. 어떤 뜻으로 뜨겁다는 거죠?”
“올해의 가장 기대되는 라인업이라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