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81
“컷!”
첫 촬영의 첫 테이크에 오케이가 날 거라는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래원 역시 그랬다.
“카메라 워크랑 [현수] 동선 리듬이 뭔가 안 맞는 거 같죠? 몇 번 더 가볼게요.”
그렇게 [현수]가 소매치기를 발견하고 쫓는 씬은 다섯 테이크를 더 가고 나서야
비로소 래원이 ‘오케이!’를 외칠 수 있었다.
그 후,
[현수]가 개선문 거리를 달리며 소매치기를 잡고, 그가 훔친 한 여인의 여권을 되찾으며, 참교육하는 장면을 또 여섯 테이크 정도 찍었더랬다.이윽고 그간 대기하던 류소현이 조명기 앞에 섰다.
단발머리에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백팩을 맨 채로 영락없는 여행객 모습인 그녀.
래원의 외침에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이거까지만 찍고 쉴게요. 다들 힘냅시다.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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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한국분 만나서 어찌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국제 미아 될 뻔했네요.”
[이소이]가 헥헥거리는 [현수]에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하자, [현수]가 볼멘소리를 내며 여권을 건넨다.“후하···. 알면 조심 좀 하세요. 파리에서 가방을 뒤로 메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것도 여권을 용감하게 앞에 넣고.”
“제가 좀 칠칠찮아요. 이것도 인연인데 커피 한잔 살게요.”
아주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금방 고개를 끄덕이는 [현수].
[이소이]가 싱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샹젤리제 거리 쪽을 가리킨다.“저쪽으로 가면 마카롱이랑 카푸치노 맛집 있어요.
파리의 봄 햇살이 [이소이]의 뒤에서 후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를 쳐다보는 [현수]의 눈이 부실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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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모니터해 보고 갈게요.”
래원의 경쾌한 외침에
배태람 촬영감독과, 함현우, 류소현이 모니터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촬영본을 확인했다.
함현우는 점차 카메라 앞에서 긴장이 풀리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와, 화면에서 [현수]랑 [이소이] 케미가 꽤 좋네요?”
“촬영감독님께서 잘 찍어주신 게 크죠.”
“너무 마음에 들어요. 진짜 예쁘게 나온다.”
“영상미도 있고 분위기 완전 죽이는데요?”
배우와 스텝들이 감탄하며 모니터링 중인 화면 속에는, 파리 개선문을 배경으로 푸르른 플라타너스와 파란 하늘이,
촬영감독의 카메라에 덧댄 타바코 필터와 만나 아련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걸로 가죠. 타바코 필터가 탁월한 선택이셨던 거 같습니다, 배 감독님.”
이제 촬영팀 전체가 잠시 쉬었다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번 로케이션 답사 때 보고 미리 섭외해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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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이]와 [현수]가 샹제리제 거리의 한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테이블 위에는 카푸치노 두 잔과 색색의 마카롱이 놓여있다.
“어떤 일 하는 분이세요?”
“······.”
대답은 하지 않고 물끄러미 [이소이]를 바라보는 [현수].
“우리 그냥 계속 서로 익명인 채로 남는 게 어때요? 그게 더 편할 것 같아서요. 지금 참 좋거든요.”
“뭐, 좋아요. 저도 지금 좋아요. 어쩌면, 나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가장 솔직해질 수 있나 봐요.”
가만히 서로의 얼굴을 보는 두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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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이제 바스트 딸게요.”
오전 촬영 때보다 확실히 여유가 생긴 함현우의 모습을 보며,
래원은 그를 캐스팅 했을 당시 원준혁과 셋이 술집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 그건 엄살일 줄 알았어. 다행히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네 함현우. 걱정이 많은 완벽주의자 타입인가? 아니면 엄청나게 준비해온 노력파 거나.’
촬영 첫날부터 함현우는 이미 예전의 감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파리에서의 로케이션 촬영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 * *
파리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현수]가 딸의 선물을 사러 들른 마들렌느 거리의 한 향수 가게에서 우연히 [이소이]와 재회하는 장면.“17살 소녀라면 이 향수 어때요? 은은하고 상큼한 비누 향이거든요. 산타마리노벨라 멜로그라노. 이탈리아 말로 ‘석류’라는 뜻이래요.”
그리고 그날 함께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하며 친해지는 두 사람.
“뵈프 부르기뇽? 이름이 길어서 쫄았는데, 그냥 프랑스식 갈비찜이네요? 맛있다.”
“우리의 두 번째 우연을 축하하며 건배.”
며칠 후, [현수]가 파리를 떠나 피렌체로 가기 전날 둘이 마지막 만남을 갖는 에펠탑 씬.
“파리에서의 인연은 여기 에펠탑에 남겨두고 가기로 하죠.”
“그래요. 서울의 당신과 나는, 여기 파리에서랑은 전혀 다른 사람일 테니까요.”
이처럼 차 자매 작가가 고심해서 쓴 주옥같은 대사들과 함께, 빠듯한 일정을 계획대로 척척 소화한 팀.
이제는 야간열차 ‘텔로’를 타고 이탈리아 피렌체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약 1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대형 관광버스로 옮겨 탄 후,
그들을 실은 버스가 멈춰 선 곳은 피렌체 두오모 성당으로 가는 중심거리 중간쯤이었다.
[ Bojola ]간판이 보이는 옛 건물.
배우와 스텝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3대 보욜라, 세르지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환대해주었다.
“(어서오세요. 보욜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보욜라는 약속대로 래원의 촬영을 지원하기 위해서 오늘 휴점한 상태였다.
직원들도 일부만 남아있는 한산한 매장과 뒤 건물의 공동 작업실, 그리고 위층의 보욜라 개인 작업실까지 촬영팀에게 모두 오픈됐다.
분장팀이 세르지오 보욜라에게 간단한 메이크업을 해주는 사이,
래원은 함현우와 배태람 감독과 함께 매장 안에서 콘티대로 동선을 그어보며 리허설을 했다.
“파리 시퀀스에서는 [현수]의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피렌체 보욜라 시퀀스는 [현수]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돋보이게 만들 거예요.”
래원의 말에 함현우가 콘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배태람 촬영감독도 래원의 연출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카메라 장비를 점검했다.
“그래서 블루 톤의 3200 그대로 쓰고 텅스텐 타입의 필름을 노필터로 쓰려고요.”
“좋습니다. 그러면 파리 씬들보다 이지적인 느낌이 나겠네요.”
이때, 막내 조연출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욜라 스탠 바이 되셨습니다! 잠시 후에 슛 들어갑니다! 17씬부터요!”
이렇게 세계적인 가방 장인 세르지오 보욜라의 카메오 촬영이 시작됐다.
극 중 [현수]가 그의 가방을 한국에 런칭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설정이었다.
보욜라는 [현수]를 데리고 매장 안을 소개해준다.
“(내 가죽 가방은 인간과 닮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가 드러나거든.)”
“(그렇다면 이 가방들은 보욜라 선생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국에도 선생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함현우는 이탈리아어가 서툰 탓에 이 대사를 여러 번 나눠서 찍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바로 옆에서 이탈리아어 자문이 붙어서 함현우의 발음을 코치해주었다.
다음 장면.
[현수]를 좋게 본 보욜라가 자기 개인 작업실을 오픈한다.헤드셋을 끼고 모니터 너머로 이를 지켜보던 래원도 설레는 감정이 됐다.
‘카메라 워크가 죽인다. 배 감독님 진짜 최고시네.’
배태람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밀고 들어간 보욜라의 은밀한 공간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래원의 나이보다 오래된 듯 보이는 낡은 재봉틀이 작업대에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다리미 방망이처럼 생긴 물건이 있었다.
“(이건 가죽을 펴는 겁니다. 내가 직접 만든 기구예요.)”
보욜라가 자랑스레 말했다.
의자에는 세르지오 보욜라의 주름만큼 세월이 느껴지는 작업복이 걸쳐져 있었고,
작업대 옆에는 세탁기 한 대가 놓여있었다.
“(내 작업실 공정을 전부 거치고 나면 세탁기에 돌리고 다리미로 다려도 멀쩡한 가죽이 완성되지요. 이 공정이 마치 모진 풍파를 겪으며 성숙하게 되는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달까요?)”
래원이 신나게 ‘컷!’과 ‘오케이!’를 여러 차례 외친 끝에, 모두가 잠깐 쉬며 모니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래원은 스텝과 배우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결과물을 모니터하며 어느새 흡족한 표정이 됐다.
보욜라가 기대 이상의 준비와 환대를 해주었고,
함현우 역시 파리에서와는 또 다르게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덕분이었다.
‘내가 존중하고 믿어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보답해주는 사람들이다, 고맙게도.’
* * *
SBC의 어느 편집실.
“내일부터 촬영이 연달아 있어서 미리 가편집을 해놔야 편해.”
래원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편집에 집중했다.
오늘 오전, 서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출근한 것이었다.
래원의 두 눈은 편집실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으며, 양손은 편집기 위에서 쉴 새 없이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파리 시퀀스랑 피렌체 시퀀스가 톤이 달라서 좋네. 역시 배태람 감독을 픽하길 잘했지.”
똑똑똑—
문을 열고 들어온, 노크 소리의 주인공은 유찬이었다.
그의 뒤에는 황태수도 함께였다.
“형, 커피 수혈하고 해.”
“고맙다. 안 그래도 지금 피가 모자랐어, 죽겠다 아주.”
“그러게 오늘은 쉬지 뭘 나왔냐.”
유찬과 황태수는 래원의 누렇게 뜬 얼굴이 안쓰러웠지만
동시에, 래원이 찍어온 촬영 원본이 너무도 궁금했다.
지금 여기에 온 목적이 바로 그거였으니까.
래원은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쭉쭉 빨고는 다시 편집에 임했다.
이에 유찬과 황태수가 래원의 뒤에서 구경거리라도 난 듯 래원의 작업을 구경하고 있었다.
“헐···. 형 이거 때깔 미쳤네? 뭐 비싼 필름이라도 쓴 거야?”
“아니, 이건 타바코 필터 덧댄 거야. 피렌체에서 찍은 거만 텅스텐 필름 쓰셨대.”
잠자코 구경하던 황태수도 한마디 툭 던졌다.
“이 새끼···. 거의 영화를 한 편 찍어왔구만.”
황태수가 상기된 안색으로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래원 본인보다 더 신이 난 듯했다.
한편, 유찬은 래원의 작업을 계속 지켜보며 점점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래원이 형 정도는 돼야 메인 연출 입봉하는 구나. 난 아직 한참 멀었네, 멀었어.’
래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이, 마치 잘 나가는 친형을 보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눈빛이 됐다.
“래원아, 밥 먹고 해라.”
황태수와 유찬이 아니었다면 밥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편집에만 매달렸을 래원이었다.
“그래 형, 거기서 느끼한 것들만 잔뜩 먹었을 텐데, 칼칼한 거 먹어줘야지.”
황태수와 유찬은 래원을 끌고 편집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데,
지이이이이잉——
황태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배 사장님.”
휴대폰을 두 손으로 쥐고 배미란 사장의 말을 경청하던 황태수가 기절할 듯 놀란 얼굴이 되었다.
“네에??!!”
이에 래원과 유찬은 물음표를 띄우며 황태수를 보았다.
“미니 입봉작으로 백상 노미네이트라니···.”
이번에는 감격한 얼굴로 말끝을 잇지 못하는 황태수.
래원과 유찬의 궁금증은 더해졌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황태수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뭔데요? 무슨 일인데요, 선배?”
“래원아, 너··· 연출상, 드라마 작품상 노미네이트란다.”
“네에? 제가요?”
“그래! 으로 58회 백상예술대상 노미네이트! 축하한다, 인마!”
“와, 이건 뭐··· 질투도 못 하겠네. 나랑은 너무 먼 당신, 형! 축하해!!”
그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문득, 왠지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에 뒤를 돌아본 래원.
“식사하러 가세요, 형님? 오랜만이네, 래원 씨?”
“안녕하세요, 인혁 선배.”
도래원과 하인혁.
허공에 마주친 두 사람이 서로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저 재수 없는 반 존대는 여전하네! 혹시 지금 이야기 다 들은 건가?’
못 들었다기에는 표정이 재수 없었고,
다 들었다기에는 특유의 질투에 이글거리는 얼굴이 아니었다.
래원의 은 당시 하인혁의 과 사내 경쟁작이었고,
하인혁이 보기 좋게 참패했기에,
만약 그가 방금 대화를 모두 들었다면 그 성격에 저렇게 멀쩡할 리 없었다.
“넌 밥 먹었냐, 인혁아?”
“네, 일찌감치 구내식당에서 해결했습니다.”
하인혁이 래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이어 의미심장하게 썩소를 날리며 말했다.
“래원 씨, 백상예술대상 노미네이트 축하해요. 후배가 청출어람이라···. 선배로서 기분이 참 좋네요.”
유찬은 하인혁을 보고는 무언의 탄식을 내뱉으며 기겁했다.
‘우웩. 저 선배, 왜 저래? 래원이 형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사람이 뭐 잘 못 먹었나···? 황 선배 앞이라 저러는 거···?’
이에 래원이 씨익 웃으며 역시 포커페이스로 맞받아쳤다.
“인혁 선배님 덕분이죠. 제 첫 사수셨지 않습니까?”
하인혁 덕분이라는 말.
래원은 진심이었다.
지난 생에 하인혁이 그렇게 래원에게 못되게 굴어준 것이, 이번 생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으니까.
‘하인혁, 속이 부글부글해 죽겠지? 근데 어쩌냐, 이제 시작인데? 똑똑히 지켜봐라. 그때 네가 나 부려먹고 내 기회 빼앗으면서 받은 백상. 이번에는 내가 먼저 받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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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BC 드라마국 국장실.
이 국장이 굳은 표정으로 창가의 난 잎을 닦다가 입을 열었다.
“는? 잘 되고 있고?”
문겸CP와 임장호PD도 덩달아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답했다.
“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맨날 최선만 다하지 말고 말야. 이번에는 결과를 좀 만들자 얘들아.”
“······.”
“소철않 팀에 250억 빼앗겼다고 기죽을 필요 없어. 제작비가 꼭 작품 흥행이랑 비례하는 건 아니잖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