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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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출의 역할 (2)
촬영 현장의 모두가 래원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근처 다른 공원? 어디?”
“신갈역 쪽입니다. 여기서 20분 거리입니다.”
“20분이면 금방이네.”
신영진 촬영 감독이 솔깃한 듯 먼저 입을 열었으나,
조명 감독은 볼멘소리를 냈다.
“안 돼요. 이 공원 이 시간에 햇빛 방향 맞춰서 찾은 곳이야. 거기 갔다가 역광이거나 측광이 너무 세면 그림자 감당 못 한다고···.”
미술감독도 우려 섞인 목소리를 보탰다.
“간이 런웨이 세트를 깔 만큼의 넓은 공간, 주변에 아파트나 주택이 배경으로 있어서 시민과 함께 하는 컨셉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
이거 다 고려해서 겨우 찾은 곳이 여긴데 딴 데서 어떻게 찍어요?”
래원은 일말의 당황한 기색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조명 감독 및 미술감독 그리고 황태수 감독에게 사진 몇 장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신갈역에 만골 근린공원입니다.
며칠 전 오전 11시에 찍은 겁니다.
지금 가면 비슷한 컨디션 일 겁니다.”
동영상 속 공원의 모습은 이곳 분당 중앙공원과 비슷한 크기일 뿐만 아니라, 주위에 아파트 단지가 즐비해 있었다.
“···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요.”
게다가 래원이 사진 속에 표시한 위치로 간이 런웨이를 설치한다면 빛의 방향도 최적이었다.
정면광과 측면광 사이의 적당한 빛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 극명했다.
“뭐, 그림자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조명 감독과 미술감독의 표정이 점차 누그러져 갔다.
슈우우우우우웅—
부부우웅우부붕—
상공을 휘젓는 비행기가 여러 대로 늘어나면서 난리법석은 심해졌다.
스텝들이 귀를 막거나 얼굴을 찌푸렸다.
“그 공원에서 찍는 것도 괜찮겠어.”
“저도요. 괜찮을 것 같아요.”
두 감독의 말에 조명팀과 미술팀 전체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어 촬영팀과 그립팀이 입을 열었다.
“래원 피디, 그 공원, 영상이랑 사진 찍은 그 장소까지 차 들어갈 수 있어요?”
“맞아. 지금 가서 후딱 레일 깔고 세팅하려면 여기처럼 차가 안까지 진입할 수 있어야 된다고.”
“그치. 그래야지 해가 지기 전까지 다 찍지.”
수긍이 되는 걱정들이었다.
래원은 역시나 물 흐르듯 막힘없이 응대했다.
“간이 런웨이 설치할 터에서 50미터쯤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저녁 촬영하는 오산 세트장이랑도 30분 거리예요. 여기보다 훨씬 가까워서 밥 시간도 벌 수 있습니다.”
“··· 이만하면 안 갈 이유가 없는데? 그렇죠?”
가만히 듣고 있던 황태수가 모두를 향해 물었다.
“네. 빨리 갑시다, 가요.”
“이번에 연출부 막내가 아주 잘 들어왔네.”
“그르게. 하마터면 촬영 첫날부터 꼬일 뻔 했잖아. 얼른 이동합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황태수는 도래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래원, 거기 네가 혼자 찾아서 섭외해둔 거냐?”
래원은 지금 하인혁이 얼마나 약 오른 표정을 짓고 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이유도 없었다.
“아, 아뇨. 같이.. 조연출들이 같이 준비한 겁니다. 만일에 대비해서요.”
래원의 말에, 황태수는 행간에 감도는 어색함과 긴장감을 알아챘다.
그는 도래원과 하인혁의 동태를 살피고는,
‘아니구만. 이건 둘이 의견 틀어져서 도래원 혼자 준비한 작품인데? 새끼, 복덩이가 따로 없네, 복덩이!
근데 인혁이는 웬일이야. 이런 실수를 다 하고···.’
모른 척 표정을 관리했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신갈역 만골근린공원으로 이동합니다!”
황태수의 말에 다들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래원의 입장에서 지금 하인혁과 척을 지는 건 좋을 선택이 아니었다.
하인혁을 벌써부터 자극하는 것보다, 그의 경계심을 차차 낮춘 후에 그가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등을 돌려 짓밟아주는 것.
그것이 지난 생에 대한 제대로 된 복수가 될 것이다.
한편, 황태수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래원을 살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한 건 해서 칭찬받았으면 들뜰 법도 한데,
차분하게 바뀐 장소와 콘티를 대조하고 점검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저 새끼. 신입 맞아? 대체 정체가 뭐지?’
* * *
“컷!
오케이! 여기까지 하죠.”
황태수 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짝짝짝짝짝-
명쾌한 오케이 소리에 촬영장에 있던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박수를 쳤다.
스텝과 배우들이 직접 와본 만골근린공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촬영에 적합했다.
다행히 해가 지기 직전에 공원 런웨이 씬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녁 드시고 오산 세트장으로 7시까지 모이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씬,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온 거 같아요.”
“다들 수고했어요.”
스텝과 배우들이 흡족한 얼굴로 서로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막내 피디님, 덕분에 좋은 그림 나온 거 같아요. 아까 처음에 들어보지도 않고 반대해서 미안했어요.”
“아닙니다. 감독님.”
“래원 씨 덕분 맞지 뭐. 어깨 쫙 펴고 다녀도 돼요.”
래원도 이 틈에 껴서 사람들의 인사를 받다가, 노을이 수 놓인 하늘이 아름다워서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도래원이라 그랬나?”
신영진 촬영 감독이 도래원에게 다가왔다.
“네, 촬영 감독님.”
신영진 촬영 감독.
굵직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는 베테랑이다.
훗날 오스카에서 아카데미 촬영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덕분에 스케줄 안 밀리고 잘 찍었네. 막내 조감독이 일 참 꼼꼼하게 잘 해?”
“그러게. 신입인 줄은 몰랐어. 센스도 있고 철두철미하고.”
옆에 서 있던 조명 감독도 신영진 촬영 감독의 말을 거들었다.
조명 감독은 아까 볼멘소리로 걱정을 표하던 것과 달리 친근한 말투를 건넸다.
배우 엄하늘도 눈을 감은 채 이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얼굴은 스텝들의 손길에 맡겨 메이크업 수정을 하는 중이었지만, 정신은 도래원을 둘러싼 대화에 집중한 상태였다.
엄하늘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도래원 피디.
막내 조감독 주제에 매번 사람 놀래키는 재주가 있단 말야···.
보면 볼 수록 흥미로워.’
* * *
오늘도 래원은 늦은 퇴근으로 자정이 다 되어 귀가했다.
조연출은 현장에 가장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오빠 왔어?”
“아직 안 잤네?”
앞치마를 두른 래미가, 부엌에서 현관을 향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은 다행히 자기 전에 오빠 얼굴 보네.”
“래미야, 앞으로 오빠가 넉 달은 더 못 챙겨 줄 거 같은데, 어쩌지?”
래미가 특유의 까르륵 소리를 내며 웃는다.
“뭐래. 나 이제 16살이야. 어린애 아니라니깐. 김치 주먹밥이랑 참치 샌드위치 여기 뒀으니까, 낼 아침에 꼭 챙겨 가.”
“야, 오빠가 해줘야 하는데 네가 뭐 이런걸···.”
래미는 래원의 말을 자르더니,
“내가 먹고 싶어서 한 거야. 먼저 잔다. 잘 자고 내일도 촬영 잘 해!”
자기 방으로 쌩 들어가 버린다.
조연출은 촬영장에서 밥 시간에도 피치 못하게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아침 식사가 소중하다.
래원은 래미가 싸둔 샌드위치와 주먹밥을 보고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튿날, 동이 트기도 전.
래원은 촬영 버스에 올라탔다.
다들 자는 가운데 래원은 래미가 챙겨준 주먹밥과 샌드위치를 조용히 까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차창을 보니 검은 어둠 속에 래원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드라마 PD는 입사하자마자 평균 5년 내외의 조연출 기간을 거친 후에 연출로 입봉한다.
과거의 래원은 10여 년을 조연출로 굴렀으나, 지금의 래원은 그때와는 출발선부터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인혁아, 제발회 일정 픽스된 거 확인했지? 준비해.”
버스 앞쪽에서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
황태수 선배의 목소리였다.
‘제발회’란, 프레스 앞에서 배우들과 감독이 드라마 작품을 소개하는, 제작 발표회를 뜻했다.
“네. 첫 방 2주 전 화요일 맞죠?”
“어.”
하인혁도 속삭이며 되물었다.
“그때까지 하이라이트 티저 영상말고 또 제가 준비할 게 있을까요, 선배?”
“그게 제일 중요해. 거의 그걸로 첫 방 초동 시청률이 결정 나니깐. 나머진 제작사에서 준비하기로 했고.”
“네, 힘줘서 만들게요. 걱정 마시고 이제 촬영장 도착 전까지 눈 좀 붙이세요.”
래원은 이를 들으며 샌드위치와 주먹밥을 다 먹고는, 목이 말라 우유를 뜯었다.
그때, 래원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하나의 기억이 번쩍였다.
‘맞다. 청춘 런웨이 제발회때 그런 일이 있었지! 잊을 뻔했네. 하이라이트 예고라···.
잘만 하면 바로 다음 작품부터 조연출을 벗어날 수도 있겠는데?’
래원은 우유를 벌컥벌컥 마신 후 배부른 만족감과 개운함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드라마 의 촬영은 1~4주 차를 무사히 지나 어느덧 두 달 차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첫 방송 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촬영이 없는 날, 간만에 연출부 5명의 PD가 모두 드라마국 회의실에 모였다.
황태수 PD를 필두로, B팀 변덕규 PD, 1번 조연출 하인혁 PD, A팀 막내 조연출 도래원 PD 그리고 B팀 막내 조연출 유찬 PD까지.
남은 촬영 일정에서 체크해야 할 것을 논의했다.
A팀과 B팀 씬 분배와 촬영 스케줄도 꼼꼼히 확인했다.
“태수 형, 수정 스케줄이 훨씬 경제적인데요?”
“그러네. A팀, B팀 촬영 동선을 효율적으로 잘 나눴어. 인혁이, 수고했다.”
변덕규와 황태수가 만족하자 하인혁은 뿌듯해했다.
“그거 짜느라 스케줄러랑 FD랑 셋이서 머리 맞대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회의가 화기애애하게 끝나갈 무렵
변덕규가 화제를 돌렸다.
“형, 제발회 준비는? 2주 남았잖아. 내가 뭐 도울 거 없어요?”
“제발회는 인혁이가 알아서 할 거야.”
황태수가 무심히 던진 대답에, 흥분한 건 변덕규였다.
“오올, 하인혁! 너두 이제 그 정도 짬이 되긴 했다. 빠릿빠릿한 건 인혁이 따라올 후배가 없긴 하지.”
“다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주신 덕분이죠.”
하인혁이 답하자 변덕규가 허허허 웃으며 또 한 번 띄워주듯 물었다.
“이러다 너네 기수에서 인혁이 네가 제일 먼저 연출 입봉하겠다?”
“하하,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직 시기상조예요. 황 선배님 조연출 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지금도 좋습니다.”
하인혁이 계속 겸손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보며,
래원은 그가 연출력은 그저 그랬지만 사회생활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너 정도면 이제 조연출 생활 끝내고 슬슬 B팀 연출도 맡아보고, 메인 연출 입봉 준비도 해야지.”
황태수도 변덕규의 말을 거들었다.
유찬은 이 광경이 부러운 듯 입을 벌리고 지켜봤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드라마 예고편 편집도 전부 인혁이가 맡자.”
황태수의 제안.
변덕규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여윽시, 태수 형!
래원이, 유찬이, 너흰 첫 사수부터 행운인 줄 알아. 우리 연출부가 드라마국의 어벤져스라니깐? 태수 형, 인혁이, 거기다 내가 B팀이면 말 다한 거지.”
래원은 지난 삶에서 황태수를 좋지 않은 선배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그럴 만 한 일이 있었으니까.
‘의외네. 황태수 선배··· 후배한테 기회도 잘 주고, 후배 잘 키워주는 선배였구나?’
하인혁의 표정은 쑥스러운 듯 보였지만, 양쪽 광대와 어깨는 기세등등하게 치솟아 있었다.
“래원이, 유찬이는.
인혁이 하는 거 보고 잘 배워둬!
제발회 하이라이트 영상, 예고편 편집··· 너네가 1번 조연출로 올라가면 하게 될 일들이니까.”
“네!!” “옙!!”
변덕규가 두 막내를 챙겼고
황태수는 회의를 마저 진행했다.
“하이라이트 예고 준비 잘 돼 가냐, 하인혁?”
“네, 이번 주말 전까지 가편집본 완성하겠습니다.”
황태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좋아. 이게 내 피디 인생의 마지막 연출작인 거··· 다들 알지?”
후배 PD들을 둘러보는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 드라마에 생방은 절대 없다!”
“넵!!!”
“옙!!!”
래원을 비롯해서 변덕규, 하인혁, 유찬. 모두가 기합을 단단히 넣었다.
“후반부에 쪽대본 나오거나 촬영 스케줄 밀리면 최후 수단으로···.”
“에이, 명 작가님 쓰는 속도면 쪽대본은 절대 안 나올 거예요.”
변덕규가 황태수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으나,
“드라마 현장에서 ‘절대’라는 건 없어. 연출은 팀 전체를 책임져야 하니 작은 가능성도 다 대비해놔야 해. 그래서 최후 수단으로 C팀 투입도 고려하고 있다. 그만큼 생방 만큼은 절대 피할 거란 말이지.”
대신 황태수의 확언에 변덕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C팀? 누가 우리 팀으로 지원 온대요?”
“만에 하나···.”
황태수가 잠시 뜸을 들였다.
“만에 하나 C팀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인혁이가 맡을 거야.”
하인혁도 전혀 예상 못 한 듯 크게 놀랐다.
“네?!!”
“뭘 놀래? 준비해둬.”
래원은 놀랍지 않았다.
지난 삶에서도 같은 수순이었다.
하인혁은 를 끝으로 조연출을 졸업하고, 곧바로 다른 선배 작품의 B팀 감독으로 들어갔다.
래원이 미처 막내 조연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도, 하인혁은 래원을 부려먹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드라마로 연출 입봉도 했다.
변덕규가 예상한 대로 그 기수에서 가장 빠른 입봉이었다.
‘하인혁,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을 건데?’
오늘 이 회의는 래원이 다시금 의지를 다지기에 참으로 적절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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