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91
지이이이잉——
불현듯 울리는 휴대폰.
JC그룹 엔터부 홍 실장의 전화였다.
“예, 실장님.”
– 도 감독, 제작발표회 소식 잘 봤어. 껄껄껄. 첫 방 앞둔 소감이 어때?
“전작 때는 이맘때 촬영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이번에는 사전 제작이라 몸이 여유가 생긴 만큼 마음은 더 쫄리네요. 하하.”
– 도 감독 정도 배포면 끄떡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야? 내부 시사회 반응 나쁘지 않았잖아.
“그래도 시청자들 반응은 또 다르거든요. 쉽게 예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요.”
홍 실장은 래원의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
자만하기보다 시청자를 섬기고 두려워할 줄 아는 창작자의 자세가 보기 좋았다.
– 다름이 아니고, 이번 달에는 라운딩 대신 자네를 연말 도네이션 파티에 초대할까 싶어서 연락했네만···.
“도네이션 파티요?”
– 어, 쉽게 말해서 재계 VIP들이 모여서 와인 파티하는 건데, 그냥 모이면 폼이 안 나니까 기부를 명목으로 멋있게 노는 척 하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돼. 다들 도 피디를 궁금해해.
“저를요?”
– 세르지오 보욜라가 한국 드라마에 까메오로 출연했다는 소식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꽤 있어. 특히 보욜라 가방 마니아 여자들. 이번에도 직접 피렌체 장례식까지 다녀왔을 정도라서···.
“보욜라 선생님의 마니아층이 국내에도 있었군요. 몰랐네요.”
– 소수 VIP들이긴 하지만 충성도가 엄청나. 보욜라 가방은 시간이 오래될수록 빛을 발하니까.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오지를 못하지.
“드라마에 가져 주시는 관심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런 모임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서요.”
래원은 사실 이번 연말 연초에는 후반부 편집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런 모임의 사람들과는 딱히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삶의 가치를 돈에서만 찾는 사람들,
기부든 뭐든 돈 쓰는 것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에둘러 거절을 하려던 찰나,
– 에이, 그렇게 속단하면 안 되지. 도 피디한테도 분명 재밌는 자리일 거야. 엔터 쪽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거든.
“투자라면···?”
– 맨날 돈 쓸 궁리만 하는 큰 손들과 안면 터서 나쁠 거 없잖아. 엔터 쪽에 관심 있는 보욜라 마니아 중에 JC푸드 대표님 사모님도 있고, 천하 일보 막내딸도 있···.
“천하 일보요?”
– 어. 이 모임에서 우리 그룹 임원진이랑 천하 일보가 파트너십을 맺었거든. 그래서 이번 분기에 천하 일보 최대 광고주가 우리 JC잖아.
“아···!”
이제야 조민 기자에 대한 래원의 의문이 해소됐다.
‘뭐야···. 천하의 조민도 윗선의 지시에 어쩔 수 없었나 봐?’
그리고,
래원은 홍 실장이 말한 VIP 모임에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초대 감사합니다. 그 모임 참석하겠습니다.”
* * *
“어! 한다, 해!”
일요일 밤 9시 10분.
래미가 호들갑을 떨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TV에는 타이틀이 떴다.
래원도 야식으로 군고구마를 갖고 소파에 앉았다.
“먹을래?”
“아니, 나 다시 다이어트.”
“인제 그만 빼도 될 거 같은데···.”
“다음 달에 첫 예능 잡혔어.”
“예능?”
“웅, 아이돌 특집에 우리 팀도 잠깐 얼굴 비춘대.”
“에 나간다고?”
“웅.”
래원은 자연스럽게 일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설마 용마루···. 치사하게 내 동생을 화풀이로 삼진 않겠지?’
용마루의 평소 성정을 따져봤을 때 결코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다.
‘진짜로 허튼짓 했다가는 내가 가만히 안 있는다. 용마루도 머리가 있으면 안 그러겠지? 래미의 뒤에는 원더빅도 있고···.’
어느새 CF가 끝나고,
의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 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와아. 우리 오빠 카메라빨 잘 받네!”
래원과 함현우, 원준혁이 인사를 했고,
“[강다원] 집 세트장이 저렇게 생겼구나. 한 번도 못 가봐서 궁금했는데···.”
곧이어 캐스팅 비화 토크가 이어졌다.
래미는 원준혁의 농담에 깔깔대며 웃다가도 함현우의 진중한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촬영장에서도 느낀 건데, 현우 오빠는 완벽주의인 거 같아.”
“어. 그런 가봐.”
“속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낯도 많이 가리고.”
“그래도 너랑은 잘 맞아 보이던데?”
“웅, 나도 현우 오빠 덕분에 연기 많이 배우고 좋았어.”
“근데 저 팀도 편집하느라 죽어나겠구나. 거의 8시간 찍었는데, 방송 분량은 오늘 거랑 다음주 거 합하면 2시간 40분 정도니까. 어휴, 대체 얼마나 편집을 해야 하는 거야···. 카메라도 10대가 넘어 보였는데···.”
동병상련을 느끼며 어느덧 80분이 쏜살같이 흘렀고,
다음 주 예고가 나왔다.
“헐? 도래원 3종 세트? 오빠 저기 나가서 연기도 했어?”
“아 몰라···.”
“뭐야, 뭔데. 보여줘, 보여줘!”
“TV로 봐. 다음 주에 나올 거야.”
“피···. 치사하다. 치사해.”
래미가 입을 삐쭉거리며 돌아섰다.
뾰로통해서는 휴대폰을 만지다가,
“헐. 오빠! 반응 엄청 괜찮은데?”
언제 삐졌었냐는 듯,
래원의 코앞에 휴대폰을 내밀어 보이는 래미.
그녀가 보여준 화면 속 드라마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도래원, 함현우, 원준혁 그리고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에 대한 관심이 가득했다.
– 셋이 무슨 모델임? 예능 찍으랬더니 화보 찍고 앉았네ㅋㅋㅋ
ㄴ ㅇㅇ 섭외한 사람 어디 사심? 그 방향으로 세 번 절할 거야
– ㅠㅠ현우 오빠 돌아와 줘서 고마워
ㄴ 이제 꽃길만 걷즈아!
– 원준혁 존멋ㅋ 의리남이었네ㅋ
ㄴ 둘이 찐친 바이브 기대됨!!
– 저 감독은 배우들 사이에서 어떻게 저렇게 안 꿀림?
ㄴ 도래원 얼굴 원래 유명했어
ㄴ 본업도 존잘 얼굴도 존잘ㅋㅋ
– 아니 이러면 본방사수를 안 할 수가 없잖아여
ㄴ ㅇㄱㄹㅇ 영업력 쩐다
ㄴ 이미 뇌에 입력됐음ㅋ 금토 10시!
– 다음주 금토에 드라마보고 일욜에 이거 보면 완벽한 금토일이겠다!
ㄴ 누가 나 좀 냉동시켰다가 금요일에 녹여줘ㅠㅠ
래원은 재치 있는 반응에 피식 웃었고,
래미도 덩달아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며 까르륵 웃었다.
“기대된다. 첫 방 반응!”
* * *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금요일 밤.
래원은 편집실에서 야근하다가,
10시가 되기 전에 모니터실로 올라왔다.
여느 첫 방송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시청률 추이를 살펴 가며 모니터할 생각이었다.
시작은 6.5%였다.
이를 본 최지철 부장과 황태수 부장의 목소리가 한껏 들떴다.
“이야, 시작부터 장난 아니다, 도래원! 캐스팅 덕분인 건가? 함현우, 원준혁, 엄하늘, 류소현?”
“래원이가 에미상 노미 됐던 것도 화제성에 기여한 것 같네요. 지난 일요일 예능 반응도 좋았고요.”
시청률은 1화 방영 내내 우상향 곡선을 그리더니, 마침내 9.7%로 끝났다.
“아, 아쉽네. 10% 뚫을 수 있었는데···. M본부 때문에···.”
“거기 내일이 막방이고, 후속작은 작감배 다 약해서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은데요, 형님?”
“그래? 그럼 이변이 없으면 동 시간대 1위는 무난하겠네. 이제 사내 1위만 찍으면 되는데···.”
“가 다음주 첫 방이니까 사내 1위는 몇 주 안에 윤곽이 나올 것 같습니다.”
최지철과 황태수는 동시간대 1위보다 사내 1위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래원도 그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이번 편성이 어느새 드라마국 내에서
이 국장 VS. 김 부국장
라인 싸움으로 번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래원 본인은 이를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실은 래원이 황태수와 함께, 김 부국장 라인이 아니라 배미란 사장 라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래원이 신경을 쓰는 것은 ‘시청률을 넘어선, 시청자들의 평가’였다.
‘시청률은 저번 작품에서도 달성해봤으니까, 이번에는 시청자들의 만족도 특히, 원작 웹툰 팬들의 만족도를 잡고 싶다.’
이를 위해서 지금껏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 남은 편집 작업에도 최선을 다할 래원이었다.
* * *
“이모님, 저희 순살 양념 하나, 후라이드 하나요!”
“맥주는?”
“저희 일하러 가야 해서 못 마셔요.”
토요일 밤.
10시를 앞두고, 래원과 차여름 그리고 차가을이 치킨집에서 회동했다.
2화 모니터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치킨집의 커다란 벽걸이 TV에
타이틀이 뜨며, 2화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저거 어제 시작했는데 재밌던데?”
“뭔데?”
“ 웹툰 알지?”
“알지. 월미도88.”
“그걸로 만든 드라마.”
“그래? 그거 개재밌게 봤는데.”
차여름이 래원과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었다.
세 사람은 눈은 벽걸이 TV에 고정한 채로,
귀를 쫑긋 세워 앞, 뒤, 옆 테이블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 함현우네?”
“함현우? 그 예전에 잠적했던?”
“어. 이야···. 여전히 잘생겼구먼.”
“옛날에도 원준혁이랑 같이 나오지 않았었냐?”
“그랬지. 둘이 드라마 많이 했었어. 그땐 쟤네도 우리도 풋풋했는데···. 쟤넨 그대로지만 우린 이제 늙었다.”
이 같은 대화 소리에 래원과 차여름, 차가을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소리 없이 반응했다.
‘이렇게 모니터하는 것도 현장감 있고 재밌네?’
래원이 이렇게 생각하는 도중,
또 다른 테이블에서도 방청객 모드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엄하늘 진짜 이쁘네.”
“난 류소현이 더 귀여운데?”
“캬, 나도 저런 여자들 만나면서 화려한 싱글로 살아야 하는데···. 결혼을 너무 빨리했어.”
“푸하하하. 저 사우나에서 디테일 봐. 나랑 똑같아. 크큭.”
“어떻게 똑같냐? 몸매랑 얼굴이 전혀 딴판인데.”
“야, 이거 재밌다? 웹툰보다 재밌는 거 같은데?”
이에 휘둥그레지는 래원과 두 작가의 눈.
세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이 이상의 칭찬은 없었으니까.
2화 방영이 끝나고,
세 사람은 결국 맥주를 시키고야 말았다.
“일할 땐 하더라도, 오늘 같은 날은 마셔줘야죠!”
짠—!
“수고하셨습니다.”
“진짜 다들 수고했어요.”
“저는 편집 더 수고하겠습니다.”
500cc 맥주잔이 거의 다 비어갈 때쯤,
차여름이 알딸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독니임! 기대하실 거 같아서, 먼저 말씀드릴게요. 저! 이번에는 평론 안 쓸 거예요! 상도가 아닌 거 같아서요.”
“당연하죠. 기대 안 하고 있어요.”
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순살 치킨을 입에 넣었다.
매콤달콤한 맛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지이잉—
동시에 세 사람의 휴대폰이 울렸고,
[조연출] 오늘 실시간 최고 시청률 12.5%까지 갔습니다. 새벽에 닐슨 뜨면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단톡방 공지였다.
래원이 씨익 웃자, 두 작가도 따라 웃었다.
“이 드라마는 비투페라토르 평론 없어도 잘 나갈 거예요.”
* * *
이틀 후 월요일 저녁,
서울 논현동의 임페리얼 캐슬 호텔.
래원은 홍 실장을 기다리며 이곳 로비를 서성이고 있었다.
지이잉—
[홍 실장] 도 피디, 이사회가 방금 끝나서 나는 좀 늦겠는데? 내가 말해뒀으니까 명함 내면 들여보내 줄 거야. 일단 혼자 즐기고 있으라고.이같은 문자에 래원은 [VIP Donation Party] 현수막이 붙여진 홀 앞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정장을 입은 경호 요원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래원은 태연하게 매니저에게 명함을 꺼내어 건네며 소속을 밝혔다.
“SBC 드라마국 PD 도래원입니다.”
매니저가 명단에서 래원의 이름을 확인했는지,
깍듯한 손짓으로 래원을 홀 안에 안내해주었다.
오늘 래원의 목표는 천하 일보 ‘강채령’과 JC푸드 사모님이었다.
JC푸드는 예전 ‘재벌의 세계’ 때도 그랬고, 워낙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집안이었으니까.
그리고 천하 일보 막내딸 강채령은,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려서 지난 삶에서도 얼굴을 비롯한 별다른 신상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딱 하나 확실한 것은 소문난 드라마 광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