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96
그래서 래원은 지금 윤 PD가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동병상련···. 역지사지···.’
건강을 잃더라도 당장 눈앞의 내 드라마는 포기할 수 없는 게 드라마 감독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 * *
“웹툰즈에서 인생작을 만나다! ··· 아아— 아아—! 너무 목소리 톤이 높은가?”
한편, 래미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브라이트 걸스’ 데뷔 무대 준비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
광고 촬영 준비도 해야만 했다.
드라마와 시상식 반응이 좋았던 덕분인지
함현우와 둘이 함께 찍는 광고가 들어온 것이다.
래미는 12시간 넘는 연습 후 집에 와서는,
첫 광고라 설레는 마음에 지친 기색도 없이 볼펜을 입에 물고 광고 멘트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오빠, 나 좀 봐줘.”
간만에 빈둥빈둥 소파에 누워 쉬고 있는 래원까지 괴롭히면서 말이다.
“오빠가 이거 상대역, 현우 오빠 분량 읽어줘.”
래원은 하품을 하며,
래미가 건넨 콘티를 받아들고는 대충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아, 오빠는! 영혼이 없어, 영혼이! 하나뿐인 동생이 처음으로 CF를 찍는데! 다시! 다시 제대로!”
“······.”
래미의 성화에 결국,
자세를 바로 고치고 앉아서 못이기는 척 진지하게 대사를 읊는 래원.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궁금하지?”
“어, 아빠는 너무 궁금하다.”
“궁금하면 500원!”
이윽고 래원이 콘티에 적힌 대로 500을 꺼내주는 시늉을 했다.
“아니아니! 아빠는···. 이 500원 말고, 웹툰즈에서 500원짜리 치킨을 튀기면 이 웹툰의 뒷이야기를 볼 수 있다구!”
“웹툰즈?”
“지금 바로 웹툰즈에 접속하세요! 웹툰즈에서 인생작을 만나다!”
래미는 거울을 보며 이런저런 포즈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연습했다.
“··· 접속하세요! 웹툰즈에서 인생작을 만나다!”
턱에 꽃받침을 만들며 애교 있는 포즈를 취하거나,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며 빙긋 웃기도 하고,
검지를 까딱하며 고개를 갸우뚱해보기도 했다.
래원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나 이상해?”
“아니. 잘하고 있다고.”
“진짜?”
“어. 내가 빈말하는 거 봤냐. 그렇게 여러 가지 만들어가면, 가서 감독님이 요구하는 거 금방 캐치할 수 있을 거야.”
“나, 잘 할 수 있을까?”
“그럼. 누구 동생인데. 잘 하고 있으니까, 마음가짐 유연하게 먹고 이것저것 준비해 가봐.”
이윽고 래원이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장난스레 손을 뻗어 래미의 머리를 부비부비 헝클어뜨렸다.
“아, 오빠! 내가 머리 만지는 거 싫댔지!”
알지만 래미의 화내는 이 모습이 귀여워서 자꾸만 머리카락으로 손이 가게 된다는 것을,
래미는 모르는 듯했다.
래원은 장난스레 실실 웃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던져진 휴대폰을 확인하자,
메시지가 여럿 떠 있었다.
우선 단톡방.
[조연출] 14화 최종 최고 시청률, 닐슨 25.1% 떴습니다.그 아래 배우와 스텝들의 이모티콘 퍼레이드가 이어졌고,
래원은 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저번 이 전국 26.8%, 수도권 27.3%로 끝났었지? 다음주 15, 16화 때 잘하면 이거 넘길 수 있겠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다음 메시지,
[유찬] 형, 이번주 조선의 솔메 전국 11% 떴던 거, 수도권은 더 심각하네? 9% 떴대ㅋ“······.”
이 국장 라인,
임장호의 .
김 부국장 라인,
도래원의 .
유찬의 메시지에 김 부국장과 최지철 부장 그리고 황태수 선배의 웃는 얼굴이 그려지는 듯했다.
허나 래원은 드라마국 사내 경쟁으로 번진 이 시청률 싸움에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기에,
조선의 소울메이트의 고전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과거에 더 잘 나갔던 작품이 이번 생에 꼬꾸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PD로서, 좋은 대본이 시대와 연출을 잘못 만나서 망가지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아···. 또 생각나네, ”
래원은 ‘조선의 소울메이트’가 지난 삶에서보다 망가지는 것을 보니,
반대로 지난 삶에서 연출을 잘못 만나 망가졌던 드라마를 이번 삶에서 살리고 싶은 충동이 다시금 일었다.
“나라면 진짜 잘 만들어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나 윤 PD를 생각하면 함부로 나설 수 없는 래원이었다.
* * *
쏴아쏴아— 끼루욱—
쏴쏴— 끼룩끼룩—
낮은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이 뒤섞였다.
이 소리에 지난 몇 달간 정신없이 지냈던 래원의 마음에 낯선 안정감이 찾아오는 듯했다.
솔솔 부는 바닷바람 덕분에, 술에 취할만하면 금방 깨는 것도 좋았다.
인천 월미도의 외곽.
동네 주민 단골로 꽉 채워진 허르스름한 활어횟집.
지난번에 월미도88과 갑작스럽게 쫑났던 술자리가 못내 아쉬웠던 래원은,
오늘 이곳을 다시 찾았더랬다.
조금 전 마지막 16부를 월미도88의 작업실에서 함께 시청한 후,
지금 이곳에 나와 뒤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종선]까지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줘서 참 고마웠어. 사실 나한테 그 작품의 아픈 손가락이 그 친구였거든.”
어느새 말을 놓고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래원과 월미도88.
래원과 차여름, 차가을 작가가 월미도88의 합의 하에 약간의 각색을 가미해서 만들어낸 드라마의 결말을, 그가 몹시 흡족하게 본 듯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래원 동생. 잔 받아.”
소주잔을 가득 채워주고는 정겹게 잔을 부딪치는 월미도88.
짠-
이내 원샷으로 들이켠 술은 서울에서 마시는 것보다 달고 시원했다.
래원과 월미도88 사이에 쉼 없이 이야기가 오갔다.
둘은 작품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지새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월미도88은 기분이 좋은지 소주를 연신 들이붓다가,
어느새 취기에 새빨개진 얼굴로 허허허 웃으며 주절주절 재잘대기 시작했다.
“형,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구나. 몰랐네. 하하.”
“래원아, 내가 원래 원작에 손대는 거 내가 진짜 극혐하거든? 너도 알쥐?”
“그럼 내가 제일 잘 알쥐.”
“근데 래원이라면! 내가! 이제 믿고 맡길 수 있다! 내 새끼들? 다 맡길 수 있어!”
월미도88의 혀꼬부라진 소리에 래원이 폭소를 터뜨렸다.
맨 처음 이곳 월미도에 와서 월미도88의 판권을 따내기 위해 대면했을 때,
차가운 표정과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거절하던 그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래원은 장난스레 휴대폰 녹음기를 켜며 되물었다.
“진짜? 형 내일 술 깨고 딴소리하기 없기다?”
“진짜! 진심! 레알! 래원아 또 만들어줘, 드라마. 내 새끼들 아무나 골라봐! 다 너 줄게!”
“하하하. 형, 내일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거 지금 다 녹음됐다. 형한테도 보내 놔야지. 딴소리 못하게.”
래원이 녹음본을 메시지로 보내며 웃었다.
“진짜라니까 인마! 속고만 살았나···. 너 차기작있냐?”
“아직 없지. 소철않 끝난 지 2시간도 안 지났거든요!”
“없으면 차기작 내 거로 또 해라.”
래원은 기가차서 웃다가,
문득 ‘차기작’ 이라는 말에 또다시 가 생각나고 말았다.
‘윤 선배의 복귀작을 빼앗을 수는 없어.’
알지만 자꾸만 이 작품이 아른거려서 괴로운 래원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둬서 드라마도 선배도 끝장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잖아? 나도 도저히 그 작품이 포기가 안 되고···.’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였다.
지금 그 작품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윤 PD도 옥영임 작가도 아닌,
미래를 알고 있는 도래원 뿐이었으니까.
래원은 결심한 듯 휴대폰을 들고 윤 선배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94화 – 리디북스
신호음이 두세 번 울린 후, 윤 PD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지협 선배. 저 래원입니다.”
– 엉, 알아. 나 네 번호 있었어. 뭔일이냐? 막방했으니 한창 술 마시고 있을 때 아냐?
“하하. 네, 맞습니다. 그러다가 선배 생각이 나서요.”
– 내 생각?
“선배, 저 B팀으로 써주십시오! 페르소나, 같이 하고 싶습니다.”
– 뭐? 너를··· B팀으로? 네가 B팀을 왜 하냐, 도래원?
“작품은 하고 싶은데 바로 제 것 들어가기에는 힘에 부치기도 하고, 페르소나 대본도 좋았고, 선배한테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요.”
뭐, 거짓말은 아니었다.
윤지협 PD가 만성 복막염에 시달리면서, 끝내 쓰러질 때까지 드라마를 놓지 않았던 집념 같은 것은 배울 만 했으니까.
게다가 그는 인물의 갈등을 세련되게 담아낼 줄 아는 연출이었다.
‘그 어떤 망작 드라마에도 배울 점이 있듯, 사람도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는 법이지.’
– 야, 너 소문대로구나? 작품 끝났으면 그냥 쉬어! 작년에 나 탈 난 거 못 봤냐?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라.
이에 래원은 ‘지금 건강 챙길 사람은 제가 아니라 선배거든요!’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삼켰다.
“저 써주세요, 선배. 후회 안 하실 겁니다.”
– 야, 그래도 메인 연출 해야 할 놈이 B팀 하는 게···.
“안심하세요. 월권은 절대 안 하니까요. 전 철저히 B팀 감독의 포지션을 지킬 겁니다.”
– ······.
이 역시 거짓말은 아니었다.
래원이 B팀 감독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은 그럴 작정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윤지협 PD를 존중하고 싶었다.
그의 이름도 크레딧에 끝까지 함께 올릴 생각이었다.
윤 PD의 연출력은 차치하고서라도,
드라마를 향한 그의 열정과 집념만큼은 높이 평가하는 래원이었으니까.
여기까지 들은 윤지협은 더 이상 래원을 거절할 핑계도, 이유도 없었다.
– 너 혹시, 지금 술 취해서 헛소리하는 거 아니지?
“하하하. 아녜요. 진심입니다. 오죽하면 지금 연락을 드렸겠어요.”
– ··· 그럼 그래라. 잘해보자. 잘 부탁한다, 도래원.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끝까지 믿기 힘들다는 듯 떨떠름하게 반응하는 윤지협에게,
래원은 큰소리로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
* * *
지이이이이잉——
지이이이이잉——
받을 때까지 울려댈 기세로 요란하게 구는 휴대폰.
래원은 떠지지 않는 눈을 그대로 감은 채, 비몽사몽간에 이를 받았다.
“네···.”
– 야! 도래원! 너 대체 뭔 생각이냐?!!
휴대폰 너머로 다짜고짜 들려오는 호통 소리.
황태수였다.
이에 래원은 겨우 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월미도88의 작업실이었다.
‘아···. 맞다, 어제 형이랑 새벽까지 마셨지.’
– 도래원! 네가 윤지협이 B팀을 왜 해?
“아···. 벌써 들으셨어요?”
황태수는 출근하자마자 소식을 접하고 전화한 것 같았다.
“안 쉬고 바로 작품 하고 싶은데 곧장 제 걸 할 수는 없잖아요.”
– 제명에 죽기 싫으면 바로 네 작품 들어가도 되지.
“그건 안 되죠. 전 건강하게 오래오래 드라마 만들 거라서요. 암튼 그래서 B팀 하면, 쉬엄쉬엄하면서 지협 선배 연출하는 것도 배울 수 있으니까요, 페르소나 대본도 재밌었고 겸사겸사···.”
– ··· 으이구, 널 누가 말리겠냐. 백상에 에미상 노미 됐던 놈이 B팀이 말이 돼?
“왜 안 돼요? 전 B팀 딱 한 번 해보고 일찍 입봉했으니까 이렇게 중간중간 다른 선배 PD들은 어떻게 연출하는지 배울 겸 B팀도 해봐야죠.”
– 그야···. 뭐···. 그러면 좋긴 하지···.
전화 너머의 황태수는 어느새 래원에게 설득이 되어버렸는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짜식, 안주하지 않겠다 그거지? 역시 다른 놈들이랑 뭐가 달라도 달라. 괜히 서른도 전에 백상, 에미상 입봉한 게 아니네.’
– 9월에 페르소나랑 동 시간대로 붙는 게 TBN 모원호 감독 20부작이야.
“아 그래요?”
이 말에 래원은 잠이 확 깨는 듯했다.
듣고 보니 기억이 났다.
모원호 감독의 영국 드라마 리메이크작 말이다.
모원호 감독.
지난 백상 예술대상에서 으로 래원을 제치고 감독상을 받은 중년의 프리랜서 PD였다.
래원의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모원호와 비슷한 연배셨을 것이다.
래원이 지난 생에서부터 존경하던 감독 중 한 명이자, 래원의 롤모델 중 하나이기도 했다.
– 작가는 김윤하. 아, 그러고 보니 너랑도 했던 작가구나. ‘레이스 장갑을 낀 여인’! 밴프도 같이 갔었네. 모원호, 김윤하랑 붙는데 그래도 할 거냐?
“그럼 더욱더 해야죠. 모원호 감독님과 동 시간대로 겨루기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 만들게요. 윤지협 선배랑 힘 합쳐서.”
래원에게 드라마 를 죽기 살기로 살려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순간이었다.
– 참, 막방 시청률 축하한다.
“아, 얼마 떴어요? 저 아직 메시지 확인 못 했어요.”
– 술을 얼마나 마신거냐! 전국 28.1%, 수도권 29.7% 떴어.
“와! 제 최고 기록인데요?”
이 소식에 래원의 몸이 저절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저절로 벌떡 일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