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
제1화. 황제의 마지막
이안은 소년의 나이로 황제에 올랐다.
그리고 성년이 되기 전 목이 베였다.
황제 이안 베로시온의 삶은 저 두 문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격변의 시기에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어린 황제를, 그 누가 기억이나 하겠냐마는.
지하 감옥으로 들어선 사내가 이안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피 칠갑으로 엉망이었지만, 눈빛 하나만큼은 형형했다.
“이안 숙부.”
사내의 이름은 크로니. 개같이 꼬인 족보 탓에 이안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조카였다. 그가 머리채를 살살 흔들 때마다, 이안의 입에서는 피 섞인 침이 뚝뚝 떨어졌다.
“어쩌다 이리되셨습니까? 그러니 제가 말했지요. 숙부는 황제가 될 덕목이 없으니 자리를 거절하는 게 좋을 거라고. 그때 제 말 들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이안은 대답 없이 크로니만 가만 노려보았다.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크로니는 이안의 얼굴을 거세게 후려쳤다.
짜악!
“아무리 생각 없는 철부지 십대라 한들, 누울 자리는 보고 발을 뻗어야지요! 그깟 마법!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 세상에서 신이 남긴 흔적이라 할 정도로 숭고하고 위대한 힘.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안이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숙부, 보십시오! 그 잘난 마법이 내 발길질 하나 못 막지 않습니까?”
퍼억! 퍼억!
사실이었다. 이안의 사지를 묶은 마력 봉인석 족쇄 덕분에, 그는 지금 열아홉 살의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봉인석을 푼다 한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터라 끝은 정해져 있었다.
“만 명 중의 한 명이 어쩌고, 최초의 귀족 마법사가 저쩌고!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바로 이 칼날 앞에서는.”
스윽.
크로니는 결국 검을 빼 들었다. 아무리 반역으로 몰락한 황제의 처지라 한들, 이런 지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다니. 이안은 어이없게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
“웃어?”
“…그래. 우습다. 크로니. 나도 그렇지만, 그대도 변한 게 없어. 아직도 내가 마법사라는 게 그리 부럽나?”
이안의 말에 크로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희소성이 높을수록 귀하듯,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리엘 제국 전체에서 백 명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소수인 존재.
그렇다 보니, 귀족 집안에서 마법사가 나온 것은 대제국 바리엘의 역사상 처음이었다.
“기억나는군. 마력운용자였던 아이 시절, 아무것도 몰랐던 내게 넌 이렇게 얘기했지. ‘마법사는 귀하지만 대부분 천민 출신입니다. 들키면 저택에서 쫓겨날 것이니 숨기십시오.’라고.”
“…이안.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겁니까.”
“웃기지 않나? 당연히 귀족보다 천민의 수가 압도적이니 마법사 역시 천민 출신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데.”
“그만 닥치시오!”
“왜, 부끄럽나?”
“닥치라고!”
퍼억!
이안의 시야가 캄캄해졌다. 크로니의 주먹이 눈을 제대로 때린 탓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이안의 뒤통수가 잘근잘근 밟혔다.
“알게 뭐란 말입니까. 나는 지금 이리 서 있고, 그대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으니. 이것이 중요하지요.”
크로니는 칼끝을 이안의 목덜미로 겨누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숨통을 끊으려는 순간.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크로니 님. 힐론 공작에게 서신이 왔습니다.”
“…급한 일인가?”
“네. 송구하옵니다.”
크로니는 혀를 쯧, 차며 이안의 뒤통수에서 발을 치웠다. 그리고 죽은 듯 꼼짝하지 않는 이안을 힐끔거린 채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찰칵. 찰그락.
“이안 님…….”
낯선 쇳소리와 익숙한 목소리. 이안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고개 돌릴 힘도 없었다. 시선만 겨우 옮기니, 마법부 장관인 나움이 울먹이며 족쇄를 풀고 있었다.
“이안 님.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나움, 여긴… 어쩐 일인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서둘러 몸부터 피하시고, 사셔야 합니다. 이안 님, 제발 힘 좀 어떻게…….”
하지만 봉인석 족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작은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나움의 손을 비췄다. 손끝이 녹에 다 까져 엉망이다.
“…그만하게.”
“이안 님?”
“…나는 그만하고 싶어.”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마법부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생생히 떠올랐다.
“고맙네, 마력운용자에서 마법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자네들 덕분이었어. 비록 내가 모자라 이리되었지만, 그대들은 계속 살아남아 바리엘 제국을 지켜주게.”
“아니요. 안 됩니다. 이안 님 없으면 마법부의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제 마력 좀 받으십시오. 죽으면, 죽으면 다 끝이라고요…….”
죽으면 다 끝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이안이 참으로 바라는 것이었다. 너무 힘들고, 지치고, 고단했다. 황제로서 살았던 지난 3년간의 삶이 이안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이안 님. 제 말 잘 들으십시오.”
하지만 나움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안의 턱을 조심스럽게 쥐며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제2황궁 중앙 본관 옆에 마법부 직속 별채가 있습니다. 아시지요? 이안 님이 처음 황궁에 들어와서 울고 싶을 때마다 찾았던 곳 말입니다.”
“…딱 한 번 울었는데.”
“그래요. 어쨌거나요.”
왜 울었더라?
이안은 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연 기억을 더듬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였다. 나움이 뭔가를 느낀 듯 감옥 입구 쪽을 살폈다. 볼일을 마친 크로니가 다가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결계를 풀고 서둘러 몸을 숨기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안 님, 그쪽으로 가십시오. 가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안의 말에 나움은 그저 침묵으로 대답했다. 지하감옥의 어둠 때문이 아니라, 근심과 걱정으로 그의 얼굴이 짙어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이안은 몽롱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들며 다시금 나움의 소매를 붙잡았다.
“나움, 내가 물었다.”
“마법에 제 피를 섞었습니다.”
“…나움!”
“답이 오기를, 그쪽으로 오면 기회를 열어준다고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곳인지는 모르겠어요. 제 능력 부족인 탓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서두르셔야 합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마법의 힘.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어긋났다간 심연에 빠지고 말 것이다. 교황청에서는 그것을 지옥이라 부르고,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영속의 저주라 불렀다.
“시공간을 비틀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안 님, 그러니…….”
“어째서, 어째서!”
끼익.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마법부 새끼들, 다 솎아낸다고 해도 장관이라는 자가 이렇게 나오면 소용없는 일 아니겠어?”
크로니였다. 그의 뒤에는 나움의 뒤를 이어 마법부 차기 장관으로 추대 중인 사내가 서 있었다. 나움이 이를 꽉 깨물며 마법 진을 주문했다. 손끝에서 일렁이는 파장. 어지러운 문양이 흐트러지며 이전과 같이 빛나지 않았다. 이안의 손목을 죄고 있는 봉인석의 기운이 워낙 강한 탓이었다.
“나움! 제발! 안 된다!”
“이안 님. 괜찮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언제나 있어요. 신께서는 답 없는 문제를 내려주지 않습니다.”
우우우웅!
나움의 마법진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꽃은 크로니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움의 손을 태워 먹고 있었다.
“으아아악!”
“…안돼! 나움, 잠깐만! 그만!”
이안은 엎드린 채 고개만 쳐들어 소리쳤다.
자신의 목숨에는 미련이 없었으나,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황제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왕관의 무게는 이안을 따르는 자들이 보내는 신의의 무게였노라고. 그리고 그걸 버티고 있는 것 또한, 이안이 아니라 그들이었노라고.
화아아악!
“윽!”
크로니 역시 솟구치는 화염을 왼손으로 막아냈다. 뒤에서 마법사가 보호막을 쳐주지 않았더라면, 얼굴을 태워 먹을 뻔했다.
‘아. 젠장.’
반면, 이안은 뜨거운 열기에 다시금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모든 것이 빛으로 환해지고, 고통마저 아득해지는 순간. 이안은 문득 귓가에 쇳소리가 울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채앵.
크로니의 검이 이안의 목덜미에 닿았다. 3년짜리 황제의 최후가 이런 것이라니. 나름 바리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신의하는 자는 스스로 잡아먹혀 죽어갔고, 이안 역시 목이 베일 처지다.
“이안.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말거라.”
크로니의 잔인한 말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죽음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싶을 정도로 조용한 주위. 그리고 이내 보이는 것은…….
‘포크와 나이프?’
그것도 반대로 잡은 자신의 손이었다.
* * *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지난 며칠 동안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이안.”
맞은 편의 낯선 여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드넓은 정원, 잘 가꾸어진 화단 그리고 눈앞의 융숭한 음식들. 정신 차려보니, 둘러앉은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지옥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천국인가?
하지만 풍경이 그가 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황궁과 비교하면 좀 볼품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얘가 왜 이러니. 이안. 손님께 결례란다.”
“못 배운 티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가 봅니다.”
“첼. 말을 가려서 하거라.”
“이안. 정신 차려.”
여인 옆에 앉아있는 뚱뚱한 소년이 거친 말을 쏟아냈으나, 이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까부터 위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나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미치겠군.’
저도 모르게 나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이안은 우아한 손짓으로 식기를 바로 잡고 식사 예법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품격있게,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스테이크를 잘라 먹었다.
“음.”
방금까지 포크를 주먹으로 쥐던 자라 생각할 수 없는, 기품있고 격식 있는 몸짓이었다. 훌륭하다는 듯 내뱉는 감탄사 역시 짧고 낮으며 천박하지 않았다.
맞은편의 변경백과 계모인 백작 부인 그리고 배다른 형제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를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