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05
제105화. 몰살의 흔적
-실례지만, 지금 바쁘십니까?
“……??”
베릭은 눈만 계속 끔뻑거렸다. 헥헥거리며 활짝 웃은 채로 저롤 올려다보는 저 개놈. 개놈이 지금 말을 한 건가?
“하, 말도 안 돼. 미쳤네. 진짜 지루해서 정신 나갔나 봐. 아나, 진짜. 어이 터져서, 원.”
베릭은 피식 웃으며 제 머리를 헝클였다. 하지만 다시금 들려오는 말에 정신을 번뜩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
-그쪽한테 말한 거 맞습니다. 괜찮으시면 시간 좀 내주시지요. 음. 개성 있게 생긴 사내여.
개는 여전히 얌전히 앉은 채로 베릭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새끼, 지금 나 못생겼다고 까는 건가?’
베릭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린 채 말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온통 눈밭이고, 은폐할 만한 지형지물이 많아서 쉽지 않다.
타악!
호의적이던 강아지는 베릭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하는 낌새를 알아챘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와다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뒤쫓는 베릭.
앙! 앙앙!
“어쭈, 개소리도 내긴 내네. 너 뭐야?”
앙!
이안은 마차를 뒤로 빼다가 소란을 듣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대체 무슨 사고를 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 멀리, 미친 듯 내달리는 붉은 머리칼이 유독 눈에 띄었다.
“베릭!”
“이안! 이 개새끼 잡아 봐!”
“개를 왜!”
“이 새끼 이거, 말하는 개야. 근데 말하는 게 좀 싸가지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난리를 치는 꼴이, 개보다 더한 것 같다. 이안은 로만드로와 부하들에게 무시하자는 뜻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쟤는 대체 왜 저런지 모르겠습니다.”
“내버려 두게. 몸에 혈기가 얼마나 많겠나.”
로만드로가 이안을 두둔하며 웃었다. 베릭이 개와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부하들은 마차를 모두 돌려놓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이안 님. 그런데 어차피 멈춘 거, 바퀴 점검을 마저 해도 되겠습니까? 눈길이 생각보다 미끄러워서요.”
“말들도 조금 더 쉬면 좋겠습니다만.”
이안은 시계를 확인하며 흔쾌히 허락했다. 겨울이라 해 지는 시간을 생각하더라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조금 되돌아가도 저녁 중에는 카렌나에 도착할 터였다.
“그러지. 어차피 조금만 가면 되니까.”
“그나저나, 진짜 저게 도적의 소굴일까요? 그런 것 치고는 카렌나와 너무 붙어있는 거 아닙니까? 저렇게 대놓고 보이는데 거기 경비대에서 저걸 그냥 둘 리도 없고요.”
궐련에 불을 붙이던 마부가 마을 쪽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게 우선인지라, 이안은 선택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걸 알아보는 것도 카렌나에서 할 일일세.”
“잡았다! 개쉑!”
끼이잉.
그때, 베릭이 한 손에 흰색 덩어리를 든 채 소리쳤다.
“이안. 이것 봐! 이놈 말하는 개야!”
쉬고 있던 일행들은 관심도 주지 않았고,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베릭이 코앞으로 개를 들이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개는 겁먹은 시선으로 이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베릭.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왜? 마법인가 뭐시기인가는 말이 되는데, 말하는 개는 없을 것 같아? 진짜라니까? 나한테 시간 없냐고 막 그랬어.”
끄응.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농담은 아닌 것 같다. 헛것을 들었거나 아니면 진실로…….
“말, 해보거라.”
끼이잉.
이안은 진지하게 개와 눈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로만드로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베릭은 그렇다 치고, 이안까지 저러니 진풍경인가 보다.
“미안하네. 큼. 아, 이봐. 거기. 음음. 나도 담배 하나만 주게.”
이안이 쳐다보자, 로만드로는 딴청을 피우며 부하들 쪽으로 도망쳤다. 개는 꼬리만 살랑살랑 흔든 채 헥헥거릴 뿐이다.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어서 놓아주어라.”
“아이, 진짠데. 이거 웃기는 놈일세. 확 잡아먹어 버릴까 보다.”
베릭이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개가 충격먹은 표정을 지었다. 이안이 그걸 알아채는 순간, 개는 바로 베릭의 손등을 물어버렸다.
아득!
“으앗!”
타다다닥!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언덕 위로 도망쳤다. 베릭이 쪼그려앉아 고통을 삼키는 동안, 이안은 덤덤하게 개의 뒤꽁무니를 시선으로 쫓았다.
-무우례한 자들이로군! 내 사람을 잘못 보았소! 신의 있는 자들처럼 느껴졌는데 말이지! 에, 퉤퉤! 퉤!
“봐봐! 저 새끼 말한다!”
이안도 놀라서 입이 살짝 벌어졌다. 작은 몸으로 위풍당당 소리치는 꼴이 참으로 깜찍했다. 소란에 로만드로와 부하들이 힐끔거렸으나, 그때는 이미 개의 모습이 사라진 후였다.
“방금 뭔가? 진짜 개가 말을 했어?”
“아하하! 로만드로 님도 참, 농이 심하십니다.”
“자자. 이제 슬슬 출발해 볼까요?”
“읏쌰! 서둘러 가서 푹 쉬고 싶군요.”
다들 분주하게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이안과 베릭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네가 모르는데 내가 알겠어? 제대로 물렸네, 젠장.”
“허참. 당황스러운 일이구나.”
인외족인가? 아니면 신수?
하지만 신수치고는 너무 하찮다.
이도 저도 아니면 마물일 수도 있는데, 이 시대에 바리엘 내륙에서 마물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알 수가 없군.”
이안이 마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다시금 언덕을 올려다봤다. 베릭이 손을 털며 이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누가 있는 것 같은데, 못 느끼겠나?”
“개놈 새끼, 아직 안 간거 아녀!?”
“되었다. 어서 타자.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부는구나.”
이안은 베릭의 등을 떠밀며 마차를 탔다. 말머리를 돌린 행렬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동안, 이안은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낌새를 알아챈 로만드로가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러는가? 어디 불편한가?”
“아닙니다. 그저, 도적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하니 긴장되어서요.”
히이잉!
다그닥다그닥!
점점 사라져가는 마차의 긴 행렬. 숲에 숨어있던 검은 인영들이 마차의 그림자에 따라 붙었다.
* * *
마부의 말대로 해가 질 무렵, 이안은 카렌나에 도착했다. 별 볼 일 없는 조용한 소도시. 하루를 마무리하던 주민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이안의 마차 행렬을 구경했다.
“브라츠였으면 또 어떤 놈들이 쳐들어왔나 난리 났을 텐데. 여기는 조용하네.”
“내륙에 가까워서 외세의 칩입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도적들이 마차 끌고 들어올 리도 없고.”
로만드로는 베릭의 손등을 힐끔 보며 혀를 차댔다.
“그나저나, 그 괜찮나?”
“손등이요? 별거 아닌데?”
“그러니까 누가 지나가던 개를 그리 덥석덥석 잡아.”
“그게 그냥 지나가던 개야? 말하는 개였다고!”
베릭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세상 세상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 않나. 짐승이 사람 말을 하는 것도 처음 보지만, 그 말랑말랑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목소리와 말투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혹시 주술의 일종일까?”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소도시에 주술사가 있을 리…….”
아니다. 있을 수도 있겠구나.
변방족과 싸우는 최전선 국경지에도 마력운용자인 이안이 있었는데, 주술사 정도야 뭐.
끼이익!
“도착했습니다. 이안 님.”
“수고들 했네. 짐을 풀고 오늘은 푹 쉬게나.”
“아이고, 다들 고생했습니다.”
“헉! 오늘 여관에서 묵으실 예정이신가요?”
“그쪽이 주인장이요? 마차랑 짐이 꽤 많은데.”
“어서오십시오! 잠시만요!”
여관 앞을 비질하던 여인이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을 데리고 나왔다.
“말들이 예민해서 섞이지 않게 두었으면 하는데.”
“마침 지금 묵는 손님이 없어서 수용이 딱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부하들이 말과 마차를 보관하는 동안, 이안은 여관으로 들어가 수기를 작성했다. 종이가 깨끗하니, 며칠 전부터 백지였던 것 같다.
“요즘 겨울이라 손님이 드문가 보군.”
“예예. 그렇죠. 뭐, 사실 날씨 좋을 때도 그리 장사 잘 되는 편은 아니에요. 여기가 뭐 볼거리나 먹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처럼 지나가는 분들이나 가끔 왔는데, 도적들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그것도 뚝 끊어졌습니다. 1박만 묵으시나요?”
“그렇다네.”
여관주인이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수기를 확인했다. 말이 스무 마리에, 마차가 열 대, 사람도 열댓 명에 가깝고, 보관할 짐도 많으니…….
“식사와 목욕물 다 포함해서 금화 1닢입니다.”
생각보다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이곳에서 일행이 동시에 묵을 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아니라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데, 번거롭게 그리하는 것보다 금화를 내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 묵기로 한 것,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게 여러모로 좋겠지.
달그락.
이안은 흔쾌히 금화 2닢을 꺼내 내밀었다. 주인장은 화색이 돌더니 넙죽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이고!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날이 추워, 장작을 많이 올려주게.”
“아무렴요! 바로 목욕물을 데울까요?”
“그리해 주면 고맙지.”
“나는 밥! 밥! 배고파!”
“예예. 잠시만 기다리시면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참, 화장실이 붙어있는 방은 두 개뿐인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단을 오르던 주인의 말에 이안이 로만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베릭과 같이 쓰겠습니다. 로만드로 님은 편히 쉬십시오.”
“아이고, 그래도 되겠나? 고맙네.”
“나한테는 결정권이 없어? 나 혼자 쓰고 싶은데?”
“그런가? 마구간에 가면 아무도 없긴 한데.”
“……”
“이쪽입니다! 계단 조심하세요!”
끼익.
낡았지만 정갈한 방이다. 마른 장작 냄새와 싸구려 비누 냄새가 가득하며, 조명이 반쯤 나가서 어두운 실내. 하지만 그만큼 아늑했고, 따뜻했으며, 무엇보다 침대의 존재 자체가 고마웠다. 지난 며칠 간, 다들 차가운 눈길 위에 잠들지 않았나.
“오예!”
베릭 역시 침대로 뛰어들며 뒹굴뒹굴 굴러댔다. 짐을 대충 풀자, 여관주인이 빠르게 요깃거리를 가져왔다.
“괜찮으시면 식전에 간단히 허기라도 달래십시오.”
“고맙네.”
“아니요. 저희가 고맙지요. 이번 달부터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이안은 쟁반을 받으며 물어보았다.
“혹시 하이만은 영업을 중단했나?”
“은행 말씀이십니까?”
“그래. 카렌나, 론긴, 자일쿠프에서 영업을 안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서.”
“아예 폐쇄했다가, 지금은 론긴만 단축으로 문을 여는 듯합니다. 여기와 자일쿠프 사람들도 업무를 보려면 그쪽으로 가야하지요.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아직 도적들이 소탕되지 않은 터라.”
“아직도?”
경비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소도시라고는 하나, 피해 입은 지역이 세 곳이었다. 당장 씨를 말살하여도 모자라지 않나.
“오는 길에 지도에 없는 마을을 보았네. 우리는 거기가 도적 떼의 주둔지라 생각했네만.”
이안의 말에 여관주인이 멈칫거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떠올린다는 듯이 말이다.
“아아. 다닐을 말씀하시는거군요.”
“다닐?”
“예. 최근 지도면 표시가 없을 겁니다. 몇 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죄다 죽으면서 사장되었거든요. 철거하는 것도 일인지라 그냥 두고 있습죠.”
여행자를 위한 지도였으므로, 버려진 마을 따위야 표시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이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탄식했다.
“사람들이 죄다 죽다니? 어쩌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습니다만, 단체로 자는 듯이 누워서 죽어있었습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죠. 이쪽 마을 사람들이 죄다 가서 시체 끌어내고 했으니까요. 황궁에서 조사관이 왔었는데, 음. 뭐라더라. 단체 식중독이라 했던가?”
여관주인의 말에 발라당 누워있던 베릭이 고개를 쳐들었다.
“…말이 됨?”
“황궁에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마법부에서 내려왔으니, 조사 자체는 확실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