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06
제106화. 사냥 개시
여관주인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확인할 방도도, 의지도 없다는 태도였다.
“마법부?”
“예. 마을 하나가 사장된 일 아닙니까. 마법사님께서 직접 와서 조사를 지휘하셨답니다. 아, 마법사가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저만 한 마차를 끌고 다니는 인물이니 모를 리 없겠지만, 주인은 혹시나 한 마음에 되물었다.
“그래. 알고 있네.”
“아하하. 예예. 혹시 모른다고 하시면 제가 민망할 뻔했습니다. 사실 저도 그때 마법사라는 게 뭔지 처음 알았거든요. 대단한 힘을 가진 분들이라고 합니다. 번쩍번쩍 천둥번개를 만들어 낸다고도 하고… 아무튼, 꼼꼼히 조사해 주시고 올라가셨으니, 맞을 겁니다. 그 뒤로는 저희도 음식은 꼭 익혀 먹어요.”
이안은 경청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주인의 말대로 마을 하나가 사장된 정도면 확실히 중대 사안이긴 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부족한 마법부 인력을 지방 소도시 조사에 파견했다고? 마법사는 마법을 부리는 자들이지, 조사 같은 뒤치다꺼릴 하는 자들이 아니다. 보통 특별조사단은 마법부 소관이 아니라 행정부 소관인데.’
버티 에리카처럼 말이다. 어쩌면 몰린도 그 범주에 드는 인물일 터. 행정부에 속해있으면서 지방 곳곳에 파견되는 자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게 사실이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또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수프 고맙네.”
“식사 준비될 때면 부르겠습니다.”
끼이익.
주인이 허리를 꾸벅 숙이고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베릭이 양손으로 빵을 쥔 채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었다. 그래도 이제 체면 차리는 법은 알게 된 모양이다.
“그럼 그 개는 다닐에서 사는 건가? 혼자?”
“인가가 그것뿐이라면 그렇겠지.”
“마을 사람들 다 죽었다며. 개밥은?”
베릭의 쫑알거림에 이안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으로 사라져 가는 마지막 빵조각. 베릭은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입에 반쯤 넣었던 걸 꺼내주었다.
“…자, 네 거.”
“입에 들어갔다 나온 걸 어쩌겠느냐? 다 먹어라. 네가 개를 그리 걱정하는 게 신기해서 쳐다본 게다.”
“걱정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지. 개놈 새끼. 감히 내 손등을 물어? 다음에 만나면 진짜 죽었다.”
“다음에? 다음 또 언제?”
이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마법부가 엮여있다는 게 미심쩍긴 하다만 중앙까지 갈 길이 멀다.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똑똑.
“이안. 나일세.”
“아, 로만드로 님 들어오십시오.”
옆방에 짐을 풀었던 로만드로가 외출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베릭이 입가를 슥 닦으며 의아하게 그를 올려다봤다.
“곧 있음 밤인데 어딜 가요?”
“여기에는 맥주밖에 안 판다고 하더라고.”
“허이고, 세상에.”
“필요한 것도 좀 구하는 김에 겸사겸사. 크흠.”
“나도 같이 가요!”
“싫어. 자네랑 가면 10분 만에 끝날 거 질질 끌려다니느라 고생할 게 빤하네. 아무튼, 나갔다 올 건데 필요한 건 없나?”
단박에 거절당한 베릭이 혀를 츳, 차며 수프 그릇을 핥아먹었다. 이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벽에 걸린 낡은 메뉴판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구성이긴 한데, 그렇다고 피로를 녹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나가는 길에 다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먹으라 하십시오. 술도 좋지만, 마부들은 내일 일찍 출발할 것을 유념하라 하시고요.”
“그래. 그러지.”
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로만드로에게 여행 경비가 담긴 주머니를 건넸다.
“그리고 내일은 론긴을 들르는 경로로 가지요. 은행이 거기에만 열었답니다.”
“그런가? 알겠네. 그럼 나중에 봅세.”
“네. 무리하지 마십시오.”
“으이. 알겠네!”
로만드로는 신난다는 듯 낄낄거리며 방문을 나섰다. 겨울철의 쉽지 않은 여정인데, 로만드로의 저런 모습은 마치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풀썩!
“이안,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황궁 안 가도 되겠다…. 커어어억!”
“지금 말하면서 잠든 건가?”
옆에서 능청떨던 베릭이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어느 지방이었던가, 그쪽 돼지들은 먹는 도중 잠든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놈들과 잘 통하는 게 있겠어.’
이안은 황당하니 헛웃음을 터트리며 그릇을 정리했다. 그러곤 그 역시 짧은 단잠을 즐기기 위해 침대에 몸을 맡겼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쿵! 쿠쿵!
이안은 아래층에서 울리는 진동에 눈을 살짝 떴다. 테이블 위의 초가 반쯤 탄 것으로 보아, 두어 시간 지난 것 같다. 베릭은 입을 쩍 벌린 채 곯아떨어져 있는 상태. 이안은 베개에 얼굴을 비비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래층이 왜 이리 소란스러워?’
콰앙! 쨍!
잠결이라 그런지 도저히 어떤 소리인지 가늠이 안 갔다. 뭐가 부서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아아악!”
하지만 이내 비명이 들리자 눈이 확 떠지며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베릭.”
“왜에…….”
“일어나거라. 밖에 일이 생긴 것 같아.”
“밥 먹을 때 되긴 했지. 하아암.”
“아니, 그게 아니라…….”
타닥타닥!
벌컥! 콰아앙!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복도 끝에서부터 문이란 문은 다 열고 다니는 것 같다.
베릭 역시 그제야 뭔가 이상한 걸 알아채고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 손만 더듬거려 검을 찾았다.
벌컥!
열리는 문을 향해, 베릭이 냅다 담요를 내던졌다. 동시에 재빠르게 뛰어들며 그 위로 검을 쑤셔 넣었다. 형체로 보아 사람은 맞는데…….
푸욱!
“어?”
베릭은 생소한 감각에 눈을 크게 떴다. 살가죽을 뚫고, 내장을 비집으며, 결국에는 뭉근한 피가 튀어 오르는 느낌이 아니었다.
스윽.
때마침 담요가 내려가며 괴한이 모습을 보였다.
“뭐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그 틈으로 보이는 동공에 초점이 없었다. 무엇보다 흑색의 피부와 훅 올라오는 썩은 냄새.
이안이 소매로 코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베릭. 잠시 뒤로 물러서 보아라.”
“어? 어어.”
베릭에게 공격당했지만 어떤 미동도 없다. 스윽, 하고 빠지는 검에서도 붉은 피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베릭은 당황해서 검을 이리저리 살폈고, 그럴수록 괴한은 몸을 기이하게 꺾으며 고개를 좌우로 돌려댔다.
“언데드가 대체 여긴 왜…….”
언데드. 죽지 않는 시체를 총칭하는 명칭. 그렇다면 인근에 사령술사가 있다는 뜻인가?
언데드는 비틀거리다가 벽에 머리를 박고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
“저 새끼 뭐라는 거야?”
“쉿.”
바깥에는 여전히 괴성과 비명 그리고 격렬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과 베릭은 숨을 죽이며 언데드의 말에 집중했다.
-으어어어.
“……?”
그저 의미 없이 내뱉는 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굉장히 익숙했는데, 낮에 봤던 그 개와 아주 흡사한 것 같았다.
콰앙!
이안이 그걸 깨달음과 동시에,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언데드가 아닌 진짜 사람, 도적들이다.
“아하, 여기 있었네. 밑에 말이랑 마차 주인이지?”
“시발 이게 전개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베릭이 짜증스럽게 검을 툭툭 털자, 도적은 킬킬 웃으며 문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그러자 언데드가 빳빳하게 버티며 그를 막아섰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옆으로 밀어보지만, 완강히 서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치 이안과 베릭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듯이. 그러자 도적은 망설임 없이 녀석의 사지를 베어버리며 툭 밀쳤다.
촤아아악!
쿠웅!
앞으로 힘없이 넘어지는 언데드. 이안과 베릭을 올려다보는 눈빛에, 처음으로 생기가 담겼다가 사라졌다. 어리둥절한 두 사람 앞으로 도적 녀석이 검을 들이밀었다.
“어디서 오고 가시는 분들이실까? 마차를 열 대나 끄는 거로 봐서, 그 주머니도 좀 든든할 것 같은데. 확인 좀 하겠습니다?”
푸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베릭이 전광석화로 녀석의 배에 검을 찔러넣었다. 언데드와 달리 이번에는 뭉근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물었잖아. 십새야.”
“흐헉!”
“아, 그래. 이게 정상이지. 이제야 좀 쑤시는 기분이 나네.”
베릭은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도적은 관통당한 제 배를 내려다보며 실감이 안 나는지 눈만 끔뻑여댔다. 하지만 이내 폭발하듯 터지는 비명.
“으아아악!”
고통의 크기를 알려주려는 듯, 그는 괴성을 지르며 베릭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베릭은 가볍게 그의 안면을 붙잡은 채 벽에 갖다 박았다.
콰직!
“끄어어억…….”
한 번 더.
콰앙!
맨 처음에는 코가 부러지더니, 두 번째에는 문이 박살 나며 나동그라졌다. 이안은 여전히 두 눈을 뜬 채 저를 올려다보는 언데드를 뒤로 하고, 복도로 나갔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꺄아아악!”
“먹을 건 이게 다야? 창고 또 어딨어?”
“마, 마, 마구간 옆에 있는 게 다예요.”
난간 아래를 살펴보니, 도적 떼가 여관의 직원들을 붙잡아둔 채 약탈 중이었다. 곰팡이 핀 자루에 온갖 걸 쓸어 담으면서, 그들이 지나온 길을 핏물로 적시고 있었다.
촤아악!
“으아악!”
이안은 이마를 짚으며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일단, 아까 낮에 느꼈던 시선이 도적 떼가 맞긴 맞았던 것 같다. 마차가 마을로 들어서는 걸 보고, 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던 거지.
“베릭.”
“응?”
베릭은 쓰러져 있는 도적놈의 머리를 잘근잘근 밟고 있었다. 이안은 그의 이마를 붙잡으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지이잉.
“아래에 도적들이 있어. 아무래도 우리가 녀석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
“다 죽여 버리라는 말이지?”
“물어볼 것이 많으니, 적당한 놈은 살려.”
베릭은 검에 묻은 피를 웃옷에 닦으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마치 선물을 받으러 가는 아이처럼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퍼억!
“뭐, 뭐야?”
1층에서 베릭이 길을 뚫어두는 동안, 이안은 중요한 소지품만 대강 챙겨 들었다. 그리고 언데드를 향해 물었다.
“이봐. 아까 그 개인가?”
-…….
대답이 없다. 목이 덜렁 잘린 채, 입만 뻐끔뻐끔 움직일 뿐. 눈동자가 빠르게 위아래로 돌아가며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언데드와 이어져 있는 무엇인가가 서서히 끊어지는 신호였다.
-으어어어…….
신음과 함께 언데드의 얼굴에 난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진물이 잔뜩 스며 나왔다. 죽음의 죽음이었다. 눅진한 녹색 액체가 바닥으로 스며들었고, 이안은 한숨만 삼킨 채 시체를 넘어갔다.
콰앙!
“아, 좀! 드루와! 드루와, 개새!”
베릭은 아주 즐겁게, 1층을 개판쳐 놓고 있었다. 열댓의 도적놈들이 피떡이 된 건 둘째 치고, 가게의 자질구레한 것들이 죄다 박살 나 나뒹굴었다.
“베릭!”
“어?”
“그만하고 서둘러 마구간으로!”
이안은 빠른 걸음으로 뒷문을 빠져나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구간으로 통하는 나무문이 보였다. 밖으로 나오니, 상황의 심각함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콰앙!
“으아아악! 또 나타났다!”
“미친 새끼들아! 꺼져!”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애들을 먼저, 대피시켜!”
곳곳에서 불길과 비명이 낭자했다. 여인들은 아이를 안고 맨발로 내달렸으며, 사내들은 무기가 될 만한 걸 들고 도적과 맞서 싸웠다.
“이안 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자네!”
로만드로의 부하 중 한 명이다. 어디서 술을 먹다 온 것인지, 홍조 띤 얼굴로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마차가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이안이 안으로 들어가자, 흥분한 말들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부하의 말대로, 마차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마차 안에 X발, 우리 짐 다 있잖아.”
짐뿐인가? 마력석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것들이 잔뜩이다. 이안은 이마를 짚으며 읊조렸다.
“자네는 당장 로만드로 님을 찾아 나서게. 서둘러 다들 불러 모아.”
“네. 알겠습니다.”
“이안, 나는?”
“베릭. 너는…….”
그때였다. 대항하던 주민들과 다른 결의 함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카렌나의 경비대가 출동한 것이었다. 아마 조금만 버티면 다른 지역에서도 지원병이 도착할 터였다.
휘이이익!
미친 듯이 행패를 부리던 도적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신호를 주고받았다. 퇴각하자는 의미가 분명했다.
“도망가는 놈들 다 잡아라.”
“죽여도 돼?”
“그럼 더 좋고.”
“오예! 베릭 나갑니다요~!”
타앗!
이안의 허락을 받은 베릭이 쏜살같이 바깥으로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