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07
제107화. 개를 찾아서
‘이전에 도적이 들지 않았던가? 어찌 주민들은 도적들 사이에 언데드가 섞여 있는 걸 몰랐지?’
생과 사를 오가는 혼란 속에서, 적과 이웃을 가리지 않고 검이 파고드는 현장이었다. 이미 바닥에 즐비한 시체 대부분은 핏물에 절어서 흙투성이인 상태. 날이 밝아진다 한들, 이것이 이웃의 잔해인지, 썩은 시체의 잔해인지 알게 무어란 말인가?
게다가, 나이 지긋한 여관 주인도 살면서 딱 한 번 마법사를 봤다 하였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를 모른다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터.
‘아니라면, 도적이 처음으로 언데드를 끌고 왔을 수도 있다. 일단은 후에 확인해 봐야겠군.’
타다다닥!
“도망가면!!”
나무 담벼락 너머, 베릭의 우렁찬 기합이 들려왔다.
“다 죽인다아아아!!”
“으아아악! X발!”
“살고 싶으면 납작 엎드려어!”
촤아아악!
시원하게 목을 베는 소리가 비명과 어우러졌다. 담벼락으로 반쯤 가려져 있지만, 상황이 눈에 훤했다. 창공을 가로지르는 독수리보다 자유롭고 맹렬하게 거리를 누비고 있겠지.
그 순간이다.
콰앙!
여관에서 살아나온 도적 한 놈이 마구간으로 들어섰다. 베릭에게 얻어터져 치아가 죄다 뭉그러진 상태다.
놀란 로만드로의 부하가 검을 빼 들었으나, 살벌한 도적의 기세에 주춤거렸다. 애초에, 부하는 서기관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흐억!”
“꺼져, X발! 비키라고!”
“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쿠웅!
도적의 뒤를 쫓아온 언데드가 중심을 못 잡고 벽에 머리를 박아댔다. 부하는 놀라서 아예 검 끝을 바닥으로 떨군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본 상대의 상태가 범상치 않았기에.
“저, 저건 대체…….”
“언데드라고, 그대는 들어 봤을 터인데.”
“언데드요? 헉!”
부하가 놀라서 입을 틀어막자, 도적은 의기양양하게 덤벼들었다. 단박에 검으로 부하의 목덜미를 노렸다.
촤아아악!
사실, 이안도 언데드를 본 건 겨우 두 번째였다.
사령술 자체가 바리엘 보다는 동방에서 주력으로 다뤄지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빈번한 지역에서 특히 높은 수준을 보였는데, 시체가 쌓인 만큼 사령술의 효율 역시 높아졌다.
“으아아악!”
도적의 검이 부하의 목을 꿰뚫기 전, 이안은 손을 뻗어 마력을 응축시켜 터트렸다.
퍼엉! 펑!
마력이 터지며 남자의 고개가 직각으로 꺾어나갔다. 뒤따르던 언데드가 고장 난 기계처럼 뭉그적거리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퍼엉!
마지막 한 번 더. 이안은 녀석의 머리통을 완전히 날려버린 다음, 소매로 코를 가렸다. 뇌수에서 터져 나온 썩은 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이,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그건 내가 자네에게 물어봐야 하지 싶어.”
“아, 저는 괜찮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서둘러 로만드로 님을 찾아라.”
“네! 알겠습니다!”
이안은 로만드로의 부하가 달려나가는 걸 보며 쭈그려 앉았다. 내키지 않지만, 혹여 단서가 될 만한 걸 지니고 있나 싶은 게다.
우선 도적부터 먼저.
스윽.
도적은 신음도 내지 못한 채, 입을 쩍 벌리고 기절했다. 이안은 안주머니와 뒷주머니 등 자리가 있는 곳에는 모두 손을 넣어봤다.
“음?”
그때, 손끝에서 뭔가가 걸렸다. 감촉만으로 상당히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데…….
“이런.”
사람의 머리카락이다. 검고 구불거리는 것이 납작한 나무패에 칭칭 감겨있었다. 이안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 기이한 물건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뇌수 터진 언데드의 머리카락이 검고 구불거린다는 걸 알아채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아 씨, 개 털렸네.”
피를 흥건하게 뒤집어쓴 베릭이 허리춤에 팔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도적놈들이 여관 창고를 죄다 털어버린 탓에 먹거리가 하나도 없던 탓이다.
“상도덕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새끼들.”
“베릭. 비어있는 곳 쳐다봐도 뭐 안 나온다. 서둘러 나가자. 로만드로 님 찾으러 보낸 부하가 코빼기도 안 보이는구나.”
“어어. 알겠어.”
베릭이 검을 거둔 것은, 대충 두어 시간이 지난 후였다. 무장한 경비병들이 거리로 쏟아져 도적을 몰아냈고, 베릭은 알게 모르게 중심을 잡아주며 소탕을 이끌었다.
“혼란이 예사가 아니어서, 쉬이 움직이지 못한 것 같다.”
“로만드로 님 죽었으면 어쩌지?”
“너 그 말, 로만드로 님 앞에서 해보아라.”
“아아. 오케이. 취소. 삐지면 오래 가서 싫어.”
거리에는 불을 끄고, 시체를 정리하는 경비병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칼바람 부는 겨울밤이라 유독 더 고생스러워 보였다.
“으아아앙!”
“아이고, 울지 마. 괜찮아.”
“거기, 다친 사람들은 이쪽으로 오시오!”
“혼자 못 움직이겠어요. 도와주세요.”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 겨울 밤중에 이게 다 뭐야? 같이 죽자는 건가?”
“불씨 살아나는 거 없는지 확인해 봐!”
베릭은 기어코 빵 쪼가리를 찾아냈는지, 입에 문 채 이안의 뒤를 따라 나왔다. 그리고 좌우로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로 가?”
“일단 상점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자.”
“거기! 두 사람!”
그때였다. 뒤에서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외부인 맞지? 여행자인가?”
“그렇다. 그대는 경비대장이겠고.”
이안의 하대에 경비대장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디서 반말을 찍찍 내뱉는단 말인가.
하지만 이안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붉은 머리 남자 때문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아까 저자가 도적들을 어찌 도륙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범상치 않은 실력자가 분명하다.’
혹여 정처 없이 떠도는 용병들이라면, 작은 사례를 해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겠다 싶다.
“크흠. 카렌나의 경비대장 울란이라 한다. 도와주어 고마우나, 절차상의 문제로 신분 확인을 했으면 하는데.”
이안은 경비대장의 요구에 안주머니에서 신분증명서를 꺼냈다.
“중앙으로 신년회 참석을 위해 올라가는 중이네. 나는 이안, 이자는 베릭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찾으러 갈 사람은 로만드로. 황궁의 자문관이시지.”
뜻밖의 말에 경비대장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신년회 참석? 황궁의 자문관?
황족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귀족, 최소로 잡는다 한들 그에 따르는 신분일 게 분명했다. 떠돌이 용병인 줄 알았건만…. 그는 바로 모자를 벗으며 고개를 숙였다.
“시, 실례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어찌 경비대는 저놈들이 여기까지 들어오는 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었나? 듣기로는 이미 한 번의 습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소도시인지라, 세 도시가 연합을 맺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그쪽에서도 문제가 생겨 경비병을 차출한 터라.”
“덕분에 나는 마차를 잃었다. 황궁으로 가져가야 할 물건이 들어있는데, 아주 곤란하게 됐어. 여기에 여관 운영을 허가했다는 건, 적어도 여행자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 아닌가?”
이안이 조곤조곤 자신의 피해를 설명하자, 경비대장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카렌나의 피해는 둘째 치고, 황궁 물건이 소실되었다니!
‘X 됐다’라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시장은 어디 있지?”
영주가 없는 곳은 중앙에서 파견한 시장의 담당 아래 운영되었다. 준 귀족의 대우를 받곤 했지만, 결국에는 봉급을 받는 처지. 이런 사달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로 봐서, 직무유기의 혐의가 있었다.
“시장님은, 그게…….”
“이아아안!”
경비대장의 말을 자르고 훅 들어오는 로만드로의 목소리. 골목을 꺾어 나온 그의 처지가 거지꼴과 다름없다. 머리는 건초와 먼지로 엉망, 옷가지도 여기저기 험하게 찢겨있었다.
“로만드로 님. 괜찮으십니까?”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나, 나 황천길 갔다가 겨우 되돌아왔네. 어이고, 술 먹다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만, 후아. 정말로 이게…….”
“말하는 거 보니까 멀쩡한디?”
로만드로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겨우 부여잡으며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베릭의 말에 이안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꼴이 영 아니긴 했지만, 상처 하나 난 곳 없이 온전했다.
“멀쩡하긴 이놈아! 죽는 줄 알았다고!”
“안 죽었잖아요. 아, 진짜. 귀청 떨어져.”
“저기, 혹시 황궁의 자문관님?”
“어? 어어. 그렇네만?”
“처음 뵙겠습니다! 경비대장 올란입니다!”
뻘쭘하게 서 있던 경비대장이 다시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하지만 로만드로는 영 흥미가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여관으로 들어서려 했다.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 응. 그리고 얘기하지.”
“로만드로 님. 마차 털렸습니다.”
“응?”
이안의 말에 로만드로가 눈만 깜빡이며 되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베릭이 여기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여관을 습격함과 동시에 빼돌린 것 같아요. 숲에서 저희를 보고 표적 삼아 쳐들어온 것 같습니다. 내려오니 이미 비어있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서류 더미도 한가득이요, 무엇보다 상급 마력석이 들어있지 않나? 베릭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턱을 툭, 받쳐주며 중얼거렸다.
“갈아입을 옷 없으면 내가 빌려줄까요?”
“옷이 문제야!?”
“아. 이번에는 왼쪽 귀 갔다.”
“이안! 이안! 이거 어떡하지? 미치겠군, 정말! 그놈들 혹시 마차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 그런 거 아닐까?”
로만드로의 호들갑에 지켜보고 있던 경비대장 역시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였다. 아주 귀중한 물건이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 들어있는지 알았다면 저희의 정체도 알고 있다는 말과 같은데, 겁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거든요.”
“흐억. 제엔장.”
단순히 재수 없게 털렸다는 뜻이다. 로만드로가 자리에 주저앉자, 부하들이 힘겹게 부축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무사합니까?”
“우리 애들은 다 괜찮았네. 마부들은 따로 술 먹는다고 하여 어찌 됐는지 모르겠어.”
이안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경비대장에게 안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지시했다.
“우선, 여관 안의 도적들과 시체를 수습하고 있으시오. 나는 잠시 볼일을 좀 봐야겠으니. 시장도 잠시 보자 하고.”
“아, 네. 알겠습니다.”
“이안, 어딜 가려고 그러는 겐가?”
로만드로의 물음에 이안이 나침반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낮에 왔던 길을 상기하며 중얼거릴 뿐이다.
“다닐에 다녀오겠습니다.”
“다닐?”
“아까 낮에 봤던 버려진 마을, 거기가 다닐이라 하던데 예상과 달리 도적 떼의 주둔지는 아닌 것 같더군요. 베릭! 마구간에서 말 두 마리를 꺼내와라.”
도적 떼의 거점이 아니면 거길 가서 무엇 하려고? 로만드로의 어벙한 표정에 이안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개 찾으러 갑니다.”
“그래. 이번엔 내가 물 차례지. 암암.”
베릭은 좋다 하고 어깨까지 들썩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하게 얽혀있는 모든 상황의 실마리를, 그놈이 갖고 있을 것 같았다.
‘도적 떼, 사령술, 말하는 개 그리고 몰살당한 마을과 마법부까지. 마차를 찾으려면 일단 전반적인 상황 파악이 필요하다.’
히이잉!
“이아아안! 가자!”
“로만드로 님. 다녀오겠습니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이안과 베릭은 망설임 없이 말에 올라타 고삐를 흔들어댔다. 어수선한 길을 내달리는 두 사람. 로만드로는 그 뒷모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제에발!! 마차 찾아오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