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이해 일치
웨슬리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천장을 바라봤다.
높다란 돔에는 수백 마리의 정령들이 빛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배경과 어우러져, 작은 우주를 보는 것 같다. 그녀는 긴 손톱을 매만지더니, 자신의 보좌관을 불렀다.
“바레토.”
“네. 웨슬리 님.”
“보고서 좀 저리 치우지 그래?”
그녀의 말에도 보좌관은 서류를 든 채 꼼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기다리시지 않으셨습니까.”
표면적으로는 각국의 사령술사들을 초대하여 여러 가지 학문적 실험을 진행하는 보고서였다. 사령술이 발달한 나라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아, 평화적인 협상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 또한 들어있었다.
“술사들도 참 웃깁니다. 본국에 있을 때는 서로 못 죽여 안달이더만, 그래도 모아두니 연구 결과가 꾸준히 올라오니까요.”
“대제국 바리엘이다. 평화의 장을 만든 곳에서 소란을 피웠다가는 문제 될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그런 거겠지.”
웨슬리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리며 보고서를 대충 넘겨댔다.
“게다가 학문적 탐구에 영혼까지 판 놈들 아닌가. 끼리끼리 모여 꽤 즐거울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보고서 제목을 손으로 짚었다. 를 주제로 한 연구 부분이다. 식물은 물론이고 죽은 짐승, 산 짐승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령술의 결과가 빼곡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장장 수백 페이지에 달하게끔.
가만히 지켜보던 보좌관이 설명을 덧붙였다.
“사령술도 종족마다 일장일단이 뚜렷하니, 협력만 잘 이뤄진다면 한 차원 높은 술력을 만들어낼 듯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총회의에 공식 보고서를 올릴까요?”
“그래. 노인네들, 슬슬 궁금해하겠네.”
어디까지나 마법부에서 진행하는 공식적인 프로젝트였다. 웨슬리가 허가한다는 뜻으로 인장을 찍어주자, 이번에는 다른 서류가 책상에 놓였다.
“추가로, 산 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입니다.”
차락.
마법부 사이에서도 특급 기밀로 취급되는 서류였다. 수장인 웨슬리의 개인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녀는 인장을 옆으로 치운 다음, 경건하게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빠르게 문장을 읽어내리는 웨슬리의 시선에 실망감이 차올랐다.
타악!
“어찌 몇 년 전과 다를 바가 없어.”
“송구합니다. 죽은 자와 산 자는 차이가 분명한데, 주술이 들어가는 순간 술식이 어그러진다고 합니다.”
“그걸 잡아내라고 돈을 쏟아붓고 있지 않나?”
웨슬리가 짜증스럽게 보고서를 내던지자,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보다, 차라리 독 자체를 바꾸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웨슬리 님. 사령술보다 정신지배 마법 쪽을 더 파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게일 저하라 하더라도 황궁의 축복을 온전히 받지는 못하셨을 겁니다. 정실이 아닌 후궁의 자식이시니까요.”
“바레토!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아라.”
황궁의 축복. 그것은 바리엘의 기원에서 시작된 미지의 힘이었다. 건국 신화에도 기록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 효과를 보인 자들도 역사에 서술되어 있었다.
‘황실의 영광을 잇는 자에게는 마법으로 인한 정신지배가 통하지 않는다.’
마법 수작으로 인해 국운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 신께서 바리엘에 내려준 축복이었다. 황실의 영광이라는 대목에 해석의 여지가 많았지만, 대부분은 황제를 비롯해 황실 가문 사람이라 여기곤 했다.
“그리고 게일을 모르는가?”
“송구합니다.”
웨슬리는 알고 있다. 게일과 연인 사이지만, 마음의 크기는 서로 상당히 다르다는 걸. 자신이 게일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는 것만큼 게일은 저를 그리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아주 처절하게 느끼곤 했으니.
날카로운 웨슬리의 촉이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게일이 황좌에 오르면, 과연 나와 결혼해 줄까?’
“침실에서조차 마력 봉인석을 몸에서 떼어내지 않을 만큼 치밀한 사내야. 분명 다른 방식으로 정신 지배 마법을 피해갈 보호막을 쳐 두었겠지.”
게일뿐만 아니라 마리브, 심지어는 노쇠한 황제도 정신지배 마법은 통하지 않을 터.
그래서 우회적인 방법을 찾고 찾아 사령술까지 닿게 된 것이다. 정신지배와 굉장히 흡사하면서도, 어찌 보면 맹목적인 관계에 더 적합하다 볼 수 있겠지.
“아무튼, 헛소리 그만하고 술사들이나 더 쪼아봐. 당장 거사가 다가오고 있는데, 발전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니.”
“시정하겠습니다.”
“돈 토해내라 하면 정신 바짝 차리고 더 열심히 할 게다. 쯧. 한심한 것들.”
웨슬리는 답답한 속을 달래기 위해 궐련을 꺼내물었다. 그러자 천장을 유영하던 정령들이 다가와 작은 불씨를 만들어주었다.
“후우.”
그녀는 고맙다는 듯 정령을 살짝 매만지고,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까지 해서 게일을 잡아두려는 자신이 어이없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게일이 죽도록 미웠다.
“게일은?”
“연락을 드려보겠습니다.”
“…아니. 됐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저를 부르는 것도 굉장히 뜸했다. 웨슬리가 재떨이에 궐련 재를 털며 남은 보고서를 대충 넘겨댔다.
“그나저나, 이안이라는 놈.”
“네. 웨슬리 님.”
“곧 있으면 중앙에 당도하겠지?”
“신년회 참석이 확실하니, 그렇습니다.”
“브라츠에서 이쪽으로 올라오려면, 카렌나 지방을 지나치지 않나?”
카렌나. 자신의 실험 제안을 거절하고 도망친 아스타나의 종족이 숨어들었던 곳이었다. 원체 사령술사라는 족속이 어둡고 음험한 구석이 있는 터라, 다들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고 이제껏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들만큼은 끝까지 반대했다.
그래서,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아스타나 왕도 참 한심하군. 몰래 망명했다 하니 그걸 곧이 그대로 듣고 말이야.”
“당시 지진이 크게 났었으니,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웨슬리는 궐련을 잘근잘근 씹으며 몇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워낙 희미해진 기억이긴 하다만, 소란이 소란인지라 여전히 남아있긴 했다.
‘게일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산 사람 상대로 연구한다는 말을 들으면 분명 의심할 거라고.’
그러니 어쩌겠나?
죽여야지. 죽어서 영원히 입을 다물게 하고,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처리해야지. 보좌관은 사념에 빠진 상관을 일깨우며 서류를 계속 올려댔다.
“웨슬리 님. 그리고 다음 보고서입니다.”
“아아. 정말, 궐련 맛 떨어지게.”
“어쩔 수 없습니다. 신년회가 다가오니, 결재하실 게 많습니다. 이건 실담물약에 관한 것이고, 이건 이안에 대한 마법부 내부 회의 보고서입니다.”
“어디서 데려가고 싶다 하던가?”
“다들 꺼리는 분위기던데요.”
“그래. 마리브의 새끼줄인 게 빤한데, 곤란하겠지.”
마법부 안에서도 수많은 갈래의 하위 부서가 존재했다. 이안이 진정 마력운용자인지 시험해 보는 게 우선이긴 하다만…….
“일단 신입 받을 준비는 하라 그래.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웨슬리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서류를 덮었다. 동시에 천장을 날아다니던 정령들 역시 빛을 거두고 천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허얼. 다 죽였다고? 웨슬리가?”
베릭은 어느새 몰입하여 테이블 위에 상체를 걸쳤다. 하샤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며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웨슬리가 아니라, 그 부하들이 와서 뒤집었다고!
맨 처음에는 그래도 안면 좀 있다 싶은 사령술사들이 할머니와 하샤를 설득하려 했다. 돈을 얼마나 준다더라, 연구가 거듭될수록 결국에는 사령술사들의 지위와 권한이 높아진다더라, 그만한 돈이면 가난한 아스타나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냐 등등.
대제국 바리엘의 권력 중심에 있는 웨슬리에게 줄을 대는 게 중점적인 이유긴 했다만.
-할머니는 결국 거절의 대가를 치렀고, 나는 진리를 거스른 대가를 치렀다.
‘이놈은 아직 어린데?’
‘아가, 너라도 우리랑 갈래?’
‘아직 실험체 중에 아이는 없지? 얘한테 사령술 걸어볼까? 잘 듣나 보게.’
가만히 듣던 베릭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뭔가, 하고 이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창고에서 싹싹 긁었던 빵 쪼가리다. 베릭은 혀를 끌끌 차며 하샤에게 음식을 던져줬다.
터억!
“불쌍한 새끼네, 이거. 먹고 힘내라.”
-어딜 개 취급하는가!
아앙! 하샤가 다시금 입질하자, 베릭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라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은 물과 기름의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이안이 빵 조각을 하나씩 떼어주며 하샤에게 건넸다.
“배는 안 고픈가?”
“이거 이거, 쪼꼬만 게 은혜도 모르고 예의도 모르고 뭐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미친.”
“베릭. 네가 예의를 논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야! 그래도 나는 사람이야!”
빵 조각이 가까이 오자, 하샤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주워 먹었지만, 인간이었던 하샤의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이안이 괜찮다며 손짓하자, 망설임 없이 한입에 꿀꺽 삼켰다.
“이 개는 키우던 건가?”
-그래. 그날 집 안에 있던 생명이 ‘루키’뿐이었는데, 술식이 잘못되어 이리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술사들은 내가 힘을 받아내지 못하고 죽은 줄 알았어. 우물에 알 수 없는 뭔가를 타고 사라졌다.
아스타나 출신의 이방인과 함께한 자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저들이 일을 저질렀으니, 조사도 당연히 저들이 와야 했겠지. 이안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마법부의 작태에 혀를 가벼이 찼다.
-사령술에 걸린 내 몸은 언데드가 되었다. 무덤을 파고 올라온 날부터 어디 못 가게 계속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숲에서 도적들을 만났어. 그때부터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짖고, 바짓단을 잡아끌어도 속수무책이었다. 말 그대로 금기의 결과물이었기에, 어떤 추측도 불허했다. 이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놈들이 의도적으로 몸을 채갔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놈들도 처음에는 당황했거든. 마을에 들키면 경비대가 올 터이니. 그래서 나를 두 번 죽였지.
하샤의 증언에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시체가 된 자신의 몸에 주먹이 날아들고, 검이 꽂히는 걸 지켜보았는데 말이다.
-죽여도 죽지 않는 몸이란 걸 알아채고, 놈들은 시체를 채갔다. 그 뒤로 시간이 좀 지나더니만, 어찌 내 몸을 통해 술식 쓰는 법을 알아냈어. 언데드가 생길 때마다 나는 내면의 눈을 떴다.
그래서 여관에 왔던 언데드를 통해 상황을 볼 수 있었던 게다.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일이 난감했다. 하샤는 촉촉하고 뭉툭한 주둥이로 이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래서 누구든, 내 시체를 처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숲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베릭에게 말을 건 것도 그 연유였다. 기다란 마차의 행렬로 보아,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또한, 멀지 않은 곳에서 도적들이 이안의 마차를 노리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도와주었으면 해.
하샤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걸 듣던 베릭이 시큰둥하게 빵 쪼가리를 입에 넣었다.
“참나, 가서 힘쓸 사람은 나인 것 같은데, 취급 보소.”
이안이 희미하게 웃으며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도와준다기보다,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게 맞을 터다.
“그러면 도적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겠구나?”
하샤는 시체를 찾고, 이안은 마차를 찾으면 되니까. 게다가 웨슬리의 만행을 겪고 살아있는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던가.
개는 다시금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하지. 나는 지금 개코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