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13
제113화. 입성
“자! 준비가 끝났으면 출발합시다!”
“빠진 것 없겠지? 물이랑 식량은?”
“마차를 하나 더 내서 가득 실었습니다. 위로 갈수록 눈이 많이 내렸을 것입니다. 속력을 낼 수가 없으니, 이제는 밤을 제외하고 끊임없이 달려야 합니다.”
“그래. 늦으면 곤란해. 어서 가보세.”
로만드로는 외투를 꽁꽁 여미며 마부들을 채근했다. 시장은 시장이라고, 몇 시간 만에 준비해 준 인력이 꽤 고급이었다. 마부들은 건장해 보였으며, 말 역시 윤기가 줄줄 흐르는 게 여간 신경 써준 게 아니었다.
저의 처지 좀 잘 봐달라는 무언의 뇌물이었다.
“이안. 하샤가 안 오는데?”
“하샤? 하샤가 누구인가?”
“아까 봤잖아요. 개.”
“…개?”
베릭의 말에 로만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는 하샤가 베릭과 겸상하는 것만 봤지, 말하는 건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안은 마차 뒷문을 닫으라 지시하며 덧붙였다.
“자세한 건 가면서 말씀드리지요. 여기는 눈과 귀가 너무 많습니다.”
“아. 그래. 그러지.”
“저어기 온다.”
베릭은 저 멀리, 언덕을 뛰어 내려오는 하샤를 보고 피식 웃었다. 입에 가족사진을 물고서 늦진 않았을까, 헥헥거리며 내달리고 있었다.
“다 왔군. 이제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마부들은 올라서시오!”
“앞차부터 천천히 나가겠소!”
하샤는 가까스로 열린 마차 문 안으로 올라타, 이안의 품 안에 쏙 안겼다. 마차 행렬은 아직 수습되지 못한 거리를 천천히 빠져나갔다. 주민들이 좌우에서 모여들어 가벼이 손을 흔들었다.
타닥타닥!
“조심히 가세요!”
“잘 가세요, 귀족님!”
“아이고, 들어가십시오!”
시장 역시 옆으로 따라붙으며 끝까지 고개를 조아렸다. 이안은 눈빛으로만 자중하라는 경고를 보내고서 커튼을 닫았다.
차락!
로만드로는 하샤의 맞은편에 앉아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짐승을 무서워하십니까?”
“아니? 그런 거 아닌데?”
“그런데 어찌 목이 쏙 들어갔습니다.”
로만드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연신 허허 웃기만 했다. 무서운 건 아니더라도, 불편하긴 한 모양이다. 하샤는 헥헥거리던 혀를 쏙 집어넣곤, 이내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나는 하샤랑 토쿤타이.
“…그, 미안하네. 솔직히 나는 자네들이 마력 쓰는 자들이라 헛걸 듣는구나 싶었어. 왜, 그, 오감이 팽팽 돌아가는 자들은 가끔 미친 것처럼, 아니다. 실례했네. 크흠.”
하샤의 음성을 듣자마자 고백하는 로만드로였다. 그리고 이내 멈칫거리며 하샤의 앞발을 붙잡았다. 이안이 했던 행동과 똑같다.
“반갑네. 나는 로만드로, 황궁의 자문관이지.”
이안은 달리는 마차 안에서 밤사이 있었던 일을 공유했다. 웨슬리의 만행으로 시작된 아스타나인의 비극과 마을 사람들의 몰살 그리고 의문의 도적 떼까지.
가만히 듣던 로만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령술? 마법부에서 몇 해 전에 여러 종족의 사령술사를 불러모으긴 했네.”
“공식적인 결정이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총회의에서 승낙이 떨어졌던 것 같거든. 이러나저러나, 명목상 물릴 이유가 없었지.”
사령술로 인한 언데드 군단은 전쟁에서 굉장히 요긴한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도의적으로 분란을 살 만한 일이었지만, 문제 되진 않았다. 당연히 여기엔 정치적인 이유가 들어가 있었다.
‘분쟁 지역을 통합할 만큼 강력한 세력이 생기면, 그건 곧 바리엘에게 위협이다. 평화를 위하는 척 균형을 맞추는 게 전체적인 지배력 유지엔 훨씬 유리하지. 웨슬리는 어떤 생각으로 사안을 진행했는지 모르겠으나, 제국 입장으로는 확실히 나쁜 수가 아니었어.’
이안은 곰곰이 생각을 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웨슬리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마법사 아니던가. 신비한 힘을 받드는 자로서 금기를 어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반란은 일단 아니다.
이안이 기억하는 역사에 언데드의 개입은 일절 없었으니까. 짐작을 거듭하는 이안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지자, 하샤가 무릎에 턱을 괴었다.
아직 중앙까지는 시간이 많노라고.
지난밤의 고단함이 가시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겠냐고.
이안은 하샤의 뜻을 알아채고는 그저 머리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 * *
달그닥.
마차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정좌로 잠을 청하던 이안이 변화를 알아채고 눈을 떴다. 도로가 달라진 것이다. 훈기가 도는 내부에는 로만드로와 베릭 그리고 하샤가 몸을 기댄 채 단잠을 청하고 있었다.
‘도로가 깔렸다.’
커튼을 걷자, 이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쉬었다. 가슴 아래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바리엘의 수도인 중앙이 저 멀리서 위용을 내보이고 있었으니.
꽤 높은 고지대에서 내려보는 것이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번성했다. 변경이었던 브라츠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사막을 넘어갔던 것이 늦봄이었으니, 계절 네 개를 지나서 돌아왔구나.’
참으로 묘했다. 이안의 시간은 고작 네 계절 흘렀을 뿐이나, 세계의 시간은 100여 년이나 거꾸로 움직인 상황이었으니까.
그는 대도시의 전경을 시야에 담으며 황궁 생활을 떠올렸다.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3년 내내 불행했다 할 수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게 그 증표다.
“…이안?”
“베릭. 저기 보아라. 중앙이다.”
“헐! 드디어!”
중앙이라는 말에 베릭이 몽롱한 기운을 떨치고 일어났다. 장장 열흘 간, 밤을 제외하고 낮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온 여정이 마지막에 다다른 것이다.
“다 왔다고? 오! 그래, 두어 시간 안에는 도착하겠군.”
로만드로 역시 눌린 머리 그대로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곧 있으면 저의 부인과 아이를 보게 될 터다. 설레는 감정이 물씬 흘러나왔다.
“마부 아저씨! 좀만 빨리 갑시다! 좀 쑤셔서 죽겠어요!”
베릭의 부탁에 마부가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이안 역시 평소와 다르게 조금 들뜨는 것은 사실이었다.
태어나고, 자랐으며, 죽었던, 인생의 의미가 잔뜩 담긴 고향이지 않나. 그는 수많은 건물 사이, 단번에 황궁을 찾아냈다.
‘황궁.’
100년 전의 황궁은 여전히 근엄했고, 화려했으며, 세상의 중심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굳건했다.
“성벽을 지납니다!”
“와아!”
거대한 성벽 아래를 지날 때, 하샤와 베릭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위를 쳐다봤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란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로만드로는 으쓱거리며 하나하나, 일행에게 설명했다.
“저것이 마법의 힘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지. 덕분에 중앙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는 거고. 해서, 중앙은 다른 영지보다 세금을 조금 더 걷는다네.”
“끝장난다.”
신문물을 보는 아이의 반응과 같다. 줄지어 입성하는 마차들 사이로 베릭과 하샤처럼 고개를 내민 자들이 수두룩했다. 아마 모두 처음 중앙으로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로만드로 님! 신분증을 달라 합니다!”
“어, 그래.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로만드로의 자문관 신분증은 입성 절차를 상당히 간소하게 만들었다. 다른 대기자들보다 훨씬 빠르게 성 안으로 진입하여, 마차의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베릭, 저쪽 길 보이는가?”
“어디, 어디? 금색 도로?”
“저건 황족만 이용 가능한 도로이니, 혹여 들어서지 않게끔 조심하게. 그리고 저기는 전서구가 날아다니는 하늘길이야.”
“헉! 하늘에서 실선이 빛나!”
“마법으로 만든 하늘길이지. 역시 마찬가지로 고층에 올라갔을 때는 물건을 던지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해.”
“내가 앤가?”
“애보다 더하니까 하는 말이다. 베릭, 올라오면서 내가 했던 말들 기억하지?”
“예에. 밥 먹을 때 빵 말고는 손으로 집지 말라고.”
“또한 중앙에서는 서로 오가다 눈 마주치면 눈웃음으로 인사하는 것이 예의고. 혹여 말을 묻거나, 걸 때는 앞 인사를 붙이는 게 좋다. ‘친애하는’이라든가, ‘좋은 아침입니다’ 같은 말로 서두를 여는 거지.”
“아, 거참 깐깐하네.”
“평민들은 제외지만 어느 정도 명망이 있는 자라면 갖춰야 하는 매너다. 이안이 자작 작위를 받으면 호위하는 너 역시 품위를 유지해야지.”
베릭은 올라오는 내내 로만드로의 속성 예법 과외를 들어야 했다. 귀에서 진물이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로만드로의 잔소리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바로 황궁으로 갑니까?”
이안의 물음에 따다닥 말을 쏘아대던 로만드로가 멈칫했다. 그러곤 창밖을 보더니, 이내 마부에게 소리쳤다.
“마부! 저택으로 돌림세!”
원칙대로라면 중앙에 입성하자마자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게 맞지만, 보름 가까이 험난한 겨울 길을 달린 터라, 다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특히 옷차림이나 청결의 정도가 황궁 품위와 맞지 않았다.
“아침에 도착해서 다행이야. 좀 씻고, 한숨 돌린 다음 오후에나 들어가지.”
“저도 그게 좋아 보입니다. 부인도 보셔야지요.”
“허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크흠.”
이안의 말에 로만드로의 무릎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꿈에서나 그리고 또 그리던 아내를 대체 얼마 만에 보는 것이란 말인가! 로만드로의 자택은 황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급 주거지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행동거지에 특히 유념하자고. 황궁 공무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케이~!”
“오케이는, 이놈이!”
“…알겠습니다아.”
로만드로가 꿀밤 먹일 듯 눈을 부라리자, 베릭은 마지못해 대답을 정정했다. 진짜 짜증 난다는 표정이 여실했으나, 어쩔 방도가 없다.
끼이익!
“도착했습니다. 로만드로 님.”
“어어. 수고했네.”
로만드로가 냉큼 마차에서 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크진 않지만 적당하게 널찍한 것이, 신혼부부가 살기 딱 좋은 저택이었다.
“비비안나!”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로만드로의 목소리가 쩍 갈라졌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이내 하인 한 명이 나와 그를 반겼다.
“세상에! 로만드로 님! 돌아오셨군요!”
“오, 그래. 비비안나는?”
“안쪽에 계세요. 잠시만요! 마님! 로만드로 님 오셨어요! 어서 나와 보셔요!”
하인의 부름에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여인이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왔다. 풍만하게 부푼 배를 소중히 부여잡고서.
“여보!”
“비비안나!”
부인은 반가워하며 남편의 목을 끌어안았다. 로만드로 역시 울음 터진 부인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함께 훌쩍였다.
“이안! 짐 내릴까?”
“그래. 그러자꾸나.”
부하들이 마차를 정리하는 동안, 로만드로와 부인은 계속해서 서로를 껴안은 채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었다. 감정이 추슬러지자, 로만드로는 눈가를 닦으며 이안과 베릭을 불렀다.
“이안! 베릭! 소개하겠네. 내 아내, 비비안나야.”
“안녕하세요, 친애하는 자작님. 그리고 호위기사님. 비비안나입니다. 편지로 말씀 많이 들었어요. 남편에게 친절히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인이 손을 내밀자, 이안은 손등에 키스를 남기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로만드로 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안쪽으로 드세요! 당분간 저택에서 지내실 거란 얘길 듣고 방 정리를 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아, 오는 길에 일행이 하나 더 늘었답니다.”
“어머! 강아지! 참으로 멋지네요.”
“보름 간의 여정을 부인께도 말씀드려야겠군요.”
“안으로 드세요. 미니! 따뜻한 차를 내리자.”
“네. 알겠습니다!”
로만드로는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하려다, 서류 상자를 내리려는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자네들도 수고 많았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고 연락 기다리게.”
“로만드로 님! 이것들은 어찌할까요?”
“응. 그대로 두어. 어차피 오후에 황궁 가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았네!”
로만드로는 부하들에게 서둘러 귀가하라는 듯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오후까지, 반나절의 여유가 있노라 여겼기 때문이다.
마리브와 게일 황자가 참석하는, 정기적인 황궁 친목회가 오늘 열린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