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18
제118화. 뒷골목 싸움
“베릭.”
“…커헉!”
이안의 부름에 베릭이 벌떡 일어났다. 눈빛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형형하게 빛났건만, 볼 옆에 침 눌린 자국으로 보아 꿀 같은 밤을 보낸 게 분명했다. 베릭은 능청스럽게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 진짜 밤새웠더니 너무 피곤하다. 오늘 나가서 고기 좀 먹어야겠는데?”
“베릭. 방금까지 네놈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잘못 들은 듯?”
크흠. 베릭은 인중을 슥슥 문지르며 이안의 눈치를 보았다. 분명 새벽까지 정신 똑바로 차린 채 보초를 섰건만, 하인 미니가 기침하는 걸 보자마자 정신을 잃은 것이다. 베릭은 이안이 혼낼까 봐 연신 눈치만 보며 주위를 맴돌았다.
“밤사이 별일 없었고?”
“응. 완전 별일 없었지.”
“그러면 밥 먹기 전에 세안이라도 하고 오거라. 보기가 좀 그렇다.”
“밥! 밥 먹자!”
우당탕탕! 베릭은 이안의 허락에 재빨리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미니가 따뜻한 수프를 들고 오다 멈칫거렸다.
“벌써 올라가셨습니까? 새벽에 수프 먹고 싶다 하셔서 끓여왔는데. 참을성도 없으셔라.”
“식사에 함께 놓아주면 되겠구나.”
“예. 알겠습니다.”
미니가 말하기를, 새벽에 나오니 벌게진 눈 부릅뜨며 정문 앞에 서 있었다고 하지. 시킨 일은 곧잘 하는 것 같아, 이안은 만족스럽게 식당으로 들어섰다. 비비안나 부인과 로만드로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와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안 경.”
“부인 덕분에요. 잠자리가 아주 편했답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 서둘러 준비해 나가셔요.”
비비안나는 밤사이 쇼핑 목록을 꼼꼼하게 작성한 듯싶다. 고이 접힌 종이를 읽어내리며 하루 동안 돌아야 할 상업지구의 경로를 천천히 읊어줬다.
버터 녹는 냄새와 찬 기운을 뚫고 들어오는 따스한햇볕 아래서, 이안은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꼈다. 하샤도 그러한지 의자에 앉아서는 얌전히 우유를 홀짝거렸다.
“하샤. 냄새는?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나?”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은 버터 냄새가 너무 강해서.
황홀경에 빠진 눈으로 코를 씰룩대는 하샤였다.
‘괜한 걱정이었나.’
변경에서 적을 만든 다음, 그 소굴로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마리브와 게일을 연달아 대면해 예민해졌던 것 같다.
“밥! 밥밥!”
…애꿎은 베릭만 잡았군.
이안은 조금 안쓰러운 마음에 홍차를 손수 타주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베릭은 우걱우걱 식탁의 음식을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크으허허! 맛있다!”
“죄송합니다. 부인. 태교에 안 좋으실 것 같아요.”
“어머. 아니요. 어제 두 분이 외출하셨을 때 한 번 보았답니다. 복스럽게 드셔서 보기 좋아요.”
“미니! 마차 안에 훈기가 돌도록 준비해 두어라.”
“네. 로만드로 님!”
고급 주거지에서 조금만 나서도 길이 복잡해진다. 유동 인구가 많아짐은 물론이고, 마차 사이를 빠르게 날아드는 불법 전서구와 자전거 탄 아이들로 인해 정체가 심해질 터.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지 않으려면 미리 마차를 데워놓아야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어디 먼저 가는데?”
베릭이 빵을 씹어대며 묻자, 비비안나가 대신 대답했다.
“호위기사님의 검을 맡기러 갈 겁니다. 인근에 아주 오래된 대장간이 있어요. 칼날 하나는 기가 막히게 갈거든요. 그걸 맡기고 옷을 산 다음, 식사 후 되찾아 돌아오는 게 일정이랍니다.”
베릭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안 그래도 잔뜩 무뎌진 검은 베는 것보다 후려치는 용도로 쓰는 게 나을 정도였으니까.
“그래! 가자! 꺼어억.”
“세상에. 베릭!”
“…죄송.”
하샤가 극도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르르 댔다. 그렇게, 그들의 평화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 * *
“여기가 대장간입니다.”
“이안, 나와 비비안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서둘러 다녀오게.”
“그러시지요. 베릭. 따라 나오거라.”
“예엡. 우리 검둥이 갈러 가자~!”
로만드로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장간. 이안과 베릭은 검을 든 채로 안쪽에 들어섰다. 후덥지근한 땀내와 함께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쇳소리가 연신 울어대고 있었다.
위이이잉!
땅! 따앙! 땅!
바로 옆에서 베릭이 귀를 막고 무어라 소리치지만, 그것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 이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노란 벨을 발견했다.
딸깍.
버튼을 누르니, 대장장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랜턴이 죄다 들어왔다.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일종의 초인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단번에 망치질을 멈추고 입구 쪽을 돌아봤다.
“대장! 손님 왔어!”
“어어. 그래. 무슨 일로 오셨는가요? 나리?”
나리 맞지? 이안을 대하던 대장장이가 베릭을 힐끔거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검의 날이 너무 무디어, 날카롭게 갈고자 하네.”
“잠시만요. 음? 이게 검입니까?”
“그렇다네. 가격은?”
“동화 다섯 닢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요. 이거 뭐로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모르지. 나는 전문가가 아닌지라.”
그저 색이 좀 어둡다 여겼을 뿐이다. 대장장이가 심상치 않게 검을 살펴보자, 다른 자들도 하나둘씩 몰려들어 구경했다.
“뭔데? 색이 왜 이래?”
“후천적으로 메멘테움이 들어간 건가?”
“그것보다는 더 짙은데. 혹시 마물석은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마물석이 어디 흔해?”
“나리. 이거 뭔지 모르면 갈다가 망가져도 저희는 책임 안 집니다.”
대장장이의 물음에 이안이 베릭을 쳐다봤다. 어찌하겠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더 망가져 봤자지. 반으로 박살 나도 그게 나아. 그러면 찌를 때 잘 들어가기라도 할 테니까.”
“알아서 하시게. 잘 좀 부탁하네.”
이안이 값을 치르는 동안에도 대장장이들은 베릭의 검을 연신 뜯어보았다. 아무래도 도적놈들이 아주 대단한 걸 훔친 듯했다.
“그럼 오늘 저녁 안으로 가지러 오겠네.”
“예! 감사합니다! 성심성의껏 갈겠습니다!”
끼이익! 쾅!
밖으로 나오자, 대장간의 열기로 인해 베릭의 얼굴이 그새 벌겋게 익어있었다. 아마 이안도 그리 다르지는 않으리라.
스윽.
이안은 마차에 올라타려다 멈칫했다. 뒤에서 눈 밟는 소리가 은밀하게 난 탓이다. 베릭은 왜 안 올라가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비비안나는 문이 잠겼나 싶어 손잡이를 돌려댔다. 이안은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톡톡.
“로만드로 님. 먼저 의상실로 가 계십시오.”
“응? 이안, 자네는?”
“대장간 열기 좀 식힐 겸 걸어가겠습니다. 길은 익혀두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건널목 지나 바로 왼쪽이지요?”
이곳에 발걸음 한 적이 있었던가? 놀라울 정도로 중앙 곳곳을 꿰뚫고 있었다. 의아하긴 했지만, 로만드로는 다른 말 없이 마부를 재촉했다.
히이힝!
마차가 떠나가자, 베릭이 입을 쩍 벌리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댔다.
“이안! 나는? 로-만드로 님! 나도 데려가아!”
“너는 나와 같이 가야지.”
“아니, 나 진짜 너무 추운데?”
“가자. 천천히 따라오거라.”
이안은 마차와 반대 방향으로 골목을 꺾어 들어갔다. 투덜대면서도 길을 모르니, 베릭은 쫓아갈 수밖에. 두 사람은 계속해서 한적하고 복잡한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한낮인데도 건물의 그림자 때문에 볕이 들지 않은, 도심의 밑바닥까지.
타닥타닥!
그때쯤 되니, 베릭도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맨손을 웃옷에 벅벅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검 맡기면서 하나 새로 살걸.”
“돈이 좀 있는가 보구나. 베릭.”
“주인님이 사주실 거 아닌가요?”
“이쪽이다.”
타악! 타다다닥!
기묘한 달음박질이 계속되었다. 의문의 추격자는 기민하게 움직이며 이안과 베릭의 뒤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타앗!
“아.”
코너를 돌아서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진 두 사람. 추격자는 숨을 헉헉 들이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딱히 샛길로 빠질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를 바득거리며 뒤를 도는 순간이었다.
“안녕~?”
빠악!
베릭이 바로 뛰어들어 주먹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으나, 추격자는 안정적으로 베릭의 주먹을 받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힘의 반동을 이동해서 반격까지 이어지는 몸놀림이다. 추격자가 뒤집어쓴 로브가 물결처럼 휘날렸다.
퍼억!
“헐.”
가까스로 막아낸 베릭이 진심으로 당황했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눈빛이 빛나며 먹잇감을 만난 것처럼 환히 웃었다.
“야! 너 좀 치네?”
“시끄럽다! 그대가 이안인가?”
“응. 내가 이안이야~.”
퍼억! 퍽!
빠아악!
한 치의 빈틈도 없는 합이 오갔다.
목소리로 보아, 여자인 것 같은데 전투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날것 그대로인 베릭과 달리 단련을 제대로 한 전사의 자세다. 힘도 밀리지 않아, 가히 놀랍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베릭. 여인은 왼손잡이인 듯하다.”
왼쪽 주먹을 주로 쓰고 있지 않나. 그 말은 여인의 오른쪽이 상대적으로 비어있다는 걸 뜻했다. 이안이 넌지시 알려주자, 베릭은 바로 오른쪽을 파고들어 머리통으로 여인의 턱을 날려버렸다.
빠아아악!
“아악!”
뭔가 제대로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베릭은 이마를 슥슥 문지르며 어서 일어나라는 듯 추격자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야. 일어나 봐. 아직 제대로…….”
지이잉.
고개를 쳐든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짙은 남색의 중 단발, 층 없이 단정하고 고운 머리칼은 그녀가 꽤 풍족한 집안에서 지내고 있노라는 걸 알려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 본연의 검은 동공에 서슬 퍼런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마검사?”
“네놈이 베릭이구나! 죽어라!”
파앗!
베릭의 박치기 탓인지, 여인은 코피로 하관이 엉망이었다. 그녀는 마력을 개방해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일렁거리는 푸른빛 단검. 그녀는 단검을 내던지듯 베릭을 향해 손을 뻗었다.
쉬이이익!
“우앗! X발, 저게 뭐여!”
“베릭!”
어찌 피할 겨를도 없는 속도다. 베릭이 놀라서 움찔거리자, 이안은 마력 파동을 폭발적으로 개방했다.
퍼엉!
뒷골목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질척한 흙먼지가 사방에 날렸다. 시야 확보가 안 된다. 이안이 손을 내저으며 먼지를 걷어냈다. 추격자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뭔데. 왜 지가 공격하고 지가 쓰러져?”
“…닥쳐라! 허억, 허억…….”
“방금 게 일격이었던 모양이다. 베릭.”
“아하. 한 번 하고 끝?”
이안과 베릭의 말에 여인이 입술을 깨물며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진짜였거든. 최후의 일격을 이리 쓰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자. 이제 이쪽에서 들갑니다요. 무기는? 없어?”
“맨손인 자에게 무기를 드는 것은 수치요, 사치다.”
베릭이 주먹을 으드득거리며 다가가자, 여인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녀는 다시 격투 자세를 취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피와 함께 조각난 어금니가 툭 떨어졌다.
“아, 깡 좋네.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
“나-는!”
새된 기합처럼 악을 지르는 여인. 이내 베릭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뻗었다.
“자랑스러운 황궁친위대 부대장이었던 페트레이오의 딸!”
페트레이오.
이안은 귀에 익은 그 이름을 바로 기억해 냈다.
몰린의 지시를 받고 이안을 죽이려 했던, 그리고 결국에는 스스로 자결하여 신의를 지켰던 사내.
“바르사베 브루테다!”
“오오, 그래! 반갑다! 나는 자랑스러운 부모님 없고! X발 그냥 베릭이다!”
“아버지의 원수!”
“뭐래, 너 번지수 잘못 찾았어!”
빠아악!
두 사람의 주먹이 동시에 서로의 안면에 때려 박혔다. 이안은 보는 저가 더 아프다는 듯, 눈을 가볍게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