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20
제120화. 외출 끝
신년회의 시작을 알리는 꽃가루가 바리엘 전역을 뒤덮을 때, 바르사베는 피떡이 된 채 황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없는 도심의 작은 저택은 의미를 잃어버렸기에 이젠 훈련장 옆, 병사들을 위해 준비된 숙소가 그녀의 유일한 거처였다.
콰앙!
“바르사베, 세상에나!”
“시끄러워. 조용히 해.”
“어디서 사고라도 친 거야?”
“아니라고. 신경 꺼.”
바르사베는 넝마가 된 옷을 훌렁 벗어버리고 정복을 찾아냈다. 왼쪽 어깨에 새겨진 황궁친위대 소속 문신. 마력을 잘못 개방하는 바람에 몸 곳곳에 열꽃이 일었으나, 문신 주위만큼은 또렷하니 멀쩡했다.
“나 장갑이 없어. 빌려줘.”
“정복? 정복은 갑자기 왜 꺼내? 신년회 행사는 아직이라고. 꽃가루 신호탄은 터졌지만.”
이안의 속셈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그의 말에 넘어가 주는 것.
정식으로 격식을 갖춰 오면 아버지의 유품을 넘겨준다 하니, 안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시체 수습도 못 한 마당에, 그것은 진실로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이었으니까.
“너, 설마 이안 그자를 찾아간 건 아니지?”
“갔어. 그리고 개 터져서 왔잖아.”
그녀의 대답에 동료가 이마를 짚었다. 페트레이오의 죽음은 황궁친위대 내에서도 파다하게 떠돌았다. 은퇴한 선배이긴 했지만, 대를 이어 바르사베가 입단하였으며, 기수끼리 교류가 활발하다 보니 다들 알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아마 그 정확한 시점은 몰린이 빈사 상태로 행정부에 복귀하면서부터일 터다. 이안이라는 자가 영주직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몰린의 팔과 다리를 잘라 버렸노라고.
물론, 떠드는 자들은 에리카를 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페트레이오의 이름 역시 거기에 담겨있음도 분명했다.
‘아버지는요?’
‘미안하다. 바르사베. 페트레이오는 이안에게서 나를 지키기 위해 기사의 소임을 다 하였어.’
‘어째서, 분명 몰린 경은 황궁의 행정관이신데…….’
‘변경의 천박한 놈에게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바르사베, 내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나는 네 아비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밤낮으로 들었다.’
바르사베는 몰린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몰린은 분명 이안이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죽였노라 전하였다. 한데, 막상 만나보니 전혀 그럴만 한 인물이 아닌 것 같은 게 문제였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조금…….’
“바르사베! 내 말 듣고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이 뚝, 하고 멈추었다. 동료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문신이 새겨진 왼쪽 어깨를.
“수습 때 사고 치면 경고 없이 퇴소다. 잘 알잖아?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자는 황제 폐하의 명으로 귀족이 될 자야. 우리가 검을 겨눌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황궁에서는 마리브의 세력을 제외하고, 모두가 이안을 반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중립적인 위치인 직속경호대조차 페트레이오의 죽음으로 이안의 첫인상을 부정적으로 낙인찍었으니까 말이다.
“알아. 근데, 퇴소당해도 혼낼 아버지가 없는걸?”
“그,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어딜 겁도 없이 마력운용자한테 덤벼들어? 변경에서 야만족을 평정한 사내라 하더만! 몰린 경이랑 에리카 중앙군도 그리 당했는데, 무슨 생각이야?”
소문이 수천 갈래로 나도는 황궁. 이안의 활약을 들은 자들은 저마다의 관점에 맞게 중요히 여기는 부분이 달랐다. 마법부는 이안이 마력운용자라는 것에, 직속경호대는 이안이 중앙군을 몰아냈다는 것에 특히 주목했다.
“그래. 이안이 데리고 다니는 호위가 한 명 있는데, 미친놈. 변경 밥은 뭐가 다른가?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바르사베는 무던하게 중얼거렸으나, 진심이었다. 저도 모르게 마력을 개방한 게 그 증거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상황 때문에 긴장한 걸 차치하고서도, 틀림없는 실수였다.
‘일단은 넘어가 줄게. 넘어가서, 제대로 봐주겠어.’
이안이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다. 한번 맞섰던 상대니 다음에는 더 여유 있게 전투에 임할 수 있으리라. 바르사베가 정복용 검집을 집어 드는 순간이었다
위이잉.
밖에서 소란스러운 집합령이 울렸다. 외출 나간 기사를 제외하고, 숙소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 정복을 갖춰 입고 나오라는 신호였다.
동료가 바깥쪽을 살피더니 바르사베를 힐끔, 돌아봤다. 황궁에 남아있던 기사들이 어슬렁거리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장갑 벗어.”
“아…….”
“나도 하나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옷만 집어 들고 나갈걸. 바르사베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집을 내려놓았다.
* * *
“와.”
베릭은 엉망이 된 대장간을 둘러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안 그래도 더러운 먼지와 잿더미로 엉망인 곳이었는데, 뭔지 모를 폭발 흔적 때문에 바닥이 시커멓게 타버린 것이다. 대장장이의 기다란 턱수염 역시 고불고불, 제대로 그을린 듯싶다.
“나리! 이런 말은 없으셨잖습니까!”
“진정하고, 사정을 설명해 주게.”
“아니, 이런 걸 맡기면서 어찌 말씀을 안 해주십니까? 특수검이라고 해봤자 고작 은화 1닢입니다. 손해배상보다는 훨씬 싸게 치인다고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혹시나 싶어 왔더니만 역시나였다. 이안이 진정하라 연신 덧붙였지만, 대장장이는 쉬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검이 폭발해 버렸으니까!
정확히는…….
“달구었는데, 열이 식지를 않더이다.”
휘어진 칼날을 평평하게 잡기 위해 열을 가했다. 어느 정도 적당히 달구었다 싶어 망치질을 해댔는데, 이게 시간이 갈수록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난감하여 담금질했더니 그대로 엄청난 열기가 터져 오르며 사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헤헤, 내 검이당. 완전 날카로워!”
“저저, 저것 때문에 아주 다 날아갈 뻔했습니다!”
그래도 장인은 장인. 그 사달이 났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마무리는 완벽하게 지었다. 의뢰인은 죄가 있지만, 검은 죄가 없기에. 베릭이 후다닥 달려가 검을 잡고 휘둘렀다. 눈이 점점 커지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더 가벼워졌다. 미쳤다! 선도 곧아졌어!”
“이거 보상금이랑 생명 수당도 챙겨주셔야겠습니다! 아휴, 이런 걸 갖고 다니면서 뭔지 모르신단 말입니까? 외람되지만, 혹시 주우신 건 아니죠?”
“주운 거 마-!”
“미안하게 됐군. 주운 건 아니고, 사실 가문에서 은밀히 하사받은 것인지라 그렇네. 사정을 헤아려 주게.”
로만드로가 급하게 베릭의 입을 틀어막았고, 이안은 수표 용지를 가져오라 까딱거렸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상황이었다.
“얼마를 원하는가?”
“금화 1닢은 주셔야겠습니다.”
“생명 수당 치고는 너무 약소하군. 비비안나 부인에게 듣기로는 자네가 중앙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라 하던데.”
이안은 능청스럽게 물으며 펜을 잡았다. 한껏 치켜 올라간 대장장이의 눈썹이 다소 누그러들었다. 투박한 대장간의 장인들은 자부심이 굉장한 자들이었다. 이안의 칭찬이 꽤나 적절히 멱힌 듯싶다.
“금화 2닢을 주겠네. 이것은 예상보다 더 훌륭한 결과물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시게.”
“크흠. 아니, 그, 뭐,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야 감사히 받지요. 크게 다치고 부서진 게 없어서 다행입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베릭. 마음에 드는가?”
“완전! 너무 좋아! 최고!”
베릭은 시험 삼아 계속해서 이리저리 검을 휘둘러 댔다. 로만드로가 그걸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오늘 저녁은 없다는 뜻이다, 이놈아!”
“잉? 뭐래요? 이안이 나 고기 사준다고 했는데.”
“저거, 저거! 돈 잡아먹는 돼지일세.”
로만드로가 이안에게 속닥거렸으나, 목소리가 너무 컸다. 엿들은 베릭이 길길이 날뛰며 로만드로에게 달려들었고, 이안은 담담히 계산을 마무리했다.
“고생 많았네.”
“예. 다음에는 제발 평범한 놈으로다가 맡겨주십시오. 더 잘해드리겠습니다.”
“베릭! 로만드로 님 그만 괴롭히고, 나오거라.”
끼익.
밖으로 나오자 마차에서 기다리던 비비안나가 걱정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요? 괜찮으신가요?”
“네. 부인. 별일 아닙니다. 추우니 계속 안에 계셔요.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고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안은 그리 말하면서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추격자의 존재가 바르사베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저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더 이상 주위에서 이상한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베릭. 그거 열 받으면 터지는 모양이니, 잘 다루어라. 응? 괜히 화덕 같은 곳에 집어넣지 말고.”
로만드로는 베릭을 떼어내며 당부, 또 당부했다. 이제 이곳은 이안이 권력자였던 변경이 아니라 중앙이었으니까. 사건 사고 하나가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내가 바보예요? 화덕에 이걸 왜 넣어? 화덕에는 먹을 걸 넣어야지!”
이안은 슬쩍, 제련된 검을 들여다보았다.
일단 일반적인 검은 분명 아니다. 마력석으로 만들었든, 드래곤의 어금니로 만들었든, 그것도 아니라면 운석 파편으로 만들었든. 짐작할 수가 너무 많았으나 범상치 않은 물건임은 확실했다.
“베릭. 관리를 잘 하겠노라 맹세해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의 안전을 위해 검을 압수할 수밖에 없으니까.”
“주인님?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카렌나에서 여기까지 문제없이 왔잖아요. 이거 열만 안 받으면 돼. 진짜루!”
열만 안 받으면 된다?
이안의 시선이 문득, 베릭의 붉은 머리칼과 눈동자에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결국에는 마력도 일종의 열이자 에너지이거늘.’
만약, 검을 통해 마력을 개방한다면?
열을 가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될 것이다.
“베릭, 검을 쥐고 있을 때는 마력도 흘려서는 아니 된다.”
“응응. 하라는 대로 하지. 나 말 잘 듣잖아?”
언제고 시도해 볼 만한 상황이긴 하다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장소도 장소고, 일이 터졌을 때 수습할 만한 여력이 없다.
“이안. 무슨 생각해?”
이안의 대답이 없자, 베릭이 넌지시 물어왔다. 이안은 마차에 올라타며 장난스레 툭, 농을 던졌다. 베릭에게는 전혀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금화 2닢이면 고기를 몇 근이나 살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내 잘못이야?”
“이놈아, 네가 그것만 안 주워왔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주워왔다 말하려 해? 조사받을 일 있어?”
로만드로 역시 한마디 던지며 마차에 올라탔다. 억울해하는 베릭도 서둘러 계단을 밟았고, 그들의 시끌벅적한 외출이 마무리되었다.
* * *
그리고 드디어.
이안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해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봤다. 벽걸이에 걸린 고급스러운 정복과 새 구두. 장갑과 액세서리까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하인인 미니가 새벽부터 준비를 마친 것이다.
똑똑.
“이안 님. 일어나셨나요?”
“그래. 방금.”
“준비하실 것이 많습니다. 서둘러 갈아입고 나오셔요.”
미니의 재촉에 이안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특별한 날, 그리고 바리엘을 뒤덮는 꽃가루가 제일 만개하는 날.
“오늘은 신년회 참석하는 날이니까요.”
이안이 이 시간대의 황제를 만나는 날.
그리고 새로운 가문을 세우고 가주로 일어서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