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23
제123화. 마력확인식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이안이었으나, 말문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쌍둥이라니? 성별이라도 다르면, 적어도 이란성이기만 했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터였다. 멀리서 보아도 두 황자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판박이로 닮아있었으니.
“놀랍지? 소문으로는 어머니인 딜라이나 님도 가끔 헷갈린다고 하네. 하지만 성격이 워낙에 달라서, 크게 문제는 없어. 나도 딱 보자마자 누가 누구인지 구분 가능할 정도니까.”
“두 분 성함이요?”
이안은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100년 전, 쌍둥이 형제를 둔 황제가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황제의 형제들이라 하면, 역사 속에서 권력투쟁에서 밀린 패배자들이었으므로, 의도적으로 기록에서 배제된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4황자께서는 아르센. 5황자께서는 진이라는 이름을 쓰시지.”
로만드로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 쌍둥이라 하면 이름에 통일성이 있기 마련인데, 누가 봐도 4황자는 고귀한 이름이요, 5황자는 평민들이나 쓸 법한 이름이었으니까.
“궁금한 거 알고 있네. 그런데 아무래도 장소가…….”
“잠시 나가시지요.”
이건 나중에 들을 일이 아니다. 당장 저 둘 중 한 명이 황제가 될 게 분명한데, 뜸 들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안의 눈짓에 로만드로가 눈치를 보며 슬쩍 몸을 뒤로 뺐다. 베릭 역시 마찬가지.
“실례합니다.”
그들은 거대한 아치형 입구를 나서 맞은편 복도로 나갔다. 그곳은 대연회장과는 달리, 황제의 신년 연설에는 관심 없는, 그러니까 비교적 젊고 방탕한 귀족들이 모여서 사교를 즐기고 있는 분위기였다. 몇몇이 이안 쪽을 힐끔거리며 주시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그들은 서로를 희롱하며 즐거운 시간을 즐기는 것에 집중했다.
“오오. 저기 뽀뽀한다.”
“베릭. 허튼소리 말고 이리 오거라. 로만드로 님. 불경한 질문인 걸 알지만, 지금 현 황제 폐하께서는 13대 황제가 맞는지요?”
이안의 기억대로라면 맞을 터였다. 초상화 아래 적혀있던 ‘베로시온 13대’라는 글자 역시 확실히 떠올렸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로만드로는 난감하게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말을 더욱 조심하게. 그 사안이 마무리된 지 얼마 안 되었다네. 지금 황제께서는 14대일세.”
하아, 이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만드로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
“선대 반역으로 돌아가신 황제 폐하의 선친께서 정당성을 인정받았거든. 따라서 작년까지는 13대셨지만, 지금은 14대이시지.”
권력을 잡으면, 그 정당성을 위해 이전 역사를 새로 기술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특히 방계로 갈라질수록, 정치적인 입지를 위하여 적통임을 인정받고 싶어하는데, 몸속에 흐르는 피를 바꿀 수는 없으니 역사를 바꿀 수밖에.
“그게 뭔 말이래? 숨겨진 부모님이라도 찾았나?”
베릭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귀를 후비적거렸다. 황제가 죽고 다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찌 13대였다가 다시 14대가 되는 거지? 이안은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역사는 서술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 선대를 황좌에서 박탈하거나, 혹은 다시 복원하는 걸 말한다. 현 황제께서 14대시지만, 작년까지 13대셨던 것처럼, 당장 내년에 어찌 될지 모르는 거란다.”
이러나저러나, 역사의 흐름 한가운데에서는 폭풍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걸 시사했다. 오로지 얼굴로만 나아갈 길을 짚어낼 수밖에.
‘변경에서 영주임명장을 받았을 때, 이미 황제의 이름을 들었으나 알지 못했다. 다음 선대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한데, 어찌 쌍둥이 황자의 이름이 그리 다른 것입니까?”
이안은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며 되물었다. 아르센과 진. 분위기 격차가 꽤 나는 그 이름 속에 단서가 있을 것만 같았으니.
“쌍둥이께서 태어나실 때 신탁이 내려왔다네.”
“신탁이요? 정식으로 말입니까?”
“그래. 자세한 건 기록서에 남아있을 걸세.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떠들썩했어.”
황자의 나이가 열 살이구나.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로만드로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잇새로 속삭였다.
“늦게 태어난 아이로 인해 먼저 태어난 아이가 큰 화를 입을 것이다.”
“……!”
이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신탁답게 해석할 여지가 많긴 했으나, 이안에게는 굉장한 이정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로만드로는 수염을 배배 꼬며 킁, 하고 멋쩍은 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아기 때에는 두 분께서 같은 침실을 쓰지도 못하였다네. 혹 훗날의 권력 다툼일까 싶었으나 이미 장성하신 마리브 저하와 게일 저하께서 버티고 있으니 그 걱정은 또 아닐 터. 아무튼, 이름이라도 평범하게 주어 악마가 장난치지 못하게 하려 함일세.”
평범한 이름 속에 섞여들어 살면, 악마의 장난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어차피 마리브와 게일, 둘 중 하나라도 다음 황제가 되면 아르센과 진은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으니.
“그런데 신탁이 으레 그렇듯이, 언제나 맞는 건 아니지 않나? 10년 동안 지켜본 결과 영 꽝인 것 같아.”
“그렇습니까?”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을 받아서, 진 황자께서는 아르센 황자를 극진히 아끼고 돌보신다네. 존중하고 소중히 하는 걸 마다하지 않아. 가끔은 형 동생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
그 결과, 형인 아르센은 밝고 활기 있는 성격으로 언제나처럼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동생인 진은 담담하니 침착하고 의젓한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얼굴은 똑같지만, 황실 모두가 두 사람의 구분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이안은 두 황자를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몸을 돌렸다. 점차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황실 악단의 음악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황제의 연설과 함께 작위임명식이 끝나고, 잠시 공백이 생겼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자세한 건 저택 가서 나누고요.”
“자세한 건?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게 자세한 거 아닌가?”
또 뭐가 궁금한 건데? 로만드로가 턱을 긁적거렸으나, 이안은 고갯짓하며 앞장설 뿐이었다. 베릭이 바로 옆을 따라붙으며 웃었다.
타닥타닥!
“이안. 그런데-”
“주인님.”
“아. 주인님. 그런데요, 밥은요?”
“아직 멀었다. 마력확인식까지 다 끝나야 디너 파티로 넘어가니까.”
호칭 지적보다 저녁때가 멀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지, 베릭이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을 더 든든히 먹을걸. 정복 입는다고 맵시 때문에 가볍게 먹으라는 말을 들은 게 실수였다.
스윽.
이안이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오자,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어있었다. 황제를 비롯한 황자들이 남은 일정을 구경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고, 음악은 더욱 활기차졌으며, 정령들의 움직임도 더없이 바빠졌다.
“이안 히엘로 자작님.”
그때,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마법부 복식을 한 남자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법부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사무직 공무원인 듯싶었다.
“곧이어 있을 마력확인식 설명을 다시 드리고자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웨슬리 장관님께서 직접 말씀드릴 것입니다.”
웨슬리. 게일의 연인이자 마법부의 수장. 이안이 알기론 현재의 모든 악행이 웨슬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안은 베릭에게 따라오라는 뜻으로 눈짓했다.
“그래. 가지. 앞장서게.”
“네. 이쪽으로.”
단상 뒤쪽으로 돌아간 그는, 바로 웨슬리라는 여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그리고 피를 바른 것처럼 붉은 입술. 무엇보다 장관만이 입을 수 있는 케이프를 두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웨슬리 장관님.”
확인식을 진두지휘하던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이안을 보자마자 입술을 뒤틀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긴 하다만, 은근히 풍겨오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아마, 이안이 웨슬리의 본색을 다 알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호오! 이게 누구신가. 변경의 천한 서자 출신의 귀족 나으리시군. 이안 히엘로 자작님?”
웨슬리가 손뼉까지 치며 목소리를 크게 내었다. 주위의 마법사들 역시 힐끔거리며 피식, 웃는 소리를 애써 숨기지 않았다. 베릭이 짜증스럽게 눈썹을 찡그렸으나, 이안과 시선이 마주치고는 참을성 있게 먼 산을 바라봤다.
“반갑습니다. 웨슬리 장관님. 실례가 안 된다면, 성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이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웨슬리에게 악수를 청하며 웃었다. 마법사들은 대부분 천민 출신이라는 걸 파고든 공격이었다. 제아무리 황궁에서 감투를 쓰고 있다 한들, 웨슬리에게는 성(姓)이라 불릴만한 게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음과 동시에 주위의 웃음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이안 히엘로 자작. 나는 장관으로 궁정백과 같은 위치일세.”
실제 작위는 아니었으나, 그에 준하는 명예와 권한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이안은 능청스럽게 손을 뒤로 빼며 웃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무지하여, 웨슬리 장관님의 성함을 듣지 못했다 여겼지 뭡니까.”
성이 없는 걸 무에 그리 길게 돌려 말하냐는 뉘앙스였다. 이안은 마법사들의 노골적이고 적대적인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하나하나 받아쳤다. 이안이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리 콧대를 세웠다가 노예로 전락하면 꽤나 볼만하겠어.”
“그런 걱정까지 해주시고. 마법부 장관님은 들리는 소문과 달리 인정이 많으시군요.”
헌납금 1만 닢을 내지 못해 처지가 내려앉을 걱정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신분이 자유로워졌으니, 감사할 일이 아닌가.
그리되면 마법부에 입부하는 것은 곧 이안의 선택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리브의 명령이나, 뭐, 별채 건설 이것저것을 차치하고서 말이지.’
웨슬리는 이안을 빤히 내려다보며 눈빛을 날카롭게 세웠다. 저 조그만 어린 것이, 귀족 작위 받았다고 까부는 꼴이 영 보기 싫었다.
“이안. 곧 있으면 마력확인식을 진행할 것이네. 하여, 그대 몸에 마력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내일 중으로 마법부에서 정식 입부 요청이 갈 터이지.”
“오. 영광입니다. 장관님.”
“시답잖게 상투적인 인사군. 원하는 부서가 있는가?”
웨슬리의 입매가 미소로 비틀렸다. 속으로 뭔가 꿍꿍이를 세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안은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했고, 웨슬리를 비롯한 주위 마법사들의 분위기를 살펴 내렸다.
‘확실히 뭔가 꾸미고 있군. 설마 예상한 그건가?’
“그래. 시골뜨기가 막 올라와서 무얼 알겠는가. 그대 옆의 누군가가 일러주어야만 대답할 수 있겠지.”
마리브를 뜻하는 것이다. 마리브가 이안을 첩자로 심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뜻으로.
“하지만 마법부는 무엇보다도 능력 위주의 성과가 필요하네. 앉아서 세금만 축내는 어중이떠중이는 취급하지 않아. 그대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에 알맞은 부서가 배치될 것일세.”
이안은 저도 모르게 슬쩍 웃고 말았다. 처음 신년회 들어설 때 예상했던 그것이다. 신탁의 빛에 수를 걸어두어 아무 반응 없도록 하는 것.
“아. 그렇습니까?”
이안은 짐짓 능청스럽게 대꾸했으나, 옆에 선 베릭은 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있다는 걸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