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최초의 귀족 마법사
딜라이나를 비롯한 황가의 여인들이 동시에 오페라글라스를 꺼내 들었다. 마력확인식이 드물게 열리는 행사긴 했어도, 그들은 언제나 마법부를 가까이 두는 자들이었다. 중요 행사 때마다 웨슬리를 비롯해 대단한 마법사들의 볼거리를 눈에 담았던 자들인데…….
“저것 좀 보십시오.”
“말도 안 됩니다. 세상에나, 너무 아름다워요.”
“진정한 신탁의 빛이로군요!”
다들 체통도 잊은 채 입이 반쯤 벌어져서는 이안의 손짓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오른손이 궤를 그리며 돌 때마다 축복이 내리는 것처럼 사방에 빛이 가득 쌓였다.
“…참으로 신성합니다.”
딜라이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자리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은 인생에 있어서 두 번 다시 없을 환상이라고. 그리하여 그들은 진정한 환상을 만났노라고.
사아아악!
이안은 담담하게 계속해서 신탁의 빛을 만들어냈다. 단상에서 흘러넘쳐 귀족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그곳까지, 그리고 나아가 황궁을 잠식시킬 것처럼.
투웅! 퉁!
“레코레티오!”
그 순간, 놀라서 멈추었던 황궁 악단의 지휘자가 지휘봉을 튕기며 정신 차리라는 신호를 내보냈다. 피아니스트가 반사적으로 건반을 누르며 연주를 재개했고, 첼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역시 곧바로 합주에 집중했다.
이안의 파장을 따라 음이 떠도는 것인지, 아니면 음에 반응하여 마력이 살아 움직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쉬익!
쿠구궁! 쿵!
“레코레-! 티오!”
시각적인 자극 때문에 지휘자는 평소보다 더 격정적으로 음악을 이끌었고, 연주자들 역시 오랜만에 느끼는 황홀함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연회장은 가히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호오!”
“…말도 안 됩니다.”
“이게 마력이라! 놀랍구먼, 놀랍소!”
귀족들은 저들 사이로 스며드는 마력에 손을 뻗거나, 가볍게 움직이며 피하거나, 혹은 홀리듯이 고개를 돌려댔다. 악단의 음악이 고조될수록 사람들의 얼굴에는 깊은 홍조가 피어났다.
“전하, 잘 보이십니까?”
“으음…….”
딜라이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황제에게 오페라글라스를 받쳐주었다. 황제는 앞이 잘 안 보이는지, 연신 입만 우물거리며 반응이 없었다. 딜라이나가 글라스를 받친 채 문득, 옆의 황자들을 돌아봤다.
“하.”
마리브는 아래의 귀족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반응이었다. 난간에 손까지 올린 채 신탁의 빛과 그 아름다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반면 게일은…….
‘…웨슬리.’
이안보다 그 옆에서 당황한 채 서 있는 웨슬리에게 시선이 꽂혀있었다. 딜라이나는 부채로 가볍게 얼굴을 가리며 연신 게일을 힐끗거릴 뿐이다.
‘저것이 어찌하여 연인을 보는 사내의 눈빛인가?’
황제를 부군으로 둔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딜라이나는 언제나 게일의 살벌함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간혹 그의 날카로운 기세가 제 아들들을 해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으니.
“어머니.”
“응?”
그때, 반대편 뒤쪽에 앉아있던 5황자 진이 어미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은빛 머리칼은 연회장의 마력 빛을 받아 순백처럼 희게 반짝거렸다.
“아르센의 오페라글라스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딜라이나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4황자 아르센은 진의 글라스로 1층을 잘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그녀는 진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래. 아르센에게 양보하였구나. 참으로 착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틀어 황제를 보필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걸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거늘, 어미는 언제나처럼 동생 진의 희생을 치하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다.
“이안이라는 자, 참으로 대단하다.”
아르센이 연신 감탄 어린 탄성을 중얼거리는 동안, 진은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저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이다.
* * *
한편, 이안은 등 뒤로 땀이 슬쩍 흐르는 걸 느꼈다. 마력을 개방하는 것은 온몸의 에너지를 개방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는 천천히 마력을 거두면서 웨슬리를 힐끗, 쳐다봤다.
“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허망하면서도 곤혹스러운 낯빛이 실로 날것 그대로다. 이안은 땀으로 살짝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생긋 웃어주었다. 이만하면 되지 않겠냐는 듯이.
스윽.
이안이 빛의 표면에 손을 떼고서 신탁의 빛을 바로 세웠다. 마력은 힘을 잃어갔지만, 천천히 사라지는 안개처럼 흔적을 흘려대고 있었다. 그걸 본 지휘자가 박자를 맞추며 음악을 천천히 갈무리했다.
쿠웅!
격앙된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내려치는 순간, 이안이 선창했다.
“바리엘의 영광을 위하여.”
“바리엘의 영광을 위하여!”
이안이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인사하자, 귀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호하며 박수 쳤다. 고귀하신 분들치고는 환대가 뜨겁다. 아까 웨슬리가 유도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혼이 담겨있는 찬사였다.
짝짝짝!
이안이 웨슬리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입술을 꾹 깨문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안의 멱살을 붙들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대체 어찌하여 마법진의 술식을 풀 수 있었는지 말하라며, 윽박지르고 싶었으나…….
“…이안 히엘로 자작. 참으로 멋진, 마력이었소.”
어쩌겠나? 지금은 황제를 비롯한 연회장의 모두가 둘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녀는 이안에게 손등을 내보였다.
“마법부의 입부 요청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안은 그녀의 손등에 키스를 남긴 뒤, 미련 없이 단상을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젊은 귀족들이 이안을 둘러싸며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히엘로 자작님. 참으로 멋진 일루전이었습니다!”
“악수 먼저 하자고, 응? 아직 마법사 아닌 거 맞지?”
“부서 발령이 나야 마법사라 하지 않나. 그나저나, 어디로 들어갈 것인가? 그만한 힘이면 골라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기하자고! 마법지원부가 최고이니, 난 거기에 걸겠어! 이안 히엘로 자작, 앞으로 자주 봅시다.”
“아하! 이대로라면 최초의 귀족 마법사 아닙니까?”
귀 따갑게 와다다 쏟아지는 찬사. 이안은 그저 웃으며 그들의 환호를 받아낼 뿐이었다. 하지만 인파가 계속 몰리며 한 발자국도 뗄 수 없게 되자, 난감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이안 히엘로 자작님. 전언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만드로다. 이안은 이때다 싶어 고개를 까딱거리며 실례한다는 뜻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이런! 금방 돌아와야 하네!”
이안은 웨이터가 들고 다니는 와인 잔을 높이 든 채 인파를 헤쳐 나갔다. 잔을 들고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덕분에 둘은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고, 로만드로는 재빨리 길을 트며 밖으로 안내했다. 한숨 돌린 이안이 와인을 홀짝이며 갈증을 씻어 내렸다.
“로만드로 님. 마침 적절한 부름이었습니다.”
“이안, 자네! 크흑!”
“하하. 설마 우십니까?”
“와, 난 살면서 그리 멋진 광경은 처음 보네. 우리 비비안나도 그걸 봤어야 하는 건데, 허어. 참으로 대단했어!”
로만드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부르르 떨어댔다. 이안이 땀 닦을 손수건을 찾자, 대신하여 자신의 것을 건네줬다.
“오, 감사합니다.”
“참! 그리고 그거 아는가?”
“무엇이요?”
“자네, 바리엘 제국 최초의 귀족 마법사가 된 것일세!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진실로 축하하네!”
최초의 귀족 마법사. 이안은 그 호칭이 어색하지 않았다. 이전 생에서도 그러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결국에는 이안을 황제의 자리까지 앉혀주었으니까.
“…그렇군요.”
“잉? 반응이 왜 이런가?”
“실감이 안 나서 그렇습니다.”
“시기가 참으로 잘 맞아떨어졌어. 신년회 없이 들어왔으면 많이 아쉬울 뻔했네.”
웨슬리처럼 마법 능력을 인정받아 궁정백, 그러니까 장관 자리에 오르거나, 공을 세워 작위를 받는 마법사는 많았으나 입부 당시부터 귀족인 자는 이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100년 후에도 내가 최초였으니.’
최초였고, 다시 최초가 되었다.
묘한 기분에 이안이 희미하게 웃자, 로만드로는 머쓱하게 턱수염을 긁적였다.
“내가 너무 흥분했나?”
“아닙니다. 그리 기뻐해 주시니 고마운 일이지요. 그나저나, 베릭은요?”
“응? 베릭?”
두 사람이 멀뚱멀뚱, 서로만 쳐다봤다. 당황스러운 침묵만 감돌았다. 로만드로는 이안이 데리고 갔으니 당연히 그와 같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안은 확인식 전 내려갔으니 로만드로와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미, 미, 미치겠군.”
로만드로가 공포스럽다는 듯 이를 딱딱 떨어대며 중얼거렸다. 개차반 미친놈이 저 귀하신 분들 사이에서 혼자 덩그러니 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어서, 어서 찾아보-!”
“이안~!”
로만드로가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가려 할 때였다. 반대쪽 복도에서 베릭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통 뛰어왔다. 오가다 와인이라도 얻어 마신 것인지, 얼굴이 유독 붉다.
“나 여깄지!”
“이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돌아다녀?”
“에엥?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어디, 사고 친 건 없지? 손가락은 또 왜 그러고?”
“이거? 일주일 치 고기반찬 값이요.”
뭔 말인지 모르는 로만드로만 안절부절, 혹여 사고 쳐서 생긴 상처는 아닌지 걱정했다. 베릭은 당당하게 기억하라는 듯 이안에게 검지를 내밀었다.
처억!
“밥값 한다는 게 이런 건가 봐? 나쁘지 않네.”
“고기반찬, 안 까먹을 것이다. 어디 있었느냐?”
“신탁의 빛 들어왔던 통로로 데려가더라고. 거기서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 그리고 엄청 재밌는 거 봤다?”
“재밌는 거?”
뒤쪽 통로에 있느라 일루전은 보지 못한 듯싶다. 이안의 되물음에 베릭은 눈을 회까닥 뒤집으며 새된 여인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술도 들어갔겠다, 연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마법진 그려 넣은 놈들 다 나오라고 해! 일을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군!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다 죽고 싶어!?”
“…설마 웨슬리 장관을 따라 하는 것인가?”
“아하하. 똑같지? 부하들을 쥐 잡듯이 잡더라. 숨어서 보는데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어.”
“하나도 안 똑같다.”
“에엥? 진짜? 다시 해볼까?”
로만드로는 혹시나 해 주위를 둘러보며 베릭의 입을 틀어막았고, 이안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신탁의 빛 마법진의 글씨체로 보아, 여러 마법사가 달라붙어 만들어낸 건 분명했다.
‘거기에 웨슬리가 은밀히 손을 써두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군. 생각보다 마법진에 이상이 있음을 알고 있는 자가 많다는 뜻이로다.’
하지만 아까 나키나라는 자는 이안을 도와주려는 의도가 확실했다. 마법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그리하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이는, 마법부 안에서도 파가 갈려있다는 게다.’
웨슬리가 직접 끌고 가며 일을 주도적으로 맡기는 부서와 그 반대로 소속은 되어 있되 겉도는 자들. 하긴, 어느 부서나 정치적인 파벌이 갈려있는 건 당연했지.
‘그래. 나도 나움이 아니었다면, 처음 마법부에 들어갔을 때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안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100여 년 후 미래까지 넘어갔다. 로만드로와 베릭이 시끌벅적하게 티격을 벌이는 순간이었다.
“이안 히엘로 자작님.”
고개를 납작 숙인 채 이안을 부르고 있는 황제의 시종장. 이안은 그자의 등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시지요. 2층으로 모시겠습니다.”
황제를 비롯한 황가의 일원들과 가까이 대면할 수 있는 영광을 가져온 것이다. 이는 이안의 마력이 그들에게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는 걸 시사했다. 이안은 빈 와인 잔을 베릭에게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