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황궁 훈련장
“실례합니다. 첫 방문이십니까?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처억!
황궁 훈련장 앞의 경비가 경례하며 이안 일행을 막아섰다. 이안이 신분증을 꺼내는 동안, 그들 옆으로 몇몇 기사들이 익숙하게 스쳐 지나갔다.
우락부락한 자들이 태반이다. 베릭이 저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들어가려 하자, 이안이 뒷덜미를 붙잡았다.
“이안 히엘로 자작님이시군요. 확인 감사합니다.”
“수고하게.”
“이안, 방금 지나간 사람들 덩치 봤어?”
“가자. 안에 들어가면 더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변경에서 뒹굴었던 낡은 훈련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으리으리하고 위용이 엄청났다. 수백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공간에 모든 것이 쾌적하고 완벽하다. 이 조명, 온도, 습도라니!
“와, 진짜다. 다들 엄청 세 보여. 이런 곳인데도 경비가 서는구나. 여기서 저 경비가 제일 약해 보이는데. 오오오. 미친. 저 아저씨 근육 보소. 때려보고 싶다. 헐.”
일반 병사들은 중앙 외곽 훈련장에서 주로 훈련하였고, 이곳에 모이는 자들은 대부분 귀족을 호위하는 기사들이었다. 황궁친위대 역시 마찬가지. 범상치 않은 자들이 모여 훈련하는 곳이다 보니, 당연히 분위기 자체가 남달랐다.
“2층도 있네.”
“기사들이 훈련하는 걸 보는 귀족들의 자리다. 가끔 눈여겨본 기사가 있으면 귀족끼리 웃돈을 주고 거래하기도 하고, 황궁친위대장이 보고 영입을 제안하는 때도 있지.”
황궁의 어느 곳이나, 위층에서 아래층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물을 갖추고 있었다. 베릭은 위에서 떠들어대는 귀족들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이안의 뒤를 따라 총총 뛰어갔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1층으로 가는 거야?”
“그래. 가서 숙련된 자들이 어찌 검을 잡는지 지켜보고,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거라.”
“아, 나 낯 많이 가리는데.”
“농이 많이 늘었어. 썩 듣기 좋지는 않다만.”
끼이익.
이안이 웃으며 고갯짓하자, 경비들이 훈련장 입구 문을 열어주었다. 동시에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전사들이 힐끔거리며 두 사람을 집중했다.
“누구지? 처음 보는데.”
“아아. 저자는 이안 히엘로 자작이군.”
“이번에 마법부에 들어간다는, 최초의 귀족 마법사.”
“그러면 그 옆의 빨간 머리가 호위인가?”
“어이고, 세상에. 변경에서 올라왔다더니, 어디 동네 코흘리개를…….”
몸으로 먹고 사는 자들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투박하고 거칠다. 베릭이 귀를 쫑긋거리며 그쪽을 쳐다봤으나, 그들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노골적인 비웃음만 흘리곤 했다.
“저 X새끼들이 지금 나 보고 코흘리개라는 거지?”
“베릭. 저자들은 귀족이 데려온 외부 기사들이다. 천박하니 상대할 것 없고, 네가 스승으로 삼으며 표본으로 볼 것은 저기, 저자들이다.”
베릭이 흰자를 뒤집으며 미친 듯이 쏘아보자, 이안이 손으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었다. 저 멀리, 황궁친위대의 훈련복을 입은 자들이 서로의 폼을 봐주며 검을 겨누고 있다.
“무릇 태양을 향해 던진 창이 제일 멀리 날아간다 하지 않는가. 황궁에서 황제 폐하를 모시는 자들이니, 베릭 네가 배울 것이 많을 게다.”
그 사이에는 바르사베도 끼어있었다. 아직 견습이라 배움을 받는 처지긴 했어도, 검술을 익히는 자세가 진중하고 남다르다.
“어금니도 있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있을 터이니, 열심히 해보아라. 내가 일러준 것, 잊지 않았지?”
이안의 말에 베릭이 코를 킁, 하고 훌쩍이며 웃기만 했다. 영 못 미덥지만, 2층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다른 귀족들의 시선이 따갑다. 체면상, 이안이 더 이상 1층에 머무를 순 없었다.
“잘 봐요. 주인님.”
“심하게 터지지만 말아라. 마법부에 데려갈 수가 없으니까.”
아마 오늘은 베릭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날이 될 터였다. 강한 자들을 만날 때마다 성장했던 자이니, 바리엘에서 날고 긴다는 자들과 맞부딪쳐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
‘특히나 겸손과 자제를 좀 배웠으면 좋겠군.’
베릭은 이안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능청스럽게 한쪽 눈썹을 찡긋거리고서 훈련장으로 나아갔다. 2층으로 올라간 이안은 바로 다른 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오. 이안 히엘로 자작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날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리 다시 뵙게 되는군요.”
“안녕하십니까. 세르오 가의…….”
“말론 호프 세르오입니다.”
이안이 신년회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던 귀족이었다. 그는 이리 다시 만나 반갑다는 듯 악수를 요청했다.
“듣기로는 오늘 마법부에 입부하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전에, 호위기사가 워낙에 호전적인 자라 이리 들르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런 것 같군요.”
…과연 그런 것 같다고?
말론의 의미심장한 말에 이안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베릭이 아까 자신을 씹어대던 사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코가 거의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읊조리는 인사.
“안녕하십니까? 저는 베릭인데요, 아, 거 X발. 가만 보니까 실력이 X나게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감탄해서 제 주둥이가 떡 벌어지니 이거 안 다물어집니다. 시간도 많아 보이시는데 저랑 한판 해주실래요? 공손하게 한 수 부탁드립니다. 예, 거절하면 그냥 제가 이긴 걸로 할게요.”
이안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분명 저가 알려준 인사말이 맞긴 맞는데, 조금씩 변형되다 못해 변질하고 말았으니. 말론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고 베릭을 손가락질했다.
“하하하. 깜찍하네요. 어디서 주우셨습니까?”
“저도 기억이 안 납니다. 어디서 주웠는지.”
“저자의 주인이 아마… 아아. 저기 있네요. 타비엔나 자작이십니다. 아시려나 모르겠어요.”
“신년회에서 본 기억은 없군요.”
“네. 정확히 기억하셨습니다.”
이안의 대답에 말론이 씨익 웃었다. 본 연회장에 들어올 수 없는 귀족이라 하면, 작위도 작위지만 영향력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아마 최근에 돈으로 작위를 산 자가 아닐까 싶다.
“기사들은 꽤 데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베릭 주위를 지켜보고, 몰려드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베릭은 기세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시비 붙은 자의 이마를 머리통으로 비비고 있었다. 아까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며 뒤집은 게, 제대로 맛 간 것 같다.
“그 사업을 주로 합니다. 원래 뒷골목 출신의 시정잡배 너부렁이였다고 하는데, 수완이 좋은지 용병소개소가 꽤 크게 성공했어요.”
아마 작위를 얻은 것도 황궁 훈련장에 출입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기사들의 경력에 ‘황궁’ 글자만 들어가도 값어치가 배 이상으로 뛰니까 말이다.
이안은 말론이 건네는 음료수로 입을 축이며 베릭을 지켜봤다.
“쪼끄만 새끼가 겁도 없이 지금…….”
“X발. 그래서 붙을 거야, 말 거야? 쫄? 쫄?”
황궁 훈련장, 특히나 이처럼 다들 모여서 실력을 겨루는 자리에는 상호 간의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내는 모욕으로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제 주인인 타비엔나 자작을 올려다봤다.
“이거 붙어도 되겠습니까?”
타비엔나는 이안을 힐끔거리더니, 콧수염을 돌돌 말아댔다. 원래라면 최대한 품위를 지켜가며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상대가 화제의 중심인 이안 히엘로 아닌가. 마법사의 호위를 꺾었다는 소문이 돌면 그만한 프리미엄도 없으리라.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안 히엘로 자작님.”
“뜻대로 하시지요.”
타비엔나가 의례적으로 묻자, 이안이 가볍게 손짓했다. 같은 자작이면서도 격이 느껴지는 처세였다.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내는 웃통을 훌렁 벗으며 베릭의 머리통을 밀쳤다.
“좋다. 자초한 일이니 후회 말아라. 대가리가 시뻘건 게, 피 좀 나도 티 안 날 것이다.”
복슬복슬한 가슴 털 따악! 사람 머리통만 한 알통 따악! 사내가 이를 아드득 갈자, 베릭은 손바닥에 침을 퉤 뱉고서 웃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님은 저한테 두 수 배우세요.”
“시끄럽구나! 어디까지 나불댈 수 있나 보자!”
“뻗지 마라! 뻗으면 가슴 털 다 뜯어버릴 거니까!”
쉬이이익!
사내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워낙 호전적인 자가 많이 모이다 보니, 시비로 시작한 맨손 대련은 흔하게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체격 차이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그래도 저 붉은 머리, 마법사의 호위래.”
“그래? 그러면 해볼 만할 수도 있겠네.”
“어이구, 몸놀림 잽싼 거 봐라. 좀 치는구먼.”
“길바닥 출신인가 보지? 발놀림이 날것 그대로잖아.”
워낙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 많았기에, 인근의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했다. 저 멀리, 황궁친위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땀을 닦아내며 저것 좀 보라며 웃었다.
“하여간 천박하기는. 저것들도 전사라고, 쯧쯧.”
“난 이래서 자유 훈련날 나오는 게 싫어.”
“그래도 쟤, 꽤 괜찮은데? 바르사베, 봐봐.”
“푸흡!”
바르사베는 물을 마시다가 그대로 뿜어버렸다. 황궁 훈련장에 온다고 말은 했지만, 진짜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그녀는 입가를 스윽 닦으며 경악스러운 시선으로 베릭을 살폈다.
“이야- 호! 아하하하!”
빠아악! 빠악!
퍽! 퍼억!
마치 놀이를 하는 것처럼 기합을 넣어가며 주먹을 꽂아 넣고 있었다. 가벼운 태도와 달리 그렇지 못한 공격. 사내가 힘겹게 받아낼 때마다 들리는 둔탁한 타격음이 그 힘을 짐작하게 했다.
“뭔데, 아저씨? 아까 나불대던 주둥이 다 죽었나?”
“이, 이 새끼가…….”
“그러니까! 사람은! 겸손! 하라고! 우리! 주인이!”
빠악!
쟤가 지금 누구한테 겸손을 운운하는 거지?
이안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내젓는 동안, 말론은 호탕하게 웃었다. 박수까지 쳐대며 말이다. 본디 대련이라 하면 당사자들끼리는 실력을 겨루는 게 목적이요, 구경꾼들에게는 볼거리를 선사하는 게 미덕이지 않은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대련이었다.
“하하하! 이안 경, 참으로 쓸 만합니다! 저놈, 얼마에 사셨습니까?”
“고기반찬 값만 있으면 될 것입니다.”
“네? 아하하! 가성비도 좋군요!”
얼마나 처먹는지 알면 까무러치겠지만.
빠악!
체공 시간부터가 두 사람의 실력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베릭은 마치 발을 땅에 딛지 않은 것처럼 계속 날아다니며 사내를 타격했다. 바닥으로 코피가 후드득 떨어지자, 상대는 코를 틀어막은 채 숨을 헉헉 내쉬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진짜!”
채앵!
결국, 검이 뽑혔다. 가벼운 오락으로만 보던 구경꾼들의 분위기가 일순 뒤집혔다. 훈련장에서 검을, 그것도 목검이 아닌 것을 빼 들다니. 이는 진정으로 끝까지 가보겠다는 암묵적인 신호탄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잘 됐다. 나도 보여줄게. 얼마 전에 대장간 가서 날을 싹 갈았거든. 사각사각 스치기만 해도 종이가 잘려 나간다?”
베릭 역시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광기를 뚝뚝 흘리며 중얼거렸다.
“사람 팔도 잘 잘리려나?”
“또, 또라이…….”
채앵! 챙!
두 사람이 다시금 합을 주고받는 동안, 바르사베는 마른침만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들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
“바르사베.”
“아, 대장님.”
황궁친위대의 대장 중 한 명이자, 바르사베의 상관, 그리고 페트레이오의 친우. 제이럿이었다.
“저자가 이안과 그 부하구나.”
“저기, 대장님.”
스윽.
그는 정복 웃옷을 정리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짧은 사이, 베릭은 사내를 난도질 쳐놓았다. 사내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피와 함께 흘렀다. 베릭이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검으로 목덜미를 툭툭 쳐댔다.
“아이, 쯧. 밖에서 봤으면 바로 뎅강뎅강인데.”
“흐윽, 살려, 살려 주…….”
“아잇! 당연하죠. 여기는 황궁이잖아요. 아하하. 대신 가슴 털 좀 자를게? 앞으로는 함부로 웃통 까지 마세요. 보기 X같으니까.”
처억.
베릭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쉰이 훌쩍 넘어 보이는 중년이었으나, 기세가 단단하고 굳건하여 품위가 남달랐다.
“그대가 이안의 부하인가?”
“부하? 음음. 그렇다! 내 주인이 이안이다!”
베릭이 위쪽을 힐끗 보더니 이내 당당하게 소리쳤다. 대답을 들은 제이럿이 검 손잡이를 붙잡았다.
“나는 황궁친위대장 제이럿이다. 보아하니, 실력이 꽤 우수한 자인 것 같은데 합을 맞춰주었으면 한다. 어떤가?”
어떠냐고? 베릭이 아까 사내가 했던 것처럼 이안을 시선으로 찾았다. 마치 허락을 구하듯이. 이안은 난간에 몸을 반쯤 내밀며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웃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