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2
제132화. 적수를 만나다
“친위대장께서 친히 대련을 청하니, 베릭에게는 참으로 뜻깊은 영광이로다.”
이안의 말에 친위대장 제이럿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베릭은 피로 범벅된 손바닥을 웃옷에 슥슥 문지르더니, 제이럿에게 내밀었다.
“헤헤. 그러면 한판 할까? 응?”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런 걸까.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아니면, 시비 털렸던 사내를 개떡으로 만든 것에 만족하는 걸 수도 있고. 제이럿은 베릭의 손을 굳은 표정으로 내려다보기만 할 뿐, 잡지 않았다.
“손 안 잡아요?”
“…대련을 허락하십니까? 이안 히엘로 자작.”
이안은 가볍게 턱을 괸 채 그를 내려다봤다. 표정에 살기가 배어있지 않나. 보통 맨손 대련으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그는 작정한 것처럼 검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죽이려고 드는군.’
이자가 왜 이러는지 짐작할 만한 건, 바르사베가 그러했듯 페트레이오로 비롯된 오해다. 페트레이오와 나이 대도 비슷하고, 부대장 출신이었다고 하니 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전우이리라.
“아조씨, 예의 밥 말아 처드셨네. 나 손 내밀었잖아!”
베릭이 노발대발 짜증을 부려대며 손을 흔들었다. 시건방진 태도도 그렇고, 단어 선택도 그렇고… 한 번쯤 개 터질 필요가 있긴 했다. 사막에서처럼, 격한 위기를 겪고 나면 한 발자국 성장하는 게 베릭이었으니까.
게다가 저 위에 수많은 실력자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겸손과 예의를 몸소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좋소. 대신, 조건이 있다네.”
“조건?”
제이럿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대련에 내기를 거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안은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부드럽게 덧붙였다.
“내기는 아닌데, 혹시 원하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대와 내 검사의 실력 차이가 확실히 있음은 분명하니, 누구든 원한다면 대련을 종료하는 것으로.”
“이안… 아니지, 주인님! 실력 차이는 무슨!”
“어떠한가, 친위대장의 이름으로 수락하겠는가?”
밑에서 베릭이 지랄 발광을 해댔지만, 이안은 가뿐히 무시했다. 사막과 달리 이곳에는 베릭이 숨을 껄떡대도 막아줄 만한 자가 없었다. 그러니 미리 수를 써두는 수밖에. 제이럿은 담담한 눈빛으로 이안을 쏘아보고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 시건방진 놈의 혀부터 잘라 버리면 되겠구나, 제이럿은 그리 다짐하며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기다림에 지친 베릭이 맨손으로 덤벼들자, 그의 주먹을 반사적으로 잡아버렸다.
타앗!
“오호, 아저씨! 반응 좋네.”
“…….”
“어라?”
베릭이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점점 강하게 옥죄어오는 제이럿의 악력. 마치 베릭의 손 자체를 으스러트릴 것 같았다. 당황한 베릭이 발버둥 치며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퍼억!
“이거 놔! 안 놔?”
“…까불지 마라.”
하지만 결국에는 두 손 다 잡혀 버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아드득, 뼈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베릭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미친!”
“대련할 때는 예의와 존중을 갖추는 게 기본이다. 네놈의 방종한 행태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
“지랄하네. 꺼져!”
까득!
베릭은 멀어지려던 힘의 방향을 바로 바꾸어, 제이럿 목덜미에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살점을 뜯어낼 것처럼 물어버렸다. 여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제이럿이 화들짝 놀라서는 베릭의 손을 놓아버렸다.
“방금 제이럿 님 목덜미를 문 거야? 진짜로?”
“와, 미친 새끼네. 저거 제대로다.”
“보기에 좀 그래서 그렇지 괜찮은 수였어, 안 그랬으면 손 절대 못 빼. 바로 뭉개져서 검도 못 잡을걸?”
“세상에. 길바닥 출신이 다 저런 건 아니지? 실전에서 상대하려면 까다롭겠다.”
이제 훈련장에서 그들을 주목하지 않은 자가 없다. 친위대장과 이안 히엘로 자작의 호위가 대련을 하다니! 이만한 볼거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제이럿이 목덜미를 문지르는 동안, 베릭은 웃으며 입가를 매만졌다.
“아하. 대장은 역시 달라. 나 진짜 깜짝 놀랐다!”
“하는 짓이 영락없이 개새끼로구나.”
“응, 칭찬 감사!”
손을 탈탈 털어대며 다시금 덤벼드는 베릭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전투에 관한 학습 능력 하나만큼은 기민하여, 본능적으로 제이럿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우쳤다. 짧은 순간, 짧은 합을 통해.
‘잡히면 X된다! 그러면 안 잡히면 되지! 좋아!’
베릭은 상체 대신 하체 위주로 공격을 퍼부었다. 최대한 몸을 낮춰 아래로 파고드니, 제이럿이 아까처럼 일방적으로 잡아내기 까다로웠다.
‘생각보다 영리하군.’
타악! 타악!
제이럿은 무리 없이 공격을 받아내며 상대를 관찰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하들을 통솔하며 생긴 습관적인 분석.
‘또한 천박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힘이며 속도며 나무랄 것이 없어. 무엇보다 깡이 좋군. 이런 건 훈련으로도 얻기 힘든 것인데 말이지.’
그러다 문득, 페트레이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아깝긴 해도, 이자는…….
“이제 그만 하지.”
“어?”
신명 나게 발차기를 날리던 베릭이 멈칫거렸다. 공격할 틈을 안 줬다 여겼는데, 제이럿의 말 한마디와 함께 기류가 바뀌는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마치 그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같은.
빠아악!
콰앙!
동시에 돌덩이 같은 제이럿의 주먹이 베릭의 안면에 내다 박혔다. 골이 박살 날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몸이 붕 떠오르는 게 느껴지고, 이내 세상이 뒤집혔다.
“어, X발.”
한 방에 나뒹군 것이다. 베릭은 코에서 흐르는 피를 슥 닦으며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빠르고 강한 주먹은 처음이다. 천려족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와, 제대로 꽂혔는데 기절을 안 하네.”
“눈뜬 채 기절한 거 아냐? 아니면 빗맞았거나.”
“아니, 몸이 날아갔는데 그게 어떻게 빗맞은 거야.”
“헉. 저, 저, 새끼. 일어난다.”
눈앞이 핑 도는 기분. 베릭은 비틀대며 일어서더니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이안은 난간에 기댄 채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었다.
“아하하. 하하. 와, 아저씨 진짜…….”
빠악! 퍽!
뭐라 말을 끝맺기도 전에, 제이럿의 무자비한 공격이 쏟아졌다. 제이럿은 쓰러진 베릭의 목덜미를 왼손으로 잡고, 한쪽 발로는 명치를 꾹 누른 채였다. 오른손이 베릭의 얼굴을 후려칠 때마다 뭉근한 피가 터져 올랐다.
“이안 경, 저거 안 말려도 되겠습니까? 조금 있으면 숨넘어가겠는데요? 아, 아무리 고기반찬값이라 하여도 아까운 놈인 것 같습니다만. 크흠.”
보다 못한 말론이 슬쩍 이안을 돌아봤다. 하지만 사막에서 베릭의 밑바닥을 보았던 이안은, 아직 그가 끝까지 몰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이아아안!”
두들겨 처맞던 베릭이 씩씩거리며 이안을 불렀다. 두 주먹으로 겨우 제이럿의 공격 하나를 막아낸 틈이었다. 찢어질 것 같은 목소리에 훈련장 모두가 숨을 죽였다. 곧 죽기 일보 직전인 자의 비명 같았으니.
“나, 이 새끼 죽인다아아!”
“그래. 마음대로 하거라.”
“으아아아악!”
지이이잉!
퍼엉! 펑!
이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베릭이 마력을 개방했다. 순식간에 주위로 휘몰아치는 칼날 같은 바람. 제이럿을 비롯한 황궁친위대원들이 놀라서 멈칫거렸다.
‘마검사?’
타앗!
베릭은 마력의 힘으로 겨우 제이럿을 떨쳐내고, 몸을 낮춘 채 씩씩거렸다. 입가로 주륵 흐르는 핏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아, 씨! 진짜 X나 아프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마검사인가?”
“왜! 마검사라 하면 덜 패려고? 까지마, X발! 내가 지금 총 마흔다섯 대 처맞았거든? 그대로 돌려줄게. 와, 오랜만에 재밌네! 응? 재밌다! 아하하하!”
타다다닥! 타악!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구경꾼들은 겨우 그의 잔상만 쫓으며 궤적을 가늠했고, 맞선 제이럿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연신 뒤로 물러섰다. 베릭이 발을 딛는 곳마다 폭발적인 에너지의 흐름이 터졌다.
지이잉!
“죽어어어!”
“흐읍!”
쿠웅!
베릭의 주먹을 잡아낸 제이럿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차원이 달라졌다. 아무리 마력의 힘이라고 하나, 이 정도면 새로 태어난 수준 아닌가? 거기에 이성을 잃은 것처럼 휘몰아치며 덤벼대니…….
“젠장.”
지이잉.
“대장님!”
“대장님이 마력을!”
“말도 안 돼!”
제이럿 역시 마력을 개방했다. 지켜보던 친위대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마력을 개방하는 건, 마물 전투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으니까.
다들 충격과 경악으로 말문이 막혀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드넓은 훈련장에는 베릭과 제이럿, 둘의 기합만이 거세게 울렸다.
“이놈이…….”
타앗!
마치 맨손으로 짐승과 싸우는 기분이다. 제이럿은 베릭을 멀리 밀쳐낸 다음 검을 뽑아 들었다. 한 겨울의 서릿발처럼 찬 기운이 검의 궤를 따라 흐트러졌다.
“결국 끝을 자초하는구나.”
“아하. 검 쓰자고? 좋다, 좋아.”
처억.
베릭은 씨익 웃으며 역시 마찬가지로 검을 빼 들었다. 마력으로 빛나는 붉은 눈동자는 마치 용암이 들끓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까는 가슴 털만 잘랐거든. 살덩이는 얼마나 잘 썰리는지 못 봐서. 아, 나 너무 기대돼!”
“미친놈. 제정신이 아니구나.”
“몰랐나 봐? 제정신으로는 세상 못 살아!”
지이잉! 지잉!
파지지직!
베릭의 마력에 반응한 검이 보랏빛으로 타올랐다.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사방을 가득 메웠고, 곧 폐까지 잠식할 것 같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연기 속에서 번쩍이는 작은 번개들. 듣도 보도 못한 검인지라, 제이럿이 멈칫거렸다.
“대체 그 검은…….”
“나도 몰라! 오다 주웠다!”
“베릭!”
“앙?”
힘껏 뛰어들며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안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베릭은 반사적으로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검에 마력을 넣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아아아. 맞다. 근데 한번만 봐주면 안 돼?”
“안 된다.”
적어도 검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질 때까지는.
베릭이 뒤를 돌아보며 사정하는 동안, 이안과 제이럿이 은밀하게 시선을 나누었다.
“아니, 뭔지 모르니까 일단 휘둘러보고-”
빠아아악!
제이럿은 이때다 싶어 바로 베릭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마력까지 주먹에 감아 넣은 것인지라, 일반인이라면 목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다.
“억!”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베릭은 짤막한 비명만 내지른 채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동시에 마력에 반응하던 검 역시 원래의 흑색으로 돌아왔다.
당황스러운 적막만 감도는 훈련장. 친위대원들이 모조리 달려와 대장의 안위를 살폈다.
“대장님. 괜찮, 괜찮으십니까?”
“이 새끼, 어떻게 할까요? 연행할까요?”
“대련을 한 것 아니냐. 연행은 무슨.”
“아씨, 대장님. 피 나요!”
바르사베가 허둥지둥 손수건을 꺼내며 대장의 목덜미를 받쳐주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대장님. 그리고 치료하면서 말씀드릴게요. 저, 아버지 유품 받아왔습니다.”
뜻밖의 말에 제이럿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여기서 할 만한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부하들의 걱정을 받으며 훈련장 밖을 나가 버렸고, 이안 역시 1층으로 내려왔다.
“베릭. 괜찮은가?”
“으음…….”
“쯧쯧.”
그리고 쪼그려 앉아 베릭의 이마를 짚어주었다. 사막에서 그러했듯, 체력 회복에는 마력이 최고 아니겠는가.
지이잉.
이안의 눈빛이 금안으로 변하자, 베릭의 찌푸려진 미간이 점점 조금씩 펴졌다. 덩달아 따라 내려온 말론은 피로 낭자한 바닥을 차마 밟지도 못했다.
“죽, 죽었습니까?”
“아니요. 쉽게 죽지 않는 자입니다.”
“그, 아까 그 검은 무엇입니까?”
“…….”
이안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만 으쓱거렸다. 아까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차갑게 식은 검만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 * *
한편, 로만드로의 저택.
십자수를 놓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비비안나 부인이 바깥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미니 역시 마찬가지. 후다닥 달려나가 문을 여니, 우편부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여기가 로만드로 님 저택 맞습니까?”
“그런데요? 우편물이 있나요?”
“네. 카렌나 시장님이 보낸 것인데, 여기로 전달해도 될까요? 수령인은 이안 님이라 되어 있군요.”
“네네. 이안 님, 여기서 지내십니다. 저 주십시오.”
“여기 서명을 좀…….”
미니는 서신을 받고서 저택관리인 도장을 꾹 찍었다. 꽤 두툼한 서신이다. 비비안나가 십자수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미니. 무슨 서신이니?”
“카렌나 시장이 보냈다고 합니다.”
“보자.”
까막눈인 미니와 달리, 비비안나는 겉면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도적 심문 결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