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3
제133화. 입부식
번쩍!
기절했던 베릭이 한번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 마지막 기억이 황궁 훈련장, 그리고 이안이건만. 정신 차리니까 낯선 침대 위다.
“아.”
몸을 조금만 틀어도 근육이 갈래로 찢겨나가는 고통이 밀려왔다. 두개골은 또 어떻고? 주로 제이럿이 얼굴을 집중하여 공격한지라, 눈 떠진 게 용할 정도다. 베릭이 조심스레 코를 매만졌다.
‘와씨, 다행이다. 코 제대로 붙어있네.’
베릭이 이안을 찾아 나서려고 할 때였다. 침대 옆에 난 커튼으로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틈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자, 저가 누워있는 곳이 의무실이라는 걸 알아챘다. 텅 빈 백색의 침대 여러 개와 따스한 햇볕 그리고 알코올 냄새가 이상하게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상처는 좀 괜찮은가?”
“그것은 자작님의 검사에게 물어보심이 맞겠습니다.”
“무릇 맞는 자가 아픈 만큼, 때리는 자도 아프기 마련이지.”
제이럿은 붕대를 감은 손으로 제 무릎을 톡톡 치며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기억 속의 친우 이름을 꺼냈다.
“…페트레이오 말입니다. 바르사베에게 들었습니다. 마지막을 지켜보셨다고.”
“보아하니 이미 황궁친위대에는 소문이 난 것 같더군. 그자는 소임을 다 하였고, 나 역시 내 입장대로 행동했을 뿐이네. 어쭙잖은 복수 따위는 당치도 않아.”
달그락.
이안은 찻잔을 들며 가볍게 꾸중했다. 중년의 사내와 소년의 모습이거늘, 말과 행동으로는 누가 윗사람인지 확실히 보였다.
“그래서, 실력이 어떻던가?”
“자작님의 검사 말입니까?”
커튼 사이로 훔쳐보던 베릭이 기척을 숨긴 채 귀를 쫑긋거렸다. 솔직히 지금껏 봐왔던 수많은 전사 중 으뜸이라,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떠할지 궁금했다. 혹여 박하다면 바로 다시 덤벼들어 생각을 고쳐주겠노라고, 베릭이 눈을 반짝였다.
“기본기가 엉망인 것치고는 쓸 만했습니다. 여러모로 타고난 게 있더군요. 기척 숨기는 법은 형편없지만 말입니다.”
제이럿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자, 베릭이 커튼을 확 젖혔다. 얼굴이 벌게져서는 당황한 것 같다.
촤악!
“아니, 왜 훔쳐보고 그래?”
“어이가 없구나. 훔쳐본 것은 네놈이지.”
“베릭, 정신 차려 다행이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두고 가려 했거든. 입부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이안이 방긋 웃으며 회중시계를 딸깍거렸다. 훈련장에서 뻗은 지 벌써 세 시간. 아주 알맞게 정신을 차린 것이 기특할 정도다.
“두고 가긴 누굴 두고가, 나 집 어떻게 찾아가라고?”
“애도 아니고, 설마 집을 못 찾아올까.”
“그리고 아직 결판 안 났어! 아저씨가 비겁하게 뒤통수쳐서 중단됐으니까, 다시 붙어야지.”
“베릭. 그걸 졌다고 하는 거란다.”
“아닌데? 진 거 아닌데?”
베릭이 아득바득 우겨댔으나, 이안의 표정은 온화하여 흔들림이 없다. 제이럿은 그런 베릭을 보며 한숨만 내 삼킬 뿐이다. 영 못마땅하긴 하지만, 저런 것도 거두어 황실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이 친위대장의 소임 아니던가.
“베릭. 황궁친위대장으로 그대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 황실친위대에 입단하여 황제 폐하를 위해…….”
“안 해.”
“…고기반찬도 잘 나온다.”
“…그래도 안 해.”
“어째서?”
이안에게 넌지시 들었던 회심의 미끼까지 던졌으나,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다. 베릭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비겁하게 뒤통수 갈기는 대장 아래서 뭘 배워?”
“이런 시건방진…….”
“이른 쉬근방쥔~ 아까 그것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겼다. 진짜로.”
베릭이 놀리듯 혀를 베- 내밀고 눈을 뒤집어 깠다. 유아적인 모욕에 제이럿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이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불꽃이 튀어 오르자, 이안이 중재하여 막아섰다.
“자자, 그만들 하시고. 베릭, 입단은 천천히 생각해 보되, 훈련장에 출입하여 수련하는 것은 나 역시 권장하는 바다. 로만드로의 저택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작은 앞마당에서는 체력 단련이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집에는 임신부가 있으니 과격한 행동도 금물이지 않나. 베릭은 조금씩 설득이 되는지, 턱을 긁적거리며 끄덕였다.
“게다가 제이럿 대장만큼은 아니지만, 실력자들이 여럿 있어서 너에게 좋을 터다. 나 역시 입부하면 주기적으로 황궁 출퇴근을 해야 하니, 함께 오가면 된다.”
“그래? 그러면 좋아. 내가 낯을 많이 가리잖아.”
베릭이 활짝 웃자, 제이럿은 지랄도 풍년이라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베릭에게 고갯짓했다.
“하면, 앞으로 예의 있게 행동하거라. 훈련장에 있는 동안에는 제이럿 대장이 너를 도와줄 것이니.”
“예의?”
대장이 베릭의 가능성을 보았기에, 협의가 가능한 내용이었다. 베릭을 지도하여 황궁의 인재로 만드는 것. 반면 베릭에게는 개인의 성장이 주어질 터이니, 이만큼 좋은 거래가 없을 것이다.
“예의. 음음.”
베릭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실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 제대로 뜨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제이럿 대장을 힐끗거린 다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분명 인사를 하는 것인데, 존중의 느낌은 하나도 없다.
‘갈 길이 멀겠군.’
대장이 이마를 짚자, 이안 역시 일어섰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또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하겠네. 부탁한 것을 잊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의문의 흑색 검과 마검사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이한 베릭의 존재. 황궁친위대장이니만큼 정보를 접하기 수월할 것이다. 이안이 의무실로 나가자, 베릭도 후다닥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부탁? 무슨 부탁?”
“몰라도 된다. 코뼈는 멀쩡한가?”
“응응. 숨 쉬는데 문제없어.”
드르륵! 탁!
제이럿은 닫힌 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자작의 말 그대로군. 저런 몸 상태로 벌떡벌떡 일어나 걷는 것 자체가 의문스럽다.’
고도의 능력을 지닌 마검사라면 마력으로 제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가능은 했다. 하지만 마법사조차 제일 까다로워하는 것이 치유계 능력이거늘, 검을 쥐는 자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확실히, 마검사 이전에 무엇인가가 있다.
‘적으로 두면 언젠가 바리엘에 부담이 될 자다. 그것은 분명해. 그러니 초장부터 잡아두는 게 제국을 위한 일이리라.’
타악.
“어? 이안 자작이랑 미친놈 갔습니까?”
“갔다고요? 그 몸으로? 움직여요?”
의무실 안쪽 창고에서 바르사베가 의사와 함께 들어섰다. 제이럿은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좌우로 내저었다.
* * *
그 시각, 마법부 본관의 대회의실.
비정기적인 대회의 외에는 잘 쓰지 않았으나, 신입을 소개하여 입부식 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 얘기 들었어? 오늘 황궁 훈련장에서 제이럿 대장이 마력을 개방했다고 하던데.”
“뭐? 어쩌다가? 마물이라도 나타났대?”
“아니, 뭐라더라. 외부 기사랑 대련하다가 그리됐다고 하는데, 진짜 볼만했다 하더라고.”
“외부인? 하하. 그자는 이제 출셋길이네. 제이럿한테 그 정도 했으면 바로 입단 가능한 거 아닌가?”
“주인이 순순히 팔려나 모르지. 안 그래도 요즘 마법부에 예산 할당이 많이 돼서, 황궁친위대나 경비대에서 맨날 죽는소리 내잖아. 마검사라는 놈들, 처먹는 양 생각도 안 하고.”
“그나저나, 오늘 이안 히엘로 자작 입부한다며?”
“시간이 슬슬 다 됐는데…….”
콰앙!
마법사들이 모여서 바깥을 살피는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마법운용부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장인 헤일을 비롯하여 주축은 토미, 나키나. 그들이 들어오자, 주변에서는 다시금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 히엘로 자작 배치된다니까 뭐래?”
“별말 없던데? 헤일 대장 성격 알잖아.”
“실력만 있고 실세 잡는 법을 모르네그려.”
토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돌아봤으나, 마법사들은 수군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헤일은 무덤덤하게 담배만 잘근대며 시계를 확인했다.
“헤일 대장님. 신입 얼굴 봤습니까?”
“어. 신년회 때. 곱더라.”
“토미! 막내 탈출하나 싶었는데, 귀족이 들어와 버렸네. 어찌 선배 노릇이나 제대로 하겠어?”
“네가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마법지원부와 마법운용부 사이에서 날 선 농담이 오갔다. 다른 부서들은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할 뿐. 시간이 지나자, 대회의실 앞문이 활짝 열렸다.
드르륵!
“웨슬리 장관님 들어가십니다.”
보좌관의 안내음에 다들 정숙하며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서는 금발의 녹안 소년. 신년회에서 본 자들은 재차 속으로 감탄하였고, 처음 본 자들은 괜히 눈만 굴리며 당황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잘 생겼다는 말을 왜, 아무도 안 해줬대?
“모두 모였는가?”
“그렇습니다. 장관님.”
“다들 전해 들었듯이, 오늘 마법부에 새로운 신입이 들어왔다. 이안 히엘로 자작. 바리엘 역사상 최초의 귀족 마법사라 하는데, 과연 그 명성에 맞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몇 년 만에 들어오는 신입을 소개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김빠지는 목소리였다. 마법사들이 비웃음을 노골적으로 흘려댔으나, 이안은 귀가 먹은 것처럼 덤덤한 표정이다.
“인사라도 할 게 있으면 하지.”
웨슬리의 말에 이안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주위를 슥 둘러봤다.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이 될 헤일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이안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귀족이라 여겨 불편해하지 마시고,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사여구를 붙여봤자, 호응 없는 것은 똑같을 터였다. 간결한 인사말에 다들 침묵하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제일 먼저 박수를 친 것은 나키나.
짝짝짝.
“환영하네.”
참으로 어색한 분위기다. 웨슬리 역시 상투적으로 박수 쳤고, 이내 다른 마법사들 역시 의례적인 박수를 보내왔다. 웨슬리는 단상에서 내려가라 손짓한 뒤, 헤일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마법운용부의 헤일이 이안 히엘로 자작을 담당하라. 알아서 잘해봐.”
“네. 장관님.”
그리고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다가, 그대로 나가 버렸다. 토미와 나키나가 가까이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사수니까 말은 편히 하지. 나키나일세.”
“반갑습니다. 일전에는 감사했고요.”
“나는 토미다. 앞으로 모르는 건 나한테 물어.”
“네. 그러지요. 고맙습니다.”
도란도란, 인사를 나누는데 마법지원부의 마법사들이 다가와 이안을 훑어봤다. 마법진에 수작을 건 자들이 분명했다.
“오가다 우리도 자주 보게 될 거야? 응?”
“마법지원부 소속인가 보군요.”
“그래. 악수나 할까?”
한 사내가 히죽 웃으며 손을 뻗었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맞잡으려다가, 손끝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에 멈칫거렸다. 손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게 분명했다.
“왜? 싫어? 귀족이라 그런가, 천한 것들이랑은 손잡기도 싫은가 보지?”
“뭐야, 첫날부터 성깔 있네.”
“저래서 같이 일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안 그래도 마법운용부 외골수들이라 지랄 맞잖아.”
“대장님. 헤일 대장 듣겠습니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신입이 저래서 어째?”
아주 고전적이고 유치한 수작질 아닌가.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상 악수는 하는 게 맞다. 이안은 맞잡는 대신, 바로 마력을 개방하여 반사시킬 요령으로 웃어 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 순간.
치이익.
“으아앗!”
헤일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그대로 마법사의 손등에 지져 껐다. 과격한 행동과 달리 표정에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 더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