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4
제134화. 시장의 서신
“이게 무슨 짓인가, 헤일 대장!”
“막 되먹은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으아악! 빨리,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난리가 났다. 이안 역시 속으로 내심 놀란 참인데, 직접 당한 자는 더할 것이다. 그는 담뱃불에 지져진 손을 부여잡은 채 고꾸라져서 고통스러운 신음만 연신 흘려댔다. 동료들이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고, 이내 그의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헤일의 멱살을 붙잡았다.
덩치 차이가 꽤 나서 멱살을 잡은 게 아니라 매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미쳤지? 해보자 이건가?”
“세일로 대장님, 참으십시오!”
“이거 놔!”
대장들끼리는 마력에 큰 우위가 없다만, 헤일만큼은 예외였다. 저 덩치를 보라. 게다가 궁 내에서 사무만 담당하는 마법지원부와 달리 그들은 하루가 멀다고 밖으로 나돌며 마물을 처치하는 현장직이었다. 적을 죽이고 정리하는 전투 감각이 이미 일반 마법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 않나.
“세일로, 남을 죽이려는 자는 자신의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법이거든.”
“뭔 개소리야!”
“네놈 부하가 우리 애 손바닥을 홀랑 태워먹으려고 해서 내가 먼저 지졌다. 이의 있나?”
세일로는 멱살을 천천히 풀더니 나뒹구는 제 부하를 살폈다. 그의 오른손에 화염용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만약 이안이 그의 손을 맞잡았더라면, 손바닥 전체에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래도 처신이 과하다!”
“과한가? 그렇다면 미안하다. 내가 직접 화염을 불러낼 걸 그랬군.”
“…….”
헤일은 다시금 담배를 꺼내물며 중얼거렸다. 록산 전투로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이전부터 그의 전투계열 마법은 유명했다. 묵직하고 크게 파고드는 그 위력이란, 정치적인 입지를 제외하고서도 꽤 깊은 인상을 주었으니까.
혹여 여기서 마법을 쓴다면…….
“재수가 없으려니까! 마법부는 공동체 사회라는 걸 명심해! 신입 관리도 잘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다가는 가만있지 않겠다. 웨슬리 님께 보고하겠어!”
세일로는 보란 듯이 큰소리를 내지르며 부하들을 챙겨 나갔다. 대답 따위는 들을 새도 없이 말이다. 구경하던 다른 부서들 역시 마찬가지.
“그럼 수고요.”
“신입, 환영하오. 고생 좀 하시게.”
“말 섞지 마, 등신아.”
“자자. 가자. 가서 일이나 하자.”
“아이고, 실례합니다. 지나갈게요.”
흥미를 보이는 것과 별개로 얽히기 싫다는 분위기를 팍팍 흘려대고 있었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대회의실에는 적막만 감돌았다.
“하아.”
침묵을 깬 것은 토미였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헤일을 노려봤다. 뭐라고 하려나? 이안이 그리 생각하는 순간.
“내가 담배로 지지는 거 싫다 했잖아요. 재 떨어진다고.”
그리 말하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바닥 청소를 하는 게 아닌가? 나키나는 킬킬거리며 헤일과 마찬가지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토미가 결벽증이 좀 이상하게 있어. 아무튼, 앞으로는 조심 좀 해. 마력감지 능력부터 키워야겠다. 이렇게 둔해서 막내 노릇 어찌하려고.”
이안이 수작질을 못 알아채고 악수하려 했노라 착각하는 것 같다. 아무려면 뭐 어떤가. 나서지 않고 잘 처리했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마법운용부에 들어온 이상, 뭐가 되었든 잘해보자. 편하게 대해.”
전투에서 서로 등을 맞댈 수 있는 자들.
이안이 기억하기로는, 마법운용부의 이미지가 바로 그러했다. 워낙 현장이 급하고 위험하다 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그만큼 실력 있는 자를 양성하는 게 목표였던 것 같은데…….
“다른 부원들은요?”
“아아. 다들 출근 안 했어. 록산 전투에서 돌아오고 모조리 휴가 중이거든. 또 언제 몸 쓰러 나갈지 모르니까, 별일 없으면 나오지도 않아. 천천히 만나면 돼.”
무릇 부서의 분위기는 우두머리를 따라가는 법이지. 이안이 헤일을 힐끔거리자, 그는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까 못 했던 악수를 하자며.
“반갑다, 막내.”
“저도 반갑습니다. 대장님.”
마법사가 아닌 전사로 살았어도 성공했을 것 같은 기골이다. 그는 이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이내 기지개를 쭉 켰다. 지루한 입부식은 그만 집어치우자는 듯.
“자, 그러면 술이나 먹으러 갈까?”
“대낮부터 무슨 술이에요? 맥주나 먹어요.”
“이안, 맥주 먹지? 내가 귀족 취향은 잘 몰라서.”
“물론입니다. 그런데 제가 일행이 있습니다.”
“일행? 누구?”
드르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리는 대회의실 앞문. 퉁퉁 부은 얼굴의 베릭이 질겁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아아안! 다들 나오는데 왜 안 나와? 길 엇갈린 줄 알았잖아!”
대회의실 건물 입구에서 기다리라 했거늘, 마법사들이 돌아가는 걸 보고서 그새를 못 참고 안으로 들어선 모양이다. 마법운용부 사람들이 그의 몰골을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저거 대체 뭐냐?”
“상태가 영 메롱인데, 걷는 게 용하다.”
“제가 데리고 있는 마검사 베릭입니다. 훈련장에서 대련을 하고 오느라 저렇습니다.”
“그러면 혹시 제이럿 대장이랑 싸웠다는 게 쟤야?”
“그렇습니다.”
토미와 나키나의 시선이 동시에 맞물렸다.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마법운용부. 이안이 들어와서 반갑다 싶은데, 그자가 마검사를 수족으로 두고 있다고? 그것도 한창 화젯거리인 저 녀석을?
‘이거 완전 덤이잖아?’
‘덤이다, 덤!’
토미와 나키나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반갑다는 듯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둘렀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베릭의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도 잠시.
“어허, 우리는 앞으로 이안과 함께할 자다. 너 또한 자주 보겠구나. 잘 부탁한다. 나는 나키나.”
“나는 토미다! 술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술? 고기도 나와?”
“그래! 까짓거, 막내 들어왔으니까 대장이 쏘겠지!”
“나 이번 달 적자다.”
“알게 뭐람~? 가자! 밥 먹고, 고기 먹고! 술 먹자!”
“대장 지갑 제대로 빵꾸 내 보자!”
“오예! 근데 대장이 누군데?”
“너 바보구나? 딱 보면 저기 산적 같은 사내가 대장처럼 보이지 않니? 뭐, 괜찮아. 나는 바보가 좋다. 보니까, 바보만큼 몸빵 잘 치는 애가 없더라고.”
의기투합하여 단번에 똘똘 뭉치는 세 사람. 뒤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이안과 헤일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헤일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제안했다.
“자세한 업무 일정은 술 먹으면서 일러줄 터이니. 그만 가자고.”
* * *
달칵.
“어머나.”
문을 연 미니는 신년회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베릭과, 땀을 뻘뻘 흘리며 그를 옮기는 마부 그리고 힘겹게 한숨 내쉬는 이안을 보면서. 그날은 그래도 밤중이었는데, 훤한 대낮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어쩐 일이십니까? 헉, 베릭 님! 괜찮아요? 대체 얼마나 얻어터지셨으면 상태가 이러하답니까?”
“베릭 왔나? 맞네, 맞아! 제대로 터졌네!”
“의사를 불러와야겠습니다. 이쪽으로, 뉘십시오!”
“쯧쯧. 이놈아, 내가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 했지!”
“음? 그런데 어찌 술 냄새가…….”
호들갑을 떨던 미니가 코를 킁킁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로만드로도 멈칫거리며 베릭의 옷에 묻은 수프 자국을 확인했다.
“마법운용부 환영식에서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아니, 마법부에 들어간 것은 이안 자네인데, 어찌?”
“키킥…. 아, 더는 못 먹어. 그만!”
“그만은, 이놈아! 그래, 그만 좀 하거라!”
따악!
“아아악!”
“아이고, 멍든 데 때렸네. 미안.”
베릭이 비명을 내지르자, 로만드로가 쩔쩔매며 상처를 매만져 주었다. 이안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충 이런저런 일이 있었노라 일러주었다.
베릭이 훈련장에서 제이럿과 대련하고, 입부식을 지나 환영식까지. 아직 해가 채 지지 않은 시간,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나 몹시 고단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안 님, 따뜻한 차 좀 드릴까요?”
“부탁한다, 미니.”
“참나,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군. 제이럿 대장과 대련하고도 목이 제대로 달려있으니.”
로만드로는 혀를 끌끌 차며 테이블 위에 놓인 서신을 이안에게 내밀었다.
“나 잠시 외출한 사이 서신이 왔더라고.”
“오, 카렌나에서 온 것이군요.”
“시장이 도적을 심문하여 보고서를 올린 것인데, 확인해 보게. 하샤! 하샤! 얘는 또 어딜 갔어?”
“하샤가 어딜 갔습니까?”
이안은 실링 왁스를 뜯어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매일같이 소파 구석에 앉아있던 하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아침에도 못 본 듯싶은데.
“요즘 들어 자주 밖에 나돈다네. 뭘 하고 오는지 당최 모르겠어.”
“조심하라 이르십시오. 웨슬리가 주목하고 있을 겁니다.”
하샤의 성격 자체가 진중하여 별로 걱정은 안 한다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이안의 당부에 로만드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릭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의 허리춤에 달린 흑색 검 역시 조심스레 떼어내어 바닥에 놓았다.
사락.
이안은 눈두덩이를 매만지며 서신을 열었다. 생각보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무엇인가 많이 적혀 있다.
-안녕하십니까, 이안 님. 카렌나의 시장 오닉스입니다. 무사 평안하게 중앙에 당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이안 님의 도움으로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하여, 기다리셨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그때 물으셨던, ‘푸른 머리 아이가 어찌 도적을 따라갔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술식에 걸렸던 하샤의 시체가 어째서 도적들과 마주하자 그들을 따라갔는지, 그것이 의문으로 남아있던 상태였다. 이안은 다음 장을 넘기며 글자를 읽어내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도적 두목 역시 확신은 아닙니다만, 추측하기로는 아탄족의 흑색 검으로 인한 현상인 것 같다 증언했습니다.
아탄족. 바리엘 북쪽에서 주로 활동하는 호전적인 종족이었는데, 일명 피의 종족이라 불리는 자들이다. 훗날 제국을 뒤흔드는 마물의 습격에서 세력을 크게 불리지만, 결국 황궁친위대장에 꺾여 사멸하고 마는 자들.
‘그래. 그것도 곧이라고, 내 짐작은 했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우선 보고받은 대로 전언하는 것임을 알아주십시오. 아탄족은 마물의 피를 마시며 영위하는 자들이라, 실로 인간인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이 마물을 부르고자 할 때 쓴 흑색 검이 바로 그것이라, 아마 푸른 머리의 소년이 그래서 따라서 온 것 같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하샤의 시체는 인간이 아닌 언데드.
흑색 검에 반응하였다면 일리가 있다.
-질문드립니다. 이안 님이 말한 푸른 머리칼의 소년이 사람이 아닙니까? 심문을 이어갈수록 도적은 노예상이니 시체가 뭐니, 알 수 없는 말만 해대어 이것이 지방 도시 차원에서 알아낼 일이 아니라 판단했습니다.
이안은 계속 이어지는 글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맨 마지막 장. 그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고 말았다.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그 시장? 딱 보아도 일 못 하게 생겼더구먼! 그런데, 왜? 무어라 하는가?”
-하여, 황궁으로 상세한 정보 열람 요청을 올렸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부디 일전의 제 소홀한 대처에 관하여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그, 함께하셨던 로만드로 자문관님께 말씀 좀 전해주십시오. 그럼, 다시 전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차하면 황궁이, 정확히 그중에서도 웨슬리가 카렌나의 일을 알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