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6
제136화. 혼란 속에서 증명을
웨슬리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실로 대단한 자였다.
그 누구도 그녀의 본이름과 나이를 알지 못했고, 이것은 그녀가 밑바닥 중의 밑바닥 출신이라는 걸 시사했다. 하나 결국에는 최연소 장관이라는 영광과 마법부의 수장이라는 영예 그리고 제국의 두 번째 실세인 2황자 게일의 연인이라는 자리까지 차지했으니. 제국에서 그녀만큼 출세한 자도 손에 꼽았다.
“뭐, 설마…. 이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웨슬리 장관이 게일 저하를 언데드로 만들려 한다니.”
로만드로가 이안의 말을 듣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집이건만,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까지 은밀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딱히 다른 가설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황궁의 축복으로 인해 우회로를 찾으려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화, 황궁의 축복이라 한다면, 황가에는 정신지배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나?”
로만드로의 눈이 다시금 띠용, 커졌다. 분명 온종일 같이 있는 것 같은데 이안은 그런 걸 어디서 주워듣는 것일까. 역시 마법사는 좀 다르구나 싶어서, 탄성만 가볍게 내질렀다.
“그렇습니다. 언데드는 정신지배 마법과 결과는 비슷하지요. 대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술식 자체가 다르고, 더 깊게 나아간다면 마법보다 주술에 가깝습니다.”
“미안하네만, 내가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
“마법은 마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주술은 마력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혈통이나, 개인의 수련 혹은 각종 물건 등으로 신비한 힘을 내는 것입니다.”
하샤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마력은 없으나,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주술가의 혈통이 있었으며 저만의 비법으로 언데드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안은 설명을 거듭할수록, 웨슬리의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누군가 황족을 조종하고자 한다면 마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현재 살아있는 자를 언데드로 만들려고 했던 자가 웨슬리임은 분명하고, 그녀에게 그럴 만한 동기는 게일밖에 없지 않습니까?”
“호, 혹 게일 저하가 웨슬리에게 시킨 것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확실히 있었다. 반란을 품고 있는 자였으니, 당연히 황제나 마리브를 노리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닙니다. 게일은 모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바로 반란에 있어서 사령술이 쓰이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기록, 그것이 이안에게 확신을 주었다. 게일이 알았더라면, 일말의 여지없이 사령술을 쓰려 했을 터. 역사가 분명 바뀌었을 것이다.
“하면, 이제 어쩔 생각인가? 게일 저하에게 웨슬리 장관은 큰 힘이요, 이는 곧 마리브 저하께 위협이니 아무래도 큰 기회가 될 듯한데.”
“저 역시 마찬가지인 생각입니다.”
“웨슬리를…….”
로만드로는 자신의 입을 턱 하니 막았다. 입 밖으로 내기에도 감히 부담스러운 말이었으나, 이안은 방긋 웃으며 가볍게 받아쳤다.
“잘라내야겠지요.”
지금의 마법부는 썩어있다. 윗물이 바뀐다면 아랫물 역시 싹 바뀌리라. 이는 곧 바리엘의 보다 나은 미래를 뜻했다. 또한, 마법부를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키려던 게일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다시 걸리는 게 있다. 웨슬리는 분명 지금 게일에게 제일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 그런데 게일이 그녀를 쉽게 처단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명분을 이용해,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회유하여 옆에 둘 수도 있다.’
게일을 쳐내려면 웨슬리를, 웨슬리를 쳐내려면 게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면 게일에게 한 가지 선택지를 주면 된다.
‘웨슬리가 없어도 마법부에 문제가 없고, 나아가 반란도 문제가 없다면… 그때는 웨슬리를 잘라낼 수 있겠지. 즉, 그녀를 대신할 마법사가 필요해.’
현재 마법부에서 이안이 아는 자 중, 그럴 만한 위인이 있나? 없다. 마법운용부의 헤일이라는 자가 듬직해 보이기는 하다만 아직 확실히 알 수 없고, 웨슬리와 척을 진 것으로 보아 게일과도 안 맞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겠네. 마력의 세기로 따졌을 때도 대적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듯싶다.’
이안의 머릿속에 엉킨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갔다. 침묵과 동시에 아이의 눈이 계속해서 빛나니, 로만드로는 옆에서 그걸 가만히 구경만 할 뿐이다.
“이안,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가?”
“아, 로만드로 님. 서둘러 올라가셔서 비비안나 부인에게 인사를 남기십시오.”
“비비안나에게? 왜?”
“당분간 집에 못 들어오시게 될 것 같거든요.”
청천벽력같은 선언에 로만드로가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왜, 왜에?”
“웨슬리에게 카렌나 시장의 서신이 닿았다면, 저희가 언데드에 관하여 알고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시간문제겠지요. 길어 봤자 사흘 예상합니다.”
“그렇다는 건…….”
“분명 우리를 없애려 들 겁니다.”
쿠웅!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바로 도망을, 아니지.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어딜 도망간단 말인가?
“마, 마리브 저하께 도움을 요청해야겠네!”
“아니요. 저하께는 제가 나중에 알맞은 기회에 직접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래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그리해야 합니다.”
이안은 로만드로에게 지시하면서도 계속해서 손끝을 가볍게 튕겨댔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 나오는 습관 아닌 습관이다.
“참, 궁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맡겨두었던 루론 마력석 일부를 챙겨오십시오. 한 덩이 정도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탁드린 대로, 행정부에서 일을 보신 다음, 저 있는 곳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어디? 마법부로?”
“아니요. 게일 저하의 궁으로요.”
“뭐? 진심인가?”
“진심입니다. 그리고 혹시, 신년에 열리는 고위 간부 임명이 언제쯤인지 아십니까?”
“으음. 잠시만.”
로만드로는 달력을 보며 기억을 더듬거렸다. 그리 멀지 않은 날, 황제를 비롯한 주요 관계자가 모여 나라의 인사를 재정비하는 회의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며칠 내 임명식이 이어지겠지.
“다음 주 정도로 예상하네.”
“시기가 딱 옳습니다.”
“실담물약 이슈로 인해 사안이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다네. 이것 역시 자세히 알아보지. 각 부서마다 알력 싸움이 심해져서… 어후, 요즘 좀 그래.”
“저희에게는 좋은 일이지요.”
“음? 어째서?”
“혼란 속에서 이기는 자가 능력을 증명하는 법이니까요.”
이안은 가볍게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움직이자는 뜻이었다.
“저는 마법부에 들렸다가, 게일 저하의 궁으로 가겠습니다. 일몰 후 뵙겠습니다.”
“그, 그러자고. 그런데 이놈은?”
“크어어억.”
세상 태평하게 곯아떨어진 베릭이 제 턱을 긁적거렸다. 웨슬리에 대항하여 비비안나와 미니를 지켜줄 자가 필요하거늘, 호위라는 게 저리 경각심이 없어서야…….
“두십시오. 태어나서 저리 심하게 터진 날도 손에 꼽을 것입니다. 지금은 웨슬리보다 먼저 행동하는 것이 관건이니, 움직입시다.”
“아, 알겠네.”
스윽.
이안은 서신을 품에 넣은 다음 다시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로만드로 역시 마찬가지. 둘은 마차를 나눠 타며 황궁 안에서 보자는 시선을 나누었다.
“어이구, 두 분 어디로 모실까요?”
“따로 갈 것이다. 마법부로 가자.”
“저기, 우리는 상업지구일세.”
“아아,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마차가 일직선으로 내달리다 갈림길에서 찢어졌다. 이안은 궁으로, 로만드로는 루론 마력석 은닉지로 향하는 것이었다.
히이잉!
타닥타닥!
로만드로는 걱정으로 인해 계속 멀어지는 이안의 마차만 뒤돌아봤다. 정작 이안은 고개를 꼿꼿이 고정한 채 연신 머릿속으로 수를 계산하느라 바빴지만.
“에효.”
이래서 황궁은 어지럽다니까. 로만드로는 언제고 꼭 은퇴하여 비비안나와 시골로 내려가겠노라, 다짐, 또 다짐할 뿐이다.
“한데, 하샤는 대체 어딜 간 거람?”
* * *
한편, 하샤는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뒷골목을 사정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 한 바퀴 홀로 돈다는 것이, 어찌 이리되었을까.
앙! 앙앙!
코에 감도는 익숙한 고향의 향기. 바람 한번 불라치면 사라질 것 같아 가슴이 졸아들었다. 하샤는 조금씩 남아있는 흔적을 따라 계속해서 네 발을 바삐 움직였다.
‘아스타나인의 냄새다!’
정확히는 아스타나에서 주로 쓰는 향신료의 냄새.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특유의 냄새는 실로 오랜만이었으나, 하샤의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었다.
타악!
동향이라면, 그리고 혹여나 하늘이 도와 같은 계파라면, 자신을 아스타나까지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 아스타나는 사령술이 주되긴 하다만, 소수의 계파가 다양한 주술을 숭배하여 전통적으로 지켜오고 있지 않던가. 본디 제 몸이 아니더라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길을 찾게 될지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간 향신료 냄새에서 비롯된 희망이었다.
‘이쯤인가? 아니다. 더 들어가야겠군! 조금만 천천히 가주게! 동향인이여!’
“어머, 웬 개가…….”
“저리 가, 이놈아!”
“어이구, 갑자기 왜 달려들고 지랄이래?”
하샤는 작은 몸을 이용해 최대한 빠르고 가깝게 냄새를 쫓아갔다. 상자 더미를 헤치고, 노상에서 술 마시는 노인들 틈을 뛰어들었으며, 차가운 물웅덩이 밟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타악!
그리고 어느덧, 냄새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냄새 안에 들어와 있다 느낄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하샤는 기척을 최대한으로 숨기며 주위를 둘러봤다. 음습하고 더러우며 어두운 골목에는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하하하! 그래서?”
“말도 마, 내가 딱 멱살을 잡으니까 질질 짜더라고. 난 사람이 그리 우는 건 또 처음 봤어.”
“허풍도, 참. 날이 갈수록 는다. 음. 늘어.”
“아니, 진짜라니까?”
그때, 껄렁껄렁한 사내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 담배를 든 것으로 보아, 안쪽에서는 무슨 일을 하던 중에 쉬는 틈인 듯싶다.
“음? 뭐야?”
딱 봐도 험상궂고 범상치 않은 모습들. 자상이 여기저기 난 피부 하며, 불결한 위생의 머리칼, 게다가 반쯤 맛이 간 눈동자가 위험해 보였다.
“개네?”
“그러게, 개다.”
하샤는 차마 돌아갈 틈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당황해서 침이 꼴깍 넘어가는 것 같지만, 그들은 하샤를 평범한 개로 생각한 채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뭘 봐, 개새꺄!”
“확 잡아먹어 버릴까 보다. 크하하하!”
“아, 그 말 하니까 진짜 배고픈데? 파켄스 님 언제 돌아오신대? 일당 정리를 해 주셔야 주점을 가든 말든 하지. 아아. 정말.”
파켄스? 하샤의 귀가 쫑긋거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바닥을 킁킁거리며 못 알아듣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흰자로 그들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물건이 꽤 짭짤하다며? 뭐라더라? 어, 어, 언…….”
“언데드, 인마! 몇 번을 들어도 못 알아 처먹네.”
“맞아. 아무튼 그거, 돈 많이 받지 않을까?”
“헉!”
하샤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파켄스, 기억이 난 것이다. 카렌나에서 도적들이 자신의 술식으로 언데드를 만들어 팔았다던 그 노예 상단! 노예상단 이름이 파켄스라 하였는데!
“헉?”
“방금 네가 낸 소리야?”
“아니,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헥헥! 헥!
사내들은 담뱃재를 툭, 털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흰 개뿐인데?
하샤는 최대한 침을 뚝뚝 흘리며 ‘나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지어댔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