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7
제137화. 게일에게 먼저
이안은 다시 마법부로 돌아왔다. 입부식의 여파가 있어서 그런지, 본관 자체는 한산하여 인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10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었으나,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원래 별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원이 들어서 있어 햇빛이 더 잘 들어온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타악.
분명히 정보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마법부 안팎 그리고 안쪽에서도 수뇌부에 해당하는 소수에게 허락된 것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안은 게일을 만나기 전, 마력석과 사령술에 관하여 대외적인 정보 외 다른 것들이 있는지 확인할 참이었다.
‘일몰 후에나 루론이 궁에 당도할 것 같으니.’
이안은 마법지원부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걸 확인했다. 당직을 서는 것인지, 몇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로브를 벗으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펜대만 휙휙 돌려댔다. 위에서 느닷없이 내려온 명령 탓이다.
“사령술사들을 소집하라고? 갑자기?”
“그러게, 몇몇은 출궁했을 텐데. 언질 없이 모이라 하면 지랄하지 않겠어?”
“웃긴 게, 웨슬리 님한테는 찍소리도 못해요. 만만한 우리한테만 그러는 거지.”
“뭐만 하면 외국인이라 차별하는 거냐, 무시하는 거냐, 어후. 난 벌써부터 피곤하다. 네가 해라.”
“응 꺼져. 싫어. 안해.”
“됐고, 빨리 전보 마법이나 돌려. 웨슬리 님 급해 보이셨어. 여차하면 위아래로 치인다.”
“순서대로 위에서 열 명씩 담당해.”
“아, 얘 얼굴 어떻게 생겼더라? 기억이 안 나.”
누군가의 말에 다들 기지개를 쭉 켜며 전보 마법을 실행했다. 서신처럼 문장을 보내는 게 아니라, 미리 정한 신호대로 색색의 빛을 전달하여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
지이잉.
마법사들 손에 주황빛이 생겨나더니만, 이내 물에 탄 것처럼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빛은 마법사가 떠올리고 있는 대상자 앞으로 넘어갔으리라.
‘복귀 신호는 주황빛, 기본적이로군. 한데, 웨슬리가 사령술사를 불러모으라 했다고?’
카렌나 시장의 서신이 올라간 게 분명했다. 로만드로에게는 늦어도 사흘이라 했으나, 재수 없으면 당장이라도 웨슬리에게 맞서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변경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는 길목은 거기서 거기다. 날짜만 특정한다면, 이안이 그 시기에 카렌나를 지나왔음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 않겠나.
‘서둘러야겠다.’
이안이 자료실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사방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그리고 문득, 이안이 황좌에서 끌려 내려왔던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참으로 평화로웠지.’
포근한 햇살 냄새와 시원하게 부는 바람, 이어서 조곤조곤 낮게 울리는 새소리까지. 운명을 가르는 폭풍은 생각보다 조용히 들이닥쳤고, 깨달았을 때는 턱 밑까지 물이 차 있는 기분이었다.
‘운명이 바뀌는 순간은 찰나다. 그것이 내게 다가오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웨슬리, 자네 역시 그리 느낄지도 모르겠네. 모든 것이 격변이라 여기겠지만, 따지고 보면 브라츠 령에서 내가 깨어난 그 순간부터가 시작 아니겠는가. 아니면, 그 이전 삶에서부터.’
드르륵!
이안은 자료실에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공간. 일반인이라면 당최 용도를 알 수 없는 검은색 상자만 빈틈없이 쌓여있었다.
“이안 히엘로 자작?”
“안녕하십니까.”
“오늘 입부식 치렀잖아?”
자료실을 정리하던 한 마법사가 이안을 알아보고 알은체를 해 왔다. 하지만 이안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네. 헤일 대장님을 비롯하여 다른 분들은 다 귀가하셨고, 저는 업무 파악을 위해 복귀했습니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어허, 귀족답지 않게 성실하시네. 자료실은 처음이지?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어?”
이안은 대답 대신 벽면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개방하는 마력. 감응한 빛이 이안이 원하는 자료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지이잉!
“실례합니다. 제가 좀 바빠서.”
“어? 어어…….”
그는 뻘쭘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마리브 황자를 뒷배로 얻은 주제에 마력도 꽤 쓸 만하다더니, 진짜 과장된 소문이 아니다.
마법은 주문진이나 술식이 중요하긴 하다만, 일단 기본이 되는 것은 마법사의 집중으로 인한 ‘이미지화’ 아니던가.
어떤 대상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것. 그것이 흐려지면 제대로 가동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차했다간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저러니 마법지원부에서 다들 난리가 났구나.’
괴물 신입이 들어온다면, 부서 내의 서열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 웨슬리 장관께서도 특별히 견제하는 이유가 바로 저것인가 싶기도 했다.
“부럽네. 쯧. 인생은 불공평해라.”
생긴 것도 잘생겨, 반쪽이지만 피도 귀족이지, 황제께 영지까지 하사받고 마력까지 잘 쓰네? 직원은 소파 뒤로 벌러덩 누우며 연신 짜증스러운 불평을 늘어놓았다.
* * *
타닥타닥!
일몰이 질 무렵. 로만드로는 루론이 담긴 작은 상자를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마차가 크게 흔들릴 때다가 괜히 몸을 움찔거리며 루론이 멀쩡한지를 확인했다. 마력석이라 한들, 어쨌거나 돌덩이인데 워낙 값어치가 비싸니 어쩔 수가 없다.
“더 들어갑니까요?”
“그래. 게일 저하의 궁 입구까지 가세.”
“네. 알겠습니다.”
마부는 거의 처음 와보는 궁 안쪽인지라,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로만드로가 입궁하면 항시 행정부 아니면 마리브의 집무실로만 돌았으니까.
히이잉!
“도착했습니다, 로만드로 님.”
“아, 그래. 자네는 마차를 저 멀리 대고 있게. 누가 보면 좀 그러니까.”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로만드로는 주위에 인기척이 있는지를 살피며 게일의 궁 안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 경비가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로만드로 님. 여기입니다.”
“오오, 이안. 그, 나 행정부 다녀오는 길인데-”
“웨슬리가 카렌나 시장의 서신을 받았더라고요.”
“헉! 맞아. 어찌 알았나? 찾아왔던가?”
“마법부 안에서 말이 돌았습니다. 루론은요?”
“여기 있네. 이제, 안에 들어갈 거지?”
이안은 상자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루론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로만드로는 따갑게 꽂히는 경비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아, 그리고 행정부에 물어보니 내가 말한 게 맞았다네. 고위 간부 임명식 날짜가 딱 일주일 남았더라고. 회의는 보통 하루 이틀 전에 열리니, 참고하면 좋을 걸세.”
“네. 감사합니다. 로만드로 님.”
“자네 나올 때까지 마차에서 기다리겠네.”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지요.”
이안은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의 어깨를 가벼이 토닥여 주었다. 그러고서 경비에게 다가가 자신의 신분증을 맡기며 알현을 요청했다.
“마법부 소속, 이안 히엘로 자작일세. 게일 저하를 뵙고 싶네만.”
“선약하셨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급할 일이라네.”
“선약한 게 아니라면 어려우실 겁니다.”
“방문객 걱정까지 그대의 업무인가?”
“…실례했습니다.”
이안의 단호한 지적에 경비는 고개를 슬쩍 숙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일반적이라면 자작 따위가 이리 당일 와서 알현을 입에 올리는 게 어이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자신이 게일에게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리 찾아왔으니, 기다리라고 할지언정 내치지는 않을 터.
잠시 후, 시종장이 이안을 안내하기 위해 나타났다.
“이안 히엘로 자작님. 이쪽입니다.”
스윽.
해가 져서 그런지, 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둑어둑했다. 마치 게일의 머리칼처럼 말이다. 꾸며낸 것일지라도, 마리브의 궁은 화사하니 포근한 느낌이 들었는데, 게일의 처소는 정반대의 기운을 품어내고 있었다.
똑똑.
“이안 히엘로 자작께서 알현을 요청합니다, 저하.”
“들라 하라.”
허락을 구한 시종장이 문을 열어주며 이안에게 눈짓했다. 이안이 안으로 들어서자, 편안한 옷차림의 게일이 침대에 누워 그를 반겨주었다. 방탕한 분위기와 달리 침대 양옆으로는 정돈 안 된 서류 더미가 한가득이다.
“이안, 그대가 나를 이리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어찌 마법부에 들어간 소감이라도 말하려고 온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마리브가 무얼 전달해 주라 하였나? 급한 일이라 하여 내 기대가 되는군.”
장난기 가득 가벼운 말투였다. 이안은 게일이 턱짓하자, 그제야 소파에 앉으며 상자를 내려놓았다. 게일의 날카로운 눈매가 상자로 향했다.
“선물이었으면 좋겠어.”
“맞습니다. 게일 저하께 분명 선물이 될 것입니다.”
게일은 서류를 계속 읽어내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제국에서 둘째가는 자신에게 선물이라니. 어지간한 것으로는 성에 안 찰 터인데.
“내 친히 귀한 시간을 내주었으니, 기대에 부응하시게.”
이안은 잠시 한숨과 함께 말을 골랐다.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작태로 보아, 웨슬리에게 어떤 보고도 못 들은 게 확실했다.
“게일 저하. 감히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허락하겠노라.”
“혹 살아있는 자에게 사령술을 행하는 행위에 대하여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이안의 물음에 게일이 서류에서 시선을 떼었다. 천천히 드는 고개에는 의문 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사령술은 죽은 자에게 행하는 것인데, 대상자가 살아있는 자라니? 게일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본 이안이 말을 이었다.
“제가 이리 급하게 오게 된 것은 저하께 고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마법부에서 사령술사들을 초청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음은 알고 계실 겁니다.”
게일은 흥미가 인다는 듯이 서류를 옆으로 치우고서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긴 로브가 천천히 바닥을 쓸었다.
“웨슬리 장관께서 사령술사에게 은밀히 비밀 연구를 지시하였습니다. 요지는 산 자에게 사령술을 거는 것이며, 제가 짐작하기에 그 대상자는 저하이십니다.”
“기대에 부응하라 했더니, 정반대로군. 자네가 어찌 웨슬리의 비밀 연구를 알았단 말인가? 나는 자비롭지 못하여 말에 어폐가 있을 시 바로 죽여버리는 편이다.”
아주 담담한 경고였다.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단조롭고 높낮이 없는 어투. 하지만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듯, 그의 시선은 이안에게 똑바로 떨어졌다.
“연구 관계자를 증인으로 데리고 있으며, 저 또한 그 사달을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카렌나라는 소도시를 알고 계시겠지요.”
이안은 카렌나에 있었던 일은 최대한 간략하게 간추려 게일에게 전해주었다. 점점 찌푸려지는 게일의 미간.
‘웨슬리가 나 몰래, 연구를 따로 진행했다라? 그 웨슬리가? 감히?’
의외였다. 그리고 솔직히 좀 놀라기도 한 참이다.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만 할 줄 알았는데, 꼴에 장관이라고 나름 일을 벌인 것 아닌가.
“아무래도 황궁의 축복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일어난 일인 것 같습니다만.”
“대상자가 나라는 근거는?”
“저하께서 그 사안을 모르고 계셨다는 게 근거지요.”
일리가 있다. 이안이 이리 직접 와서 미끼를 던질 정도면 조사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게일이 의문스럽게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자가 왜 이러는 것인가. 왜 친히 와서 이걸 알려주는 거지? 웨슬리가 자신에게 술식을 건다면, 마리브가 수혜자가 되는 것 아닌가.
‘나와 웨슬리를 이간질하려는 간계일수도.’
하지만 이안은 그의 생각을 읽어내고 바로 덧붙였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마리브 저하께서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이곳을 나가자마자 제게 실담물약을 쓰셔도 된다고, 감히 맹세합니다.”
그리고 상자를 내밀었다.
진짜 협상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