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8
제138화. 맹세하건대
“진심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치기가 어린 것인지, 원.”
게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실담물약이라는 이름으로 제 입에 뭘 먹일 줄 알고 그리 말한단 말인가? 진실을 말하게 하는 능력 외, 고위직 인사들이 극도로 불안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마법부에서 몸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노라고.
“진심이고, 진실입니다.”
“어디, 한번 들어보지. 맹세하는 자들은 응당 원하는 걸 품고 있는 법이니까.”
설득을 해보라는 뜻이었다. 이안은 상자의 뚜껑에 손을 올린 다음 차분히 말을 골랐다. 지금부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머릿속에서 조형한 대로 말을 내뱉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일이 실담물약을 쓸 가능성이 농후해졌으니, ‘아 다르고 어 다른’ 뉘앙스로 최대한 보호막을 쳐 놓는 게 좋다.
“저는 마리브 저하의 도움으로 영주가 되었지만, 마리브 저하의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대가로 지시받은 사항은 있습니다. 이는 게일 저하께서도 짐작하고 계시겠지요.”
“그건 나뿐만 아니라 마법부의 서기들도 알 터이다.”
“마리브 저하께서는 제가 마력석관리부로 가길 원하셨습니다.”
마력석관리부? 게일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작은 단서였으나, 마리브의 의중을 알아채기에는 충분했다.
“실담물약에 대해 알아보려 했군.”
“현재 궁에서 화두에 오른 사안이라 알고 있습니다.”
“한데, 자네는 마력석관리부로 가지 않았어. 왜? 그 정도는 쉬이 접근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나?”
“말씀하신 그대로가 맞습니다.”
이안은 수긍하며 천천히 상자를 내밀었다. 의문스럽지만 호기심이 여실히 묻어나는 게일의 눈빛. 그는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은 뚜껑을 열었다.
스윽.
“무엇인지 바로 아시리라 믿습니다.”
“…루론?”
게일이 지금껏 봤던 것은 대부분이 가루로 된 것이었다. 기껏해야 손톱만 한 크기의 알갱이들을 보긴 했으나, 이리 덩어리째로 있는 건 처음이다. 대체 저게 몇 킬로그램짜리란 말인가?
“자료를 보니, 현재 마법부에는 총 10킬로그램 정도의 루론석이 보관되어 있다 하였습니다. 1회분 실담물약에는 루론이 대략 10그램 정도가 들어가니, 겉으로 보면 참으로 넉넉한 양이라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에 있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5킬로그램가량을 써버렸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킬로그램 정도를 더 쓸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루론은 희소성이 상급인 마력석이다. 실담물약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터인데, 연구 몇 번 진행하다 보면 모자랄 게 분명하겠지.’
10킬로그램이 남아있다 해서 결코 여유로운 게 아니란 뜻이다. 그 때문에 매장지로 추측되는 브라츠 변경을 그리 집요하게 노려댔던 것이고.
게일은 루론 덩어리를 들어 보이더니, 천장 조명의 빛을 투과시키며 중얼거렸다.
“…역시 브라츠에 있었군.”
게일의 푸른빛 눈동자가 일렁였다. 희미한 가능성이 모습을 보이다 못해 제 발로 굴러들어오지 않았나.
“히엘로 령에 매장되어 있던 것은 현재 모두 채광하여 중앙에서 관리 중입니다.”
이안은 일부러 히엘로라는 이름에 힘을 주었다. 변경 주인이 바뀐 지 오래라는 듯이 말이다. 또한, 애먼 곳에 눈 돌리지 말고 바로 앞의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게일은 연신 루론석을 만지작거리며 웃어댔다. 참으로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는 것 같다.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지요.”
“내 인정하지. 솔직히 아주 많이 놀란 참일세.”
“저하께서 원하신다면, 루론석을 마법부와 거래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세에 맞게 공급하도록 하지요. 하면, 마력석이 아까워 반대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 따위는 쉬이 넘기실 수 있을 겁니다.”
반대파의 주된 주장 중 하나다.
귀한 상급 마력석을 어찌 일회성으로 음용할 수 있냐는 것. 보통은 마법의 보조 도구로 쓰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마셔서 사라지는 사용법에 반발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거래 대금으로 헌납금을 지불하려 하는가?”
“중앙에 오니 여기저기 쓸 곳이 많아서요.”
넌지시 던지는 말에는 넌지시 받아야지. 이안이 미소를 짓자, 게일은 보랏빛으로 빛나는 루론석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름답다 못해 참으로 신비롭다.
“그래서, 원하는 바는?”
이제 슬슬 네 속내를 말해보라, 게일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나른하게 물었다.
“저를 마법부 차기 장관으로 키워주십시오.”
“……!”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충격의 연속이다. 이제는 저 작은 머리통에서 어떤 생각이 오가는지 궁금할 정도. 게일은 입을 살짝 벌리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 아하하하! 미쳤군!”
아무리 희소성이 상급인 마력석을 대량으로 공급한다 한들, 원하는 대가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자그마치 마법부의 장관이라니! 돌아도 제대로 돈 게 분명하다.
게일은 호탕한 웃음을 참지 않았고, 이안은 참을성 있게 그의 숨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루론석을 확보하면 수월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딱 거기까지다. 마력석이 아깝다는 헛소리만 틀어막을 뿐이라고. 이안, 자네 헛바람 든 것 아닌가?”
“루론석을 공급하는 것은 그저 게일 저하에 대한 제 호의일 뿐입니다.”
“그래? 그러면 또 무엇이 있지?”
누가 들어도,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였다. 이안은 그를 빤히 쳐다봤고, 이내 게일의 웃음기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
“실담물약 안건을 통과시키겠습니다.”
“…농이 점점 과해지니 재미가 없구나.”
“현실이 되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네놈이 무슨 수로? 자작이라는 하급 귀족 주제에.”
회의에 참석할 자격도, 요건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리 당당하게 하겠노라 말하다니, 기만도 저런 기만이 없지 않나.
“마법부를 제외한 온 부서가 눈을 뒤집고 덤벼드는 사안인데, 그걸 네놈이 처리하겠다? 그러니 장관으로 세워달라?”
“세워달라는 게 아니라, 키워달라 하였습니다.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차기 인사 회의에서 웨슬리 장관을 해임해 주십시오. 그리하면 마법부 안에서 실권 다툼이 일어날 것이고, 이후에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건방지다. 하지만 확실한 자신감에서 오는 태도다.
게일은 침묵한 채 턱을 괴고 이안을 노려보았다. 아이는 한 치의 두려움 없이 게일의 시선을 받아냈다.
“알아서 하겠다?”
“마법부만큼 실력 위주로 돌아가는 부서가 또 있겠습니까?”
게일은 문득, 마력확인식 때의 이안을 떠올렸다. 귀족들은 물론이고 황가의 모두를 사로잡았던 마력. 당황하던 웨슬리의 표정이 특히나 생생했다.
“마력확인식 때 마법진을 손보았나?”
“그렇습니다.”
“…대체 어떻게?”
“마법이라는 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요. 송구하옵니다. 저하.”
백날 귀에다 대고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묻지 말라는 대답이었다. 이안이 미소만 지었고, 게일의 머릿속은 조금 더 복잡해졌다.
‘어쩌면, 웨슬리보다 이안의 마력이 더 뛰어날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이번에 웨슬리가 마법부 장관에서 실각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안이 웨슬리를 따라잡을 터다.’
하나둘, 웨슬리가 아니어도 되는 이유가 생겨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안의 말대로 사령술의 대상자가 게일 자신이라면, 가타부타 잴 것 없이 서둘러 정리하는 게 맞다.
하지만…….
“웨슬리는 나를 연모하여 충성한다. 그대는 무엇으로 내게 충성할 것인가? 마법부의 수장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터인데.”
그는 곧 게일의 완전한 수족이 되겠다는 것. 웨슬리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정은 하겠다만, 그녀만큼 자신에게 충성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냐는 걸 묻는 것이다.
“게일 저하, 저는 말입니다.”
이안은 마침내 그 말을 꺼냈다.
“마리브 저하가 황제감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
“그러니, 마음 놓고 저를 이용하십시오.”
이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차기 황제는 아르센과 진 중 한 명이니까. 노골적인 말에 게일은 손을 튕겼고, 이내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부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저하.”
“실담물약을 가져오라.”
“명 받들겠습니다.”
스윽.
부하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게일은 이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그마한 흐트러짐이라도 보이면 뜯어먹을 것 같은 기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던 것을 내가 모조리 거절하면 어쩔 생각인가?”
“외람되지만, 저는 이대로 마리브 저하를 뵈러 갈 것입니다. 웨슬리 장관이 금기의 사령술로 게일 저하를 해하려 한다고 보고하겠지요.”
하면, 마리브는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웨슬리를 죽여 버릴 것이다. 감히 황족을 해하려 했다는 죄로. 이는 게일에게 어떤 대책도 주지 않고서 팔과 다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
스르릉.
게일은 담배를 꺼내 문 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곤 천천히 이안의 목덜미로 날을 가까이 가져갔다.
“이안, 자네 사막에서 이렇게 살아남았군.”
“과찬이십니다. 저하.”
“이런 경우는? 이런 경우도 생각해 봤겠지? 한번 일러주시게. 내게는 지금 자네를 죽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생각이 안 나서 말이지.”
이안은 덤덤하게 칼날을 내려다봤다. 침실의 어둑한 조명이 날카로운 날을 따라 은근히 빛났다.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게일 저하께서는 현명한 판단을 하실 분이라서요.”
“혀에 꿀을 처발랐나 보군.”
이안이 죽든 안 죽든, 어떤 방식으로든 마리브에게 웨슬리의 악행이 고발될 터였다. 그리하여 처단의 검을 마리브에게 쥐여주는 것보다, 차라리 이안을 한배에 태우는 게 훨씬 괜찮은 수이긴 했다.
스윽.
검의 끝이 천천히 목을 타고 올라가 이안의 입가로 향했다. 마치 입을 찢어버릴 것처럼 말이다. 조금만 힘을 실어도 너를 죽일 수 있다고, 게일은 이안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저하. 실담물약을 가져왔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부하의 인기척에, 게일이 검을 바닥으로 던졌다. 크리스탈 병에 담겨있는 투명한 액체. 게일은 친히 뚜껑을 열어 흔들어주었다.
“웨슬리가 실각하면 장관석은 공석으로 남겨두고 다시금 회의가 열릴 것이다. 그동안 마법부에서 지지 세력을 모으는 것은 오로지 그대에게 달려있네.”
“자신 있습니다.”
파장이 크게 일 것이다.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마법부 장관 아닌가. 직위 해제하는 순간부터 마법부의 모든 마법사가 뜨겁게 맞붙을 터였다. 장관을 배출한 부서라면 지금의 마법지원부처럼 권력의 혜택을 받게 될 터이니. 그 혼란스러운 기간, 이안이, 혹은 이안의 세력이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다.
“대답이 간결해서 좋군.”
타악.
게일은 테이블에 실담물약을 올려놓았다. 어서 마셔보라며, 손짓으로 권하기까지 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참으로 위험해 보이는 사내다.
“드셔보시게. 왜, 독일 것 같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제가 게일 저하께 도움이 된다는 걸 믿고 있으니까요.”
“나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라, 맛이 참으로 궁금해. 상세히 말해주게.”
이안은 조심스럽게 실담물약을 마셨다. 목구멍이 타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열이 확 오르는 게, 독한 술과 다르지 않다.
“아-”
게일의 말에 맞춰 이안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순간, 울컥하고 검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아픔은 전혀 없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놀랄 것 없네. 정상이니까.”
“…이러니, 다른 장관들이 기를 쓰고 안 먹으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래, 보기에 영 좋지는 않지.”
게일은 이안에게 몸을 가까이 하며 질문했다.
“이안 경, 자네가 내게 한 말에서, 거짓이 있는가?”
이안은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대답을 뱉어냈다.
“맹세하건대, 하나의 거짓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