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0
제140화. 사람 찾는 데는 개가 최고
이안이 떠난 마리브의 집무실. 새벽에 호출을 받고 돌아온 보좌관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섰다. 그대로 눌려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똑똑.
“저하. 파알입니다.”
“들라.”
마리브는 평소와 다르게 창가에 걸터앉아 있었다. 시선 역시 밖으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 같다.
“방금 이안 히엘로 자작이 왔었다.”
“아, 예.”
“게일이 웨슬리를 쳐낼 것이라 하던데.”
“예?”
지금 저가 무엇을 잘못 들었나? 파알은 서둘러 잠을 깨려는 듯 마른세수로 얼굴을 문질렀다. 게일이 웨슬리를? 그것은 스스로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일 아닌가?
“말도 안 됩니다. 이안 경이 그러던가요?”
“다음 주에 있을 인사 회의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 하던데. 믿을 수 없지만 그리 말하니 분명 뭔가가 있을 거라 여겨진다.”
보좌관은 마리브가 급하게 저를 부른 이유를 눈치챘다. 게일이 웨슬리를 쳐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엇인지 알아 오라는 것이다. 웨슬리를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곧 게일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혹 실담물약을 구할 길이 있겠나?”
“가능은 합니다만,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아니면 실담물약의 경우는 이안 경에게…….”
마리브가 실담물약을 본 것은 상용화 의논을 위한 보고 회의에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직 연구 중인 것도 있었으나, 마법부에서 섣불리 보여주지 않으려 한 몫이 컸다. 보좌관은 말끝을 흐리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이안 경에게 쓰실 생각이시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개운치 않아서.”
뭐랄까. 분명 고개를 숙이고 있건만, 저를 동등하게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일례로, 마리브가 이안에게 지시한 것 중 제대로 처리된 게 하나도 없지 않나. 마력석관리부로 지원하라는 것, 루론석을 공급하지 말라고 한 것 등등.
‘논리가 있고, 일리가 있는 것이라 내 넘어갔으나 그것 자체가 묘하게 거슬린다.’
체스 판 위의 말. 당연히 의지도 자아도 없어야 하건만, 수를 둘 때마다 훈수를 받는 기분이라 이거지. 이것만 따라가다가는 스스로 중심과 판단을 잃게 되리라.
“게일과 웨슬리의 움직임에 특히 주목하라. 당장 인사 회의가 다음 주니, 행동을 보인다면 빠르게 보일 터다. 또한, 마법부 안에서 웨슬리 다음으로 자주 게일과 접촉하는 자를 살펴.”
그자가 게일이 미는 차기 장관이자, 두 번째 날개다. 마리브의 명령에 보좌관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알겠노라 대답했다.
“참, 그리고 저하, 러더포드 상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올해 안으로 다시 하완을 지나 바리엘로 들어올 것이라 하던데요. 아마 여름에서 가을을 예상하는 듯하였습니다.”
“러더포드가? 벌써 세월이 그리되었나?”
마리브는 안경을 벗어서 가볍게 콧잔등을 문질렀다. 그가 비공식적으로 후원하는 상단이자, 오랜 지인이며, 연금술사인 자들.
“서신에는 다른 말이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동봉된 마력석 또한 따로 없어서 답장은 무리일 듯싶습니다.”
스윽.
보좌관은 마리브의 손에 작은 서신을 넘겨주며 덧붙였다. 황자에게 올라오는 보고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너절했다.
“‘그것’을 찾았을까요?”
“그랬을 것 같구나. 혹 구하지 못했더라면 그것에 대한 말을 첨부했을 터이니. 되었다. 어차피 이것은 하반기에나 신경 쓸 일이다.”
상단이란 자고로 의뢰된 물건을 사고팔며 나르는 것이 기본. 그들이 예전처럼 하완을 통하여 바리엘 중앙으로 온다는 것 자체가 마리브의 의뢰를 이행했다는 방증이었다.
‘그때처럼 하완을 통해 메렐로프를 지나겠군.’
확실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 메렐로프의 주인은 죽었고, 그 옆의 브라츠는 히엘로 령이 되어버렸으니. 마리브는 피식 웃으며 서신을 서랍에 넣었다.
* * *
이안과 로만드로가 저택에 도착한 것은 새벽 동이 터올 때쯤이었다. 옷만 갈아입고서 이안은 다시 마법부로, 로만드로는 행정부로 돌아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안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베릭이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이아아안!”
“이놈아, 동네 사람들 다 깨겠어!”
로만드로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려댔지만, 베릭에게는 소용없었다. 와다다 달려오던 베릭이 우뚝 멈추고는 이안을 위아래로 훑었다. 얼룩진 혈흔 탓이다.
“뭐, 뭐야, 이안 왜 그래?!”
“되었다. 호들갑 떨 것 없다.”
“이거 네 피 아니지? 상대방 거지?”
“내 거 맞는데.”
“이쒸, 왜 밖에서 맞고 들어와? 어떤 새끼가아아!”
저택 2층에도 랜턴이 켜졌다. 소란에 미니나 비비안나가 일어난 게 분명했다. 로만드로는 꾸중하듯 베릭에게 인상을 써 보이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 베릭은 빙빙 돌며 연신 이안의 자상을 찾으려 해댔다.
“어떤 대가리 깡통 새끼가 이렇게 만들었어? 응? 너, 의사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머, 이안 님! 세상에나!”
“미니, 깨워서 미안하다. 바로 나가야 하는데, 옷을 좀 준비해 다오.”
잠옷 차림의 미니 역시 기함하며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퍼뜩 차리고는 위층으로 올라가 이안의 외출을 준비했다. 이안은 연신 옆에서 꽥꽥 소리쳐 대는 베릭을 밀어냈다.
“우리 이안 히엘로 자작님을! 엉? 자작인데! 마법사고! X나 세상에 둘도 없이 귀하신 분을! X새끼 죽여 버릴까? 아니면 엉? 뼈를 다 꺾어버려!?”
“거참, 호위 임무 못 하였다고 뭐라 하지 않을 터이니, 그만 좀 하거라. 골 아프다.”
“아, 그래. 헤헤.”
베릭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술 먹고 뻗은 사이 주인이 피 묻히고 들어왔으니, 혼나기 전에 성을 내어 선수 치려는 수작이었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진짜 놀라고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근데 진짜 어쩌다 이랬어? 안 아파?”
“마법 물약의 부작용이다. 고통은 없었으니 문제없어. 그나저나, 하샤는?”
낮에 나갈 때도 없더니, 새벽에도 기척이 없다. 베릭은 귀를 후비적거리며 어깨만 으쓱거렸다. 마차 소리 듣고 방금 일어난 마당에 하샤의 행방을 알 턱이 없지 않나.
“모르겠는데.”
“…뭐?”
이안은 단추를 푸르다 멈칫거렸다. 요즘 자주 외출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리 늦어진다는 건 듣지 못했다. 무엇보다 하샤는 똑똑한 아이였다. 중앙에 온 이상, 웨슬리 세력을 피하여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로만드로 님! 미니!”
“어? 어어.”
비비안나와 인사를 나누던 로만드로가 다급하게 내려왔다. 미니도 마찬가지. 이안은 새 옷을 받아들며 물었다.
“미니, 하샤가 갈 만한 곳을 아는가?”
“하샤는 음, 동네 안팎으로만 계속 오갔는데요.”
“이리 늦은 적도 없지?”
“네. 근데 제가 자고 들어온 적은 있어서, 오늘도 그러하겠거니 여겼습니다. 하샤가 아직 안 들어왔나요?”
지금 상황에서 하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다. 아이는 금기의 사령술을 증언해 줄 유일한 생존자였으니까. 게일과 마리브를 만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왔으니, 조만간 하샤에게도 부름이 내려올 터다.
그 시기를 확언할 수 없는 게 문제지만.
“하샤가 사라졌어?”
“사라진 게 아니고, 무슨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아이고, 돌아버려, 돌아버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브로치로 증언을 확보해 두긴 했습니다만, 이것이 객관적인 증거로 채택되기에는 어렵지요. 일단 최대한 빠르게 사람을 풀어봄이 좋겠습니다.”
가만 듣던 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브로치라 하니 떠오르고 만 것이다.
“왜 그러지?”
“그…….”
“미니, 시간이 별로 없단다.”
“브로치 말입니다. 그거 하샤가 갖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목걸이에 걸려서요.”
가만히 있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과거의 단편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증언을 덧칠하고, 다시 덧칠하듯 말이다. 로만드로가 난감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오히려 이안의 안색은 환해졌다.
“하샤가 그걸 차고 나갔다고?”
“예에, 아마도요. 그리고 여기는 공무원분들이 사는 고급 주택가라, 주인 없는 떠돌이 개는 잡혀갑니다. 돌아다니려면 그런 표식 하나는 있어야 해요.”
“호, 혹 동네를 벗어나 멀리 갔나? 그러면 오히려 표적이 되기 쉬운데.”
개 목에 번쩍번쩍한 목걸이가 걸려있다면, 부랑자나 무뢰한들에게 위협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로만드로가 두 볼을 감싸며 절규하자, 이안은 손을 내저었다.
“가서 가죽 가방을 가져오라.”
“가죽 가방이요? 자, 잠시만요!”
데르가가 이안의 가슴팍에 채워줬던 브로치. 그것은 녹음과 동시에 위치 추적이 가능했다. 자침이 아닌 브로치와 동질의 마력석으로 만들어진 방향침이, 하샤의 위치를 대강이나마 알려줄 터.
달깍.
“이, 이거 어떻게 보는 건가?”
“하급 마력석이라 자세히는 저도 모릅니다. 방향과 빛의 세기 따위로 가늠만 가능할 겁니다.”
나침반의 마력석 방향침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빛의 세기는 희미하다만 아직 꺼진 것은 아니다. 꽤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베릭.”
“어?”
타앗!
이안은 나침반을 베릭에게 던져주었고, 그는 반사적으로 받아냈다. 하지만 이내 못 만질 걸 만졌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소파로 내던졌다. 이안의 명령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내가 가라고?”
“그럼, 내가 가리?”
“거리가 안 나와 있잖아. 어디까지 갈 줄 알고?”
“그래봤자 중앙 안일 터다. 혹여 중앙을 넘어가게 된다면 저택으로 기별을 넣은 다음 추적을 계속하라.”
“원래 좀 놀다 보면 늦고 그래! 애들은 특히나!”
“여기서 네가 제일 어리다.”
“웃기시네! 네가 제일 어리거든?”
“아. 그런가.”
그렇네. 이안은 자신이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음을 깜빡했다. 짤막한 대답으로 이안의 말이 이어지지 않자, 베릭은 소파에 벌러덩 누워 투정을 부려댔다.
“가서 하샤를 찾고, 하샤를 위협한 자들이 있다면 베릭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이안이 갈아입은 옷매무시를 정돈하며 중얼거리자, 베릭의 귀가 쫑긋거렸다.
“죽이든 살리든 베든 찌르든 알아서 해라.”
“…마력 개방은?”
“당연히 안 되지. 그만한 수준도 안 될 것이다.”
카렌나 시장의 서신을 받기 전에 나가서 안 들어온 것이니, 아마 웨슬리의 수작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소행이라면 이안에게도 진즉 반응이 왔어야 했다. 아마 재수 없이 어떤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
“적당히, 생각이란 걸 하면서.”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베릭이 눈을 반짝이며 웃자 로만드로가 이마를 짚었다. 저, 자기 객관화라고는 하나도 없는 녀석 같으니. 이안은 새벽 동이 터오는 것을 보며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자, 베릭. 하샤를 무사히 데려와라. 그리하면 내 보상을 주겠다.”
“어떤?”
“돼지 한 마리 통으로 먹어본 적 없지?”
우당탕탕! 콰앙!
이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밖으로 내달려가는 베릭. 오른쪽으로 쭉 뛰었다가 이내 방향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다시 왼쪽으로 트는 게 보였다.
“저거 저거, 믿어도 되려나 몰라.”
“원래 사람 찾는 데는 개가 최고 아닙니까.”
이안은 새벽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사이 저에게 많은 일이 있었듯, 아마 햐샤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