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1
제141화. 사랑과 전쟁
“다시 말해봐.”
보고를 듣던 웨슬리가 저도 모르게 담뱃재를 툭, 하고 떨어트렸다. 카렌나 시장의 서신이 회의에 올라온 지 이틀째. 보좌관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카렌나의 도적 소탕 시기에 이안 히엘로 자작이 그 부근을 지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래도 히엘로 령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는 길은 한정되어 있는데, 카렌나와 론긴 등 삼각지를 지나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빠르니까요.”
도적 떼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웨슬리는 서둘러 담배를 비벼 끈 다음 인상을 찌푸렸다. 혹여나 놈들을 소탕한 용병이 이안이라면, 분명 언데드에 관한 의구심을 품었으리라.
‘사령술의 흔적을 알아챘을까? 그 전에, 대체 도적들은 어찌하여 언데드를 갖고 있었지? 이안 놈, 따로 조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법부에 들어와서 자료실에 출입했던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금기의 사령술만큼은 절대, 절대 게일에게 들켜서는 아니 된다. 그녀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대자, 보좌관이 가볍게 저지해 주었다.
“자세한 건 현재 카렌나로 전서구를 보냈으니, 이른 시일 내에 답장이 올 것입니다.”
“자료실에 이안이 출입했는지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출근은 했던가?”
“새벽부터 출근했다 합니다. 아무래도 마법운용부 외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교육받을 것이 많아서.”
속이 뒤집히고 머리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다. 당장 이안을 불러내서 소리쳐야만 진정될 것 같다. 카렌나에서 도적을 소탕한 게 네놈이냐고, 거기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고.
웨슬리가 참지 못하고 손을 떨어대며 담배를 하나 더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똑똑.
“웨슬리 님. 게일 저하의 전언입니다.”
“저하의? 들라.”
그녀는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 떨림이 멈춘 것을. 보좌관이 그걸 묵묵히 지켜보며 서류를 한쪽으로 그러모았다. 게일의 전언이 있는 날은 언제나, 업무는 뒷전으로 미뤄지기 일쑤였으니.
“시간 나는 대로 궁으로 들라 하셨습니다.”
“그래? 알겠네. 금방 가지.”
웨슬리는 바로 웃옷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가 저를 부른 것이 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하이만 가의 여식과 어울린다는 소문이 돌자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진 상태였다. 하이만의 여식은 게일의 위업에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자였기에 참고 넘어갔다만, 슬슬 한계에 부딪히던 참이다.
“참, 그리고 며칠 전에 이안 히엘로 자작이 피를 묻힌 채 마리브의 궁으로 드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보좌관은 그녀를 따르며 나머지 자잘한 보고를 구두로 전했다. 텅 빈 복도를 울리는 웨슬리의 발걸음이 조금 다급하다.
“마리브의 궁으로?”
“연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늦은 밤이었다고 합니다.”
게일의 궁은 웨슬리가 눈여겨봐야 할 감시 구역이 아니었기에, 이안이 먼저 게일을 보았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차에 올라탔다.
“저택에는?”
“현재 행정부의 로만드로 경의 저택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는데, 호위를 비롯하여 어떤 움직임도 없습니다. 임신부와 시종 한 명이 다인 것 같더군요.”
“그래?”
“업무로 인해 귀가하는 일도 잘 없습니다.”
“하면, 저택 감시는 인력을 최소한으로 줄여.”
“나머지는 이안으로 돌리겠습니다.”
웨슬리는 가까워지는 게일의 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보는 연인의 모습이다.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단번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똑똑.
“게일 저하.”
“웨슬리, 왔군.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이군요. 요즘 바쁘셔서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오늘은 하이만 가의 여식과 꽃놀이하러 안 가시나 봅니다.”
게일은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서 웃기만 했다. 웃음소리를 따라 흐트러지는 담배 연기. 그는 손짓하여 그녀를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이리 와봐.”
그리고 손목을 잡아끌어 제 무릎에 앉히는 게 아닌가. 웨슬리는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안기며 목을 끌어안았다.
“웨슬리. 내가 그동안 참으로 무신경했어.”
“저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웨슬리의 얼굴에 미소가 확 피어올랐다. 평소 냉기가 뚝뚝 흐르던 마법부의 존엄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온화하고 아름답다. 게일은 작은 보석 상자를 열어주며 속삭였다.
“열어봐.”
딸깍.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있는 귀걸이다. 빛을 그대로 담아내듯 반짝거리는 보석에, 웨슬리가 입을 살짝 벌렸다. 귀한 것이라 그런 게 아니다. 재력이라 한다면 마법부의 수장인 웨슬리 역시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저하, 저에게 뭐 잘못하셨죠?”
“그럴 리가.”
‘첫 선물입니다. 저하께서 제게 주신.’
게일은 대답 대신 부드러운 손길로 여인의 머리칼을 넘겨준 다음, 귀걸이를 끼워주었다. 그가 귓불을 매만지자 웨슬리는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 아무리 하이만 가의 여식이 있다 한들, 게일에게는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은 너겠지. 웨슬리.”
애정이 듬뿍 담겨있던 목소리가 아니다. 웨슬리는 코가 닿을 듯 가까이 있는 게일의 시선에서 낯선 감정을 읽어냈다. 혐오 그리고 경멸. 불과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제 귓몰을 매만지던 사내는 어디갔단 말인가?
“저하?”
“내가 너에게 참으로 무신경했어.”
“그, 그게 무슨…….”
게일은 웨슬리를 품에 단단히 안은 채로 테이블에서 서류를 꺼냈다. 웨슬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마법부의 1급 기밀 도장이 찍혀있는, 사령술 연구 결과 보고서다.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뒤에서 이리 수작질을 하고 있음을, 내 몰랐으니 말이다.”
게일이 웨슬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사내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꽈악.
“아니, 아닙니다, 저하. 오해가-”
“황실의 축복이 아니었다면 진작 너에게 정신이 잡아먹혔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마녀라고 떠들어대는 이유가 있었어. 족쇄를 가져오라!”
그림자에 숨어있던 부하가 가까이 다가왔다. 손에는 준비했다는 듯, 두꺼운 쇠사슬이 들려있다. 질겁한 웨슬리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게일, 내 얘기를 먼저 들어!”
지이잉! 지잉!
눈동자가 금빛으로 변하긴 했으나, 마력이 발산되지 않았다. 와인 잔에 비친 자신의 귓가에서 유독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마력봉인석이다.
“쉬이. 웨슬리.”
게일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억누르고 있었다. 당황하여 멈칫거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족쇄를 채웠으며, 이내 벽에 난 고리에 묶어버렸다. 이것 또한 마력봉인석이 들어가 있다.
“당장이라도 목을 비틀고 싶지만, 그간의 정이 있어 살려주는 것이니 얌전히 있어라.”
“…정?”
웨슬리의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제멋대로 혓바닥이 움직인다. 게일과 자신은 거의 한 몸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런데 이리 변명 하나 들을 새 없이 쳐내려는 것으로 보아, 이미 저 사내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존재는 지워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 말고 다른 놈을 장관으로 세우려 하는 거지?”
웨슬리가 마법부 장관의 신분으로 죽임을 당하면, 그에 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고 금기의 사령술 역시 밝혀질 게 분명했다.
황자를 해하려 한 죄, 마리브는 마법부의 독점적이고 독보적인 권력 구조를 개혁하자 할 터. 이는 영구적으로 게일에게 악수(惡手)였으며, 곧 패배를 의미했다.
“인사 회의에 나 못 가게 하려고, 그래서 다른 놈 세워놓고 나, 나 죽이려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웨슬리가 입술을 꾹 깨물며 그를 올려다봤으나, 게일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알 수가 없구나. 그리 헤아림에 밝으면서 어찌 이리 아둔한 짓을 하려 했는지. 웨슬리. 참으로 아쉬워. 너는 여러모로 좋은 동료였거든.”
“아니야! 게일, 알잖아. 나는 너를…….”
절대 배신하지 않아.
나는 너의 미래와 함께하고 싶었어.
단지 그것뿐인데.
“그래? 좋다. 그러면 기회를 한 번 주지.”
게일이 고갯짓하자, 부하가 실담물약을 내밀었다. 사내는 여유롭게 병을 흔들어대며 웨슬리의 턱을 잡아들었다. 고개를 쳐든 그녀의 입으로 쓰디쓴 물약이 흘러들었다.
“크흑!”
웨슬리는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끝없이 쏟아지는 핏물. 게일은 한쪽 무릎을 꿇고 웨슬리와 시선을 마주쳤다.
“묻겠다. 웨슬리.”
제발, 제대로 된 질문을 해줘.
“내게 사령술을 걸으려 했는가?”
차라리 배신할 마음이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영원히 충성을 맹세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지. 웨슬리는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혓바닥을 꾹 눌렀다. 하지만 결국에는 피와 함께 진실이 쏟아졌다.
“…그래.”
게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낸 그가 부하에게 지시했다.
“한 시도 틈 없이 감시하라.”
“예. 저하.”
“웨슬리의 보좌관은?”
“바깥에 대기 중입니다.”
“처리해. 그리고 마법부에는 당분간 웨슬리가 출장이라 이르고. 인사 회의가 끝나자마자 마법지원부 물갈이하게끔 인력 준비시켜.”
부하가 명을 받들겠노라 대답 후, 다시금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침실을 나서려는 게일의 뒤로, 웨슬리의 절규가 꽂혔다.
“너는, 너는 언제나 내게 이런 식이지!”
“…….”
“게일, 나는 너를 사랑해. 그래서 그랬어. 나중에 가면 네가 나 버릴 거 아니까, 그저 옆에 두고 싶어서 그랬다고! 내 미래는 언제나 너였어!”
게일이 힐끗, 뒤를 돌아봤다. 피범벅이 된 웨슬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게일은 피식 웃기만 했다.
“함께하고 싶었더라면, 분수를 알았어야지. 웨슬리. 그렇다면 내 끝까지 너를 책임졌을 터인데. 너는 선을 넘었다.”
그의 시선이 웨슬리의 하관으로 향했다. 더 이상 피가 쏟아지지 않았다. 실담물약의 효과는 대상자가 각혈하는 동안이라 하였거늘.
“그리고, 피 없이 지르는 네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콰앙!
미련 없이 문이 닫혔다. 완전한 어둠 속, 웨슬리는 눈물을 삼키며 게일이 있던 곳을 노려보았다. 피 없이는 믿을 수 없다고? 그래. 알겠다.
까득.
그녀는 입술을 찢어먹으며 분에 찬 눈빛을 이글거렸다. 어떻게 저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감히, 어떻게…….
‘끝까지 해보자. 게일.’
그녀는 바닥에 흥건한 제 피에 얼굴을 문지르며 처절하게 악을 질러댔다. 게일의 시종장은 어렴풋이 들리는 괴성을 애써 무시하며 문을 걸어 잠갔다.
* * *
“그 얘기 들었어? 요즘 게일 저하랑 웨슬리 장관의 사이가 영 안 좋다고 하던데.”
“하이만 가의 여식 때문에?”
“몰라. 은근히 소문 돌더라. 그래도 두 분 세월이 얼마인데, 안 그래?”
“근데 웨슬리 장관 요즘 출장이잖아. 게일 저하가 직접 지시하였다고 하던데, 사이가 안 좋아졌으면 그리 신임하실 리가 없지.”
“하긴, 그래. 그리고 웨슬리 장관이 좀 난사람인가? 핏줄 빼고는 하이만 가 여식과 견줄 만하니까.”
“하면, 웨슬리 장관은 인사 회의에 참석 안 하겠네?”
“안 와도 되지. 어차피 연임일 터인데.”
인사 회의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고위직 인사들을 입에 올려댔다. 한 해의 수장들이 결정되는 자리인지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분위기다.
스으윽.
“음?”
“왜 그런가?”
“아니,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여기 우리 말고 또 누가 있다고? 실없는 소리 말고, 서둘러 가지. 늦겠네.”
떠들던 무리가 사라지자, 공간에 일렁임이 생겼다.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웨슬리의 보좌관, 바레토였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게일의 궁 쪽을 쳐다봤다.
‘곧 구해 드리겠습니다. 웨슬리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