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2
제142화. 검은 연기
“웨슬리 장관님이 출장을 가셨다고요?”
“그래. 며칠 안 보인다 했더니 그랬더라고.”
“헤일 대장은 원래 웨슬리 님 잘 안 보잖아요.”
“뭐 자주 볼 것 있나.”
헤일 대장이 심드렁하게 대꾸했으나, 이안은 출장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섣불리 궁 밖으로 나갈 리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며칠 새 조용했던 것이 그 연유였어. 분명 금기 사령술을 확인한 게일이 붙잡아두고 있거나, 아니면…….’
도망? 그것도 아니라면 직접 카렌나로 갔을 수도 있겠다. 언데드의 뒷수습을 위하여. 게일이 어찌 행동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으니,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가정만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오늘 인사 회의에 웨슬리 님 대신하여 참석할 예정이다. 다들 먼저 퇴근해.”
웨슬리가 자리를 비우면 보좌관이 그 역할을 대신했건만, 이번에는 그자 역시 함께 나가 버린 탓에 부서별 대장들이 모여야만 했다. 나키나가 서류를 그러모으며 물었다.
“마법지원부 대장께서는 안 가신답니까?”
“부서의 대장들이 다 같이 간다. 발언권 하나 없이 자리에 붙어 있어야 하지만.”
일종의 예의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마법부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식구다 보니 인사 회의에서 나름 성의를 보이기 위하여 이리 뭉치는 것이다.
“그러면 저희도 가죠.”
“마법지원부 놈들, 그쪽 대장 간다 하면 무조건 따라올걸요? 가서 헤일 대장 혼자 쓸쓸하게 서 있게 할 순 없죠!”
“퇴근해, 이것들아.”
“저는 괜찮아요. 나키나는?”
“나도 일 없는데?”
토미와 나키나가 천천히 이안을 돌아봤다. 대장을 비롯하여 사수들이 모두 가는데, 막내는 어떻게 할 건지를 묻는 시선이다. 이안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좋습니다.”
“쟤 입만 웃었지?”
“아닙니다. 눈도 웃었습니다.”
“막내, 네가 언제 또 이런 인사 회의를 보겠어? 거기 분위기 은근히 재밌다?”
이안이 왜 모르겠는가. 한 해를 이어갈 정치 첫 단추이자, 궤도를 정하는 시작점. 바로 그것이 인사 회의다. 내정자로 굳히기에 성공한 자들은 축제와 같을 것이고, 회의에서 팽팽하게 목숨 줄을 밀고 당길 자들에게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평소라면 마법부 역시 그저 의례적인 행사겠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그리고 달라야만 한다.
마리브에게 던져놓은 미끼가 있으니까.
“그러면 서두르지. 슬슬 출발하자고.”
헤일은 담배를 비벼 끄며 시계를 확인했다. 회의에 사활을 건 모든 자들이 대회의실로 향할 시간이었다.
* * *
“장관님! 이쪽입니다!”
“어어, 차기 내무부 장관 아니신가?”
“하하,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민망합니다.”
“저번에 보여주었던 그림 말일세, 잘 아는 친구가…….”
“오랜만입니다. 어찌 얼굴 보기가 이리 힘듭니까?”
“그분, 정년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아아, 쉿. 말조심해. 외무부에 치리오 님 넣는다고, 뒷돈 엄청 썼다는 소리가 들려.”
대회의실 앞은 마차로 가득 차 있었다. 이중 대회의실에 참관할 수 있는 자들은 절반이 채 안 되겠지만, 다들 제 상관을 마지막으로 모시거나, 아니면 회의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축하해 주기 위해 대기할 터였다.
“이안!”
“아, 로만드로 님.”
로만드로 역시 마찬가지다. 행정부 소속이다 보니, 이리저리 사람들에 치이며 대회의실 로비에서 떠도는 중이다. 그는 주위를 힐끔거리며 속닥거렸다.
“아직 베릭에게 연락 온 것이 없지?”
“연락이 왔다면 로만드로 님이 먼저 아셨을 겁니다.”
“아이고, 돌아버리겠네. 그놈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여태 소식이 없어! 혹여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새벽 동이 터올 때 뛰쳐나가더니 일주일 가까이 연락이 없다. 사람 찾으러 개를 풀었더니, 그 개를 찾기 위하여 또 사람을 풀어야 할 참이다. 이안은 로만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중얼거렸다.
“어디 가서 죽을 자도 아니고, 집 나갈 자는 더더욱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돼지 처먹으러 오긴 올 것이야. 그게 언제일지가 문제지.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도 딱 정해줄 걸 그랬어. 베릭은, 이게, 하나를 알려주면 딱 하나만 안다는 걸 내 깜빡했네.”
다행이라 한다면, 중앙 어디에서도 사건 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베릭이 흑검을 한 번만 휘둘렀어도 사달이 제대로 났을 터인데 말이다.
타닥타닥!
그때였다. 대회의실 건물 앞으로 거대한 마차 하나가 들어섰다. 바리엘의 깃발이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황제 폐하시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다들 길을 트시오!”
“머리를 숙여라!”
황제는 비틀거리면서도 제 두 발로 천천히 계단에 올라섰다. 이안을 비롯한 로만드로, 그리고 녹을 먹는 모든 자가 엎드려 경의를 표했다. 그 뒤를 따르는 두 황자. 마리브와 게일.
스윽.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며 이안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얼굴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각자의 시선이 서로 집요하게 얽혀들었다.
콰앙!
세 황족이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로비는 다시금 어수선함을 되찾았다. 황제와 황자들이 들어섰으니, 회의는 바로 시작할 것이다.
누군가는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하였고, 또 누군가는 이미 임명이라도 된 것처럼 큰 소리로 거드름을 피워댔다. 줄 대고 있는 상관의 지위에 따라 부하들끼리도 급이 나뉘니, 이는 또 다르게 치열한 정치의 현장이다.
“……?”
지잉!
그때였다. 이안과 나키나, 그리고 토미가 동시에 북쪽을 쳐다봤다. 그뿐만 아니었다. 대장들을 안으로 보낸 다른 부서의 마법사들도 동시에 몸을 움찔거렸다.
“방금 뭐지?”
“응? 뭐가 말인가?”
“토미 님, 나키나 님. 느끼셨습니까?”
“그래. 막내 너도?”
“이봐, 방금 나 혼자 느낀 거 아니지?”
“이상한데, 여기서 북쪽이라 하면…….”
“아니, 뭔데 그러나? 이안, 나도 좀 알려주시게.”
“로만드로 님. 일단 저한테 붙어 있으세요.”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심상치 않게 날을 세워댔으나, 마력 없는 일반인들은 알 턱이 없다. 소란 속의 고요라. 영문 모르는 로만드로만 주위 눈치를 살핀 채 이안의 뒤에 딱 달라붙었다.
퍼어엉!
그 순간, 들리는 굉음.
심상치 않은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던 곳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그제야 다른 자들도 멈칫거리며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검게 피어오르는 검은 먹구름. 황궁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인지라, 다들 현실 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불?”
그럴 리가.
황실에는 마법부의 제어로 인해 절대 불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어느 연구부에서 실수로 뭔가를 터트렸다면 또 몰라. 하지만 현재 황궁에서 주요직을 담당하는 자들은 모두 여기, 대회의실 로비에 모여있지 않나. 이들 없이 연구는 무슨 연구를 한다고?
“저게 무엇인가?”
“황궁친위대를 부르는 게 좋겠어.”
“잠깐만, 기다리지.”
황궁친위대는 오로지 황제의 권한이었기에, 인사 회의 안건이 아니었다. 누군가 친위대장을 부르러 갔고, 곧 세 대장 중 제이럿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개중에는 바르사베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열에 따라 말단이었지만 말이다.
“여, 연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소.”
“다들 각 초소로 움직여 사태를 파악하라.”
“네. 대장님.”
기분 탓은 아니다. 강력한 마력을 지닌 무엇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제이럿은 마법사들에게 물었다.
“대장들은 모두 회의실로 들어갔나?”
“네. 그렇습니다.”
“다들 혹시 모르니 방어막을 쳐 주시게.”
“야, 다들 꾸물대지 말고 모여! 마법진 그리게!”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마법지원부는 이쪽으로 모여! 우리를 중심으로 마법진을 그리겠다!”
“미친놈들이, 진짜.”
이럴 때도 밥그릇 싸움이라, 나키나는 열이 확 뻗쳐 가운뎃손가락을 올려댔으나 토미가 손바닥으로 가려주었다. 마법사들까지 움직이니, 다른 부서원들은 당황하여 허둥지둥 댔다.
“이거 회의 중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장난해? 누구 마음대로?”
“안쪽에 황제 폐하도 계신데, 혹시 무슨 일 났다간 책임질 수 있겠어요?”
“이번에 그쪽 라인 실각하는 거 다 알고 있다네. 괜히 핑계 삼아 회의 멈추게 할 생각은 마시게나.”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잘들 봐두라고! 여기서 회의 멈추자고 하는 자들, 아마 올해 궁에서 보지 못할 터이니! 하하하!”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한 해에 한 번, 정치의 초석이 되는 제일 중요한 회의. 여기서 실각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회의가 중단되어 미뤄지거나 훗날의 기회를 도모하는 쪽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러니 새로 임명되는 자들은 누가 죽어 나가더라도 멈출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하지 않겠소. 다들 정숙하여 협조하시오. 마법부에서 방어진을 칠 것이니, 일단 여기서 대기하고 기다리시오.”
제이럿이 위엄 있게 말하자 다들 조금 수그러들었다.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내는 마법지원부와 달리, 토미와 나키나는 팔과 다리를 천천히 풀며 검은 연기를 올려다봤다.
“북쪽에 뭐가 있더라? 혹시 마물연구부에서 뭐 잘못된 건 아닐까?”
“그건 마법부 본관 기점으로 북쪽이지. 여기서는 아니라고. 으음. 이쪽으로 쭉 가다 보면… 행정부랑 지원부, 대정원 그리고 게일 저하의 처소.”
“제일 가까운 건 지원부인가?”
지이잉. 지잉.
토미와 나키나의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그들은 몸을 숙이더니, 아킬레스건과 복숭아뼈를 가볍게 문질렀다. 손짓을 따라 마력이 몽글몽글 솟아나, 발치를 가득 머금었다.
“막내, 너는 여기서 잘 보고 있어라.”
“우리가 보고 올게.”
타앗!
촤아아악!
엄청난 바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줄에 묶여 날아들 듯 말이다.
로만드로는 입을 떡 벌린 채 그들을 쳐다봤고, 이안은 팔로 바람을 막았다. 마력의 빛줄기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잔상을 남았다. 단색의 무지개처럼.
“오호, 나, 나는구먼. 마법사들은 하늘을 날아.”
“마법운용부가 전투에서 싸우는 걸 못 보셨습니까?”
“…이안, 그걸 본 자들은 다 죽네.”
“아아. 그렇군요.”
그들이 투입되는 전투라 하면 승기가 적에게 기울었을 때다. 마법의 힘으로 다시금 그 각도를 아군에게로 돌리는 것. 신의 힘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해내기 위하여 투입되는 자들이 바로 마법운용부였으니.
‘게일의 궁이 저쪽이라 함은-’
이안은 마력을 품은 검은 연기가 무엇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웨슬리인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만약 웨슬리가 맞는다면 긴장을 단단히 해야만 했다. 그녀는 최연소 궁정백 자리에 오를 만큼 위대한 마법사였으니까.
이안은 마법사들에게 다가가 바닥을 힐끔거렸다.
“걸리적거리지 말고 빠지시지요. 귀족 나으리.”
“수식이 반대로 바뀌었군. 현장에서 이리하면 다 죽습니다. 선배 나으리.”
“…뭐?”
“아아, 맞네, 야! 이씨, 여기 누가 썼어?”
“그리고 여기와 여기는 알레하만어로 쓸 게 아니라, 바리엘어로 쓰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마법진 발동할 때 여기 담당할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하려고 했는데?”
“하면 그대가 다시 쓰시오. 수식은 이렇게.”
이안은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마법진을 고쳐 나갔다. 드넓은 로비 입구의 끝과 끝으로 길게 이어지는 마법진. 마법사들이 모두 엎드려 방어막을 설계하는 동안이었다.
“비키시게! 당장 회의를 중단해야 해!”
“누구 마음대로? 어허, 이거 이거, 최후의 발악을 하는구먼. 황궁친위대장, 이자들을 모두 불경죄로 잡아 처넣으시게!”
“당장 안쪽에 알려!”
“절대 안 되지! 안에서 도장 찍기 전에는!”
회의를 막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이 입구에 엉겨 붙어 몸싸움해 댔다. 이안은 혀를 쯧 차며 하늘을 올려다봤고, 이내 토미와 나키나가 허공에 멍하니 서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파앗!
이안이 공중으로 마력을 쏘았다. 무엇이 보이는지 신호를 내려달라는 듯이. 하지만 두 사람은 멍하니, 연기의 실체를 보고서 정신이 빠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