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3
제143화. 실각
“바깥이 왜 이리 소란스러워?”
“확인해 보겠습니다.”
“혹여 난동이라면 내게 주동 부서가 어딘지 알려라.”
“예예. 알겠습니다. 파알 님.”
마리브의 보좌관이 시종을 다그쳤다. 중대한 회의이거늘 잡음이 문틈으로 들려오다니. 그는 높은 단상에 앉아있는 마리브의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조아렸다. 마법부의 실각이 예상되는 회의인지라, 절대로 문제가 생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정숙하십시오. 지금부터 제국력 1,101년의 인사 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폐하께 신의의 맹세를 하십시오.”
처억.
수상의 진행에 앉아있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황제와 제일 가까이 앉아있는 마리브와 게일도 마찬가지. 제일 높은 곳에 앉아있는 황제는 위엄있게 그 모습을 내려다볼 뿐이다.
“인사 회의의 목적은 대제국 바리엘이 나아갈 올바른 발전에 기여할, 올바른 인재 등용에 있음을 신의로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웃기지도 않는다. 말로만 공명정대한 자를 찾지, 저들 마음속에는 제각각의 사심이 그득하지 않은가. 의결권을 가진 자들이 먼저 선창했고, 이어서 그 아래 건의권만 가진 자들이 따라 맹세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입법부입니다. 현재 입법부의 장관 카르테스로는 앞으로 나오시오.”
현 장관은 자신이 지난 한 해 동안 바리엘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였고, 어떤 성과를 내었는지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었다. 연임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녹을 먹은 자로서 명예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이어서 입법부 장관의 후보직에 오른 다섯 명을 호명하겠습니다. 바리엘어 표기 순이며 순서대로 일어나서 자신을 소개하십시오.”
내정자는 회의 전에 이미 물밑 작업을 통하여 기반을 마련해 둔 상태다. 다른 후보자들은 일종의 들러리이며, 훗날을 위하여 경력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 마리브는 근엄한 표정으로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하.”
그때였다. 단상 뒤로 돌아온 보좌관 파알이 그를 불렀다. 마리브는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만 옆으로 기울였다.
“밖에 마법사들이 마법 방어진을 치고 있다 합니다.”
“방어진? 대장들은 다 회의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북쪽에서 시작된 의문의 연기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바깥에서는 회의를 중단하려는 자들과 이어가려는 자들이 충돌했고요.”
마리브가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틈에, 수상은 마법부의 차례임을 알렸다.
“다음은 마법부입니다. 장관인 웨슬리가 불참하였으나, 등록된 차기 후보가 없기에 연임하는 것이…….”
“이의 있소.”
수상의 말을 잘라먹은 것은 게일이었다. 그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빠르게 회의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아니지?”
“진짜라고? 게일 저하랑 웨슬리 장관이?”
“쉬이, 조용히들 하시게.”
소문으로만 들리던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회장의 모두가 게일을 주목했다. 그것은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하. 혹여 장관이 실각하여 제게도 기회가 온다면 말입니다.’
마리브는 밤중 이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솔직히 반신반의하였고, 분명한 속내가 숨겨져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웨슬리가 진실로 실각하는 것만큼 마리브에게 희소식이 있던가?
“웨슬리 장관의 연임을 반대하는 바요.”
“어허! 세상에!”
“게일 저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하! 마법부 장관 웨슬리입니다! 그 웨슬리요!”
“이보시게, 잠깐 회의를 중단하시게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문제 될 것 없는 발언입니다.”
“다들 정숙하시오!”
콰앙!
수상이 봉을 내려치자, 소란이 뚝 하고 멈추었다. 이런 상황에서 혹여 퇴장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그만한 낭패가 없기 때문이다. 게일은 느릿하게 제 형인 마리브를 쳐다봤다.
‘원하던 것이지, 마리브?’
마치 그리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마리브는 상기된 표정으로 하, 탄성을 내질렀다. 이안의 말대로 분명 둘 사이에 무슨 사달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더 큰 독이 되기 전 잘라냈다, 그것만이 게일의 태도를 설명할 수 있었으니.
“게일 저하, 발언을 계속하십시오.”
“마법부에 웨슬리 장관이 추대된 지 꽤 오래되었소. 장관은 유능하나, 계속 제기되는 문제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발전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소.”
과도한 예산 책정. 불투명한 업무 처리 과정. 사적인 인사 처리. 광범위한 월권 등등. 게일이 하나하나 짚을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대체 게일이 왜 저러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든 적폐의 수혜자가 바로 자신 아니던가?
“하여, 웨슬리 장관의 연임을 반대하고 새로운 장관을 추대하는 것이 마법부에도 이로울 것이라 여겨지는데. 의결권을 가진 분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게일의 물음에 다들 웅성웅성 다시 소란이 커졌다.
“웨슬리가 실각하면, 후폭풍은? 마녀가 가만있겠나?”
“그래, 우리가 몰랐던 거 보면 웨슬리도 분명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봐, 그리 보는 눈이 없어? 웨슬리 장관이 회의에 안 나온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게일 저하께서 이미 손을 써두었다?”
“세상에, 이게 대체 일이 어떻게…….”
“차기 마법부 장관도 봐두신 자가 있을 터.”
“게일 저하가 마법부를 직속으로 부리시려는 것 같은데. 어허, 나 원 참.”
게일의 세력, 정확히는 마법부에 기대어 있던 세력에는 혼란이 들끓었다. 게일을 모시는 것은 맞지만, 그와의 연결고리는 분명하게 웨슬리였기 때문이다.
“형님. 한마디 해주시죠.”
게일은 싱긋 웃으며 마리브에게 말을 붙였다. 이곳의 절반 가까운 자들이 1황자의 세력이었으니까 말이다. 불씨를 붙여주었으니, 알아서 좀 해보라는 태도였다.
스윽.
“마리브 저하, 발언하십시오.”
마리브가 묘한 표정으로 손을 들자, 장내의 모두가 다시 침묵했다. 그는 관중이 아닌 게일을 쳐다보며 방점을 찍었다.
“…나 역시 웨슬리의 실각에 찬성한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찬성의 외침. 마리브를 따르는 자들이 1황자의 의중을 듣고서 힘을 실은 것이다.
“찬성합니다! 저 또한 찬성합니다!”
“맞습니다. 마법부도 서서히 변화를 꾀해야지요.”
“찬성합니다! 무조건 찬성합니다!”
“이의 없습니다!”
“장관이 불참하였으니 반론 들을 것도 없지요! 넘어갑시다! 차기 장관 후보는 다시 받으면 됩니다!”
마법부를 비롯한 친웨슬리 세력만이 회장의 폭풍에 입을 다물었다. 발언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세가 이리 흘러간다면 바로 웨슬리라는 줄을 놓는 게 현명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녀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찌 대책을 세우기라도 했을 터인데….
“어허, 이것 참…….”
“지금, 지금 뭐라는 거야? 웨슬리 장관님이 실각?”
“이럴 수는 없습니다!”
“다무시오! 마법부 산하 대장들은 발언권이 없으니!”
“말도 안 돼! 아닙니다! 이거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마법지원부의 대장이 특히나 발작하며 소리를 쳐대자, 황궁친위대가 그를 연행했다.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회의장. 수상이 정리를 위하여 연신 봉을 내려쳤으나,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자들은 쉬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헤일 역시 충격으로 담담히 수염을 쓸어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콰앙!
그때였다.
바깥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황궁친위대가 신속히 움직였고, 수상은 다시금 봉을 내려치며 정숙을 명령했다.
“게일 저하.”
게일은 보좌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이내 입술을 꽉 깨물며 살벌한 시선으로 보좌관을 노려보았다.
“일을 대체 어찌 처리한 것인가?”
“소, 송구하옵니다. 분명 웨슬리의 보좌관까지 처리했는데, 시체를 궁 밖으로 보내자마자 나뭇조각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보좌관의 도움으로 족쇄를 푼 것 같습니다.”
“자네, 일이 마무리되면 각오하는 게 좋아.”
“…예, 저하.”
이래서 마법사들은! 게일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수상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회의는 계속 진행하라. 형님께서 내 부족한 자리까지 봐주실 터이니. 형님, 제가 바깥을 정리하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회의에서 제일 큰 안건이 나온 참이다. 바깥의 소란이 웨슬리 소행이라면, 직접 나가서 그녀를 처단해야 했다. 뚫린 입에서 쓸데없는 말이 나오기 전에 말이다. 게일은 마리브가 자리를 비울 수 없게 선수 치고서, 등을 돌렸다.
“마리브 저하, 어찌할까요?”
수상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마리브의 의중을 물었다. 뒤에 황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건만, 황제가 아닌 그에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궁의 실세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방증이었다. 마리브는 게일의 빈자리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진행하라.”
“네. 저하.”
어차피 자신이 나가지 않더라도 눈과 귀가 많았다. 나중에 보고로 올라올 일. 지금은 웨슬리 실각 건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거의 처음으로 게일과 한뜻을 모았군.’
서로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었지만, 마리브는 이것이 어쨌거나 게일의 패착이 되리라 여겼다. 웨슬리라는 중요 세력을 잃었고, 그로 인해 중대한 약점이 있음을 마리브에게 들켰으니까 말이다.
“정숙! 회의를 계속 이어가겠소!”
땅땅땅!
천지가 개벽하는 한이 있더라도, 혹여 건물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회의는 계속되리라. 권력을 손아귀에 넣기 직전인 자들의 집념이 사방을 뜨겁게 달구었다.
콰앙!
다시금 굉음이 들려왔으나 이번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무시할 뿐. 그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회의장 안에 있었다.
* * *
타닥타닥!
게일은 보좌관과 친위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로비로 뛰어나갔다.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매만졌으나 허전하다. 그의 손길을 알아챈 보좌관이 서둘러 시종에게 지시했다.
“회의 입장하며 맡겨두었던 저하의 검을 가져오라!”
“네, 알겠습니다.”
“활도 챙겨라. 마력 봉인석이 갈려있는 화살도.”
게일이 말을 덧붙이자 시종은 헐레벌떡 뒤돌아 뛰어갔다. 복도가 끝날 때쯤, 그들은 로비의 전경을 눈에 훤히 담을 수 있었는데…….
지이잉! 지잉!
“젠장! 마법진! 힘 딸리잖아!”
“으아아악! 나 한계다!”
“정신 차려! 웨슬리 님! 제발 그만하십시오!”
“누가 나한테 마력 좀 넣어줘!”
“웨슬리 님! 그대로 들어오실 수는 없다니까요?”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불투명한 금빛의 벽.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방어진이었다. 그들은 모두 손바닥을 벽에 붙이고 안간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수십 명의 마법사가, 고작 한 명과 대적하여.
“제발! 대체 뭘 하신 겁니까?!”
웨슬리. 그녀다.
몸이 타오르고 있다. 안쪽에서 화마가 들끓듯이 말이다. 피부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뿜어진 뜨거운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다들 무엇 하는가?”
“아, 게일 저하.”
“게일 저하!”
게일의 등장에 다들 반색하며 돌아봤다. 안쪽에서 실각 중인 상황을 모르니, 웨슬리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참 아니던가. 하지만 이안은 게일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 자체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하, 그것이 웨슬리 님의 상태가…….”
“이곳은 대회의장. 안쪽에는 폐하를 비롯하여 바리엘의 고위직들이 모두 모여있다. 한데 저런 작태로 들어서려고 하다니. 이는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요, 나아가서는 중죄다.”
“…저하?”
지금 웨슬리의 연인인 게일이 말하는 거 맞지? 다들 어리둥절하게 그를 쳐다봤으나, 게일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명령했다.
“저것을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