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4
제144화. 금기의 마법
마법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조금이라도 반응을 한다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휩쓸릴 것만 같아서 안 했다는 게 맞을 터였다.
제아무리 2황자의 명령이라고 한들, 웨슬리는 저들의 직속 상관 아니던가? 그리고 마법부의 수장이라 하면 곧 현 마법사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자를 대체 어찌하여, 그리고 어떻게 죽이라는 것인지…….
“저, 저하. 그것은 곤란합니다.”
“어째서?”
누군가 용기 내어 나섰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자였는데,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입장을 전하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게일에게는 못마땅한 발언이 되겠지만.
“웨슬리 님이 무슨 연유로 저리되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아무래도 마법의 부작용 같은데, 그것은 웨슬리 님을 구하는 방법이고 길게 보아서는 마법사들을 구하는 길입니다. 안쪽의 대장들을 불러주시면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신원을 말하라.”
“마력석관리부의 샤일롯입니다.”
“샤일롯, 네놈은 사건이 마무리되고 명령불복죄로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잡소리는 받지 않겠다는 경고다. 그리 나오니, 말을 덧붙이려던 마법사들이 입을 딱 다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중간에서 상황을 정리해 줄 대장들이 있었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들은 힐끗, 방어막 앞에 서 있는 웨슬리를 쳐다봤다.
쿵! 쿠웅!
양쪽 귀가 모두 뜯어진 상태다. 그리하여 저들의 애원을 못 듣는 것일까? 웨슬리는 연신 방어막을 깨려는 듯 주먹으로 금빛 벽을 내려쳤다.
“뭣들 하나? 죽이라니까!”
“다들 명령불복죄로 끌려가고 싶은 건가?!”
“…….”
게일의 부하들이 소리쳤으나, 마법사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쯤 하니 게일은 자신이 마법부를 휘하에 두고 부릴 수 있었던 게 진정으로 웨슬리 덕이었노라, 깨달았다.
‘여러모로 물 갈 때가 맞았군.’
차라리 잘 됐다. 이 기회로 아예 판도를 싹 갈아서 진정한 주군이 누구인지 각인시키는 게 좋겠다. 게일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이안을 찾았다. 그자라면, 상황을 진전시킬 방도가 있을 것 같았기에.
“이안!”
2황자가 어찌하여 이안을 찾는 건가? 갓 입부한 신참인 건 둘째치고 1황자의 사람이 아니던가? 다들 의아한 눈길로 뒤에 서 있는 이안을 돌아봤다.
“예, 저하.”
이안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방긋 웃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나쁘지는 않았다. 훗날 마법부에서 세력을 구축할 때, 두 황자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으니까.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질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다. 게일은 이안이 먼저 공격을 해보라는 듯 종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차분하게 머리를 굴렸다.
우선, 명분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저하, 그 전에 외람되지만, 혹 안쪽 회의에서 웨슬리 님의 안건에 대하여 어떤 의결이 났는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웨슬리 이름 앞에 붙은 마법부의 수장이라는 수식어를 떼면, 보다 수월하게 마법사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게일이 자리를 비우고 이리 달려왔으니 분명 실각이겠지.
“…웨슬리는 현 시간부로 장관직에서 해임되었다. 차기 마법부 장관은 이른 시일 내로 후보를 받아 다시 선출할 예정이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게일도 조금은 당황했던 모양이다. 이안의 의도를 겨우 알아채고 알맞은 답을 내놓았다. 앞으로의 행동 지침에 방향성을 잡아주는 내용으로만 가득 채워서 말이다.
“웨슬리 님이 장관직에서 해임되었다고?”
“해임은 공무원도 아니라는 거잖아. 일반인 신분으로 강등되었다는 뜻인가?”
“그것보다 후보를 받는다니!”
“대장님들이 안 나오시는 이유가 있었군.”
“마법부 장관을 새로 선출한다고 하면…….”
“잠깐, 후보직에는 대장만 오르라는 법도 없잖아.”
웨슬리는 이제 그들의 수장이 아니다. 그녀를 계속 모신다는 것은 황궁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이고, 이는 곧 반역이다. 게다가 차기 장관 후보? 누구든 제2의 웨슬리가 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마법부에는 분명 실력자가 많다 들었는데, 궁금하군.”
게일은 느릿하게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웨슬리를 죽임으로, 충성과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고. 하여, 어디 한번 자신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보라고.
지이잉! 지잉!
퍼엉!
“엘씨!”
한 마법사가 제일 먼저 공격 마법을 발동했다.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푸른빛이 웨슬리의 몸체를 노렸으나,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승화되어 사라졌다. 용암에 던져진 얼음 조각처럼.
“젠장! 죄송합니다, 웨슬리 님!”
“방어진 구축한 자들은 계속 마력을 유지하라!”
“…잠깐, 이봐!”
“마력을 최대한으로 개방해! 상대는 웨슬리 님이다!”
“다들 미쳤어? 정신 좀 차려!”
“방해되는 자들은 물러서!”
타닥타닥!
마법사들은 부서끼리 뭉치며 재빠르게 대형을 만들어냈다. 아직 납득할 수 없는 자들, 정확히는 마법지원부의 마법사들만 황당하게 서 있을 뿐이다. 다른 자들은 그들의 어깨를 밀치며 거칠게 경고했다.
“안쪽에는 황제 폐하가 계시지. 여기서 웨슬리 님을 막지 못하면, 모두가 참형이다. 마법부를 궤멸시킬 의도라면 네놈부터 먼저 죽이겠어.”
“아니, 잠깐 진정 좀 하라고!”
마법지원부는 갑작스러운 다른 부서의 태도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권력의 혜택이 가져온 시각의 차이였다.
지이잉! 지잉!
쿠구구구! 쿠웅!
“틈을 주지 말고! 계속! 계속!”
“젠장, 힘 좀 제대로 써!”
한 번 쓰러진 도미노는 멈추는 법이 없다. 마법사들은 제각각의 마력을 개방하여 사정없이 웨슬리에게 공격을 꽂아 넣었다. 다만, 다들 내근직인 데다 공격 마법을 연마한 자가 별로 없어 효과가 미미하다.
“마법운용부! 네놈들은 어찌 가만히 있나?!”
“그래, 평소 하던 대로 좀 해봐!”
한 마법사가 식은땀을 훔치며 소리쳤다. 다들 익숙하지도 않은 마법 부리느라 고돼 죽을 지경이건만, 토미와 나키나는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태도로.
“헤일 대장 명령 없이는 공격하지 않는다.”
“뭐? 지랄들하고 있네, 진짜.”
“응, 꺼져. 뭣도 모르고 덤볐다가 X된 경험이 한두 번인 줄 알아? 방어막이나 잘 유지해. 너희도 걍 짜져있다가 대장들 나오면 그때 덤비는 게 좋을 거다.”
“대체 뭘 몰라? 웨슬리 님이잖아!”
“몸이 타오르는 중인데, 네 눈에는 저게 정상이냐?”
“저거 저거, 명령불복종이네. 다들 똑똑히 봐둬! 마법운용부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마법사는 다른 동료에게 소리치는 것 같았으나, 실상은 게일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토미와 나키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등신들. 하여간.”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안은 나름 현명한 처사였노라 여겼다. 웨슬리가 흘려대는 연기가 점점 독해졌기 때문이다.
“게일 저하, 활과 화살을 가져왔습니다.”
게일은 부하에게서 활을 건네받고 바로 자세를 잡았다. 힘차게 휘어지는 활시위와 검은 천이 묶여있는 화살. 그 끝은 망설임 없이 웨슬리의 머리통을 겨누고 있었다.
“…마법사라는 자들이, 다들 하나같이 쓸데없군.”
“다들 비켜라! 마력봉인석 화살이다!”
“마력봉인석이 왔다! 물러서!”
꽈아아악.
피잉!
마력봉인석은 마법사의 아킬레스건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것을 무력화하는 힘이 있었다. 최상 중의 최상 희귀 등급이었으며, 소수의 황족만 명목상 지닐 수 있었다.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길을 텄고, 그 사이를 화살이 갈랐다.
퍼엉!
마법으로 만든 방어진을 단번에 뚫었다. 그렇게 웨슬리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사아악.
다른 마법 공격과 마찬가지로 화살 또한 연기만 남기며 사라졌다. 그걸 눈으로 본 마법사들은 단체로 딱딱하게 굳어서는 뒷걸음질 쳤다.
“잠깐, 방금 마력봉인석 화살이라 하지 않았나?”
“저게 안 먹힌다는 뜻은…….”
“웨슬리 님! 설마, 설마 마법에 피를 섞었습니까?”
“젠장! 제이럿 대장! 안 돼요! 가까이 다가가지 마세요!”
마법사들이 패닉에 빠지자, 외부인들 역시 당황하며 몸을 더욱 움츠렸다. 등껍질처럼 붙어있던 로만드로가 달달 떨어대며 이안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왜 저러는 것인가? 이안?”
“웨슬리가 금기의 마법을 쓴 듯합니다.”
“그게 뭔데?”
대신 대답한 것은 나키나였다. 참전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과 달리, 그녀의 손바닥에는 마력이 계속 응축되어 있었다. 혹여 갑작스럽게 무슨 사달이라도 난다면 바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게끔.
“저희도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금기의 마법이라서요. 흔히 ‘마법에 피를 섞는다’라 하는데, 그게 진짜 발동법인지도 모르고요.”
존재 자체만으로 힘의 균형을 깨버리는 것이다. 이안 역시 황제로서 마법의 중심에 서 보았지만,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바로, 죽기 직전 나움의 희생으로 인해.
“아무튼, 금기의 마법은 시공간의 초월 혹은 생과 사의 되돌림 따위의 일이 가능해지지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력봉인석 또한 듣지 않아요.”
그리하여 이안이 지하 감옥에 잡혀있을 때도 문제없이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었다. 이안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난감하다는 듯 목덜미를 매만졌다.
‘게일, 그대도 일 처리가 영 좋지 않다.’
처리할 거면 제대로나 할 것이지, 어찌 웨슬리가 금기의 마법을 두르고 나타나게 한단 말인가? 이안이 게일을 돌아봤다. 그 역시 만만찮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화살을 제대로 가져온 게 맞는가?”
“무, 물론입니다. 게일 저하.”
“한데 어째서 듣지 않아?”
게일이 부하들을 다그치고 있을 때였다. 계속 침묵한 상태로 서 있던 웨슬리가 입을 열었다.
“게일.”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서슬 퍼런 독기가 잔뜩 묻어있어, 듣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울림이 심하다. 사람들은 다들 넙죽 엎드려 귀를 틀어막았고, 게일은 선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내 이리 끝내기에는 아쉬워서 그대를 찾아왔다.”
“X발,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저래?”
“마력봉인석 때문인가?”
마법사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마력봉인석의 느낌. 게일의 화살이 잠식되어 있던 웨슬리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게일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구질구질한 여인인 줄은 몰랐는데.”
꽈아아악!
쉬익! 핑!
화살이 계속 날아들었으나, 웨슬리를 무력화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게일에게 다가왔다. 정신 차린 마법사들이 단체로 덤벼들었으나, 한 발자국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게일 저하를 지켜라!”
“웨슬리 자네! 미쳤는가? 그만 다가오게!”
“제이럿 대장님! 명령을!”
“다들 마력을 개방해!”
“저하, 안쪽으로 피신하십시오!”
“뒤로, 뒤로 물러서시게나!”
경비대와 부하들이 게일을 호위하며 계속해서 뒤로 물러섰다. 이안은 달달 떠는 로만드로를 토닥이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게일을 죽이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딱히 도와줄 필요는 없지.’
게일이 여기서 죽으면 마법부의 위상이 바닥으로 치닫겠으나, 거기까지였다. 마리브의 줄 또한 잡고 있으니 이안에게 큰 영향은 없을 터.
‘아, 별채 건설이 확실히 어려워지겠군.’
마법부가 우세한 상황에서도 별채 건설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흐음. 견제를 위해서라도, 도와줄까?
로만드로는 거의 혼절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 이안. 금기의 마법이라면 방도가 전혀 없나?”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의 마력보다 강한 힘이라면 문제없이 제압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장들을 불러와! 다 힘을 모아야 해!”
그리고 또 하나.
지이잉. 지잉.
통할지는 모르겠으나, 이안은 마력을 개방했다. 금기의 마법에는 금기의 마법이 먹혀드는 법이지 않나. 그것의 산물인 자신이라면, 어쩌면…….
퍼어어엉!
이안이 대충 쏘아 올린 마력구가 웨슬리의 몸체를 때려 맞췄다.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처음으로 무력화되지 않고 물리적인 공격에 성공한 것이다.
“…어?”
“어어?”
“방금…….”
이안은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
사달이 일어나고, 처음으로 감도는 적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