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5
제145화. 잿더미
엎드려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적막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연신 고함과 함께 터지던 마법이 뚝 멈춰 버린 탓이다. 끝난 것일까,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직 모든 것은 그대로다.
“다, 다들 왜 그러시는 겐가?”
“이안 경의 마법이 방금 웨슬리를 저지했어.”
“그게 뭐? 잘 됐네! 이안 경! 힘 좀 써보시게!”
“저저, 마녀를 좀 저지해 주어! 제발!”
“다들 뭣들 하나? 무얼 그리 보고들 서 있어?”
“제이럿! 마법부!”
“게일 저하를 이안 경의 뒤로, 그리하여 보호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일반인들이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 마법사와 황궁친위대들은 돌처럼 굳어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이안의 마법이 먹혀들어갔다?’
‘신년회에서 인상이 깊긴 했지만, 그 정도였다고?’
‘아니, 지금 상대는 웨슬리 님이란 말이다.’
‘혹시 이것도 웨슬리 님의 환각 마법이 아닐까?’
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마법사가, 최연소 궁정백 자리에 올랐던 마법부 장관을 능가한다니! 이럴 수는 없다. 갓난쟁이가 연무장에서 날고 기는 전사를 때려눕혔다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상황이다.
“이안, 잘 먹혔다! 어이구, 잘했어!”
“…저기, 로만드로 님.”
“응? 왜왜?”
“저한테서 떨어지는 게 좋겠습니다.”
로만드로는 기쁘게 이안의 팔을 잡아 흔들다가 멈칫거렸다. 무서워 죽겠는데 떨어지라고? 이안은 말없이 턱으로 웨슬리를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이 게일에게서 이안으로 완벽히 옮겨져 있었으니.
“흐익! 어이구, 세상에! 이안, 조심, 조심하시게!”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하던 로만드로가 뒤로 넘어지며 기다시피 도망쳤다. 황궁친위대원이 그를 부축해 주었고, 이안은 찬찬히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모두 넋 빠진 것처럼 저를 지켜보고 있었다.
‘금기의 마법으로 통한 게 분명하다. 마력의 세기는 아직 재단하기 일러.’
게일을 도와줄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으나,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신만이 할 수 있다면 응당 해낼 수밖에. 여기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게 없으리라. 이것을 발판 삼아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게 좋겠다.
“이안! 정신 똑바로 차려.”
제일 먼저 이안에게 다가온 것은 나키나였다. 그녀는 이안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살짝 숙였다. 이안과 시선의 높이를 맞추고, 함께 웨슬리를 노려보았다.
“지금 여기서 유효타를 날릴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는 듯하다. 곧 있으면 대장들이 올 거니까, 그때까지 게일 저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 공격 마법을 써본 적이 있나? 아니면 방어 마법은?”
“…없지만 해내겠습니다.”
“대답 너무 좋고. 아는 술식은?”
“그 또한 없지만 도와주시면 해내겠습니다.”
“자세까지 완벽해. 좋아.”
머릿속으로 수많은 마법의 술식이 지나갔으나, 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모르겠노라 대답했다.
“이안.”
웨슬리의 부름이었다. 그녀는 놀랍다는 듯 환히 웃고 있었다. 백설 같던 흰 피부에 핏줄이 솟아올라, 그녀가 웃고 있음을 알아채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세상에나, 그래. 그랬구나.”
정신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는 여인의 모습에 다들 긴장하며 숨죽였다. 하지만 이안은 그녀의 의중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방금의 마력구 공격으로, 이안이 금기의 마법 산물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임을, 그리하여 사사건건 거슬려왔음을.
“웨슬리. 그대의 말 한마디, 발 한 걸음이 죄를 만들어내고 있다.”
“카렌나에서도 너였지?”
마력의 흐름이 점점 거세졌다. 산발이 된 여인의 머리칼이 천천히 흐트러졌고, 이내 손끝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열기를 들이마시면 기도와 폐가 타버릴 것 같아, 모두 숨을 멈추었다.
“그리하여 게일이 알게 되었고. 아아. 이제 어찌된 일인지 좀 알겠구나. 이안. 모두 네놈이 문제였어.”
웨슬리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나키나가 마력을 개방했다. 빛으로 술식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지이잉! 지잉!
마법은 일종의 학문과 같아서, 숙달되기 전까지는 발동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는 수밖에 없었다. 체득하여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면 번거로울 것 없이 바로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이미지를 얼마나 선명하게 떠올리는가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인지라, 마법사의 재능을 줄 세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키나, 폭발은 안 돼!”
토미의 외침에 나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대회의장의 로비. 대상을 밖으로 유인할 수 없다면, 강한 충격은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상대를 묶어 제압하는 마법을 구사해야 할 터.
「기속(羈束)」
나름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마법 중 기본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건만, 나키나의 몸체 앞으로 복잡한 형상이 떠올랐다. 마법진이 동심원을 그리며 발광하였고, 그를 따라 수십 개의 발동 수식이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이안! 제대로 읽어내! 그러면 이렇게 된다!”
나키나가 딛고 있는 바닥에서 기하학적인 도형이 생겨났다. 번개가 산산이 조각났다면 가히 저런 모습이리라.
마법은 빠르게 벽을 타고 올라 천장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대상의 위치를 찾아내고, 사정없이 그 주위로 떨어졌다.
콰직! 콰아앙!
웨슬리의 앞과 뒤, 양옆으로 빛기둥이 내려꽂혔다. 그 영향으로 그녀의 머리칼이 다시 한번 흩날렸다. 훤히 보이는 얼굴에는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목숨을 내놓고 금기의 마법을 불러냈기에.
“이안, 봤어? 할 수 있겠나?”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나키나가 마력을 개방하고 마법을 발동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몇 초. 옆에서 듣던 다른 마법사들이 야유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나키나, 장난해? 그걸 한번 보고 어떻게 하냐고!”
“맞아, 그런 건 우리도 힘들어! 마력이 센 거랑 적용하는 거랑은 좀 다르지. 아무래도.”
“그러지 말고, 마력이나 계속 쏘라고 해!”
“대장들 나올 때까지, 시선이나 잡아둬!”
“쟤는 개소리도 상황을 안 가리네.”
“정신 차려! 헛된 짓 하지 말고!”
“이 X발, 싹 다 아가리 다물어! 정신 사나우니까! 대가리 갈라 버릴라.”
듣다 못한 나키나가 윽박을 내지르니, 마법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힘을 합쳐도 모자라는 순간이건만, 다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나키나는 유유히 빛기둥을 지나오는 웨슬리를 쳐다봤다.
‘역시 안 듣네.’
원래라면 기둥과 기둥 사이에 흐르는 마력으로 상대의 반경을 제한하는 것이 기속 마법의 기능이었다. 하지만 웨슬리는 아무런 제한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나. 나키나는 초조하게 이안을 돌아봤다.
“잘 봤습니다, 나키나 선배.”
“…아.”
이안은 웃고 있었다. 다른 어떤 말보다, 그의 웃음 한 번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 있노라고, 방금 보여준 그녀의 술식을 모두 읽어낼 수 있노라고. 나키나가 무어라 입을 떼기 전, 이안이 마법을 발동했다.
지이잉. 지잉.
파아아앗!
사자와 같은 금안. 동공이 확장되며 온몸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올랐다. 이안은 나키나가 보여줬던 술식을 그대로 머릿속으로 옮겨와, 과정 없이 발동시켰다. 딛고 있는 바닥, 대리석의 틈틈이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피해! 다들 피하시게!”
“미, 미쳤다. 미쳤어.”
중력처럼 이안을 짓누르는 마력의 힘. 대리석에 금이 갈수록 빛은 더욱 거세졌다. 이내 그를 중심으로 사방이, 면을 접하고 있는 벽과 천장 그 모든 것이 빛에 잠식되었다.
콰아앙! 쾅!
천장에서 떨어지는 수십, 수백 개의 빛줄기.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오차 없이 웨슬리를 감쌌다. 그녀가 피워내는 검은 연기는 이안의 마법이 꽂힐 때마다 힘없이 사라졌다.
조금씩 틈이 메워지자, 웨슬리는 힘주어 마법을 부수고자 악을 질러댔다.
“이안, 끝까지 방해하려는 건가! 네놈 역시 금기의-”
콰앙!
“다무는 게 좋을 것이다. 웨슬리. 다시 말하지만, 그대의 말 한마디가 계속 죄로 쌓이고 있으니. 침묵하는 게 신상에 좋지 않겠나?”
금기의 비밀을 외치려 하자, 이안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머리통으로 빛을 떨어트렸다. 웨슬리가 가볍게 손으로 쳐내 막아냈지만 말이다.
나키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느 부분에서 놀라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대체 빛이 몇 줄기로 떨어지는 거지? 거기에 기속 마법을 공격 마법으로 활용하고 있어. 이게…….’
가능한가? 아무리 마법이 초월적인 영역이라 한들, 그 안에서도 상식적인 선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 아닌가? 나키나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사들 역시 웨슬리를 향해 쏟아지는 빛줄기에 정신을 놓고 구경했다.
콰앙! 쾅!
“별똥별같다…….”
누가 그리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자들은 퍽 괜찮은 비유로 느껴졌다. 대낮에, 반쯤 개방된 로비에서, 유성의 대격변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그, 그런데 말일세.”
로만드로 역시 마찬가지로 납작 엎드려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황궁친위대원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어째서 웨슬리는 계속 가만히 있는 것인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위협을 하긴 했으나 반격이랄 것은 딱히 하지 않았다. 그저, 안쪽으로, 정확히는 게일을 만나려고 했을 뿐. 마법사들이 합심하여 공격할 때도 그저 무시하지 않았던가.
‘반격이 없군.’
그건 이안도 마찬가지로 느낀 참이다. 무력화된 다른 자들의 마법과 달리, 이안의 것은 웨슬리에게 효과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손으로 빛을 쳐내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이봐, 웨슬리 님 말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러니까. 열기도 점점 뜨거워지고,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몸이 타는 것 같아.”
“어어. 그래, 맞아. 그렇게 느껴져.”
타오르는 열기에 살갗이 투둑,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제 생명을 태워 움직이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
그녀는 숨을 쌕쌕 몰더니, 이내 게일을 쳐다봤다. 사내의 눈길에는 혐오가 가득했으나, 여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차올랐다.
“게일.”
지이잉! 지잉!
퍼엉! 펑!
그 순간, 웨슬리가 게일의 이름을 부르며 마력을 최대치로 개방했다. 엄청난 폭발력에 이안의 기속 마법 빛줄기가 힘없이 바스러졌다. 그녀는 순식간에 게일에게 달려들었고, 두 팔로 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게일 저하!”
“공격하라! 서둘러서!”
“떼어내! 저 마녀를 떼어내!”
다들 기함하는 것도 잠시, 이윽고 경악에 이르렀다. 웨슬리가 놀라서 굳어버린 게일의 뒤통수를 잡고 입을 맞춘 것이다.
“게일. 내가 설마 그대를 죽이겠어요?”
“미친…….”
“죽음으로는 내 고통을 알지 못할 거예요.”
이안은 그제야 알아챘다. 웨슬리는 금기의 마법으로 황궁의 전력을 뚫고, 게일의 피를 보려는 게 아니라, 그에게 영속의 저주를 걸려고 한 것이다. 아마 이리 찾아온 것은, 그것을 직접 알려주기 위함일 터.
“게일 그대는 ―하여 ―니, 영원히 ―거예요.”
웨슬리를 주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머리가 아득해지며, 그녀의 저주가 드문드문 잘려 들려왔다. 하지만 게일은 똑바로 들은 듯, 눈이 커짐과 동시에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욕까지 쏟아냈다.
“미친것이!”
그리고 단박에 검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뚫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웨슬리의 형체는 이미 연기가 되어 사라졌으니, 주위에는 뜨거운 잿더미만 휘날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