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저주가 맞다
끔찍한 잿가루 냄새. 게일은 인상을 찡그리며 겨우 눈을 떴다. 그의 옆으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초였으나, 게일이 느끼기에는 역겹기 짝이 없다.
채앵!
“어머. 게일 저하!”
침실에서 들리는 소란에 시종이 후다닥 달려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어찌하여 저러신단 말인가? 시종이 바닥을 정리하는 동안, 게일은 이마를 짚은 채 물었다.
“며칠이나 지났지?”
“오래되지 않으셨습니다. 꼬박 하루 지나는 참입니다. 의무실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시고…….”
시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게일은 침대를 벗어났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탁상에 놓여있을 검을 찾아 손을 휘저었다. 하나, 닿는 게 없다. 그제야 게일은 자신이 낯선 침실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끼익.
“일어나자마자 소란이구나, 게일.”
“마리브…….”
“형님이라는 호칭은 네 연인에게 줘버린 것인가?”
마리브가 상쾌하게 웃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주 화사한 미소였다. 언제나 그러하듯 둘 중 하나가 웃는 순간은 나머지 한 명에게 최악인 상황일 터. 게일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하,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연인이라니요. 말씀이 과하십니다.”
“그래그래.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입까지 맞추었으나, 연인이 아닐 수도 있지. 나는 방탕을 이해할 수 없으나, 그대는 깊이 이해할 줄 알았다.”
바드득, 게일이 짜증스럽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빌미를 제대로 주고 말았다. 빈틈 하나만 보이라며 항시 날을 세우고 있던 자이거늘. 게일은 우선 시치미를 떼었다.
“웨슬리 장관은 어찌 되었습니까?”
“인사 대회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네놈이 밖에서 연인과 치정 싸움을 하는 동안 다들 집중이 안 되었지만, 어찌 잘 마무리되었어.”
“…그 망할 ‘치정’이라는 단어 좀 삼가시지.”
“하여, 웨슬리는 이제 장관이 아니다. 현재 마법부의 장관직은 공석이며, 각 부처에서는 새로운 인사 개편을 비롯해 이번 사건의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게일, 네가 일어나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어.”
마리브는 천천히 게일에게 다가와 그의 옷깃을 매만져주었다. 툭툭, 반듯하게 옷깃을 펴주며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웨슬리가 너에게 무슨 저주를 걸었던가?”
“…….”
신나 보이는군. 아주 신나 보여.
게일이 마리브의 손등을 쳐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옷깃을 잡아 쥐었다. 한 번도 이리 대놓고 다가온 적이 없었거늘. 게일은 마리브가 온전히 저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노라 짐작했다.
“지금 그것으로 황궁이 발칵 뒤집혔다. 어째서 네가 웨슬리를 실각하려 했는지, 그로 인해 웨슬리가 금기의 마법을 쓴 것인지, 하여, 죽어가는 와중 너에게 쏟아부은 저주가 무엇인지.”
수면 아래 잠겨있는 비밀 하나라도 드러나게 되면 단박에 네놈의 목을 치리라. 마리브는 동생의 볼을 가볍게 매만지며 다시금 환하게 웃었다.
“서둘러 진실을 고하는 게 좋을 것이다. 황실의 존폐가 달린 저주라면, 응당 네놈의 목숨으로 그 저주를 끊어내야 하니까.”
“…….”
게일은 담담한 시선으로 마리브를 마주했다. 분명 같은 벽안의 눈동자이건만, 한쪽은 차가웠고 한쪽은 뜨거웠다. 마리브는 살짝 뒤로 물러서며 쓰러진 초를 바로 세웠다.
“황제 폐하께서 부르시면 즉각 달려오거라. 몸조리는 알아서 하고.”
끼이익.
마리브는 단정하게 묶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침실을 나섰다. 황좌가 제 앞으로 떨어진 것처럼 아주 당당하고 자신 있는 발걸음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게일의 보좌관이 꾸벅 인사하며 그를 배웅했고, 이내 침실로 들어섰다. 게일은 한숨만 내쉬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궐련.”
보좌관은 바로 궐련에 불을 붙여 넘겨주었다.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신 그는 명령과 함께 연기를 내뱉었다.
“박아.”
퍼억! 퍼억!
그와 동시에 보좌관은 넙죽 엎드려 바닥에 이마를 찧어댔다. 본인이 본인을 매질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보좌관으로서 일 처리가 말끔하지 않았다는 것은 수치요, 매질에 진정성이 없다면 목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송구하옵니다. 저하!”
퍼억!
그는 울부짖으며 계속해서 머리를 박았다. 시종들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으나, 게일은 똑똑히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내 머리가 깨지며 코와 턱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웨슬리가 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놓친 그녀의 보좌관 도움 덕이었으리라.”
게일은 그 보좌관이 언제나 웨슬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그의 얼굴을 떠올릴 순 없었다. 그만큼 존재감이 희미했고, 신경 쓸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리 큰 사달을 내다니.
“그자의 시체가 저하의 침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웨슬리와 함께 금기의 마법을 부린 듯합니다. 하여, 현재 마법부가 조사 중에 있고, 통제하는 중인지라 이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게일은 엎드려 고하는 제 부하에게 마른 천을 던졌다. 피를 닦으라는 뜻이었고, 매질을 그만두라는 용서의 뜻이었다.
“…마법부의 분위기는?”
게일은 옷을 바로 입으며 되물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한순간의 패착으로 낭떠러지 끝까지 밀려났으니, 여기서 조금만 더 틈을 보였다간 그대로 나락이다.
“그것이 조금 묘합니다.”
묘하다? 게일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끊김 없이 아뢰라 일렀다. 보좌관은 이마에 천을 덧대며 또박또박 보고를 이어갔다. 게일이 누워있는 동안 수십, 수백 번 속으로 되뇌었던 내용이다.
“마법부가 조사를 받되, 동시에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하를 해하려 한 것은 명백한 반역이자 중죄. 하지만 그 수단이 금기의 마법인지라, 다른 부서에서는 아예 조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궐련 연기를 내뱉을 때마다, 게일은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상황은 물 보듯 빤했다.
“파가 완전히 나뉘었겠군.”
“그렇습니다. 웨슬리의 직속 담당이었던 마법지원부와 그를 제외한 모든 부서로 나뉘었습니다. 현재 장관직까지 공석인지라, 마법사들의 암투가 예상됩니다.”
까딱까딱, 게일은 고민에 빠진 듯 제 턱을 툭툭 두드렸다. 일단 자신이 일어났다는 걸 마리브가 알고 있으니, 소환되어 청문 받는 것은 곧이었다.
“금기의 마법에 대해서는 아는 자가 많이 없고?”
“네. 현재 고자료까지 뒤지며 파악 중입니다. 한데 저하. 그…….”
보좌관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차마 입 밖으로 내기에도 망측하다는 듯이.
“저주가 사실입니까?”
“…아무도 아는 자가 없나?”
“당시 제가 저하의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듣지 못했습니다. 웨슬리의 검은 기운 탓에 정신이 흐려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도, 아무도 웨슬리의 저주가 무엇인지 모른다? 게일은 저도 모르게 반색하여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안은?”
“네? 이안이요?”
“그래. 지금으로는 내 그자가 심히 필요하다.”
“이안은 지금 긴급회의에 참석하여 반나절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일은 옷 입혀주는 시종의 손길을 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이안이 웨슬리의 사령술을 알고 있다는 걸 마리브가 눈치챘나? 그리하여 마리브를 속이려 했다는 걸 들켰을까?
이안이 마리브에게 팽이라도 당한다면 곤란했다. 지금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무기 중, 이안만큼 확실하고 쓸모 있는 게 또 없었기 때문에.
보좌관은 그의 의중을 알아채고 바로 말을 덧붙였다.
“이안이 웨슬리와 유일하게 대적하지 않았습니까. 그로 인해 당시 현장의 마법부를 대표하여 회의에 참여 중인 것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마법부의 수장이었던 웨슬리를 막아내던 자다. 대장들은 자리에 없었으니 차치하더라도, 현장의 마법사 중에서는 마력의 힘이 제일 강하다는 걸 뜻했다.
‘더더욱, 필요하다. 이안이.’
균형의 추가 조금씩 이안 쪽으로 기우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이안이 저에게 세력을 의탁하는 처지였으나, 이제는 게일이 촉박해지지 않았나.
“회의에는 아버지가 계신가?”
“계속 이어지는 긴급회의입니다. 체력 여부에 따라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여 자리 지키고 계십니다. 다른 관계자들도 마찬가지고요.”
마리브는 아마 중간에 짬을 내서 나온 듯싶었다. 게일은 서둘러 정복을 갖춰 입은 다음, 검을 허리춤에 찼다.
“가자. 다들 나만 기다리고 있을 터다.”
* * *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어디서 언성을 높이시는 거지요?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맞는 말 아닙니까? 웨슬리 전 장관의 해임이 갑자기 논의된 것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습니다. 분명, 게일 저하와 웨슬리 전 장관 사이의 불화가 일의 시초입니다!”
“그것은 저하의 사생활이에요. 논의거리 자체가 안 됩니다. 우리가 조사할 부분은, 웨슬리가 금기의 마법을 왜 썼는지 알아보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저하와 관련이 있다니까요? 아, 거참. 답답하시네. 자꾸 꼬리 자르려 하는 것 같은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답답? 지금 자네 말 다하였는가?”
“자네에? 자네에!?”
쿵쿵쿵!
어지러운 긴급회의장. 종이만 날아다니지 않을 뿐, 마리브의 세력과 게일의 세력은 거의 전쟁 중이었다. 장장 몇 시간째 이어지는 싸움인지 모르겠다. 수상은 힘겹게 봉을 때리며 정숙을 요구했다.
“다들 제발 그만들하시오.”
지칠 대로 지쳤다. 인사 회의라는 긴 장정을 끝냈더니, 이번에는 긴급회의라. 상석에 앉아있는 황제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꾹 다문 채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안 경!”
그때, 한 대신이 이안을 불렀다. 반듯한 자세로 앉아있던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증언하시오.”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웨슬리가 쓴 것이 금기의 마법이 맞으며, 당시 맞섰던 현장 증언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덧붙여, 마법부는 이번 일과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 표명까지.
이안은 자신이 황제였다면 허튼 잡소리 하는 대신들을 모조리 물렸을 것이라 생각하며, 증언을 위해 입술을 떼었다.
그런데 그때.
드르륵.
“아뢰옵니다. 게일 저하 드시옵니다.”
“게일 저하가?”
“일어나셨다고 하더니, 바로 거동이 가능하던가?”
“어서, 어서 안으로 모시게!”
게일의 등장에 회장은 다시금 새로운 분위기를 맞이했다. 어정쩡하게 일어섰던 이안은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삼켰다.
‘웨슬리가 한 방 크게 먹이긴 했군. 고작 하루 사이에 이리 세력이 처지다니.’
1황자와 2황자 사이에서 저울질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이런 기세라면 마법부의 차기 장관 임명에는 게일보다 마리브의 입김이 세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일 입장에서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다. 전투 초반에는 그래도 마리브 견제 역으로 필요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금기의 저주를 받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밀어줄 이유가 없지 않나.
“게일 저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흐윽, 저하. 참으로 걱정했습니다.”
“저하, 이리 오셨으니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웨슬리의 저주를 받은 게 맞습니까?”
“어허, 자네! 막 도착하신 분이네!”
“막 도착했든, 아까 도착했든 알게 뭐랍니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황제 폐하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도 걱정됩니다. 어떤 저주일 줄 알고요!”
마리브의 세력이 격렬하게 따지고 들었다. 과한 언사여도 하나같이 맞는 말들인지라, 게일의 세력은 황자를 돌아보며 침묵할 뿐이다.
스윽.
“저주, 그래. 저주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게일은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마리브를 쳐다봤다. 마리브는 어디 한번 지껄여 보라는 듯이 피식 웃기만 했다. 하지만 이안은 게일의 말투에서 뭔지 모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설마.’
“저주! 지금 들으셨죠? 게일 저하가 시인했습니다! 저주랍니다! 당장 출궁을 명하셔야 합니다!”
들끓는 회장의 분위기를 찬찬히 살피던 게일. 그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제 아버지인 황제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제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게일. 털어놓아 보아라.”
“저는 언제나 바리엘의 영광만을 바랐고, 올바른 발전만이 제 삶의 이유라 여겼습니다. 저에게 그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게일은 그답지 않게 굉장히 호소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여, 웨슬리가 저에게 그러더이다. ‘네놈의 죽음을 시작으로 바리엘의 수많은 제국민에게 죽음의 그늘이 덮칠 것이다. 하여 쇠퇴의 길로 나아가니, 그것은 곧 바리엘의 멸망이다.’”
가만히 듣던 마리브가 턱 괴던 것을 떼며 눈을 크게 떴다. 이안 역시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거짓말이로군.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수다.’
“또한, 이리 말하였지요.”
게일은 잘 들으라는 듯, 제 형인 마리브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게일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