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47
제147화. 실담물약
“제가 죽으면 바리엘 최고 존엄이자 그 자체이신 아버지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게일이 ‘사랑하는’을 외치자 모두 질색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였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그 주체가 마리브라는 걸 깨닫자마자 다들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의 형제, 마리브에게도 죽음의 저주가 내려진다고 하였습니다.”
“게일!”
콰앙!
마리브가 저도 모르게 탁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섰다. 수작질도 정도가 있지 않나. 저리 대놓고 거짓말하는 것은 기만 중의 기만이다. 반대 세력들도 어이가 없어서 함께 거들고 나섰다.
“게일 저하,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이십니까?”
“어허, 말씀을 삼가시오! 게일 저하이시니라!”
“아니, 그렇지 않소? 지금 자신이 죽으면 황제 폐하와 마리브 저하에게 저주가 내려진다 하니, 이는 신변을 꾀하려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진짜 저주는 숨기고 있습니다!”
“알려지면 필시 곤란한 저주이니, 저리 말씀하시는 게지요. 황제 폐하, 두고 볼 것도 없습니다. 서둘러 출궁을 명하여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출궁하였다가 게일 저하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리하여 저주가 발동하면 그대들이 책임질 것인가?”
“황제 폐하와 마리브 저하뿐만 아니라, 바리엘 전체의 존폐가 달려 있는 중대사입니다! 어찌 그리 쉽게 거짓말이라 치부하십니까? 그리 믿고 싶으신 건 아니겠지요?”
“그대는 그러면 저 말이 진실이라 여겨지는가? 고작 두 사람의 피로 인하여 그리 무거운 저주를 내릴 수 있다는 게? 믿기는가?”
“마법사에게 물어보면 될 일! 이안 경!”
가만히 지켜보던 이안이 호명당했다. 뜨겁게 들끓던 세력이 고함을 멈추었고, 동시에 이안을 돌아봤다. 그는 꽤나 무던한 표정으로 정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안 경에게 묻겠네. 금기의 마법, 그러니까 웨슬리 장관과 그의 보좌관이 바리엘의 운명을 결정할 만한 저주를 내릴 수 있다 보는가? 저하의 저주가 실로 사실이라 여겨지는가?”
아니라고 말해! 마리브의 세력 중 한 명인 대신이 눈빛으로 종용하며 윽박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안의 대답은 평온하기 짝이 없다.
“가능합니다.”
웅성웅성, 이안의 군더더기 없는 대답에 게일 측의 세력들이 고개를 맞대고서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아마 그들도 게일의 증언이 거짓임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게일의 증언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은 분명했다.
“금기의 마법은 일단 자연과 운명의 이치를 벗어나는 능력을 모두 총칭합니다. 삶과 시공간 등 신께서도 쉬이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을 마법사의 영혼으로 가능케 하지요. 특히 웨슬리 전 장관은 최연소 궁정백에 오를 정도로 유능한 마법사였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봅니다.”
“아니, 마법사 하나가 바리엘의 존폐를 정할 수 있다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금기의 마법을 쓴 자가 어찌 되는지 모르면 그리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요. 심연에 빠지게 됩니다. 흔히들, 지옥이라 부르지요.”
지옥(地獄). 영원의 고통 속에 잠식하여 억겁의 시간 동안 스스로 잘라 먹는 공간.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마법사는 둘이었습니다. 신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니. 충분히 가능한 저주라 여겨집니다.”
마리브의 세력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게일을 돌아봤다. 그 무시무시한 저주를 몸으로 받아낸 자가 저기 있지 않나? 방금 증언한 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의 내면에는 다른 저주가 싹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면, 게일에게 실담물약을 써보도록 하지.”
침묵을 깬 것은 마리브의 음성이었다.
그는 다시금 침착을 유지하며 자리에 앉았다. 순간을 면하기 위한 거짓말은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 될 터였다. 마리브는 싱긋 웃으며 게일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떠한가? 게일이 받은 저주가 진실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을 터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마, 맞습니다! 실담물약은 마법부에서 그렇게 밀었던 것 아닙니까? 효과가 그리 좋다지요?”
“지금 당장 명령해 주십시오, 폐하!”
“게일 저하의 증언이 거짓이라면 황실의 성(姓)을 박탈하여야 합니다! 바리엘과 폐하 그리고 마리브 저하의 안위를 두고서 협박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다들 경망합니다! 입조심하시오! 아예 게일 저하께서 거짓을 증언했노라 여기고 있군요! 이는 황실모욕죄에 해당합니다!”
황제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다들 그만하고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보잘것없이 바짝 마른 손이었으나, 위엄은 충분했다.
“…게일, 실담물약을 사용하는 것을 동의하는가?”
황제이자, 아버지의 물음이다. 지금이라도 혹 거짓을 말했다면 서둘러 정정하고 사죄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일종의 기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게일은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단언했다.
“동의합니다.”
“그것 보십시오! 우리 저하는 거짓부렁따위는 말 안합니다! 여기서 지금 게일 저하를 모독한 자들, 내 똑똑히 봐두었소!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허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게일 저하! 대체 무슨 속셈이신 겁니까?”
“저저, 불경한!”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허락. 분명 저주가 거짓이라면 저리 나올 수는 없다. 당장이라도 마법부에서 실담물약을 가져와 들이붓기만 한다면 들통날 것을.
대신 중 한 명이 마리브에게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저하, 게일 저하의 속내가 어떤 것 같습니까? 저리 당당하신 걸 보니 어쩌면 진실인가 싶습니다.”
“진실이 아니라, 영리한 게다.”
“…예?”
무슨 뜻이냐며 눈썹을 치켜올리는 대신에게, 마리브가 짚어주었다.
“써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어서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당당하게 실담물약을 쓰겠노라 말할 리 없으니.”
실담물약에 제기되었던 가장 큰 문제점, 신뢰. 말로는 진실을 말하게 한다지만 마법부의 의도대로 조종당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우려하던 부분이었다.
“실담물약에 손을 쓴 게 분명하다.”
“아아…….”
대신은 마리브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웨슬리는 죽고 없어졌지만, 현재 마법부에서 보관 중인 실담물약은 모두 그녀의 지시대로 만든 것이지 않나?
추측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황제 폐하.”
마리브는 황제의 허락을 구하고서 발언권을 가져왔다.
“현재 마법부에 있는 실담물약은 모두 대역죄인 웨슬리의 의도대로 만든 것이니,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하여, 모든 마법 물약을 폐기하고 게일이 쓸 실담물약은 공정하게 새로 제조하여 쓰는 게 좋겠습니다.”
“마리브 저하! 현재 실담물약을 제조하느라 쓰인 루론석의 양을 모르십니까? 그걸 전부 폐기하자고요?”
“그대는 게일이 걱정되지도 않나? 나는 의문스럽고 걱정되어 현재 만들어져 있는 건 쓸 수 없다는 견해네.”
겉으로는 게일의 안전을 도모하는 척하지만, 결국에는 저주의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술수였다. 가만히 듣던 게일이 한마디 덧붙였다.
“실담물약을 만드는 데는 시일이 좀 걸립니다.”
“마법부에서 다들 손 걷고 나선다면 최대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게일이 입술을 비틀었다. 그 모습을 본 마리브는 가슴 아래에서 올라오는 희열에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네놈 간계에 넘어갈 것 같은가?’
“지금 당장 밝혀낼 수 있는 일을, 어찌하여 그리 미루려 하십니까?”
“게일. 너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당장 죽지 않는 이상 전혀 문제 될 것 없는 일 아닌가? 경비를 단단히 세워둘 터이니 심려치 말고 기다려라. 아니면, 그대는 아직도 웨슬리를 믿나?”
마리브의 노골적인 핀잔에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저것 좀 보라며, 실담물약에 분명 무슨 수작을 해놓은 게 분명하다는 마리브의 세력과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게일을 밀어주는 자들의 언쟁이 터져 나왔다.
쾅쾅쾅!
보다 못한 수상이 다시금 봉을 내려쳤다.
“좋습니다. 이는 황제 폐하와 마찬가지로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웨슬리가 어떤 짓을 해두었을지 모르니, 음용 가능한 것은 모두 폐기하고 새로이 제조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시일은 어찌합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다들 이안을 쳐다봤다. 마법에 관련한 것은 모두 이안의 입을 통해서만 묻고 있었으니. 마법부의 독보적인 권력이 어찌하여 세워졌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름 안팎으로 걸린다고 하나, 조금 이르게 당길 수는 있을 터입니다. 자세한 것은 담당 부서와 함께 협의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회의는 이쯤 하여 마무리하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오래 지났군요. 조만간 다시 긴급 소집을 할 터이니, 중대 관련자들은 출궁하지 말고 머무십시오.”
쾅쾅쾅!
회의가 일단락됐다. 혹여 게일이 깨어나지 못했다면 더 늦춰졌을 터. 대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스윽.
“…모두들 황궁의 일상을 되찾기 위하여 힘쓰라. 그리고 게일.”
“예. 아버지.”
황제는 말없이 고갯짓으로 따라오라 명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서자, 게일의 세력 또한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 중대 사안에 대해 긴급회의를 이어갈 게 분명했다. 남은 마리브의 세력들 또한 삼삼오오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
“네. 마리브 저하.”
이안은 마리브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마법부 차기 장관 후보에 실담물약과 관련한 부서의 대장들이 오르는가?”
“아니오. 그들은 마력 연마보다 지혜 탐구를 우선으로 하는 자들이라, 장관 선출에 뜻이 없을 것입니다.”
마리브가 주위를 물리며 이안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했다. 이안은 앉아있는 그에게 허리를 숙이며 귀를 가까이 댔다.
“그렇다면 그들을 먼저 포섭하라.”
목소리가 꽤 즐거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부의 날개였던 웨슬리는 꺾여 죽었고, 게일을 처리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였으니 말이다. 거기에 차기 장관으로 밀 자가 자신의 수하였으니. 이만큼 완벽한 상황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능하겠지.”
“물론입니다. 저하.”
“그래. 자세한 건 다시 전언하겠다.”
현재 마법부에서는 이안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했다. 막 입부했으나 황자의 연줄을 제대로 쥐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 장관과 대적할 만큼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
장관으로 추대되는 것이 우스개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스윽.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인사를 남겼고, 마리브는 흡족한 손짓으로 그를 격려했다.
밖으로 나오자, 인사 회의가 일어났던 건물에 붉은색 마법진이 쳐져 있는 게 보였다. 웨슬리의 죽음을 비롯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는 표식이다.
‘마리브…. 뭔가 이상한 걸 눈치 못 챘나?’
그는 회의장에서 격돌하던 마리브와 게일을 떠올렸다. 게일이 저주에 관하여 거짓을 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담물약은? 과연 마리브의 의중대로 흘러간 게 맞을까?
‘게일이 진정으로 실담물약에 수작질을 하였다면, 아예 직접 소지하여 회의에 들어섰을 것이다. 하여, 증언함과 동시에 마셔버림으로써 일을 밀어붙였겠지.’
이는 모두 게일의 계산이다. 반대 세력이 실담물약에 불신하고 있다는 걸 이용하여 시간을 번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웨슬리 없는 지금의 마법부에서, 그를 도와 일할 자는…….
“이안.”
솨아아아.
마법부 본관 옆, 정원을 지날 때였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날과 같다. 별채가 있어야 할 곳에서 게일을 마주했던 그날.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시원하게 파고들었다.
“황제 폐하와 말씀은 나누셨습니까?”
게일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정원 깊은 곳을 가리켰다. 잠깐, 얘기 좀 하자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