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파켄스 노예 상단
‘러거스펠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로다.’
이안은 마차 창문으로 바깥을 힐끔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러거스펠, 중앙에서도 굉장히 까다로운 슬럼가 아니던가. 경비대에서 좌천이라 하면 이쪽 동네에 배치받는 것을 말했으며, 고된 업무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여, 자연스레 경비에 공백이 생기고, 이는 다시금 러거스펠의 치안 문제로 악순환되곤 했다.
온갖 범죄와 사건, 사고의 온상지. 바리엘의 썩은 폐부. 그리고 인간의 밑바닥보다 더 더럽고 추악한 그들만의 세상.
“러거스펠도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아, 이안 자네는 변경 출신이라 잘 모르겠군. 원래는 여기도 메렐로프처럼 상단들이 임시로 머무르는 동네였다네. 한데, 워낙 신분을 모르는 유동 인구가 많고, 불법 입국자를 비롯하여 마약 상단, 노예 상단들이 자리를 차고앉아서 이 지경이 되었지.”
로만드로는 위엄을 잃지 않기 위해 목을 가다듬으며 설명했다. 술에 취해 연신 따라붙는 부랑자들과 눈이 마주친 탓이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며 떨어지라 소리쳤으나, 정신이 반쯤 나간 자들에게 들어 먹힐 리가 없다.
“저리 떨어져라! 마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아느냐?”
“지체 높으신 분께서 타고 있겠지! 동화 한 닢만 주시오! 마차 소리에 술맛이 뚝 떨어졌거든!”
“이놈들! 비켜라!”
차아악!
‘내가 아는 러거스펠의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았구나.’
이안은 혀를 쯧쯧 차며 부랑자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제국민이라 여길 수 없을 정도로 헐벗고, 꾀죄죄한 모습이다. 진정한 대국이라면 이런 골목에도 햇빛이 비치어야 하건만…….
“어디, 다 온 것 같은가?”
“예. 나침판 빛이 점점 세지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이 인근에 있는 듯합니다.”
로만드로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낮이건만,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낡은 건물들로 인해 어둑어둑하다.
그뿐인가? 허공에는 빨랫줄과 누런 옷감들이 즐비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니, 고약한 오물 냄새와 주취자의 고성, 갑자기 치고 싸우는 사람들 등등. 오감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했다.
“베릭 이놈은, 경비 대장이랑도 맞서는 와중에 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고 우리를 불러?”
“아마 힘으로 해결하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샤의 판단일 가능성이 큽니다.”
베릭이라면 분명 하샤를 발견하자마자 데리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 앞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검을 휘둘러 길을 만들어냈을 터.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하샤의 부탁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잠시 멈추고, 마차를 돌려라.”
이안이 로만드로와 얘기하는 와중, 나침판의 빛이 정반대로 돌아갔다. 대상을 지나쳤다는 뜻이다. 마부는 난감하게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자작님. 길이 너무 좁아서 돌릴 공간이 없습니다. 세워두는 것은 가능하나, 다시 돌아오려면 꽤 먼 거리를 다시 돌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네. 내리지.”
“이안, 내, 내린다고?”
“로만드로 님은 원하신다면 마차에 계십시오.”
달칵,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오물 냄새가 쏟아졌다. 동시에 주위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 로만드로는 재빨리 좌우를 살피며 고심했다. 이 살벌한 동네 한복판에 마부와 있을 것인지? 아니면 마법사인 이안과 함께할 것인지?
“이안, 같이 가세! 가자고!”
스윽.
이안은 계속해서 나침판을 따라 걸으며 몸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빛의 세기가 가장 강하게 빛나며, 방향이 뒤집히지 않는 곳을 찾아야 했다.
‘여기인 것 같은데.’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낡은 건물. 이안은 건물 앞에 잔뜩 쌓여있는 궤짝들로 보아, 상단의 보금자리일 것이라 예상했다. 누렇게 때 탄 깃발이 문 옆에 꽂혀있다.
로만드로는 수염을 매만지며 코를 훌쩍거렸다.
“첼림국어로구만. 파, 파…….”
“파켄스.”
“아아. 그래. 파켄스. 에엥? 자네, 첼림국 말도 할 줄 아는가?”
고개를 끄덕거리던 로만드로가 눈을 크게 뜨고 돌아봤다. 하지만 이안은 대답할 생각이 별로 없는지, 문 앞으로 돌아가 안쪽을 살폈다.
“파켄스라…. 하샤하고 베릭이 이곳에 있을 겁니다. 안쪽에서 사람을 불러보십시오.”
“여기가? 왜?”
로만드로는 정녕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카렌나의 도적 대장과 언데드를 거래하던 노예 상단. 이안은 그 상단의 이름을 단단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나침판을 따라 왔는데 그 상단이 있다? 이것이 우연일 리 없다.
쿵쿵!
“안에 사람 있는가.”
“히익!”
이안은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아 두드렸다. 그러자 한참 후, 잠에서 덜 깬 대머리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타났다.
끼이익.
옷차림새로 보아 러거스펠에서 볼 수 없는 고위층 자제인 것 같은데, 어찌하여 대낮부터 이런 곳에 방문하였단 말인가? 사내는 이안을 위아래로 훑으며 코웃음을 흘려댔다.
“미안하지만, 장날이 아니거든.”
노예시장 열리는 날이 아니라는 뜻. 시장이 아닌 날 이리 찾아오는 것이면 빤할 빤 자였다.
성벽을 가진 호색한이던가, 실험체가 필요한 무허가 의사 그것도 아니면 애완 마물에게 던져줄 고기가 필요한 냉혈한. 뭐, 이러나저러나 다 정상은 아닌 게 분명하지 않나.
“돌아가시오.”
이안은 안쪽 공간이 생각보다 크고 깊다는 걸 알아챘다.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사내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입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구하고자 하는 게 있는데.”
“장날이 아니라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여기서 하샤와 베릭의 신원을 물을 수는 없었다. 합법적으로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수는 외국에서 납치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전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샤와 베릭의 행방을 찾는다면 노예상들의 경계를 사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스윽.
이안은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어 눈앞에 보여줬다. 눈이 휘둥그레진 사내가 무어라 말하려고 하자, 이안은 금화를 턱에 밀어 넣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구하고자 하는 게 있다 하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이어서 천천히, 웃음과 함께 사내의 입에 금화를 물려주었다. 그는 그대로 이를 꽉 깨물어 진짜 금화가 맞는지 확인하였고, 몸을 틀어 입장을 허락하였다.
“…들어오십시오.”
“크흠, 시, 시, 실례하네!”
로만드로가 헛기침을 하며 이안의 뒤에 바짝 붙었다. 사내는 이안과 로만드로를 데리고 제일 끝쪽 방에 섰다.
“잠시만요. 단장에게 고하고 오겠습니다.”
똑똑.
사내가 모습을 감추자, 로만드로는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내쉬었고 이안은 나침판을 확인했다.
‘확실히 여기다.’
상단원들을 현재 눈에 보이는 것만 일곱. 개미굴처럼 공간이 많으니, 상세한 수를 어림잡을 수는 없다. 이안이 그들을 쳐다보자, 몇몇 사내가 히죽 웃으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댔다. 로만드로의 목덜미가 굳는 기분이었다.
“왜, 왜 저리 웃나……?”
“로만드로 님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헉! 내가?”
끼익.
“이야, 이거 무슨 일일까나? 날이 아닌데도 손님이 오시다니, 이거 이거, 경비대에 들키면 진짜 무서운데. 벌금이 엄청 세다고요! 아하하하!”
상단의 단장이라 하기에는 상당히 젊은 사내였다. 호쾌하고 능글맞아 보이는 눈매가 딱 장사치의 그것이다. 사내는 이안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단장 파켄스입니다.”
“나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이죠.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하하! 앉으세요, 앉으세요!”
가벼운 웃음으로 스스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노예 상단을 꾸리고 있는 자가 허술할 리 없다.
이안은 자리에 앉으며 사무실을 둘러봤다. 사람이 머무르며 꾸리는 흔적이 하나도 없다. 이곳은 중앙에 당도했을 때 쓰는 임시 거처이며, 문제가 생기면 당장이라도 버리고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
“자, 그러면 무엇을 찾으십니까? 저희 상단을 특별히 찾으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너무 상술 같아서 말은 안 하려고 했으나,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 없다면 빠르게 다른 쪽으로 수소문해서 연결도 시켜드립죠.”
생글생글, 파켄스는 깍지를 괸 채 어서 말해보라며 웃기만 했다. 이안은 뒤에 단단히 버티고 있는 사내들을 쳐다보며 눈썹만 까딱거렸다. 저자들, 계속 저리 서 있을 것이냐는 듯이.
“죄송합니다. 어제 건물에 좀도둑이 들었거든요.”
“좀도둑?”
“피해는 없는 것 같은데,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어서 다들 예민합니다. 문을 열어준 자도 어지간해서는 넘어가는 자가 아닌데, 금화가 확실히 사람을 홀리긴 합니다. 그렇죠?”
이안은 확신했다. 그 좀도둑, 베릭이라고. 여기 안까지 들어와서 하샤를 만났고, 하샤의 부탁으로 인해 이안을 부른 것이다.
이안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상품은 얼마나 있지?”
“현재 보유한 것은 총 서른 개 정도 됩니다.”
“한번 쭉 돌아보고 싶은데.”
“죄송하지만, 거래 안 튼 분에게는 쉬이 보여드리지 않아서요.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쪽으로 올리라 하지요.”
이안은 파켄스를 빤히 쳐다봤다.
“짐승도 파나?”
“짐승이요? 아아, 예에. 뭐, 없지는 않습니다만.”
“갖고 놀 만한 것과 검술 대련용으로 쓸 만한 걸 찾는다. 알아서 추천하여 가져오면 내가 고르겠다.”
“검술용! 그거 좋지요! 자고로 검술용이라 하면 지방층이 두꺼운 게 좋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파켄스와 부하들은 문을 닫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하지만 들리는 발걸음은 한 사람의 것. 나머지 두 명의 경비는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만드로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 이안에게 속삭였다.
“하샤랑 베릭이 여기 잡혀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하샤는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말하는 개라는 게 들켰다면 말이지요. 한데 좀도둑은…….”
“베릭 맞지?”
“아마도요. 하샤와 함께 있다고 했으니 건물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아?”
로만드로는 어깨만 으쓱거리며 되물었다. 하샤와 베릭이 무엇을 어찌 처리하길 원하는지 모르니, 행동을 섣불리 할 수가 없다. 경비대라도 끌고 와서 여기를 뒤집으라는 건가?
“베릭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저희가 도착했다고.”
지이잉. 지잉.
이안은 천천히 마력을 개방했다. 눈이 금빛으로 변하고, 낮게 흔들리는 바람으로 인해 머리칼이 휘날렸다. 로만드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문 쪽과 이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마력을 느끼라고? 베릭 그 무심한 것이 느끼겠나?”
콰앙! 쾅!
그때였다. 바깥에서 들리는 굉음. 이안은 마력 흘려보내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느낀 것 같은데요.”
* * *
“무슨 소리야?”
“그러게 말입니다.”
부하들과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려던 파켄스가 멈칫거렸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서 난 소리인지라, 자못 조심스럽다.
타닥타닥!
“파켄스 님! 파켄스 님!”
“소란이 크다! 조용히 해!”
“아니, 그것이…….”
계단을 기어 올라오던 부하가 횡설수설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자욱한 연기. 혹여 불이라도 난 건 아닌지, 파켄스가 소매로 입을 가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끼이이익.
반쯤 박살 난 문이 저절로 열렸다. 통로의 횃불이 지하 감옥 안을 비췄고, 그곳에는 흰 개와 낯선 사내가 앉아 있었다. 붉은 머리칼에 부하의 피를 듬성듬성 묻힌 채로.
“뭐야?”
“안녕! 야! 우리 주인 왔지?”
“너, 너, 여긴 어떻게…….”
“우리 주인 왔지!?”
베릭은 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훌쩍 일어섰다.
하샤 역시 마찬가지. 반대쪽 통로로 뛰어가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아스타나인이여! 이제 되었소! 우리 구해줄 사람이 왔소! 다들 일어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