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53
제153화. 통돼지 파티
“저저,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정원 한쪽에서 통으로 노릇노릇 구워지는 돼지 한 마리. 로만드로는 황당하다는 듯 베릭을 구경하며 중얼거렸다.
걸신이 들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법하다. 양손에 고깃덩어리를 주먹 채로 쥐고 입에 처넣는 모습이, 영락없이 미친 자의 모습이다. 베릭은 행복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한 병 더!”
“이놈아, 그만 좀 해라! 뱃속에 거지라도 들었느냐? 몇 시간 거리를 일주일 걸려 돌아간 녀석이 양심도 없느냐?”
“술 들어가면 원래 무한대로 들어가는 거 몰라요?”
“너는 칼 맞아 죽는 것보다 배가 터져서 죽을 팔자다. 어이구, 저저, 말도 안 나오네. 정말.”
베릭은 고기로 목구멍이 막혔지만, 로만드로는 어이가 없어서 목구멍이 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릭은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계속해서 고기를 뜯어 먹었다.
“이안, 자네 저놈 부리려면 식비가 너무 들어. 가성비가 영 엉망일세.”
“그래도, 쩝, 돼지 한 마리 잡는 것보다, 아까 쓴 돈이 더 많을걸요? 무슨 생각으로 노예들이 다 이안 거라고 했대? 그치이? 와, 이 고기, 진짜 맛있다!”
베릭의 말에 로만드로가 얼굴을 확 붉혔다. 그래. 인정한다. 너무 당황하고 긴장한 탓에 말이 헛나간 것이다.
아스타나인들은 둘째치고, 국적 모를 노예들까지 데려오느라 추가 지출이 불가피했다. 죽어가는 자들에게는 의사를 붙여주고, 헐벗은 자들에게는 의복을, 굶어 죽기 직전인 자들에게는 음식을 나눠주었으니.
“네가, 네가 공무원의 애환을 아느냐!?”
“엥? 알게 뭐람? 그리고 그거랑 말실수한 거랑 무슨 상관? 이안아, 내 말 맞지?”
로만드로가 억, 하고 목덜미를 잡으며 눈을 감자 이안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밖에서 고생을 좀 하니, 애가 똑똑해졌습니다.”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 말인즉, 이안도 베릭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로만드로가 이마를 짚으며 다시금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네.”
“되었습니다. 덕분에 건물을 비워주었으니, 경비대에서는 뒤처리하기에도 쉬울 것 아닙니까. 그리고 베릭, 짚어두지만 저자들에게 나간 것보다 너의 한 끼 식사가 더 비싸단다.”
“에이, 거짓말!”
베릭은 그 말을 하면서도 제 머리통만 한 고깃덩어리를 와구와구 베어먹었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그릇. 미니가 당황해하며 불쏘시개로 장작을 뒤집었다.
“베릭 님은 천천히 먹으십시오! 아스타나인들 이제 겨우 반 그릇 먹었습니다!”
“내 배는 아직 반도 안 찼는걸?”
하샤와 함께 무엇인가를 떠들며 허기를 채우는 아스타나인들. 가끔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향 얘기를 하는 중인 듯하다.
그들 중 누군가가 이안과 눈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하며 배시시 웃었다.
“러거스펠 경비대 돌아가는 꼴을 보아,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사 후, 불법으로 노예가 된 자가 있다면 신원을 복원하여 주시고 사안을 마무리하면 되겠습니다.”
“파켄스, 저자는?”
“조력자인 사령술사가 누구인지 캐낸 다음, 경비대로 넘기십시오. 불법 노예 활동을 하였으니 관련 법에 따라 처단하면 됩니다.”
파켄스는 저택의 창고에 감금된 상태였다. 정확히는 기절하여 자리 보전 중이라 하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이안의 지시를 들은 로만드로가 술로 입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이안, 그대는 걱정 말고 차기 마법부 장관 되는 것에나 집중하시게.”
로만드로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내려놓자, 베릭이 대놓고 비웃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영락없이 해맑다.
“저러고 또 실수해서 이상한 거 사온다?”
“너는 다물고 먹거라, 아니면 오늘이 마지막 식사가 될 것이니!”
“나 밥 주는 건 이안인데 왜 생색내는지 모르겠네! 집에 아무도 없으면 내가 주방 다 털어먹지!”
“우리 미니가 그리 만만한 줄 아느냐?!”
다시금 두 사람의 유치한 말싸움에 불이 붙었다. 처음에는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던 아스타나인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익숙해진 모양이다.
의자에 앉아있던 하샤가 폴짝 뛰어내려 이안에게 달려왔다. 그의 뒤를 비척비척 따르는 한 남자.
-이안!
“하샤, 먹을 것이 모자라는가?”
-아니, 우리는 모두 풍족하다. 그것이 아니라, 혹시 아스타나에는 수많은 주술사가 있다는 걸 기억하는가?
“그래. 그대가 일러주었잖은가. 계파 간 신봉하는 주술이 다르다고. 하여, 돌아간다면 다른 계파의 도움으로 새 몸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였지. 내 똑똑히 기억한다.”
하샤가 꼬리로 뒤따라온 사내의 무릎 치를 팍팍 쳐댔다. 그러자 그가 입을 벌리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한가운데 그려져 있는 기이한 문양. 베릭과 로만드로 모두 뭔가, 싶은 표정이었으나 이안은 뜻을 알아챘다.
-이자는 점술을 부리는 자인데, 이안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하여.
일종의 예언가인 것이다. 무릇 운명을 점친다는 것은 바다에 빠져 파도를 헤아리는 것과 같다. 작은 바람과 물고기의 찰박거림으로도 쉬이 바뀌는 것이거늘.
이안은 사내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음을 깨닫고 허락하였다.
“좋은 것이면 내 듣고, 아닌 것은 내치겠다.”
-당연히 좋은 것이지! 은인의 점이 나쁘게 나오면 차라리 제 혀를 잘라 영원히 봉인하는 게 도리일세!
이안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내는 알 수 없는 아스타나 어로 미래를 점지했다. 그의 예언은 하샤의 입을 통하여 바리엘어로 나타났으니.
-비틀거리며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돌더라도, 결국에 길은 하나. 길이 바뀐 것 같아도 하늘에서 보면 모든 것은 이어져 있으니, 결국에 그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리라. 원하는 대로.
어때? 좋은 말이지? 하샤는 헥헥거리며 웃었으나, 이안은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 길이 ‘역사’를 뜻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으나, 1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가다 보면 모든 게 제 운명을 되찾아, 이안이 아는 세상을 만들어낼 것만 같았다.
“뭔데? 예언이 아니라 수수께끼네.”
-원래 예언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베릭의 말에 하샤가 대꾸했다. 예언가인 사내는 꾸벅 인사하고서 제자리로 돌아갔고, 이안은 조용히 포도주로 입술을 적셨다. 그러자 비비안나 부인이 물을 대신 건네주며 걱정했다.
“이안 님. 새벽 일찍 궁에 들어가야 한다 하시지 않았나요? 여보, 여보도 술은 그만 드세요. 일어나는 게 힘들어져요.”
비비안나의 걱정에 로만드로가 아쉬워하면서도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안 님. 마법부 차기 장관에 도전하신다고 들었어요. 지금 옷도 굉장히 세련되고 멋지지만, 아무래도 한 부서의 장관에게 어울리지는 않지요.”
“부인, 안 그래도 그걸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신년회의 특성상, 의상실 가서 맞췄던 것들은 젊은 감각이 가미된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공직에 나서기 위하여 입는 옷과 같을 수는 없다.
“하여, 새로이 준비해 두었으니 내일 입궁하실 때 그걸 입고 가십시오.”
“역시 로만드로 님이 믿고 의지하시는 분이라, 저 또한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이안이 손등에 입을 맞추며 인사하자, 로만드로는 제가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릭은 다시금 빈 접시를 들며 소리쳤다.
“한 접시 더!”
* * *
다음날, 새벽달이 뜬 시각.
이안은 몇 시간 채 자지 못하고 바로 마법부로 출근했다. 워낙 비상사태인지라, 마법부 건물에는 야근의 흔적이 뚜렷했다.
아마 로만드로가 간 행정부도 마찬가지일 터. 이안이 로비로 들어서자, 터덜거리며 걸어가던 마법사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이안, 혹시 황궁에서 따로 들어온 연락이 있어?”
“없습니다. 있다면 마법으로 비상소집을 하였을 것입니다. 문제 있습니까?”
“금기의 마법 자료를 조사하는 중 알았어. 300년이 지난 거는 행정부 쪽에 따로 맡겨놨더라고. 그, 웨슬리 님이 말이야. 아무래도 그때는 마법부 설립 전이라 그런 것 같은데, 협조문이 필요해서.”
“대장들의 협조문이 다 필요한 겁니까?”
“그래. 그리고 네 것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 아무래도 황궁 회의에 참석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써서 올려드리지요.”
드르륵.
이안은 그리 말하며 부서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의자에 빼곡히 앉아있는 마법사들. 분명 마법운용부의 사무실이건만, 이자들이 왜 다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다들 여기서 무엇 하십니까?”
“어? 어어! 이안, 쓰읍. 왔구먼.”
제일 먼저 일어난 것은 아코렐라였다. 그녀는 입가의 침을 닦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세 시. 출근하기에도 이상하고, 퇴근하기에도 비정상적인 시각. 그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피곤을 쫓았다.
“인사하게. 이쪽은 물약연구부, 언령연구부, 마법도구제작부 대장들일세. 하아암.”
아코렐라의 말에 다른 자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오가며 스쳐 지나간 탓에 얼굴이 익다. 마법운용부 사람들은 부서 뒤쪽 숙직실에서 다 같이 자는 중이다.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이안입니다.”
“아아, 그래. 알지. 새삼스럽구먼.”
“얼굴은 서로 알잖아?”
“나랑 각별한 사이들이니, 친하게들 지내시게.”
각별한 사이라. 이안을 밀어주기 위해 아코렐라가 꼬셔온 전력이라는 뜻이다. 미약 판매의 단골손님들이라 볼 수도 있겠고. 이안은 그들과 손을 맞잡으며 코트를 벗었다.
“아코렐라 님과 각별한 사이라면, 저에게도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겠군요.”
“아하하. 그렇지. 우선 물약연구부는 두말할 것 없이 실담물약 상용화 하나만 보고 들어온 자고, 마법도구제작부는 루론석 대량 공급에 뜻이 있는 부서이네. 그리고 언령연구부. 여기는 예산이 너무 적어. 말을 연구하는 부서라 따로 돈 들이는 게 없다는 게 이유지. 차기 장관께서는 그 부분을 꼭 좀 헤아려 주셨으면 한다고, 음음. 그리 말하던데.”
세 부서가 이안에게 원하는 것이 뚜렷했다. 이안은 믿어만 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코렐라는 칠판에 각 부서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내렸다.
스윽스윽.
“그리고 쟝 대장 있지?”
“네. 마법연구부 대장이지요.”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많더라. 후보 등록했던 다른 부서랑 단일화를 했어. 뭐로 꾀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지금 노선이 확실해진 부서만 따지면 우리 숫자가 조금 딸려.”
그렇게 안 봤다는 아코렐라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영 인상 깊은 자가 아니었던지라, 이안은 턱을 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선이 안 정해진 다른 부서들은요?”
“꽤 있지. 누가 되든 신경 안 쓰는 애들, 조사하느라 정신없는 애들, 원칙적으로 마력확인을 하고 나서 정한다는 애들!”
아코렐라가 칠판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치자, 숙직실에서 자고 있던 토미가 벌떡 일어나 눈을 비벼댔다. 하지만 다시금 별일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 벌러덩.
이안은 부서명을 쭉 훑어보다가 맨 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기는 어찌 될 것 같습니까?”
마법지원부. 웨슬리 장관의 직속부서이자, 현재 마법부나 황궁에서나 모두 외면당하고 있는 부서.
아코렐라가 인중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기권표 던질 것 같은데. 아예 모습들을 안 보이고 있어. 사릴 줄은 안다, 이거지.”
톡톡, 이안은 마법지원부에 소속된 마법사들 수를 헤아리며 계산했다. 다른 부서도 부서지만, 일단 저자들의 머릿수가 제일 많지 않나?
“마법지원부 대장 연락처를 아시는 분?”
생각을 마친 이안이 우아하게 되묻자, 대장들은 저도 모르게 모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이안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지시했다.
“호출합시다. 지금, 여기로.”
“호출? 하, 한다고 올까?”
언령연구부 대장의 되물음에 이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안 오면 저들만 손해입니다. 그 정도 셈은 할 줄 알겠지요. 호출해 보십시오. 저는 삼십 분 안에 올 거라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