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54
제154화. 협박과 협상 사이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웨슬리의 권세가 사라짐과 동시에, 마법지원부 대장이었던 세일로 역시 마찬가지로 벼랑 끝에 몰린 신세였다.
아니, 차라리 몰리기만 했으면 다행이지. 황궁에서는 중죄인 웨슬리와 더불어 마법지원부 역시 한패로 보는 듯하였고, 식구인 다른 마법부서는 장관직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외면하고, 배척하였다.
타닥타닥!
그리하여, 우선은 최대한 죽은 듯이 지내다가 장관이 선출되면 상황을 타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아닌 밤중에 호출이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현재 황자의 신임을 그대로 얻고 있다는 이안에게서.
드르륵!
“허억, 허억…….”
“이십일 분 삼십사 초.”
“진짜 삼십 분 안에 왔네? 포탈 썼냐?”
“쟤 혼자 포탈을 어떻게 써? 고생했다. 내근직이라 오랜만에 뛰었겠어.”
세일로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마법운용부 사무실을 둘러봤다. 이미 헤일을 포함하여 다섯 명의 대장들이 모여있었다. 이안은 찻잔을 내린 다음, 앉으라는 듯이 손짓했다.
“성의가 보기 좋습니다. 앉으시지요. 세일로 대장.”
그는 이안의 시선이 목덜미 쪽으로 내려간 것을 알아챘다. 급하게 오느라 옷깃이 뒤집힌 것도 몰랐다. 세일로는 누워서 담배를 피워대는 헤일을 힐끔거리며, 그 맞은편에 앉았다.
“어, 어쩐 일이지?”
“하하. 그러게요. 어쩐 일일까요. 세일로 대장을 새벽에 이리 뛰어오게 했으니, 그에 걸맞은 일이여야겠군요.”
이안은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마법지원부는 간 볼 상황이 아니건만, 와중에 격식을 차리니 꽤 재미있다는 의미였다. 그 뜻을 알아챈 세일로의 얼굴이 확 붉어졌고, 차를 벌컥거리는 것으로 겨우 숨길 수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현재 마법부 장관 선출이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마법지원부의 노선을 묻고자 하여서요. 후보 등록을 안 하셨으니, 뜻하는 바가 따로 있으실 것 같은데.”
후보 등록은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었다. 회의에서 이안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웨슬리와 깊이 연관되어 있던 지원부만큼은 대외적인 시선을 고려하여 아예 제외하기로.
세일로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참, 이안. 그런 거 묻지 마시게. 우리 회의 끝나고 마법지원부 부서원들 싹 다 황궁친위대 호출받아서 불려 나갔네.”
“이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조사받느라 뜻하는 바고 자시고 정신이 없을 게야. 그렇지, 세일로?”
아코렐라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주근깨 잔뜩 찍힌 뺨이 불그스름한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상기된 것 같다. 그녀는 세일로의 어깨를 감싸며 과장되게 위로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지금 황궁에 우리를 대변할 자가 없어서 직격탄으로 탈탈 털리는 거지, 장관만 세워진다면 문제없을 것이라. 우리가 이리 모였고, 자네를 부르지 않았나.”
“이봐, 나는 네 제안으로 이득을 본 적이 없다.”
“그건 과거의 일이고, 또한 제안은 내가 아니라 이안이 하는 걸세! 아하하!”
퍼억! 퍽!
아코렐라가 보란 듯이 웃으며 세일로의 어깨를 퍽퍽 쳐댔다. 그녀가 지금껏 다른 부서에게 제안한 것은 죄다 마력석에 관련한 실험이었으니, 사흘 밤 끙끙 앓아 쓰러지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세일로 대장. 마법지원부가 이번 웨슬리 사태와 연관이 없다는 것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안은 차로 목을 축이며 조용히 포석을 깔았다. 문득, 세일로는 아코렐라와 헤일 등 다른 대장들이 꾀죄죄한 것과 달리 이안의 태가 멀끔하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마법부의 수습 중심에 있는지라, 정신이 없다면 더 없을 터인데.
귀족이라는 이름값인가? 아니면 얼굴값?
“세일로 대장?”
“…듣고 있다.”
“저는 믿으나, 황궁에서도 그리 믿을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식구인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당연한 일이지요.”
그뿐만 아니다. 혹여 황궁에서 마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마법지원부를 싹 갈아버리겠다고 하면? 그와 동시에 과거 업무기록을 확인하여 문제 되는 부분이라도 드러나게 되면?
웨슬리와 별개로 세일로는 처분을 피할 수 없으리라.
“아시다시피, 현재 궁에서는 저로 인해 마법부 내부의 일을 보고 받고 있습니다. 황궁에 마법지원부의 결백을 확실히 전달하도록 하지요. 그만한 일은 문제없이 가능합니다.”
세일로는 이안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 자신의 뒷배인 마리브 황자를 설득하여 마법지원부에 관용을 베풀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말을 더듬으며 조심스레 반박을 내놓았다.
“마, 마리브 저하께서 넘어가신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피해자는 게일 저하이시다. 어찌 나오실지는…….”
“게일 저하도 문제없습니다.”
그 말에 아코렐라와 헤일 역시 고개를 돌려 이안을 쳐다봤다. 마리브 저하는 당연히 이안의 후원자이니 그렇다 쳐도, 게일 저하는 어찌하여?
하지만 이안은 자신과 게일의 비밀스러운 거래 대신, 적당히 둘러댔다.
“게일 저하께 그것이 패착이기 때문입니다.”
“패착? 음. 그렇군.”
이안의 말에 뒤에서 담배만 뻐끔대던 헤일이 연기를 후, 뱉었다. 마리브가 실권을 잡으면 게일의 입지가 확실히 좁아진다.
그런 와중에 마법지원부를 굳이 물고 넘어질 리 없다. 차라리 봐줄 수 있는 데까지 봐주겠지. 적의 적은 아군이요. 마법부에서 도려져 오갈 데 없는 자들을 주워서라도 세력에 흡수시킬 테니까.
“그래. 게일 저하는 신경 쓸 것 없겠다. 세일로.”
혹여 그게 아니더라도, 이안이 마법부 장관이 된다면 그 힘과 마리브 저하의 실권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 않나. 헤일이 담배를 튕기자 세일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 못 한 게 분명하다.
“무슨 뜻이지?”
“모르겠으면 그냥 닥치고 고개만 끄덕여라. 그것이 네놈 살길이다.”
대놓고 주는 면박에 아코렐라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웃음이 조금이라도 새어나갔다가는 세일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 같았기에.
“걱정하지 마시고, 마법지원부 부원들의 지지를 제게 모아주면 됩니다. 어떠십니까. 새벽에 옷깃 뒤집힌 것도 모르고 달려올 만하다 여겨지는데요.”
이안이 그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며 되물었다.
세일로가 대장들과 이안을 천천히 둘러본 다음,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바닥에 바싹 말라버린 자존심을 싹싹 긁어서.
“거절한다면?”
“오. 그리하신다면-”
이안이 낮게 웃음을 흘리자, 동시에 창문에서 동이 터왔다. 눈부시게 환한 햇빛이 그의 금발을 더욱 화사하게 물들였다.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었건만, 녹안에 물든 냉기를 지워낼 순 없었다.
“아마 누구도 세일로 님을 추억하지 못하겠지요?”
짧지만 의미가 확실하다. 세일로가 웨슬리와 엮여서 모반죄로 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하여, 이곳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그의 이름 한 글자도 남기지 못하리라.
“…거절한다면, 이라고 그저 물어본 것일세. 나는, 원래 호기심이 좀 많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니 궁금한 거지. 음음.”
세일로는 바로 정정하여 꿍얼꿍얼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의 모습에 아코렐라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헤일 역시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하하! 방금 너무 찌질했는데, 괜찮아. 우리끼리만 알고 있을게. 잘 생각했어! 이봐, 우리는 그래도 식구잖아. 세일로, 네가 죽으면 난 너무 슬플 거라고. 그럼 앞으로 마력석 실험은 누구한테 하나? 응?”
“멍청해도 고집은 없어서 다행이군. 생명 연장 축하한다.”
대장들의 말에 세일로는 부들부들 꽉 쥔 주먹만 떨어댔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지금으로서는 선택지가 없다. 이안을 거절한다면 쟝에게 붙어야 하는데, 그가 누구를 등에 업었든 간에 마리브와 대적할 순 없으리라.
“하면, 황궁친위대에 불려간 우리 애들 좀 풀어달라 해주어. 그래야 내가 부원들을 설득할 건더기라도 있지.”
따악!
이안은 손을 튕기며 수긍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지원부의 표를 가져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마법부 건물 안에 이안의 세력을 최대한 많이 배치하여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알겠습니다. 오후 중으로 모두 귀가하게끔 힘써보지요. 세일로 대장은 온 김에 저기 구석으로 가서 서류 검토나 좀 하십시오. 업무 마비라 개 발이라도 빌려야 할 참이니.”
“개, 개 발?”
“자자, 이제 일하자고.”
“몇 시부터 행정부 보고서 받는다고 했더라?”
“그거 옆 부서에 가서 물어봐야 해요. 중간에 따로 내려왔다고 들었거든요.”
황당해하는 세일로를 뒤로, 그들은 모두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잠도 못 잤건만 어찌 아침은 이리도 자비 없이 온단 말인가. 아코렐라가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기 위해 문을 활짝 여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으아아악! 깜짝이야!”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낯선 시종장과 떡하니 마주하고 말았다. 그녀의 소란에 모두가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봤다.
“누구인가?”
“이안 히엘로 자작님. 저는 딜라이나 님의 시종장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딜라이나? 현재 황제의 옆을 유일하게 지키는 후궁이자, 아르센과 진의 친모. 이안은 서류뭉치를 툭 내려놓은 다음 외투를 집어 들었다.
“가지.”
무슨 일로 보자 하는 것일까? 대충 짐작은 간다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르센과 진. 딜라이나는 두 황자의 안위를 위해서 마리브와 게일의 균형을 바랄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는.’
하지만 일이 이리되어 버렸으니, 마리브가 마법부까지 차지하고 확실히 권력을 장악한다면 그의 독주를 멈출 자가 없어진다. 그리고 마리브가 황제로 즉위한다면 아르센과 진의 안위 역시 보장할 수 없는 노릇.
딜라이나는 차라리 지금 게일을 돕고자 할 터다.
‘황제가 죽으면 곤란하다는 점에서, 게일과 딜라이나는 충분히 한 배를 탈 만하다.’
혹시 게일이 딜라이나에게 미리 언질을 넣어둔 것일까? 이안이 겉으로는 마리브의 옆에 서 있지만, 뒤에서는 칼을 들고 있노라고.
‘가능성 있다. 지금으로는 세력을 유지하여 대응하는 게 중요하니. 아르센과 진까지 끌어들여 힘을 모으고자 할 수도.’
그것이 아니라면, 마리브의 인재라 여겨지는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부르는 건가? 이안은 마차를 타고 달려가는 와중, 끊임없이 가정을 이어나갔다.
히이이잉!
이른 아침이라 딜라이나의 궁 주위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쌀쌀한 바람이 이안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고, 시종장은 허리를 반쯤 굽히며 그를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시종장의 구두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탓이다. 이른 시간이라고는 하나, 후궁의 궁이라 하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필시 일부러 사람을 물려놓은 것일 터.
응접실로 이어지는 커다란 아치형 문 앞에서 시종장이 고개를 조아렸다.
“실례합니다. 잠시, 안쪽에 기별을 넣겠습니다.”
끼이익.
전언할 하인이 없어서 직접 들어간 것이다. 그녀가 문으로 먼저 들어서자, 이안은 꼿꼿한 자세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스윽.
이안은 제 오른손에 느껴지는 온기에 고개를 돌려 내렸다. 은발의 푸른 눈동자. 아이가 이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안 경.”
실로 오랜만에 본다는 눈인사다. 말투는 차분하였고, 알게 모르게 나지막하다. 그 묘한 분위기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진’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려 했다. 배시시 웃는 아이의 얼굴로 인해, 멈추었지만 말이다.
“아르센 저하. 좋은 아침입니다.”
아르센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안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흥미롭다는 듯, 눈매가 가늘게 휘었다. 이안은 그 눈빛이 영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알았는가?”
“무엇을요?”
“내가 아르센이라는 거.”
이안의 시선이 아르센의 볼에 가 있었다. 보조개 없이 매끄러운 뺨. 그는 가볍게 손을 떨쳐내며 웃었다.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