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58
제158화. 하샤, 또 보자
-카렌나 인근의 다닐 마을에서 아스타나 출신 도망자 비야스와 그의 손자 하샤를 발견. 회유하였으나 결국에는 처분으로 종결. 마을 주민들 역시 시체를 확인하였고, 혹시 황궁에서 조사단이 차출될 경우를 대비, 우물에 식중독 성분의 독을 풀어 넣었음.
하샤의 증언과 일치한다. 이안은 다닐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안과 관련한 자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바레토.
웨슬리의 보좌관이다. 그가 주도하여 마법지원부의 몇 명과 함께 일을 처리했던 것 같다.
‘연관된 자가 많지는 않군. 마법지원부 내부에서도 사령술 연구를 담당했던 마법사들이 주로 포함되어 있어. 그만큼 외부로 새어나가면 안 된다는 걸 인지하였다는 뜻이지.’
이안은 이어서 라는 주제로 올라온 연구 보고서를 넘겼다. 벌써 몇 년 동안 진행된 연구였건만, 진척이 형편없다. 동물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 같았으나 웨슬리가 원했던 ‘산 자에게 거는’ 금기의 사령술은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산 자에게 사령술을 쓴 결과는 다음과 같다. 대상으로 한 신체가 급격히 부패하거나, 온전하다 하더라도 얼마 견디지 못하고 자아 붕괴 및 제어 상실에 이르러, 죽은 자에게 사령술을 쓴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 (추신) 속박하고자 하는 대상자의 영혼을 다른 몸에 옮기는 것은 가능. 하지만 이는 사령술이 아니라 금기의 마법 영역으로 확대, 연구해야 함.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자신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져 있었으니까. 나움이 건 금기의 마법으로 인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생면부지 ‘서자 이안’의 몸으로 들어와 있지 않나.
-하지만 영혼이 옮겨졌다 하여 본디의 능력과 자아까지 이관되는지는 확인 불가. 특히 대상자가 이종족이나 마력운용자(마법사, 마검사 등)라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음.
보고서를 올린 자는 웨슬리의 대상자가 게일이라는 걸 모르는 듯하다. 문장을 하나하나 살펴 내려가던 이안의 손가락이 멈칫거렸다.
“잠깐.”
금기의 마법으로 영혼이 옮겨졌을 때, 능력까지 이관되는지가 미지수라고? 이안은 지금까지 써 온 마력이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마법은 육체가 아닌 영혼과 감응하는 것이라 배웠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이론적인 학문 견해일 뿐, 실제로 금기의 마법에도 적용되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영혼이 옮겨져도 능력을 쓸 수 있거나, 아니면-’
…서자 이안이 원래 마력운용자였노라고.
그는 조금 놀란 듯이 눈썹을 꾹꾹 문질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브라츠 백작저 뒤뜰에서 눈떴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초반에는 마력을 개방하는 것만 가능하지 않았나?
‘그래. 영혼과 감응하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내가 아는 모든 마법을 구사했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력을 개방하면 개방할수록 한계가 성장하여 여기까지…….’
“이안아, 너 귀먹었어? 로만드로가 계속 문 두드리잖아!”
그 순간이었다. 잔뜩 찌푸린 베릭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반쯤 드러누워 정신 좀 차리라는 듯이 손을 딱딱 튕기고 있는 게 아닌가.
“이안 장관님?”
“아, 로만드로 님.”
“그, 바쁘시면 다시 나갈까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안이 싱긋 웃으며 서류를 덮었다. 안쪽에서 베릭은 들어오라고 소리치는데, 이안은 대답이 없어 노크만 계속해서 해댄 참이다.
로만드로는 엉망인 장관실을 쭉 둘러보며 경악 아닌 경악을 해댔다. 자신의 상관이 아니라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듯이.
“어쩐 일이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저택에서 연락이 왔다…습니다. 하샤와 아스타나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낼 용병단을 찾았다고요.”
자작까지는 친분상 하대가 가능하였지만, 장관직은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인가 보다. 로만드로가 어색하게 경대하자 베릭이 낄낄대며 비웃었다.
“말이 왜 저래? 왔다…습니다? 하하!”
“시, 시끄럽다, 이놈아.”
“로만드로 님. 저희끼리 있을 때는 하던 대로 하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큼큼, 로만드로는 헛기침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용병단이라 하면 신뢰할 만한 자들입니까?”
“나도 그것이 걱정되었…다네. 용병은 워낙에 거친 자들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은 비비안나가 현장에서 일할 때 안면을 텄던 자들이라, 믿을 만하지.”
“그렇다면 여러모로 상단보다 안전할 겁니다. 주 의뢰입니까, 부 의뢰입니까?”
“당연히 부 의뢰지. 대륙 끝으로 마물을 잡으러 간다는데, 경로에 아스타나가 있어 의뢰를 받아주었네.”
“좋습니다. 출발 시기는요?”
“그것이, 조금 급박해. 이르면 내일, 늦어도 사흘 안에는 간다 하니. 취임하여 바쁜 것을 알지만 시간을 좀 내서 하샤와 인사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고 보니, 저택에 안 들어간 지도 벌써 며칠째였다. 이안은 웃옷을 집어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만드로 님은요?”
“나? 지금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시지요. 베릭, 너는 여기 있을 것이냐?”
“엥? 내가 왜?”
이안이 서둘러 가자는 듯이 눈짓했다. 어차피 장관직에 올랐으니 급한 불은 꺼진 셈이다. 새로운 실담물약이 만들어지고, 게일의 저주가 판정대에 오를 때까지. 그가 할 일은 딱 하나뿐이다.
‘실담물약을 내게 유리하게끔 만드는 것.’
그것에 곧 게일에게 유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으로는 게일을 살려두는 것이 이안에게도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끼이익.
“이안 장관님. 가십니까? 맥주 안 먹어요?”
“그러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먹어야지!”
“서류 정리만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는 없슴다!”
“조용히들 좀 해라. 거, 맥주는 맨날 먹으면서.”
“오늘 같은 날 먹어야 공짜라고! 헤일 대장도 한마디 해요!”
“…이안 장관님. 진짜 퇴근하십니까?”
확실히 실세 라인은 다르다. 장관실에서 몇 걸음 나오지도 않았는데 바로 마법운용부 사무실을 지나쳤다. 이안은 웃으며 옷깃을 바로잡았다.
“다음에. 급한 일이 있어서.”
“아아, 아쉬워라. 맡기실 일은 없고요?”
“아코렐라 대장에게 전해서 새로 제조하는 실담물약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상세히 올리라 전하라. 또한 마법지원부에서 사령술을 담당하였던 마법사들 인적사항을 모두 모아 정리하게.”
이안의 지시에 나키나가 펜을 끼적이며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 회식해도 좋다. 내 앞으로 달아라.”
그 말에 토미가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뜨렸다. 나키나 역시 마찬가지. 펜을 떨구며 일시 정지한 채 눈을 반짝였다.
“다녀오십쇼! 장관님!”
“와아아! 앗싸! 오늘 스페셜 세트 먹자!”
“감사합니다! 내일 영수증 보고 놀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업무는 한 시간 안에 마무리한다.”
“대장! 역시 뭘 좀 아는구나!”
세 사람이 떠들썩하게 의기투합하는 동안, 이안은 웃으며 입구로 걸어갔다. 마주치는 마법사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다.
스윽.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로만드로는 그의 뒤에서 괜히 뿌듯하게 미소를 지었다. 황궁 서열 4위였던 웨슬리 장관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안이 바로 자신과 친우의 관계이니라! 속으로 연신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 * *
“미니. 음식은 이만하면 될 것 같지 않니?”
“그렇긴 한데, 워낙에 사람이 많아서.”
“식비도 포함하여 지불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다들 옷이나 한 벌씩 더 챙기라 이르자. 국경을 넘어가면 바람이 더욱 거세지니까.”
로만드로의 저택은 그야말로 어수선함 그 자체였다. 먼 길 떠나는 하샤와 아스타나인들을 챙기기 위해 비비안나와 미니가 정신없이 돌아다녀 만든 분위기였다. 이안은 문틈으로 들리는 아래층 소음을 들으며 미소지었다.
똑똑.
“들어가도 되려나, 안 되려나?”
“들어오거라.”
“이안, 뭐 해? 아래는 거의 준비 끝났어.”
베릭은 입에 먹을 것을 잔뜩 욱여넣고 있었다. 어깨에 손자국이 난 것으로 보아, 아스타나인들 도시락을 훔쳐먹다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히엘로로 보낼 서신을 쓰고 있었다.”
“변경으로?”
“그래. 너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해다오. 덧붙여 쓰면 되니까.”
히엘로, 정확히는 이안의 생모인 필리아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서자 이안이 원래 마력운용자였을 가능성이 있으니, 그에 관하여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공원에서 화분을 살 때 금안을 처음 보는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르지. 그 외에 어렸을 때부터 특이한 행동이 있었을지도.’
이안은 펜촉 끝으로 새어나오는 잉크를 툭툭 털어댔다. 옆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왜 그리 보는가?”
“누구한테 보낼까 고민 중.”
베릭은 침대에 엎드려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족도 없고, 시시콜콜 만나던 친구도 없다. 그나마 사람 구실하며 연을 맺은 게 이안이 처음이지 않나.
“보낼 말이 없다면 안 보내도 좋다.”
“보내고 싶은데 누구한테 뭘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
“해나도 좋고, 네르사른 님도 좋고, 카칸도 좋겠구나. 답신은 느리겠지만 대사막에 있는 전사들 모두가 네 친구 아닌가?”
그때였다.
-이안, 안에 있는가?
“하샤.”
-준비가 끝났어. 슬슬 출발하려 하네만.
하샤의 부름이 들려왔다. 이안은 펜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복작복작했던 집 안이 휑하니 비어있었다. 짐을 모두 정원으로 뺀 것이다.
-이안, 이리 헤어지는 것이 참으로 아쉬워 내 코가 찡해지네.
“하샤, 울지 마라.”
이안은 축축해진 개의 눈가를 손수 닦아주며 웃었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토록 아쉬운 걸 보면 진실로 식구였던 모양이다.
-내 아스타나로 돌아가서 계파를 안정시키고 새로운 몸을 얻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안 자네를 다시 만나러 오겠어.
“그것참 기대되는 말이다.”
-참으로 고마웠네. 참으로 고마웠어.
“하샤! 나는? 나도 인사해 줘.”
베릭의 말에 하샤는 낮게 웃으며 마찬가지로 그에게 안겼다. 베릭이 으스러질 정도로 껴안지만 않았더라면 참으로 감동적인 인사가 됐으리라.
-참, 브로치를 빼주어.
“원한다면 가지고 가도 좋다. 혹시 문제가 생겼을 시 노잣돈으로 쓰거라. 상황이 좋다면 아스타나로 돌아가 다시 돌려보내 주면 된다.”
개의 목덜미에 걸려있는 마력석 브로치. 하샤가 고맙다는 듯 씨익 웃자,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조심히들 가시오! 흐으윽.”
“주인님. 그만 우십시오. 누구 죽은 줄 알겠습니다.”
“아니, 아쉬워서 그러지. 흐윽! 하샤! 하샤!”
로만드로였다. 그는 눈이 퉁퉁 부어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하샤가 웃으며 달려가자, 무릎 꿇고 앉아서는 다시금 통곡의 인사를 건넸다.
“잘~! 가라! 하샤! 만나서 참으로 반가웠다!”
-신세 많이 지고 가오. 로만드로, 언제나 건강하고 부인께서는 순산하시오. 내 아스타나에 가서 대자연께 기도 올릴 것이니.
하샤는 로만드로의 눈물로 축축해진 털을 가볍게 털어댔다. 비비안나, 미니와도 마지막을 고했고 이내 용병단의 마차에 훌쩍 뛰어올랐다.
-또 보지.
“그래. 또 보자.”
“끄어어억. 흐윽! 흐으윽! 하샤!”
“아, 로만드로 님. 콧물 더러워.”
“흐으윽!”
히이잉!
용병들은 비비안나에게 꾸벅 인사한 다음, 말을 몰았고 이내 마차들은 하나둘씩 순서대로 로만드로의 저택을 떠나갔다. 창문으로 아스타나인들의 손이 흔들렸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쥐고 있었다.
타닥타닥!
하샤는 마지막까지 창문으로 얼굴을 보였고, 이안 역시 그들이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로써 떠날 자는 모두 떠났다.
이제, 남은 일을 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