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59
제159화. 저주를 가려내는 날
쾌적한 여타 부서와 달리 마력석관리부서로 들어서는 입구는 공기부터 달랐다. 눅진한 벽에 엉망으로 붙어 있는 가루와 먼지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마력석 보관함, 열기와 냉기를 그대로 담아내는 이곳은 마치 저잣거리의 뒷골목을 떠올리게 했다.
“불 좀 낮춰봐.”
“이상하네. 임계점이 훨씬 낮잖아?”
“그러지 말고, 불 낮춰보라니까?”
퍼어엉!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사방에서는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력석을 부수고, 갈며, 끓여내는 연구의 흔적이다. 간혹가다 폭발음이 들려왔으나, 그곳의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들의 연구가 방해받지 않게끔 몸으로 플라스크를 보호할 뿐.
“흐흐흐…. 영롱하다, 영롱해.”
이안은 문에 기대서 아코렐라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공간. 루론석에서 나오는 은은한 보랏빛만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가히 미친 자의 모습 그 자체다. 아코렐라의 부하가 기척을 내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코렐라 대장.”
“왜!! 내가 연구할 때는 부르지 말라니까!”
“이안 장관님 오셨습니다.”
“오잉? 그래?”
태세 전환이 빠르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그녀는 고글과 함께 손에 낀 장갑을 벗으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장관님? 보고서 올리라고 해서 올렸는데. 아아, 아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이쪽으로 와보십시오. 루론석을 극저온에서 단계적으로 기압을 상승시키니 기포의 변화가 훨씬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근데 이걸 가루로만 쳐 받아댔으니 저희가 알 턱이 있었겠어요? 아 그러니까, 제 말은요. 이 기포가 마력석의 코어인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코렐라 대장.”
이안은 흥분해서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아코렐라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한 뼘 두께의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방긋 웃었다.
“그걸 물어보려고 왔네. 다음부터는 보고서를 쉽게 써주었으면 좋겠어. 대충 이해한 바로는, 실담물약에서 거론되었던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고.”
“맞습니다. 마시면 피를 토해 버리니 대외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에 크게 공헌했죠. 상용화를 위해서라도 필시 해결하는 부분이라 고민했는데.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돈과 의지라. 루론석 덩어리가 들어오니 연구가 훨씬 수월했다. 이안은 계속해서 보고서를 넘기며 물었다.
“효능에는 문제가 없고?”
“루론석이 얼마나 들어갔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원래는 피를 토하는 그 순간에만 기능이 작동했는데, 부작용을 해결하면서 시간대별로 조절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상용화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지라, 일단 그건 타 부서와도 협의해 보겠습니다.”
퍼엉!
복도 끝에서 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누군가의 연구가 실패로 돌아간 게 분명했다. 이안은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이것은 기우로 인한 물음일세.”
“네네. 물어보십쇼!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운을 떼면 거의 맞죠. 기우 맞을 겁니다.”
아코렐라가 눈을 반짝이자, 그녀의 부하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연구실을 나가 버렸다. 둘만 있게 되자, 이안은 팔짱을 끼며 웃었다.
“보고서에 실담물약 무력화에 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더군. 혹시 보고서를 따로 올릴 예정인가?”
“오호! 이안 님. 날카로우십니다.”
실담물약의 연구는 상용화를 가닥으로 삼고 진행되는 중이었다. 상업적이라는 것은 곧 시장의 선택을 받는다는 의미였고, 시장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제일 쉬운 길은 반대급부를 노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창이 잘 팔리면 방패도 잘 팔릴 것이요, 독약이 잘 팔리면 해독제 역시 수요가 높을 것이다. 실담물약도 마찬가지겠지. 분명 이를 무력화하는 것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일 터.
“마법부에서는 당연히 공식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을 연구할 예정이 없네. 하지만 타국이나 저잣거리의 알 수 없는 약제사들은 또 모르지. 실담물약을 무력화하는 방안에 대하여 미리 파악하는 것이 결국 이익을 장기적으로 최대화하는 방법.”
“저는 사실 그런 사사로운 계산은 잘 모르겠고요, 뭐든지 뚫는 창과 뭐든지 막는 방패가 궁금할 뿐이거든요. 복용했을 때 무력화되는 오류 사항이 몇 개 발견되긴 했습니다. 이는 따로 정리해서 드리려 했죠.”
“그 사항은 기밀일세.”
“당연하죠. 우리 애들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연구만 한다고 밖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어서.”
퍼엉!
또다시 터지는 폭발음. 매캐한 연기까지 올라오자,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정말 괜찮은 상황 맞냐는 듯이. 하지만 아코렐라는 익숙하게 서랍장을 뒤적였다. 켜켜이 쌓인 양피지 사이로 먼지가 떨어졌다.
“에, 여기 뒀는데 어디 갔지? 아무튼 오늘 중으로 대강이라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당분간 계속 장관실에 있을 것이니, 직접 올라오게.”
“넵. 알겠습니다. 이안 장관님, 충성충성입니다!”
루론석을 대량으로 공급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연구에 관해 뭔가 통하는 게 있는 자다. 아코렐라는 웨슬리보다 이안이 장관으로 들어선 게 참으로 잘 된 일이라 생각하며 장난스럽게 경례했다.
“수고하게.”
이안은 마력석관리부를 빠져나오며 연신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마법사들이 저쪽을 ‘소굴’이라 부른 이유를 너무나 잘 알 것 같지 않은가? 100년 후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확실히 우두머리의 성향이 부서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 같다.
‘이쪽은 대충 준비가 된 것 같고.’
“오셨습니까? 장관님.”
“방금 행정부에서 사람이 왔다 갔는데요.”
“행정부에서?”
이안이 돌아오자 토미가 쫄래쫄래 따라오며 서류 더미를 내려놓았다. 저것은 또 무엇인가, 소파에 누워 굴라를 까먹던 베릭이 질색이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실담물약 제조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갔습니다. 일정이 정해졌는데, 혹시 차질이 없는지도 물어보더군요. 혹시 몰라 답신을 따로 써주겠노라 하였습니다.”
일종의 심판과 같다. 게일이 증언한 저주가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심판. 그날의 결과에 따라 황궁의 급류가 어느 쪽으로 휘몰아칠지가 정해질 것이다.
짐작하기로는 대충 길이 보인다만, 말 그대로 급류인지라 완벽하게 궤를 따라 그릴 수는 없으리라. 물방울이 어디로 튀는지를 아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없다 전하라.”
“네. 알겠습니다.”
‘게일은 구사일생이요, 당분간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보호막을 얻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죽음이 곧 바리엘의 죽음이라 하였으니. 언젠가 새로이 밝혀지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마리브조차 쉬이 그를 해하지 못할 터.
‘그렇다면 마리브는 어찌 나올 것인가? 그자는 떨어뜨리려는 쪽이고, 게일은 버티는 쪽이거늘. 낭떠러지를 한 발자국 앞두고 살아나오는 꼴을 보고만 있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마리브에게도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다.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게일을 밀어버릴 것이다. 올라오지 못하게, 나락으로 떨어지게끔.
‘그중 제일 파장이 큰 수는…….’
이안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불경하고 경악스러워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거늘, 전혀 현실성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아, 너 또 표정 안 좋다.”
그를 가만히 보던 베릭이 한마디 던졌다. 요즘 들어 저리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안이 싱긋 웃자, 베릭이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어? 일하지 말자! 어차피 쟤도 대충해서 준 거임.”
“먹고사는 것도 수준이 있다. 베릭, 네가 굴라만 먹고살 것이라면 그리하지.”
“…그러면 이안이 조금만 열심히 할래?”
“아 참, 냄새 맡아봤는가?”
이안은 베릭에게 게일이 건네준 마약 냄새를 맡게 했다. 변경에서는 코를 대자마자 기절하여 환각을 보았으니, 혹여 같은 것이라면 반응 또한 같을 터. 이안의 말에 베릭이 코를 훌쩍였다.
“기절하느라 저녁 놓쳤지.”
“똑같은 게 맞는구나. 환각도 보았고?”
“어어. 그런데 이전보다는 좀 덜해.”
“같은 마약이라 한들, 제조하는 자와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린다. 어쨌거나 동질이라는 게 중요하거든.”
이안은 손으로 펜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 마약을 유통하는 상단과 마리브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히엘로로 서신을 보내며 메렐로프 쪽에도 언질하긴 했다. 리엔 부인이 줬던 그 마약, 대체 어디서 흘러들어 온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하지만 오래 걸릴 것이다. 게다가 리엔 부인은 그저 마약을 손에 넣었을 뿐, 중심 세력과 연이 닿아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 당시 백작의 살벌한 감시 아래 외부 활동을 특별히 하지 못했으니까. 지금으로는 게일이 모아둔 자료를 넘겨받는 게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상단에 대한 단서가 곧 마리브의 아킬레스건.’
일단 회의가 열리고 나서 생각하는 게 좋겠다. 결과에 따라, 정확히는 마리브의 행동에 따라 그가 취할 대응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스윽.
이안은 히엘로로 보낸 전서구가 어디쯤을 날고 있을지 가늠하며 창밖을 쳐다봤다. 별관 대신 자리한 정원 덕분에 햇살이 가감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 * *
그리고 드디어 그날.
“오늘 입궁이 안 된다고요? 왜요?”
“납품 기일이 오늘까지입니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오늘 일몰까지 외부인의 입궁을 최대한으로 막으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황궁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마치 전투를 앞둔 자들처럼 살벌하고 진중했으며, 날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혹시 몰라 경비대에서는 입출을 최소한으로 제한했고, 녹을 먹는 황궁의 모든 자들이 대회의실 앞으로 몰려들었다.
“마법부다.”
“마법부가 도착했습니다.”
“이안 히엘로 장관이라지?”
“아, 저자가 새로운 장관이군요.”
이안은 정복을 갖춰 입은 채 앞장서서 걸었다. 망토가 휘날리고, 그의 뒤로 아코렐라와 마법운용부 부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대회의실에 다다를 때까지, 주위의 웅성거림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실담물약을 새로이 제조하였다고 하네.”
“그래요? 하하, 이거 참.”
누군가의 말에 삼삼오오 모인 자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게일 저하는 끝이라는 듯이. 마리브의 권세를 업고 마법부 장관이 된 자가 만든 물약이니, 그 결과는 빤하다.
“그런데 요즘 게일 저하의 모습이 통 안 보이십니다.”
“저주를 받아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바깥출입을 삼가시는 게지.”
이안은 저도 모르게 그쪽을 힐끔거렸다. 사실 그 역시도 굉장히 궁금하던 차였다. 물론 세간과 마리브의 시선이 있으니 단둘이 접촉할 수는 없었으나, 전언에도 묵묵부답이었으니까 말이다.
‘실담물약을 바꿔치기하고, 혹시 몰라 무력화 방법까지 보내주었건만 답장이 없어.’
미친 것인가? 뭐, 그렇다면 딱히 말릴 생각은 없지만. 그때였다. 이안의 뒤로 마차 달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기세가 좋은 명마다.
“아.”
그리고 마차에 달린 깃발에는 하이만 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안과 마법부, 그리고 각 부서의 직원들이 모두 멈춰서 마차를 내려다봤다.
히이잉!
가벼운 몸놀림으로 내린 사내는 게일이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갑작스러운 게일의 등장에 다들 허리를 숙이며 경대했다.
“게일 저하, 손잡아주세요.”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한 여인의 목소리. 하이만 가의 막내딸, 멜라니아였다. 게일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고, 이내 허리를 감쌌다.
“조심하시오, 멜라니아.”
“저하가 잡아주시니, 조심할 것도 없습니다.”
두 사람의 기류가 심상치 않음은 모두가 알아챘다. 게일은 계단을 오르다 이안과 눈이 마주쳤고, 이내 은밀히 눈썹을 까딱거렸다.
‘저러느라 바쁘셨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전, 게일이 잡을 수 있는 밧줄 중 하나였다.
이안은 피식 헛웃음을 터트리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아주, 대단하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