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1
제161화. 너희 엄마
‘저주를 풀 방법이 있다.’
크게 소리칠 것도 없고, 봐 달라 몸짓할 필요도 없다. 이안의 나지막한 말 한마디에 내부의 모두가 그를 주목했으니까.
나키나는 난생처음 분위기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하나의 거대한 기운처럼, 이안의 의도에 따라 이리저리 유영하는 듯한 기분.
“이안 히엘로 장관. 저주를 풀 수 있다니, 그것이 사실이오? 마법사 두 명이 영혼을 태워 만들어낸 것인데, 가능하단 말인가?”
어느 귀족의 외침에 이안은 담담히 그쪽을 쳐다봤다. 무에 그리 놀라냐는 듯이 말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가능할 것이며, 가능하게 해야지요. 게일 저하를 이리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바리엘과 황실의 명운이 걸린 사안인지라, 마법부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이를 해결할 것입니다.”
단호하게 쳐내는 대답에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무조건, 오로지 저주의 해소만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게일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저의 진짜 저주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꽤 재미있는 수를 두지 않나.
“그것참 고마운 말이군.”
“게일 저하. 그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이안이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경례했다. 아무래도 그는 오늘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었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여유로운 것 같다. 저주를 보호막으로 치환하였고, 하이만 가의 지지 역시 공표하지 않았던가? 마리브의 손아귀에 잡혀있던 숨통을 성공적으로 빼낸 것이다.
“이안 히엘로 경. 하면 보고해 보시게. 어찌하면 게일 저하의 저주를 풀 수 있단 말인가?”
수상이 가볍게 손짓하며 채근했다. 황제와 딜라이나 역시 이안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저 작고 아름다운 소년에게 바리엘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게일 저하께 걸린 저주가 금기의 마법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시행착오가 아주 많을 터지요.”
이안은 손을 튕기며 작은 마력구를 생성해 냈다. 주위가 확 밝아짐과 동시에 이안의 이목구비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저주는 바로 이 그림자입니다. 마법의 양과 음, 떼어낼 수 없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메커니즘으로 움직이지요.”
저주를 일으킨 자의 마력, 술식, 대상자, 그리고 그것이 불러들일 결과. 저주라 한들, 결국에는 마법의 하위다.
“그림자를 없애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림자를 없애려면? 빛을 더 강하게 쐬이거나-”
“맞습니다. 웨슬리와 보좌관이 건 금기의 마법보다 더 강한 힘으로 저주를 무력화하는 방법입니다.”
평소의 웨슬리도 당해내지 못했는데, 금기의 마법까지 걸린 마법사 두 사람의 몫을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그건 이안이라도 무리다. 아니, 정확히는 마법부 전체가 덤벼들어도 확신할 수 없다. 마법사들이 술렁이자, 청중들 역시 불안한 감으로 쑥덕거렸다.
“아니면, 그림자를 그림자로 덮는 법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은 논외로 하고… 묻겠습니다, 게일 저하.”
“무엇이든지.”
“웨슬리가 조건을 붙인 게 있습니까? 조건부가 붙는 저주라면 그것을 충족하여 해결하는 법도 있습니다.”
‘게일 그대는 ―하여 ―니, 영원히 ―거예요.’
게일은 문득 그녀의 마지막 음성을 떠올렸다. 낮과 밤이 속절없이 흘렀건만, 어쩐지 기억 하나하나가 또렷하다. 그는 덤덤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다.”
“알겠습니다. 외람되지만, 웨슬리가 마법사여서 참 다행입니다. 주술사였다면 감히 시도조차 못 했을 테니까요.”
이안은 황제 앞으로 나서며 다시금 예법을 차렸다. 감히 간청하건대, 황제께서는 저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황제 폐하. 현 사안에 대해서는 황궁 내 절대 기밀로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게 명하여 주십시오. 바리엘 제국민들은 물론, 이웃 국가에도 알려지면 아니 될 것입니다.”
바리엘이 쇠퇴하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이 드글드글하다. 그런 상황에서 게일의 목숨이 그와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작게는 암살에서 크게는 전쟁까지. 황제는 깊이 공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또한, 마법부는 통상적인 저주 해결 방안을 적용, 응용하여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원활한 조사를 위하여 마법부에 사안의 통제권과 지휘권을 일임하여 주시옵소서.”
사태 수습 중간에 취임한 터라, 권한이 분산되어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황궁친위대, 이전 자료의 보관 및 마법부 장관을 대신하여 서류를 결재하던 행정부 등등.
딜라이나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심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겨우 숨겼다.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닌 자다. 마법사들은 모두 저러한가? 웨슬리도 그렇고, 어찌 맹수와 같구나.’
수그러들었던 마법부의 위상이 그대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없으면 바리엘이 없을 것이라는, 모두가 묵인하여 잊고 있었던 걸 깨닫게 하는 발언. 황제가 거절할 명분 따위는 없다. 그럴 까닭도 없고.
“경의 뜻이 옳다. 현 시간부로 웨슬리 사태에 관한 모든 지휘권은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에게 일임하노라. 내 명을 듣는 모든 자들은 마법부에 협조, 지시를 따르며 사안을 조속히 마무리하라.”
황제의 명에 앉아있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황제는 거센 기침을 토해내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딜라이나가 기겁하며 황제의 팔을 부축했다.
“폐하!”
“…오늘은 이만하지.”
“그게 좋겠습니다. 수상!”
딜라이나의 부름에 수상이 봉을 세게 내려쳤다. 모든 회의를 마무리한다는 뜻이었다. 황제는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떠났고, 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게일 저하!”
그때였다. 멜라니아가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붙잡으며 게일에게 달려왔다. 우수에 젖은 눈동자가 심히 순수하다 느껴지는 순간.
타악! 쨍!
“어머, 세상에.”
멜라니아는 드레스 자락을 밟은 것처럼 휘청이더니 탁자 위에 있던 실담물약을 깨트려 버렸다. 마리브는 입매를 딱 굳힌 채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죠?”
“괜찮아. 다치진 않았나?”
“저는 괜찮아요. 이안 장관님.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멜라니아 영애. 다치지 않으셨다면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생긋 웃는 미소가 섬찟하다. 분명 남은 실담물약으로 시비가 이어지지 않게끔 깨버린 것이다. 참으로 귀족다운 처세였다. 이안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으나, 겉으로는 멜라니아와 함께 싱긋 웃기만 했다.
“이안 경.”
“예. 마리브 저하.”
마리브는 그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이안을 불렀다. 그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아까 자신의 감정적인 실수를 인식한 탓이다.
“나중에 궁으로 들지.”
“알겠습니다. 저하.”
현재 마리브에게 부족한 것은 황제의 신임이었다. 한데 마법부 장관인 이안이 황제의 지지까지 받아냈으니, 형체 없는 의심으로 그를 잃을 순 없지 않나.
“마리브 저하. 또 뵙겠습니다.”
“…그러지요. 멜라니아 영애.”
멜라니아는 보란 듯이 그에게 인사했고, 마리브는 마지 못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행동에서 느껴지는 혐오. 그녀는 마리브의 모습이 사라지자 미소를 싹 지우고 드레스 자락을 붙잡았다.
“게일 저하. 저 먼저 마차에 가 있겠습니다.”
“곧 따라가지.”
뒤쪽에선 게일의 추종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의견을 열렬히 나누고 있었다. 멜라니아가 사라지자, 이안은 서류를 정리하며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물음에 게일은 소리를 낮추며 웃었다. 그리고 소란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하게끔 속삭였다.
“내 저주를 푼다니.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답을 찾겠다는 것이 참으로 우스웠다.”
참으로 허를 잘 찌르는 자다. 저주가 거짓인 걸 알고 있으니, 그저 말로만 풀었다 하여도 증명할 방도가 없다. 그리되면 마법부는 바리엘을 구한 업적으로 권세가 크게 올라가겠지. 어떤 대가나 희생도 없이.
“작게나마 웃음을 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저하께서 개인에 국한된 저주라 하였으니,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마리브의 고민까지 해결해 줄 수 있으니, 신뢰도 얻기 쉬울 터.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연기로 저주를 풀면 되는 것이다.
“약조한 것을 지켜주십시오. 마리브 저하와 연관된 마약과 상단의 자료. 넘겨주시면 최대한 저하의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게일은 궐련을 꺼내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어쩐지 재밌어 하는 표정이다.
“물론이다. 이른 시일 내로 넘겨주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
게일은 낮은 웃음과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추종자들이 참지 못하고 그를 부르자, 게일은 또 보자는 시선을 던지며 돌아섰다. 앞으로 처신을 어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하들과 함께, 그는 사라졌다.
“이안 장관님. 저희도 가죠.”
“그래. 오늘 수고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앉아만 있었는데요. 그나저나 당장 급한 불은 꺼져서 좀 여유롭겠습니다.”
나키나는 박살 난 유리병 조각을 발로 살살 치우며 중얼거렸다. 이안은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서며 게일의 말을 곱씹었다.
‘자료가 얼마나 도움 될지 모르겠다고?’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짐작하건대, 자꾸만 골치 아픈 가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덮어두었지만,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다. 게일이 마리브에게 상단을 언급한 게 그 증거. 거의 마지막 카드라 여기고 있었는데, 그걸 보여줬으니…….’
전면전에 들어서겠다는 것이다. 맞물리던 견제가 얽히고 얽혀 폭발하기 직전까지 들이찼다. 지금은 마리브에게도 게일에게도, 서로를 처리할 기회이자 위기.
돌이킬 수 없는 격돌의 시작이 느껴졌다.
‘마리브의 자료를 터트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이안만 알고 있는 게 아니니까, 크게 도움 되지 않을 거라는 게일의 말이 들어맞는다. 마리브 역시 물밑에서 칼을 갈고 있는 상황. 게일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어찌 될지는 빤하지 않나.
스윽.
“이안 장관님. 왜 그러십니까?”
“마법부 전체 일정을 다시 짜야겠다.”
“네? 어째서요?”
공격 마법 혹은 방어 마법. 폭풍이 휘몰아칠 때 중심을 딱 잡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좋겠다. 당장 크게 성과는 없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안이 대답없이 발걸음을 계속할 때였다.
타닥타닥!
이안에게 빠르게 달려드는 발걸음. 나키나와 토미가 놀라서 막아서려다가 멈칫거렸다.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뛰어드는 사내의 얼굴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지이잉! 터엉!
“악!”
“왜 방어진을 구축하다 마는가?”
“베릭이라서요. 베릭, 너 코 괜찮냐?”
“아오, 아오! 진짜! XX!”
헤일이 만든 방어진에 머리를 제대로 박아버렸다. 베릭은 코를 쥐어 싸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이안은 그의 손에 서신이 들려있음을 알아챘다.
“베릭. 궁에서 그리 덤벼들면 곤욕을 치를 것이라 일러주었는데.”
“몰라, 모르겠고. 이거나 빨리 봐봐. 히엘로에서 온 서신인데, 전서구가 비비안나 거라서 실수로 개봉했대.”
답신이 꽤 빠르다. 이안은 봉투에 적힌 반듯한 글씨가 해나의 것임을 알아챘다. 글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은 것 같군.
베릭은 벌게진 코를 벅벅 문지르며 덧붙였다.
“그리고 결혼하고 싶대.”
“결혼? 누가?”
“아오, 씨. 코 아파서 말이 안 나오네. 그, 천려족이랑.”
천려족이랑 결혼?
이안은 변경에서 천려족이 떠나갈 때 슬피 울던 해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확실히 마음에 둔 자가 있는 것 같았지.
“해나는 결혼하기에 너무 어리지 않은가?”
자신이 부모도 아니고, 하고 싶다면 말릴 것은 아니다만. 이안의 중얼거림에 베릭이 코만 훌쩍거렸다.
“해나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