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4
제164화. 신호탄
끼이익.
응접실에서 나오는 이안의 표정이 묘하다. 시종장은 그를 안내하면서도 굳게 닫힌 문을 힐끔거렸다. 이안이 도착하기 전만 해도 광분에 휩싸인 마리브의 괴성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한데, 지금은 어찌 이리 조용하단 말인가?
이는 이것대로 두려웠다.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무엇이?”
“…아닙니다.”
시종장은 이안의 볼과 머리칼 그리고 옷매 따위를 자세히 살폈다. 흐트러짐 없이 모든 게 들어갔을 때와 똑같다. 시종들이 산송장처럼 실려 나올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그래도 마법부 장관인지라, 저하께서 사리 분별은 제대로 한 것 같다.
“저기, 이안 님. 외람되지만 하나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허락하지.”
시종장이 마차 문을 열며 묻자, 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한 어투가 인상적이다. 마치 이 궁에서 일어나는 마리브의 광분은 저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느껴졌으니.
시종장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조아렸다.
“다른 게 아니라, 혹 안에 있던 시종들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여쭙습니다. 의사가 대기하고 있긴 하나 저하께서 계시면 진료를 볼 수 없어서요. 혹시 저하께서 피곤해하시거나, 졸린 기색을 보이시던지요.”
이안은 시종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외람된 질문이라 하더니 참으로 외람되지 않나. 주군과 시종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종장의 역할이거늘. 하지만 이안은 납작 엎드려 떨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넌지시 말을 흘려주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일몰이 보이는 시각 아니던가. 업무를 늦게까지 보시는 분이라, 아직 침실에 드실 시간이 아닌데.”
“저하께서 수면 시간이 불규칙하여, 틈이 날 때마다 눈을 꼭 붙이곤 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예의 있는 인사와 달리 마차 문 닫는 손길이 다급하다. 서둘러 이곳을 떠나라는 듯이. 이안은 그녀가 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불규칙한 수면 시간. 그래, 마리브가 담당하고 처리하는 일이 원체 많아 그의 집무실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돈다고 하였다.’
혹시 수면용 환각제를 접하게 된 계기일까? 수면에 문제가 있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아보다 특정 상단과 연루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이미 인연이 있는 곳이라 그걸 얻었을 가능성도 있겠고.
“어디로 모실까요? 장관님.”
“마법부로.”
“예. 알겠습니다.”
이안은 어둑해지는 바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존심에 금이 간 오만한 마리브가, 굉장히 재미있는 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사실, 게일을 죽이려는 시도는 그저 그러했지만, 그걸 사주받은 것이 자신이라 상황이 재밌어졌다.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
지금 마리브와 게일은 칼을 갈며 서로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다. 다만 일격으로 모든 걸 잃을 수 있기에 최대한 틈을 노리며 기회만 엿보는 중이다.
기회 엿보기, 다른 말로는 일종의 명분 부족이요, 또 다른 말로 한다면 신호탄의 부재다. 서로가 달려들 이유만 만들어진다면…….
‘둘 중 하나는 죽는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도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 남은 자의 숨통을 끊으면, 일이 쉬워져.’
게일에게는 저주의 실체 그리고 모반의 의혹이 있고, 마리브에게는 황제 시해 혐의가 있다. 이안은 달그락거리는 마차 바퀴 소리에 맞춰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목적지를 바꾸겠다.”
“예?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게일 저하의 궁으로.”
이안은 마부에게 말머리를 틀라 명하였다. 떠오른 계획이 만족스러웠으니, 게일이 마리브의 황제 시해 혐의를 터트리기 전에 이를 알리는 게 좋겠다. 다행히 마차는 오래 돌아가지 않았다.
히이잉!
‘하이만 가의 마차군.’
게일의 궁에 멜라니아가 함께 있는 듯하다. 이안이 마차에서 내리자, 경비는 절도 있게 경례하며 인사했다.
“이안 히엘로 장관님 아니십니까?”
“그래. 반갑네. 구면이군.”
“저하께 기별을 올리겠습니다.”
이전에는 자작 나부랭이라 말을 덧붙이더니만, 이제는 가타부타 묻는 게 없다. 도착했으니 알리고, 안으로 들일 뿐.
똑똑.
“게일 저하, 이안 장관 들었습니다.”
“오, 그래. 들라!”
축배를 들고 있던 중인지, 문 열자마자 술 냄새가 훅 올라왔다. 멜라니아는 눈을 반쯤 감은 채 게일이 물려주는 궐련을 피워대고 있었다. 어지간하다. 형 쪽은 집기 때려 부수며 개판이요, 동생 쪽은 방탕하여 개판이다.
“이안 히엘로 장관! 어쩐 일이신가?”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 때가 적절치 못했다면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니아니. 괜찮아. 이리 와.”
소파를 팡팡 두드리는 손길에서 즐거움이 잔뜩 묻어났다. 이안은 자리에 앉는 것 대신 멜라니아를 쳐다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멜라니아 영애. 열이 올라 보이시는데요.”
바깥바람 좀 쐬라, 그러니까 즉,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눈썹을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천출의 서자라 말이 많더니만, 화법만 본다면 어느 가문의 귀족과 다를 바가 없다.
“어머, 바람 좀 쐬는 게 좋겠어요. 잠시 실례합니다.”
멜라니아는 흔쾌히 자리를 비켜주었고, 이안은 게일과 마주 앉았다. 궐련을 툭툭 터는 손길이 다소 거칠다. 이안은 그의 눈빛이 변한 것을 깨달았다. 멜라니아가 나가자마자.
“무슨 일이지?”
취했다 여겼던 목소리도 금방 멀쩡해지는 것이, 연기가 아주 수준급이로다. 멜라니아와 어울리기 위해 그 나름대로 애로 사항이 깊어 보였다.
“마리브 저하를 뵙고 오는 길입니다.”
“그대는 항상 우리 형제를 오가는군.”
“저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찌 자꾸 찾으십니다.”
이안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게일의 낮은 웃음이 터졌다. 그는 궐련을 비벼 끄며 물었다.
“그대 존재 가치가 그러하다는 거겠지. 그래, 무어라 하던가? 나의 형, 마리브는? 고고한 척, 우아한 척 황자의 존엄을 지키려 한들, 성깔은 못 숨기지. 궁을 발칵 뒤집지는 않았나?”
그래도 평생을 가까이서 봐왔다고, 어느 정도 서로의 성격을 짐작하는 듯했다. 이안은 침묵으로 긍정을 대신하고서 본론을 꺼냈다.
“…게일 저하를 죽이라 하셨습니다.”
“하하. 참으로 듣기 반가운 말이로군.”
“그러십니까?”
“나는 대외적으로 바리엘의 존폐가 연관된 저주가 걸려있고, 대내적으로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아들이다. 이런 나를 죽이려 하니, 마리브도 꽤 궁지에 몰려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닌가?”
아마 회장에서 마리브의 세력이 보여준 태도가 결정적이었을 터. 다른 자도 아니고 게일 앞에서 세력의 결집력이 엉망이라는 걸 보이고 말았으니, 마리브에게는 충격이자 위기로 다가왔을 게 분명했다.
“그렇습니다. 방증이지요. 그리고 게일 저하에게는 굴러들어 온 명분입니다.”
게일은 이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눈치챈 것 같았다. 슬쩍 웃으며 서랍을 열더니, 이내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냈다. 이안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했던 마리브의 황제 시해 혐의와 관련된 자료다.
“명분. 난 그게 참 좋아. 궁에서는 그것이 법보다 위에 있거든. 심지어 아버지의 명조차 그것이 없으면 힘을 잃어.”
이안은 공손한 손길로 서류를 받았다. 예상 밖으로 꽤 묵직하다. 그저 마약의 출처나 공급책 혹은 연관 대상자 정도로만 알아놨을 줄 알았는데.
“어찌, 만족스러운가?”
“황제 폐하의 그늘이 깊다는 뜻이니, 한탄스럽습니다.”
“하하하! 자네는 아무리 봐도 궁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자란 말이지.”
이안은 소파 옆에 서류를 잘 내려놓은 다음, 게일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네놈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다 안다는 눈빛으로.
“마리브 저하께서 제게 진실을 증명하라 하였으니, 조만간 그리할 것입니다.”
“그대가 직접 해준다면 영광이겠는데.”
“마법의 부작용을 원하시는 듯했지만, 그것은 저에게도 부담인지라. 마침 데리고 있는 노예가 몇 됩니다.”
노예로 암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투쟁의 신호탄이라 여겨 전면전에 들어설 것이다. 목덜미만 노리고 있던 칼날이 서로에게 날아들겠지.
‘직접 마법으로 개입하면 훗날 약점 잡힐 빌미가 있다. 결과가 어찌 되든 말이다.’
마리브에게는 암살의 시도로 자신의 진실을 증명하였고, 게일에게는 그것을 알려줌으로 기회를 넘겨준다. 누가 승리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와 상관없이 이안이 빠져나갈 빌미는 만들어진 셈.
“내가 꺾이면 마리브에게는 암살 시도 자체로 신뢰를 얻고, 마리브가 꺾이면 이리 정보를 넘겨주었으니 마리브 세력과 묶이지 않겠다는 의지로다.”
“의지는 해석하기 나름이지요.”
“좋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 무엇보다 저주의 고삐를 그대가 쥐고 있으니, 나는 선택지가 딱히 없구나.”
이안의 말 한마디면 그의 보호막 하나를 깨버릴 수 있다. 살기를 두른 공격이 오가는 상황에서, 보호막의 값어치는 곧 목숨의 값어치다.
“저주를 풀었다는 공표를 게일 저하의 뜻에 맞추겠습니다. 대신, 이 자료는 최후의 수단으로 써주십시오. 애써 얻은 것인데, 무용지물이 되면 제가 참으로 곤란합니다.”
마리브의 의심까지 받으며 실담물약 건을 도와줬건만, 그가 마리브의 황제 시해 혐의를 터트리면 이안은 얻는 게 없다. 모두가 아는 정보를 대체 어디에다 써먹는단 말인가?
“그것으로 신호탄을 삼으려 하셨다면, 그러지 마시고 저를 빌미로 삼으세요. 그게 서로에게 이득일 겁니다.”
거절할 수 없다. 이것을 거절한다면 이안과 척을 지겠다는 뜻이므로. 게일은 남은 술로 입을 축이며 목덜미를 들어 보였다.
“그럼 하나 부탁하지.”
“하명하십시오.”
“암살할 날짜를 보름달이 뜬 이후로 해주시게.”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멜라니아 영애의 생일이거든. 그날 하이만 가의 사람들과 만찬이 있어서.”
말로는 그리하지만, 이안은 알아챘다. 하이만 가에서 주문한 마력석 갑옷이 그날을 기점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면 저도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말하라.”
“제가 보낸 노예, 사지 멀쩡하게 돌려주십시오.”
“하하하! 황자의 목숨을 노린 놈을 어찌?”
“외람되지만, 저는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해서요.”
두 사람의 싸움에서 자신이 잃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은 누가 죽고 살든 상관이 없었다. 역사대로, 순리대로, 쌍둥이 황자 중 한 명이 다음 대를 잇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조금 먼 날의 일이겠지만.
“나도 손해 보는 것은 싫어하는데.”
“저하께서 손해를 보셨다면, 그것은 제가 아니라 마리브 저하께 따지실 일입니다. 어찌, 제가 보름달 뜨기만을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게일 당신이라. 이전이었으면 무례하다 혀를 뽑았을 터. 게일은 다시 한번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문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겠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안 경.”
나가려는 이안을 게일이 불러세웠다. 그는 술을 가득 따르며 당부했다.
“살살 해주시오.”
“…당연히 시도만 하라 전할 것입니다.”
“말고. 그대가.”
의미심장한 말이다. 지금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인가? 이안은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침실을 나섰다. 그 짧은 사이에 술 냄새가 옷에 밴 것 같다.
스윽.
‘이제 돌아가서 적당한 노예를 선별해야겠다.’
“이안 경.”
“멜라니아 영애.”
“말씀은 다 끝나셨나요?”
“예. 즐거운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이안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려고 할 때였다. 멜라니아는 거친 손길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가녀린 팔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악스럽다. 역광으로 쏟아지는 달빛에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이안, 나 할 말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