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6
제166화. 암살 시도
킁킁. 베릭이 시아오시의 주위를 돌며 연신 냄새를 맡아댔다. 누더기 같은 옷이 문제일까, 아니면 제대로 씻지 못한 몸이 문제일까. 시아오시는 새까만 제 손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그때, 이안이 방으로 들어오며 혀를 차댔다.
“개도 아니고, 어찌 냄새를 그리 맡아.”
“육회 냄새가 나. 신선한 고기 냄새. 좋다.”
뒤따라온 미니는 깨끗한 옷을 내려놓으며 알렸다. 위아래 모두 무늬 없이 새까만 색이다. 어둠을 틈타기에 완벽한 복장이지.
“목욕물은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고맙네.”
“필요하신 거 있으면 또 부르세요. 그럼.”
암살자로 체포되면 분명 벌러덩 벗겨질 터인데, 꼬질꼬질하니 노예인 티를 낼 수는 없다. 이안은 그의 앞에 앉으며 종이를 펼쳤다.
“글을 읽을 줄 아나?”
“모릅니다.”
“나도, 나도!”
“그러면 단단히 기억에 새겨라.”
이안은 그의 앞에 앉으며 종이를 펼쳤다. 일반인도 궁에 처음 들어가면 길을 잃기 일쑤다. 한데 인생 절반을 철장에서 지낸 자가 황궁을, 그것도 게일의 처소까지 당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쯤이 입구다. 여기서 내려줄 것이니 그대는 벽을 왼쪽에 끼고 쭉 따라 들어가 제일 큰 문을 지나거라. 정원을 지나고 나서 두 번째 복도의 세 번째 방. 그곳이 대상자와 제일 가까운 응접실이다.”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베릭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복잡한 화학 공식을 들은 것처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도 된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아예 두 손 두 발 다 든 것처럼 질색했다.
“이거 안 돼. 절대 못 해.”
“베릭. 알고 있다. 하여, 다른 자를 선택한 것이니.”
“시아야, 너 이거 할 수 있어? 진짜?”
시아오시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베릭을 힐끔거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말한 것을 다시 읊어보라.”
그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들은 것을 똑바로 기억해 냈다. 이안의 입가에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고, 베릭은 감탄했다는 듯 연신 손뼉을 쳐댔다. 별것도 아닌데 이런 반응이라. 시아오시는 괜히 민망해 눈만 내리깔았다.
“지금부터 하는 말도 잘 기억하라.”
* * *
시아오시는 복면을 단단히 했다. 보름달이 차올라 다시 가라앉는 날. 처음 보는 궁의 경관은 어둠으로도 가리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감탄하는 것도 잠시. 그는 주인의 말을 떠올리며 벽을 왼쪽에 끼고 기척을 숨겼다.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지만, 착각이리라.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엄청난 일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을. 인생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의 변환점에 서 있다는 것 또한.
‘하지만 문제 될 게 무어란 말인가.’
알되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명령을 완수하는 것만이 노예의 숙명. 보이지 않는 족쇄가 더욱 무거운 법이라. 부모,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되었던 노예의 각인이 어느새 영혼에도 새겨진 듯하였다.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끼이익.
시아오시는 제일 큰 문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걸쇠가 있건만, 걸려있지 않았다. 거대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라고는 본인뿐. 늦은 밤이니 시종들은 그렇다 쳐도, 경비들조차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얘기가 된 사안이니, 안심하고 걸어가라.’
주인의 말이 시아오시의 발을 떼게 했다. 정원을 지나고, 복도에 들어서는 동안. 그는 기척 숨기는 것 없이 걷기만 했으나,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마치 침입자를 환영하는 것처럼.
스윽.
“헉!”
복도로 들어서는데, 저 멀리 시종 한 명이 그를 발견했다. 시아오시는 반사적으로 검을 잡았으나, 그녀는 못 볼 것 봤다는 듯 숨죽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쯤 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묘한 임무라 여기긴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어째서 주인이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세 번째 방. 응접실에서 창문과 가까운 문을 열면 그곳이 바로 대상자의 침실이다. 가서 베개에 칼을 꽂아 넣어라.’
시아오시는 아예 살기를 풀고 그저 목적지로 걸어갔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시아오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이내 당황스러운 자와 마주했다.
‘아이? 이런 곳에?’
은발의 푸른빛 눈동자. 아이는 어둠 속에서 시아오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의 시종처럼 도망가는 기색이 없이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찌해야 할까. 혹시 목표물의 아들일까? 아니면 설마 그 목표물? 아니지. 침실에 들어가면 검은 머리의 사내가 있을 거라 하였는데.
‘무력 충돌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저 피하고,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가. 네가 도망친다 한들 찾으려 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시아오시, 네가 잡히는 건 예정되어 있으니까.’
시아오시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아이. 그는 애써 눈길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어쩐지 소름 끼쳤다. 노예로 구르고 구르며 온갖 꼴을 다 보았으나, 아이가 저런 눈빛을 가진 건 처음 봤다.
타닥타닥!
시아오시는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자, 망설임 없이 문으로 들어섰다. 응접실, 창문과 제일 가까운 문, 침실, 그리고-
“늦었다.”
“……!”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그를 기다리고 있는 흑발의 사내.
“잠들 뻔했어.”
“…….”
“이안이 혀를 잘라버렸나? 뭐, 현명한 처사지.”
그가 손짓하여 가까이 다가오라 명했다. 시아오시는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옆에 놓인 베개. 저것이 목표다.
“네놈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니까.”
시아오시는 대꾸 없이 그저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앞에 누워있는 사내가 황자인지, 귀족인지 알 바 없다. 그저 베개에 구멍을 내는 것이 이 밤의 방점을 찍는 일일 테니까.
스윽.
“아아. 잠깐.”
하지만 검은 다시 허공에서 멈췄다. 가축의 급소를 노리다 멈춘, 그때처럼. 게일이 손을 들어 검날을 잡으려 한 탓이다.
“명색이 암살자인데 피 한 방울 안 내겠다는 건가?”
“…….”
“그러면 아쉽지. 황궁 사람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적당한 희생은 타당성을 가져온다. 자, 어서.”
이는 주인의 말과 다르다. 주인은 절대 피 한 방울 내지 말라 하였는데, 목표물은 저를 그으라, 말하고 있다.
“뭐 해? 계속 그리 있을 참인가? 무엄하게 침대에 발 올리고?”
게일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예상대로, 이안은 자신에게 어떤 물리적인 피해도 입히지 말라 명한 것 같다.
합의로 신호탄을 터트리는 것이지만, 훗날 게일이 변심하여 약점으로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암묵적인 거래는 나발이고, 이안이 게일을 죽이려 한 게 사실이라며.
“…….”
시아오시는 입술을 꾹 깨물며 게일을 쳐다봤다. 이럴 때는 어찌하면 좋지? 이에 관해서는 주인이 말한 게 없는데.
“피를 보이지 않으면 사람을 부르지 않겠다. 해 뜰 때까지 그리 있든가.”
게일의 말에 시아오시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발을 내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왼팔을 그었다.
촤아악!
어깨에서 손목까지 사선으로 떨어지는 상처. 이내 피가 뚝뚝 떨어지며 대리석 바닥을 더럽혔다. 끈적하고 뭉근한 느낌에 시아오시는 욕지기를 느꼈으나, 숨을 고르는 것으로 정신을 유지했다. 그는 그 상태로 천천히 게일에게 다가갔다.
“…어이가 없군.”
어찌 이안이 데리고 있는 것들은 죄다 저런 상태지? 듣기로는 적발의 미친개 한 놈도 있다 하고, 마법부의 마법운용부도 제정신 박힌 자들이 아닌데.
스으윽.
시아오시는 피를 침대에 묻히며 게일을 천천히 넘어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베개에 칼을 꽂아 넣었다. 이것으로 임무가 완료되었다는 듯. 그는 멍하니 앉아서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
진짜 혀를 잘랐나? 게일이 그의 턱을 열어 안쪽을 살폈으나 멀쩡하다.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 게일은 상황극을 마무리하기 위해 테이블 위를 더듬거렸다.
띵- 띵띵-
금색의 침실 종이 듣기 좋게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 하나 들어와 있지 않던 게일의 궁이 환해졌다. 기척을 숨기고 있던 시종들과 경비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문이 거칠게 열렸다.
콰앙!
“저하, 괜찮으십니까?”
“침입자다. 이자를 체포하라.”
바닥에 흥건한 피에 시종들이 멈칫거렸으나, 이내 게일의 것이 아님을 알고 안도했다. 경비들은 시아오시를 결박했고, 시종들은 방 안을 정리하기 위해 일사불란 움직이려는 순간.
“…저하?”
시종장이 게일을 넌지시 불렀다. 의아하게 인상을 찌푸린 게일이 고개를 돌리자, 다른 시종과 경비들 역시 놀라며 움찔거렸다.
“…저하!”
“게일 저하!”
“이게 어찌-”
“의사를 데려오라! 의사를!”
무슨 호들갑이란 말인가. 게일이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로 흐르는 기분 나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눈과 코, 입, 귀.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흐른 것이다. 흐르다 못해 쏟아진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커헉-!”
“저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류하는 피로 인해 숨쉬기 고통스럽다. 게일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난리가 났다. 시아오시를 붙잡고 있던 경비마저 달려가 게일을 살펴볼 정도였으니까.
“네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지 않았다.”
“악마 같으니!”
“나는 하지 않았다.”
짜아악!
경비가 시아오시의 뺨을 갈겼다. 고개가 옆으로 거세게 돌아갔으나,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게일이 손을 들어 보이며 부하들을 만류했으나, 목으로 피가 계속 쏟아지는 바람에 명령이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짜아악! 짜악!
시아오시는 묵묵히 매질을 견디며 게일을 살폈다.
황자였구나. 황제의 아들. 불이 켜지고 나서 보니, 아이가 있을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뭐, 위쪽 높으신 분들이야, 어릴 때부터 정략결혼 따위를 한다고 하지만.
“게일 저하! 의사가 왔습니다!”
“어이고, 세상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암살자가 들었어요. 서둘러 피를 멈추게-”
“저하, 고개를 들어보십시오! 자상은 없습니까?”
“갑자기 쏟으신 거라네.”
“독, 독일 수도 있습니다. 잠시만, 비키시오! 시종장! 따뜻한 물과 깨끗한 천을!”
게일은 그래도 정신이 멀쩡한지, 의사의 지시대로 곧잘 고개를 들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샹들리에를 보자, 이안의 금발이 떠올랐다.
‘…이안이 한 짓인가?’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피를 흘리다니. 이는 독이나, 어떤 주술, 혹은 마법 따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고통 없이 피만 흘리고 있지 않나.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진실로 위험에 처하면, 이안이 제일 곤란해진다. 그랬을 리 없어.’
이안은 손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는 자는 아니었다. 마리브와 게일, 둘 사이에서 어찌나 줄을 잘 타는 자인가? 자신에게 피를 내어 득 될 것이 하나 없는 상황이다.
“저하,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알려라.”
“예?”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 잘 되었다. 피를 내고 싶었는데, 잘 되었어. 뭐든지 연극에는 극적인 요소가 필요한 법.
“처소에 암살자가 들었노라고. 황궁 전체에 알려.”
“아, 알겠습니다!”
이 기현상은 차차 알아내리라. 그 전에, 신호탄이 터졌으니 우선은 달리리라. 먼저 움직이면 그만큼 상대를 앞서나갈 수 있으니.
“또한, 알려라.”
자신을 따르는 세력에게.
“나를 해하려 하는 자가 황궁에 있으니 전원 무장하여 황궁에 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