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황제의 직인
바리엘 중앙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어수선했다.
밤사이 굳게 닫혀있던 가게 문들이 열리고, 제국민들은 출근하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녔다. 귀족들의 마차들은 수송차들 사이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없이 멈췄고,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전서구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호외요! 호외!”
“아이고, 이게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
“앞에 안 가!? 아침부터 뭐 하는 거람!”
“잠깐만, 기다리시오! 미안한데, 좀 도와줘!”
이안의 마차도 마찬가지였다. 이안, 로만드로 그리고 베릭은 몇 분째 꼼짝없이 도로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하필이면 바로 앞에서 가던 마차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기약도 없었다.
“호외요! 2황자이신 게일 저하가 밤중에 습격을 당하셨다 합니다!”
차악!
빵모자를 쓴 아이가 종이를 뿌려대며 마차 사이를 누볐다. 워낙에 충격적인 내용인지라, 사람들은 기꺼이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종이를 주워들었다.
“지금 뭐라고 했니?”
“2황자 게일 저하가 습격을 당하셨답니다!”
“미쳤어? 황궁에 습격?”
“어허, 이게 무슨!”
“출혈이 심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시답니다!”
덧붙여지는 말에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가 지나가기 전, 마차 창문을 조금 열고서 동화 한 닢을 내밀었다. 모이를 발견한 새처럼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 신문과 호외 그리고 광고지를 밀어 넣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그런데 그게 사실이냐? 출혈이 심하시다고?”
“제가 신문사에서 들은 게 있는데요, 점심이 지나서 발행될 것입니다. 보시는 신문사가 따로 있으신가요?”
아이의 말에 이번에는 로만드로가 주머니를 열었다. 은화 한 닢이다. 추위에 부르튼 아이의 입매가 만족스럽게 휘었다.
“침입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앙 귀족 나으리들이 모두 일찍 입궁하였는데, 기사단을 끼고 들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범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이지요.”
소곤소곤, 아이는 혹여 정보가 새어나갈까 봐 최대한 목소리를 죽였다. 기다림이 지루해진 말이 뒷발을 툭툭 차기 시작했다. 사고가 난 앞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서서히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근데 2황자께서는 요즘 하이만 가 멜라니아 영애와 각별한 사이지 않습니까? 이를 견제하려고 하여 암살자를 움직였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움직입니다!”
“힘 실어! 붙여!”
“바로, 마리브 저하가요!”
히이잉!
마차의 바퀴가 빠져나오자, 마부는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서둘러 채찍을 휘둘렀다. 아이는 점점 멀어지는 마차를 향해 꾸벅 인사한 후, 다시 소리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호외요! 호외! 게일 저하께서 밤사이 습격을 당하셨답니다!”
창문을 닫자, 찬 바람이 뚝 하고 끊어졌다. 로만드로가 의아하게 호외지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안, 저기, 이거 문제 생긴 거 아닌가?”
분명 시아오시에게 소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명했다. 베개에 칼을 꽂아 넣되, 그 누구에게도 맞서지 말라고.
“게일 저하에게 출혈이 생겼다면, 지금 당장은 몰라도 훗날 어찌 나오실지 몰라.”
“시아 그놈, 되게 똑똑해 보이더만. 걔도 맹탕이네!”
“시끄럽다, 이놈아. 시아오시를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거늘!”
“여긴 우리밖에 없으니까 괜찮은 거 아님?”
신호탄은 터졌다. 너무 크게 터져서 예상외의 상황을 가져오긴 했지만, 어쨌거나 소임은 다 한 것이다.
‘시아오시, 피에 거부감이 있는 듯하였는데. 아마 그자가 아니라 게일 스스로 자상을 낸 걸 수도 있겠다. 나에 대한 빌미를 잡기 위해.’
자세한 것은 시아오시를 만나 물어보면 될 터.
“근데 신문사 대단하네. 밤사이 궁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게일이 직접 흘린 내용이다.”
“오? 진짜?”
“그래. 게일의 입장에는 그가 죽을 뻔한 것이, 그리고 왜 죽임을 당할 뻔했는지가 알려지는 게 이득이거든.”
게일의 저주에는 바리엘이 엮여있다. 그리고 바리엘은 곧 제국민들이다. 게일의 목숨이 존폐와 관계있다는 게 밝혀지면, 여론은 게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마리브나 게일이나, 제국민들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어찌 생겼는지도 모를 자들이니까. 다음 황제가 누가 되든 내일은 보장되어 있어. 하지만 게일의 죽음이 곧 바리엘의 쇠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때는 어찌 될까?”
“죽지 말라고 기도하겠지!”
“그것이 ‘지지’란다.”
오호! 베릭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죽지 말라고 하는 것이 지지라! 그는 로만드로의 손을 붙잡으며 결연하게 중얼거렸다.
“지지해. 로만드로.”
“이런. 고맙다고 해야겠구먼.”
“지지해. 이안아.”
“…나도 지지하마.”
이안이 피식 웃으며 맞장구를 쳐줬다. 가끔가다 보면 베릭은 이리도 재밌는 구석이 있다. 로만드로가 베릭의 손등을 토닥이며 한숨을 늘어놓았다. 천방지축 아이에게 얌전히 좀 있으라는 듯이.
“황제 페하께서 저주에 관하여 함구령을 내리셨으니, 이런 방식으로 돌파를 하겠다는 거로군.”
“영리합니다. 언론사 쪽도 잡고 있나 보군요.”
“아무래도 신문사 운영 대부분이 귀족들 자금으로 돌아가니까, 연이 이리저리 닿았을 걸세.”
게일이 습격당했다, 이 하나의 문장만으로 무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어째서? 왜? 누가? 어떻게?
그걸 충족하며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다 보면 분명 저주에 관한 언급도 새어나갈 터. 말만큼 틈으로 쉽게 새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출혈이 심했다라고 말할 정도면 황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이전에 저주를 가려내는 심판의 날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때는 절망을 기본으로 한 긴장감이었다면, 이번에는 생존의 위협을 기본으로 한 긴장감이 팽배하겠지.
“베릭. 들어가면 자중하여 내 옆에 딱 붙어있어라.”
“주인님. 언제는요, 내가 돌아다녔어?”
“자중하지 않았지. 로만드로 님. 들어가면 바로 시아오시 쪽으로 접촉 시도해 봅시다.”
“그래. 알겠네.”
예상하기로는, 이미 졸속으로 심문이 끝났으리라. 진실을 만드는 과정이니 시아오시와 연관된 자는 정해져 있었다.
“마리브가 연루되었다는 게 퍼지면 황궁에서 급속도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마법사들에게 외근과 외출을 금하고 출궁한 자들 역시 모두 불러모으세요.”
“출궁한 자들도?”
“폭풍이 거셀 때는 뭉쳐야 살아남습니다.”
“그렇지. 몸집이 단단해야 쉬이 무너지지 않지.”
로만드로는 작은 수첩에 명령을 적어넣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펜을 쥔 손이 달달달 떨리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긴장한 모양이다. 반면 베릭은 콧노래를 부르며 창밖을 유유히 구경했다.
“흐음, 흠흠. 칼 잡는 건 좋아. 재밌어. 황궁 사람들 싹뚝싹뚝. 흠흠.”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가사냐!”
“엥? 좀 그런가? 좋아좋아. 뎅강뎅강으로 바꾸겠으. 흐음음.”
아예 안 듣는 게 좋겠다. 로만드는 애써 베릭의 콧노래를 무시하며 이안에게 물었다.
“한데, 이안. 변화라 하면 어떤 것일까?”
“우선은 마리브 쪽이 즉각적이겠죠.”
밤중의 습격이 마리브의 짓이라는 게 퍼지면, 그는 당장 시아오시를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게일 측에서는 그를 보여주려 하지 않겠지.
우선 거기서 오는 1차 충돌이 예상됐다.
“한쪽에서는 정식으로 조사 과정을 밝히라 할 것이고, 한쪽에서는 주모자 참관 아래에선 조사할 수 없다고 버틸 것입니다. 대치가 계속되면, 더 급한 자가 먼저 수를 쓰겠지요.”
그것은 마리브다. 몰리는 처지니, 벗어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수를 쓸 것이다. 그게 무력일지, 아니면 저가 숨겨둔 다른 카드일지는 모르겠으나.
“게일 측은 바리엘과 운명을 같이하는 게일을 죽이려 했으니, 역모니 뭐니 온갖 중죄는 다 가져다 붙여서 언성을 높일 것이고, 마리브 측에선 받아치느라 바쁘겠지요.”
“그, 마리브 저하에게 알릴 생각은 없나?”
“시아오시가 제 노예라는 것을요?”
“그래. 어쨌거나 마리브 저하가 시켜서 한 것 아닌가. 진실을 증명하라 했다며.”
“적절한 시기에 말하는 게 최선입니다. 신호탄은 터졌으나, 선수들이 아무도 달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게일이 피를 냈으니, 마리브도 그에 따르는 과정이 필요했다.
“게다가 마리브의 시각으로 보면 저는 실패한 것이지요. 게일을 죽이라 명하였는데, 보란 듯이 노예가 생포되어 빌미까지 주지 않았습니까? 지금 밝히는 것은 오히려 독이요, 신뢰를 깎다 못해 부수는 일입니다. 물에 흘려보내듯, 알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안은 점점 가까워지는 황궁을 올려다봤다. 평소처럼 바리엘의 국기가 위용 차게 휘날리는 중이었다. 호외 날리던 아이의 말처럼, 귀족들이 기사단을 대동하여 입궁한 게 분명했다. 평소보다 서너 배는 출입 허가가 늦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솔직히 지금 걸리는 게 따로-”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출입 경비가 이안의 마차를 알아보고 먼저 다가왔다.
똑똑.
“이안 히엘로 장관님 맞으십니까?”
“그렇네만.”
이안이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는 마부를 향해 말머리를 돌리라 명했다.
“위쪽에서 급히 하달했습니다. 마법부 장관께서 입궁하시면 바로 1황궁으로 드시라고요. 뒷문을 열어드릴 테니 그쪽으로 들어가십시오.”
1황궁은 황족의 처소를 비롯해 관료들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긴급회의가 열렸다는 말과 같다.
이안의 마차는 길게 늘어진 줄을 지나쳐 경비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히 궁으로 들어섰다.
“이안, 아까 하려던 말이 무엇인가?”
“네?”
“걸리는 게 따로 있다며.”
“아아. 그렇습니다.”
마차는 어느새 달리듯 내지르고 있었다. 이안은 덜컹거리는 몸을 바로 세운 채 대답했다.
“황제 폐하 말입니다.”
“황제 폐하?”
“아무리 노쇠하여 기운이 없다고는 하나, 세상의 중심이자 황궁의 존엄이시지요. 이런 사달이 일어날 때, 어찌 나오실지 감이 안 잡힙니다.”
일종의 변수였다.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은 게일이 여기까지 온 것으로 보아, 아마 마리브를 제치는 걸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황좌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겨루는 다툼이다. 그 정도쯤은 쟁취하는 자에게 주어도 된다는 생각일까?’
3황자는 낙상하여 죽었다. 그것이 진실인지는 신만이 알고 있을 일. 게일이 후궁의 소생이긴 하나, 마리브만 없으면 현존하는 황자 중 적통에 제일 가까운 사내다.
‘게일이 황제에게 마리브의 시해 혐의를 알렸으면 더더욱, 황제는 게일을 밀어주겠지.’
이안은 손목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모든 걸 손에 쥔 자가 모든 걸 빼앗기기 직전까지 몰리면, 과연 무슨 짓을 하겠는가.
“저것 좀 보시게, 이안.”
“오오오! 죽인다!”
로만드로와 베릭의 말에 이안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장한 기사들이 구름처럼 모여있다. 각 소속 가문의 깃발을 든 채. 형형색색의 천들이 황궁 바닥에서 넘실거렸다.
“…진짜 시작인가 봅니다.”
세력끼리 대치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 고함을 내지르면 서로를 향해 창을 내던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이안의 마차가 그들 사이를 지나가며 1황궁에 당도했다.
“도,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긴장했는지 쉰 소리를 내었다. 이안이 재빨리 마차에 내려 계단을 올라갔고, 이어서 로만드로와 베릭 역시 뒤를 따랐다.
타닥타닥!
1황궁. 황족들의 처소와 관료들의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 어찌나 인파가 모였던지, 대회의실의 문이 반쯤 열린 상태였다. 이안을 알아본 자들이 몸을 좌우로 틀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리브 저하!”
웅성웅성, 관료들의 등으로 인해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목소리만 들려올 뿐.
“황제 폐하의 직인을 마리브 저하가 관리하신다니요?”
느닷없는 말에 이안의 눈이 커졌다.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나서자, 머리를 위로 바짝 묶은 마리브가 황제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알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저것은 마리브가 사냥터에 나갈 때나 하는 머리라는 것을.
“오, 이안 히엘로 장관!”
마리브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금색의 거대한 직인.
“어서 오시게.”
황제의 직인이다.
이안은 상황 파악을 위해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마리브 손에 들어가 있는 황제의 직인, 분명 어젯밤 무장한 세력을 불러모은 것은 게일인데…….
‘입구에서 대치하는 자들은 모두 무장 중이었다.’
이안은 알아챘다. 마리브는, 게일이 암살을 꾸며 선제공격할 것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노라고.
그것에 자신 역시 어찌 이용되었는지는, 이제부터 하는 처사에 달려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