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9
제169화. 개판
이안은 게일의 손에 묻어있는 피를 보자마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모습이 천천히 늘어지고, 모든 오감이 차단되는 기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털이 삐쭉 서며 뇌가 팽팽 돌아가는 느낌.
‘생각하자.’
게일은 습격을 받았으며, 그것을 마리브에게 공식적으로 제기할 것이다. 마리브는 현재 직인을 확보하였고, 황제의 안위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황제의 권한이 마리브에게 넘어간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 자에게 게일이 공식적으로 암살자에 대해 제기한다면-’
“게일. 살아 있었구나. 난 네놈이 죽은 줄 알았다.”
마리브는 미소를 찡그리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게일은 대답 대신 황제의 직인을 쳐다봤고, 이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이안은 로만드로의 팔을 붙잡으며 뒤로 물러섰다.
“로만드로 님.”
“으응?”
“마법부로 들어가 마법사들에게 황궁의 입구를 모두 폐쇄하라 명하고, 마법부 건물 자체에도 보호막 마법을 유지하라 하세요.”
이안의 속삭임에 로만드로가 뒷걸음질 치며 대회의장을 나섰다.
게일이 멈출 기미 없이 다가오자, 마리브의 부하들이 검을 빼냈다.
스릉-!
“멈추십시오, 게일 저하.”
“처소에 병사들이 몰려왔더군.”
“멈추십시오!”
“닥쳐라. 감히 누구 앞이라고.”
촤아악!
게일은 망설임 없이 마주한 자의 가슴을 베어냈다.
그의 손에 묻어있던 피가 어쩌다 묻었는지 알수 있었다. 마리브의 명령으로 게일의 궁 인근을 주둔하고 있던 자들의 흔적이리라.
관료들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고, 마리브의 부하들은 모조리 검을 빼들었다.
스릉! 스르릉!
“게일 저하! 이것은 아니될 일입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다들 고정, 고정하십시오!”
“어젯밤 내 처소에 들었던 침입자가 있소. 마리브가 보낸 것이다.”
게일의 부하들과 마리브의 부하들이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관료들은 당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얼어붙어 눈알만 굴려댔다.
‘예사가 아닌 상황이다.’
마리브가 직인으로 황제 권한을 대리한다는 주장을 들었을 때부터 짐작했으나, 이제는 확연히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바닥에 흐르는 선홍빛 피를 보라. 저것이 현실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현실이란 말인가?
“나는 대제국 바리엘의 존폐와 함께하는 저주에 걸렸다. 그런 나를 죽이려 하고, 아버지의 직인까지 강탈하였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응?”
게일이 비릿하게 웃으며 덜덜 떠는 관료들을 돌아봤다. 해석할 여지가 없다. 이는 반역이요, 더 나아가 바리엘의 미래를 깨버리는 중죄.
“치, 침입자가 마리브 저하의 짓이라니요.”
“마리브 저하, 말씀해 주십시오.”
“게일 저하의 죽음은 곧 저하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아니, 잠깐! 다들 진정하게. 침입자에 관한 것은 차차 조사를 이어나가면 될 일. 문제는 직인일세!”
당장이라도 서로의 목덜미를 뜯어먹을 것 같은 부하들의 기세에도, 마리브는 여전히 앉아있었다. 여유롭게 직인을 매만질 뿐, 마치 이곳과 동떨어져 있는 자 같다.
“게일, 반역의 시도는 네놈이 하지 않았나? 각 변경 귀족들과 접촉하여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걸 모를 줄 알았는가? 무엇보다 자작극까지 꾸려 나를 모함하려 하다니, 이것이야말로 폐하께 불충이다. 무엇보다, 나는 네놈의 저주가 거짓임을 알고 있거든.”
이번에는 관료들의 시선이 게일에게 쏟아졌다. 누가 진짜 역모를 일으킨 것인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지는 상황.
그때, 게일에게 베여 바닥을 구르던 사내가 악을 지르며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게일의 부하들이 뛰어들었고, 사방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채앵! 챙!
“으아아악! 으악!”
“다들 밖으로! 밖으로!”
“이러지 마십시오, 저하! 저하!”
“황제 폐하를 찾아라! 폐하가 있어야 중재를-”
지이이잉!
퍼엉!
은근슬쩍 싸움에 낄까, 눈을 반짝이던 베릭이 정신을 차리고 차렷 자세로 섰다. 이안이 마력을 개방한 것이다. 금안으로 번뜩이는 눈동자에는 확연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끼어들지 마시오! 위업을 완수하는 중이니!”
째앵!
흥분한 누군가가 이안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베릭이 본능적으로 공격을 쳐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자세로 반격을 가했다.
“너나 끼어들지 마. 주인 말하는 중이잖아.”
“이놈이, 건방지게-!”
빠아악!
베릭은 사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테이블에 받아버렸다. 대리석 판상에 두개골이 깨진 것인지,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멈출 기미 없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만해라.”
“넌 누구?”
“리아마. 네가 제이럿과 붙었다던 그 광견이로구나.”
“제이럿이랑 친구?”
삼대장 중 한 명인 리아마다. 제이럿과 친구라 하면, 저자도 분명히 강하겠군! 베릭이 눈을 번쩍이며 덤벼들려고 하자, 이안이 다시금 마력을 개방했다.
퍼어엉!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부터 소란을 일으키는 자는 필히 불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나지막이 경고하는 목소리. 아이가 내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위엄이 서려 있었다. 황제를 데리고 오자 소리치던 자들이 모두 움츠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황제가 왔음을, 그 누가 알까.
“이안 히엘로 경. 그대의 의견이 궁금하군. 대체 지금, 역모를 꾸미고 황궁에 소란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 것 같나?”
마리브는 넌지시 직인을 두드리며 물었다. 이제 노선을 제대로 정해보라는 듯이 말이다. 줄타기 따위는 지긋지긋하다고, 입장을 확실히 취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개판이군.’
다들 제대로 된 게 하나 없다. 꼬이고 꼬여 이제는 누가 먼저 묶였고, 풀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이안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마리브와 게일을 돌아봤다.
“두 분 다-”
이리되면, 애써서 줄을 풀 것도 없다.
“역사에 새겨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잘라서 버리면 되니까.
이안의 말에 마리브와 게일의 눈썹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황제 폐하의 안위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마리브 저하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직인 강탈은 명백한 역모이지요. 게일 저하를 해치려 했다면 그것 역시 바리엘을 쇠퇴하게 하는 일.”
“옳소! 저주를 풀기 전에 그리했다면 악마의 사주를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지!”
“게일 저하는…….”
이안은 게일을 훑어본 다음 한숨을 삼켰다. 이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변경에 있었을 때부터 반란의 주모자인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콰앙!
그 순간이었다. 바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대회의실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세력들이 맞붙은 탓이다. 누구도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건만, 그들은 핏대를 세우며 괴성을 질러댔다.
“죽여라아아!”
“으아아악!”
미세한 스파크로 불이 타오른 기름처럼. 누구도 전투의 시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안에서도 칼부림이 났는데, 밖에서도 안 난다는 보장은 없지.
채앵! 챙!
“직인을 내놓으시오! 마리브 황자!”
“건방지다! 어딜 마리브 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가!”
“아이고, 피하게! 피해!”
다시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을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관료들은 도저히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 다들 몸을 반쯤 숙이고서 대피했다.
“이안아, 우리는 어떡해?”
“우리도 가자. 여기 있어봤자 머리만 아프다.”
이안이 대회의장 밖으로 나가며 본 마지막 모습은, 게일이 마리브에게 덤벼드는 것이었다. 흥분에 휩싸인 병사들이 아군 적군 가리지 못하며 검을 휘두르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채앵! 챙!
“으아악! 난 아니다! 상관없는 자라고!”
“다들 마법부 건물로 가시오! 제국민들의 안전과 혼란 방지를 위하여 황궁의 출입을 모조리 봉쇄하였소. 안전을 도모할 자는 마법부 건물로 가시오!”
“마법부로 오세용! 아하하하!”
촤아악!
베릭은 이안의 길을 터주며 연신 소리쳤다. 휘황찬란하게 휘날리던 각 가문의 깃대가 조금씩 아래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내로라하는 자들이건만, 아마 오늘을 기점으로 명맥을 이어갈 가문은 극히 소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안아! 이쪽!”
촤아아악!
베릭은 눈먼 공격들을 가볍게 쳐내며 이안을 호위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출근했다 봉변당한 관료들이 달달 떨며 이안의 뒤에 따라붙었다. ‘안전을 도모하려면 마법부로’라는 말만 귓가에 맴도니, 생존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이, 이, 이안 경,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당장 마리브 저하와 게일 저하의 알력 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장관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황제 폐하의 행방도요. 황궁을 폐쇄할 것이니 분명 궁 안에 계시겠지요.”
“흐익! 흐이익!”
채앵! 챙!
새벽부터 아침까지. 황제가 밖으로 나가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다. 마리브가 어찌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찾으려면 안에서 찾아야 했다.
“죽여라! 붉은 깃발을 든 자들은 모조리 죽여!”
“바리엘의 운명이 우리 손에 있다! 적통도 아닌 자에게 미래를 넘길 것인가!?”
“그 입 다물어라!”
제1황궁을 빠져나올 때. 이안은 문득 뒤를 돌아봤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황제를 찾아라!’
‘죽여! 앞을 막는 자들에게는 오로지 죽음만!’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크로니가 지금-!’
‘촤아아악!’
‘으아아악! 폐하! 폐하!’
‘시선을 정확히 하라. 황좌에서 내려온 저 아이에게 미래를 바칠 것인가, 아니면 황좌에 오를 내게 미래를 바칠 것인가. 나 크로니는, 숙부를, 아니, 황제 이안을 반대한다.’
그가 황제였을 때, 마찬가지로 황궁을 뒤덮었던 반대 세력의 고함. 언제나 근엄 있고 평화로우며 중심을 지키고 있는 황궁에 혼란이 깃드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인데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정도로.
“이안 님! 저기 이안 님 오신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마법부 건물에는 마법사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로만드로가 전한 명에 따라, 그들은 입구를 비롯하여 인근 지대에 마법진을 그려 넣어 보호막을 생성했다. 웨슬리를 막고자 했던 바로 그 방어진이다.
지이잉. 지잉!
“마력의 세기를 최솟값으로 낮추고, 대신 영역을 확장하라. 아마 점점 더 많은 자들이 이쪽을 찾을 것이다.”
이안은 반투명으로 빛나는 벽에 손을 올리며 견고함을 가늠했다. 웨슬리나 마물을 막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인간의 검과 창을 쳐내고자 함이다. 이리 단단할 필요는 없다.
“황, 황궁 입구를 모두 폐쇄하는 것도 사실입니까? 일단 통행을 금지시키기는 했는데…….”
황궁 입구마다 오로라처럼 떨어지는 마법. 신원 특정 및 외부인을 가려내기 위한 마법부의 장치였다. 그것이 멈추니, 출입 관리를 맡은 황궁친위대에서도 업무가 마비되어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황궁에서 조금만 나가도 제국민들의 터가 있다. 진흙탕 싸움의 오물이 튀어야 하겠는가? 철저히 단속하라.”
“알겠습니다.”
저 멀리, 대회의장이 있었던 곳에서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서로를 태워 버리겠다는 듯이. 혼란이 지나면, 누가 핏물 위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으리라. 그게 누구이든, 함께 바닥을 청소하리라.
“…포탈.”
“예?”
이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마법부 본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베릭에게 명하려다 멈칫거렸다.
‘아르센과 진의 안위도 확인해야 하는데, 베릭은 길치라 분명 무리일 터.’
“왜왜? 나 왜 그렇게 봐? 시킬 거 있지?”
“없다. 여기서 사람들이나 지키거라.”
“에에? 있는데? 분명 있는데?”
“잠시 후, 딜라이나의 궁으로 간다. 아르센, 진 황자를 데려올 것이니.”
이안은 그 인근에 시아오시가 잡혀있는 감옥이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퍼어엉! 다시 출처 모를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응? 저것 좀 봐. 대체 뭐람…….”
“궁 안에 무슨 일 있나?”
“게일 저하도 다치셨다 하고.”
“오전 출입이 금지됐다는데? 마법부에서 뭐 실험하다 터트린 거 아냐?”
황궁 인근에 사는 제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 연기를 보았다. 안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