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7
제17화.적
순식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내의 몸뚱이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베릭은 그 위에 올라타 무자비하게 주먹을 꽂아 찍었다.
퍼억! 퍼억!
“어…….”
옆에 서 있던 일행들이 잠시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무리 급습을 당했다고는 하나, 고작 주먹 한 방에 쓰러질 덩치가 아니지 않은가. 금방이라도 아까처럼 베릭의 머리채를 잡고 던질 것 같은 자인데.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다.
“저, 저거 말려! 말려!”
“미친! 뭐 하는 거야! 베릭!”
“이 새끼가 처 돌았나!”
하지만 깔린 녀석의 반응이 이상했다. 기절한 것처럼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처참하게 무너져내렸다. 동료들은 그제야 기겁하며 베릭에게 달려들었다.
“비켜-!”
“정신 차려!”
베릭의 숨결은 거칠고 불규칙적이었다.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기세가 맹렬하다. 훈련생 다섯 이상이 붙어서 겨우 그를 끌어내릴 수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무슨 일이지?”
소란에 데오와 교관들이 달려왔다.
널브러진 거구의 사내와 피를 갈구하는 베릭. 무기 없이 주먹만으로 일어난 상황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거꾸로 베릭이 쓰러져 있으면 이해라도 하겠다만.
“하아… 하아…. 하하하!”
“이거 완전 미쳤습니다! 교관님!”
“베릭 이 자식이 갑자기 달려들었어요!”
베릭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웃음을 터트렸다. 시원하다는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그의 몸을 몸으로 누르고 있던 훈련생들이 질색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교관이 발로 그의 턱을 올렸다.
“베릭.”
“아. 시발, 이 맛이네.”
“베릭!”
“대련 중에 끝났다고 등 보인 새끼가 등신이지!”
바락바락 내지르는 괴성이 소름 끼치게 뜨거웠다. 교관은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얼굴을 발로 깠고, 이내 베릭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졌다.
“저자는 의무실로 옮기고, 베릭은 포박하여 처벌실로.”
교관의 말에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질질 끌려가는 베릭과 이안의 시선이 맞물렸다. 이안의 덤덤한 표정과 달리, 그는 보물을 발견한 모험가처럼 흥분한 눈빛이었다. 만족스러운 쾌감에 어쩔 줄 모르나 보다.
‘확실히 미친놈이군.’
이안 역시 훈련생들의 말에 동감하는 바다. 지금껏 봤던 마검사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지랄 맞는 녀석인 것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전투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죽음을 두려워 않는 전사에게 적수는 없다.
“이안 님.”
“아.”
데오가 이안에게 다가오며 눈썹을 찡그렸다.
“저놈이 뭔 짓 했습니까?”
내용과 달리 전혀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저 형식적으로 묻는 것에 가까웠다. 이안은 소매를 툭툭 털며 대답했다.
“아니. 욕이나 한 사발 얻어먹었네.”
“…오늘은 아쉽지만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첼 도련님 상태도 그렇고, 훈련장이 어수선하여.”
첼이 그늘에 대자로 뻗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통통하게 오른 배가 힘들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저 움직인 것에 의의를 두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내가 깔려 있던 자리에 피가 낭자했으니, 확실히 오늘은 공친 것이 분명했다. 이안의 목적이 훈련에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지. 근데 저 베릭이라는 자 말일세.”
등을 돌리던 데오가 이안의 부름에 멈추었다.
“처벌은 어떻게 되나?”
“워낙 말썽이 많은 녀석이라 회의를 해봐야 알 것 같지만, 아마 채찍 맞고 쫓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지급했던 급료 역시 피해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몰수당할 터. 이안은 무표정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잘 되었다.’
지금 베릭의 신분은 데르가 브라츠의 사병. 하지만 쫓겨나가 자유로워진다면 관계 맺는 게 훨씬 수월할 것이다. 맹목적으로 강함을 쫓는 자이니, 분명 방금 느낀 의문스러운 현상에 이안을 찾아오겠지.
‘저런 성정으로는 채찍 맞은 당일에 기어서라도 찾아올 것 같군.’
이안은 베릭이 사라진 훈련장 뒷문을 쳐다보며 설레설레 고개 저었다.
불꽃같은 자다. 「계약 마법」이 가능하다면 그걸로 제어하겠지만, 당장 이안에게는 무리였다. 짐승 다루듯 이리저리 잘 구슬려야 할 것이다.
“헉, 헉…….”
“형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나는 못 하겠다. 진짜 못 하겠어!”
첼이 거의 울부짖으며 짜증을 부려댔다. 이안의 금빛 눈을 보고 나서는 큰 목소릴 낸 적이 없는데. 진실로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은 앞으로 알아서 하세요.”
다만 너 때문에 백작이 자신의 단련 기회를 끊어버린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미소를 보였다.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첼은 땀을 훔쳐내며 꼼지락 일어섰다. 바닥의 피 웅덩이는 끔찍했고, 어디선가 들리는 채찍 소리와 괴성도 두려웠다.
훈련장은 정말이지 자신과 맞지 않는 곳이라, 첼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 * *
그리고 다음 날.
몰린 경과 함께하는 공식적인 세 번째 오찬이 시작되었다. 한층 더 만개한 정원의 꽃들로 주위가 화사했다. 몰린과 맥, 드고르는 이전보다 훨씬 편하게 식사를 주도했다.
“그래서 제가 그때 영애께 부탁드렸지요.”
“아하. 그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부인께서도 분명 알 것 같았어요.”
전처럼 의미심장한 말을 흘리지도 않았고, 데르가와 기 싸움을 하지도 않았다. 이안을 시험하는 듯한 화두 역시 쏙 들어가 보일 생각이 없다. 백작 부인 메리를 중심으로 시답잖은 사교계의 가십거리만 입에 올렸다. 분명 이안과 뒤에서 통하였기에 나타난 변화다.
한참 침묵하던 데르가가 한마디 던졌다.
“몰린 경.”
“네. 브라츠 백작님.”
“이안이 영지 구경은 잘 시켜주던가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으나, 이렇다 할 흔적이 없다. 첼과 데오는 아무것도 모르고, 브로치는 바쁜 와중에 세 번이나 확인했다. 하지만 꼬투리 잡을 것이 전혀 없다.
“첫 나들이라 오찬 후 공원에 갔었지요. 날씨가 아주 좋아 걷는 재미가 있었답니다. 학식 토론도 훌륭하여 그날의 추억이 선명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아참. 이안 님. 오늘은 저번에 말씀하셨던 방을 구경시켜주시겠습니까?”
방? 무슨 방? 이안이 짧은 순간 기억을 되살렸다.
몰린이 처음 외출을 제안했을 때, 그가 장난식으로 묻지 않았던가. 자신의 방을 구경하지 않겠냐며.
이안은 데르가를 힐끔거리며 웃었다. 접시 위의 스테이크가 깔끔하게 사라진 상태. 허락만 떨어진다면 이대로 일어서서 식사를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괜찮을까요, 아버지?”
“저도 함께하고 싶지만…….”
데르가가 동행하려 했으나, 정원 입구에서 서성이는 보좌관의 존재감이 강력했다. 낑낑대는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움직여서 더 그런 것 같다. 분명 급한 업무가 남은 것이다.
“부인께서 손님 접대를 마무리하시오.”
그는 속으로 혀를 끌, 차고서 메리 부인을 쳐다봤다. 당부하듯 지시하는 태도가 강압적이다.
“네. 그러지요.”
한바탕 싸운 이후로는 더더욱 냉기가 돌았다. 그나마 손님들 앞인지라 체면 챙기는 것이 저 정도.
메리 부인은 냅킨으로 손을 닦으며 화사하게 웃었다. 무대 위 배우가 표정을 바꾸는 것 같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좋습니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좋은 식사였어요.”
모두 식기를 내려놓자, 뒤에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부인에게 다가와 뭔가를 속삭였다.
“아.”
“무슨 일이시지요? 부인?”
“죄송합니다. 메렐로프 부인의 시종이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는군요.”
“이웃 영지의 메렐로프 백작 부인 말씀이십니까?”
맥이 조금 놀란 듯 되물었다. 메렐로프 백작이라. 변방이다 보니 사교계에서 그리 유명할 것 같지는 않은데…. 메리 부인의 태도로 보아 상당히 잘 아는 눈치였다.
메리 부인 역시 동의한다는 뜻으로 웃었다. 비웃음이 잔뜩 섞인 웃음이었다.
“네에. 제가 받을 게 있어서. 이안. 손님들을 먼저 방으로 모시겠니? 홍차를 먼저 올리겠습니다.”
부인이 우아하게 양해를 구했다. 데르가 역시 마지막 인사를 하고서 집무실로 올라갔고, 이안은 손님들과 함께 별채 방에 당도했다.
끼익.
“역시 방은 주인을 닮는다더니만, 아주 화사합니다.”
맥이 주위를 둘러보며 칭찬했다. 소파에 둘러앉은 세 사람. 이안은 양피지와 펜대를 가져오며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붉은 브로치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맥 경.”
“필체를 연습한다 하시던데. 구경해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맥과 드고르는 공백을 메꾸기 위해 끝도 없이 떠들어댔다. 메리 부인이 오기까지 얼마 없는 시간. 이안은 펜대를 잡고서 간단한 문장을 써 내려갔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혹 데르가 백작의 서재에 출입이 가능합니까?
-마력석 재생을 위해 줄곧 올라갑니다만.
집무실을 찾는 서두. 이안이 예상했던 세금 관련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 몰린은 쉬운 말을 고르듯 잠시 멈칫거렸다.
-영지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총 수확량과 몬느에 산맥의 탄광 생산량을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작년 여름부터 현재까지의 농민 세율확인서도요. 필사가 좋겠지만 어렵다면 숫자만 표기하여 인장을 찍어 오면 됩니다.
보유한 탄광이 있긴 있었구나. 그래봤자 석탄이니 큰 재산은 아닐 터.
상세한 목록이 없더라도 인장이 찍혀있으면 내부고발자의 신고로 간주하여 강제 수색이 가능했다.
그토록 귀족들이 인장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였으며, 보편적인 충성심의 척도로 인장을 맡기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브라츠 가문이 세금을 횡령했다는 말씀입니까?
-아직 심증만 있습니다.
이안은 머뭇거리는 척 연기하며 물었다.
-횡령은 가문을 멸하는 중죄인데요.
멸문하지 않겠다는 맹세가 필요했다.
브라츠 성이 사라지면, 이안의 자리 또한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뿐인가? 데르가의 피가 섞인 이상 황궁 노예가 될 가능성이 컸다. 횡령한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인생을 바쳐야겠지.
-제가 입적을 반대하면 이안 님은 브라츠 가의 사람이 아닙니다. 극형은 면할 것이고, 국경 또한 넘을 일 없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들 봐라?’
역시나 몰린은 원하는 답을 내주지 않았다. 이안이 이후 처리 과정을 모를 것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마력운용자라면 몰라도, 평범한 사창가 출신 아이에게는 그것이 대가로 충분하다 여기는 것 같다.
‘당연한 선택이다만, 좀 곤란한데.’
입지가 입지인 터라, 대놓고 가문의 존속을 요구할 수 없었다. 일단 데르가를 끌어내리려면 황궁 쪽 힘이 무조건 필요한데. 그렇다고 엄하게 생각이 깊다는 걸 들키면 곤란해질 것 같았다.
“아.”
골똘히 생각하던 이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맥과 드고르가 돌아봤다.
“이안 님?”
“죄송합니다. 혀를 씹었어요.”
“조심하세요. 작은 상처가 아픈 법이랍니다.”
몰린의 다정한 걱정이 다정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 끌려간다면 살길은 어디에도 없다. 이안은 방금 떠올린 수를 가다듬으며 글자를 써내렸다.
-그렇다면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습니다.
-부디 편하신 대로.
황궁의 처단에서 신변을 보호할 방법이자, 영지의 소유권을 지킬 방법.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데르가와 황궁의 공통된 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입적은 하지 않되, 천려족은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