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70
제170화. 중립 세력
이안과 각 부서의 대장들은 거대한 원탁을 두고서 모였다. 바깥에서는 계속해서 굉음과 비명이 들려오는 상황. 워낙에 긴박하다 보니, 이안은 눈대중으로 모두 모였는지만 확인했다.
앉을 새도 없이, 그들은 상체를 원탁에 기대며 아코렐라를 돌아봤다. 그녀는 유리 상자에 담긴 회색 가루를 가져와 테이블에 쏟아부었다.
솨아아악.
고운 모래 입자만큼 부드러운 마력석 가루였다. 자성처럼 마력에 반응하며, 형태를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
“아무나 마력 넣으세요. 우리 급하잖아.”
아코렐라가 가루를 툭툭 털며 말하자, 누군가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력석 가루는 스스로 뭉치기 시작하여, 이내 황궁 전체를 만들어냈다. 입체적인 도면, 마치 신의 시선으로 궁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다.
솨아아악!
아코렐라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노랗고 검은 가루를 흩뿌렸다. 그것들은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이리저리 엉키고 뭉쳐 도면을 누볐다. 마리브와 게일의 세력을 마력으로 실시간 감응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왜 노란색, 검은색인가?”
“응, 노란 대가리, 검정 대가리.”
동료의 물음에 아코렐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황자고 나발이고, 이딴 식으로 궁을 개판 친 놈들에게는 존중 따위 없다는 태도다. 동료가 반박하려다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현재 1황궁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각 세력의 황자 중 한 명이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수많은 가루 알갱이 중 마리브와 게일 역시 살아있을 게 분명했다. 이안은 전체적인 상황을 쭉 훑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황자는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네? 지금 죽이려고 저 난리 피우는 것 아닙니까?”
“세력을 쳐내기 위한 작업이다. 마리브와 게일 중 누군가의 죽음으로 승리를 얻어내면, 바리엘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리엘이라 하면…….”
“나. 그대들. 그리고 제국민.”
이안, 즉 전투에 가담하지 않은 제삼의 세력 중추들을 뜻했다. 그대들, 중추들을 제외한 황궁의 인재들을 뜻했다. 제국민, 백성의 신의와 지지를 뜻했다.
“정식으로 황궁 재판에 회부하여 상대가 역모를 저질렀다는 ‘모두의 인정’을 받고 난 후. 그때 처단하는 것이 지금 상황의 면죄부가 될 것이니.”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승리한 자가 정의요, 올바름이니 패배한 자는 무엇을 말하든 항변이 될 터.
“기록될 정당성을 위해서군요.”
“그, 그러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무엇을 해야 하죠?”
대장들이 모두 이안을 돌아봤다. 이안은 연신 끔찍하게 꾸물거리는 마력석 알갱이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저것 하나하나가 사람이고 인생이겠으나, 곧 시체로 바뀌리라.
“…다들 ‘마법사의 맹세’를 기억하나?”
마법사의 맹세. 천 년에 동안 이어져 온 대마법서에 적힌 현자의 글귀를 뜻했다. 마법을 연구하고, 탐하는 자들이라면 무조건 외울 수밖에 없다는 그것. 아코렐라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먼저 선창했다.
“마법사에게 마력이란, 오감을 넘어서는 또 다른 감각이다. 진리를 보며, 영혼이 하는 말을 들을 것이며, 신성을 말하라.”
담배를 잘근잘근 씹던 헤일이 맹세를 받았다.
“탐욕이 타오르는 것을 맡아 경계하고, 갈망을 맛보라. 그대 내면에 타오르는 것이 불꽃임을 명심하여, 외부의 바람으로 꺼지지 않게 하라.”
대장들은 시선을 나누며 천천히, 호흡을 함께 했다. 현자의 말은 억겁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마법사들을 통하여 살아가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내면의 불꽃이 영원히 타오르게 하라. 그것은 곧 세상을 밝히는 빛이며-”
‘그대를 따뜻하게 하리라.’
나움도 그리했다. 이안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가듯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참으로 의아하지 않나? 이 시대의 마법사들은 역사대로라면 게일의 역모에 가담해 사장 당했을 자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나움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안을 지지했던 마법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차이.’
새삼 느껴지는 중요성이다. 이안은 원탁 위 마법부 도면 앞에 선을 그었다.
“마법부는 현 사태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을 지킨다.”
“동의합니다. 개싸움에 사람이 끼어서 무엇합니까?”
“아코렐라, 자중하자? 응?”
“아아. 몰라! 오늘 마력석 들어오기로 했는데, 폐쇄하는 바람에 물 건너갔어.”
대장들은 아코렐라의 말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찌 평소보다 골이 나 있다 싶었더니, 역시는 역시다.
“방어진을 최대한 크게 구축하여, 안전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모두 자리를 내주어라.”
“마리브나 게일 측의 세력이어도요?”
“대신 안에서도 소란을 일으키면 가차 없이 쳐낼 것이다. 혼란에 마법부 존재를 모르고 있는 자들이 있을 터. 이는 나키나와 토미에게 맡기지. 현장 경험이 많아 재해민 수습에 능숙하다 알고 있는데.”
헤일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법지원부에서 방어진을 담당, 헤일은 황제 폐하의 위치를 확인한다. 황궁친위대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별일 없다면 폐하와 함께 있을 터이니. 아, 친위대장 리아마는 배신하여 마리브에게 넘어갔다.”
“그렇다면 제이럿이나 베올스를 찾으면 되겠군. 특출 난 마검사들이라, 문제없겠어.”
“그리고…….”
이안은 손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아르센과 진. 두 사람의 궁에는 이미 마리브와 게일의 세력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마리브는 아르센, 진도 죽이려 할 것이다. 딜라이나가 게일과 손을 잡았고,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사달이 일어났을 때 아예 싹을 잘라 버리는 게 맞아. 마리브의 입장에서는.’
게일이 딜라이나와 쌍둥이 황자를 보호할 여력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당장 자기 목숨 보전하기도 바쁘지. 무섭도록 엉켜가는 마력석 가루를 보며, 이안은 한숨을 삼켰다.
“…베릭.”
어쩔 수 없다.
“여기! 베릭, 여기!!”
이안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베릭을 불렀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가 문틈으로 고개를 휙 내밀었다. 눈이 초롱초롱하다 못해 빛이 번쩍거렸다. 바깥의 소란에 뛰어들고 싶은 게 분명했다. 물웅덩이만큼이나 시원한 핏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호위를 준비하라. 아르센과 진을 데리러 간다.”
“오예에에에! 그거지! 와!”
“자중하라 일렀거늘.”
“자중하면 어떻게 싸우나? 응? 얼른 가자! 내가 길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트지. 암암! 역시 장관님 판단력 멋지고요.”
혼자서 검을 휘둘러대며 깨방정을 떨어댔다. 과연, 저자에게 호위를 맡겨도 되는 것인가? 아니지. 마법사들은 그 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섰다. 자리를 뜨려는 이안을 붙잡기 위함이었다.
“장관님이 직접 가신다고요?”
“위험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저희가 가겠습니다.”
“맞습니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시면, 진짜 곤란합니다. 마법부뿐만 아니라 황궁 전체에요.”
이안은 외투를 걸치며 그들을 돌아봤다. 희미하게 보일락 말락 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나보다 안전하게 궁에 다녀올 자가 있는가?”
중의적인 의미였다. 이안보다 마력이 강한 자가 있는지, 그리고 정치적인 입지가 있는지를 묻는 의미. 아무리 혈투 중이라 한들, 중립 선언한 마법부 장관을 해칠 수는 없으리라.
“중립 선언한 자들을 죽이면 역모를 막아서기 위해 일어섰다는 명분을 깨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법사라면 그저 재수 없이 휘말렸다 넘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장관이니 문제가 커질 것이라.”
“움직이는 하이만 은행이네?”
“오. 베릭. 비유가 좋았다.”
“키키. 나도 옆에서 맨날 책 냄새 맡으니까!”
이안은 베릭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웃었다. 옷가지를 바로 하는 와중, 그는 대장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소임을 잊지 말라 당부했다.
“방어막 구축하는 부서 외 모두 포탈을 생성, 유지하고 있어라. 황궁의 모두가 볼 수 있게, 높이.”
“알겠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자자! 서두르자고, 아침부터 빡세네!”
“아코렐라. 어찌 신나 보이오.”
포탈을 왜 만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이 황궁의 안전지대임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더 적은 마력으로도 불꽃을 쏘아 올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사들은 장관의 의도가 있겠거니, 그를 따랐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로비에 모여있던 자들이 모두 그들을 쳐다봤다.
“이안 장관, 이제 어쩌면 좋소? 황자들께서 미치신 게 분명하오. 황제 폐하도 행방불명이고, 직인까지 저 난리 통에서 구르고 있으니!”
“이는 바리엘의 수치입니다. 어찌 마리브 저하와 게일 저하께서 저러실 수 있답니까?”
“서, 서로 역모라 하는데, 누가, 누가 진짜래요?”
“그게 중요해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러지 말고, 출입을 허가해 주시오. 여기 이렇게 있다간 진짜 큰일 날 것 같아서 그래요.”
다들 시끄럽게 불안감을 표현했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지금 여기 황궁에서는, 천지가 바뀌는 순간이 이어지고 있노라고. 이안은 가볍게 손을 들어 소란을 저지했다.
“제국방위부까지 전투에 가담했으니 황궁 내 위험이 바깥으로 새어나가면 막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하여, 황궁 입구는 강력 봉쇄할 것입니다. 진정하시고 이곳에 있으면 마법사들이 안전을 보장할 것이니, 믿고 기다리시오. 로만드로!”
로만드로는 행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 사태에 대해, 그리고 황제 폐하의 행방에 대해.
“아르센과 진 황자를 데려올 것이다.”
“아, 그, 방금 얘기를 들었는데요. 제이럿은 당직이라 궁 안에 없답니다. 어젯밤은 베올스 대장이 황제 폐하의 처소를 지켰을 것이라 합니다.”
이안은 헤일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수월해졌다. 베올스 한 명의 마력만 감지하면 되니까. 이안은 그를 다독이며 부탁했다.
“이곳을 부탁하네. 금방 다녀오지.”
“아, 예예. 그, 무사히.”
로만드로가 베릭을 휙 노려봤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안을 잘 호위하라는 뜻이었다. 베릭은 생글생글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물론이지! 이안 지지해!”
쩌렁쩌렁 울리는 베릭의 목소리에 관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사들도 마찬가지. 헤일이 웃으며 담배를 튕겼다.
“아아, 그럼. 우리 장관, 우리가 지지하지.”
“이안 장관. 우리도 지지하네. 사태가 이럴수록 힘과 뜻을 함께 모아야지. 혹여 내 이름이 필요하다면 쓰시게. 외교부 에쉬버스터일세!”
“저는 와이번입니다!”
“마베! 웰링어 마베!”
관료들은 각자의 이름을 알리며 이안에게 뜻을 합치겠노라 소리쳤다. 베릭이 신나서 검을 흔들었고, 마법사들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이안은 대답 없이 방어막을 넘어갔고, 베릭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안녕! 다녀올게!”
“나키나, 토미! 인근 사람들을 안전지대로 인도해.”
“오케이. 가자!”
지이잉! 지잉!
나키나와 토미가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둘은 자유로이 창공을 누비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마법부 쪽으로 인도했으며, 마법사들은 이안의 명에 따라 포탈을 생성해 냈다.
솨아아아-!
하늘이 갈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푸른 하늘에 베인 상처가 생겨났다. 마치 환한 대낮 속에 숨어있던 밤을 끄집어낸 것처럼. 오직 암흑만이 존재하는 검은 공간.
“우와, 이안. 저것 봐! 검은 초승달이 떴어!”
“저것이 포탈의 뼈대다.”
베릭은 감탄하며 달려드는 병사의 목을 베어냈다. 피가 솟구치고, 비명이 울렸다. 이안은 베릭과 함께 아르센과 진, 두 사람의 황궁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