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71
제171화. 점점 번지는 불씨
채앵! 챙!
“으아아악!”
“그만, 살려줘!”
“한 놈도 빠짐없이 몰아! 이쪽으로!”
“죽여라! 게일 저하를 위하여!”
“마리브 저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대낮의 광경은 광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차라리 밤이었으면 어둠에 가려져 보지 못했을 것까지 훤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쨍한 하늘 아래 지옥이 펼쳐진 느낌이다.
콰직!
창문으로 떨어지는 시체가 외벽에 핏자국을 남겼다. 깨진 유리 조각이 진눈깨비처럼 휘날렸고, 이안은 반사적으로 소매를 들어 눈을 가렸다.
쉬이익!
목표 지점 없이 그저 날아드는 창과 화살. 베릭은 검으로 정확하게 쳐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XX 새끼들아! 사람 제대로 보고 던져!”
“으아악! 돌진! 돌진하라!”
“죽여라아아!”
“아니, 여기는 이안 히엘로 장관! 우리 주인! 에엥? 이안아, 이름 말하면 너 안전할 거라며?”
“듣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해도 소용없다.”
“반역자들을 죽여! 바리엘을 지켜!”
“아잇! 정말! 이러면! 어쩔 수 없네! 아하하!”
하지만 광기에 잠식된 자들에게 들릴 리 만무했다. 베릭은 앞을 가로막는 자들에게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궤를 따라 피가 솟구치고, 비명이 찢어졌으며, 그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베릭. 과하다. 움직이자.”
“쟤들이 죽여달라고 하는 걸 어떡해?”
“나 먼저 가?”
“그건 아니지요. 가자가자.”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생과 사를 오가는 긴장감 속에 상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그 찰나의 판단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으므로.
신념 없이 흥분으로만 지속되는 전쟁만큼 무가치한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이안은 최대한 벽에 어깨를 붙이며 소란을 비집어 나갔다.
채앵! 챙!
“하나, 둘! 오고! 막고! 오케이!”
“베릭, 조용히. 시선이 자꾸 돌아온다.”
“여기서 내가 제일 조용해!”
말은 저래도, 호위 하나는 완벽하다. 핏물이 쏟아지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해도, 작은 공격 하나 이안에게 닿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채앵!
“이쪽이다, 베릭!”
“거길? 진짜?”
황궁 지리에 익숙한 이안이 길목을 발견하고 몸을 틀었다. 하급관료들이 주로 쓰는 지름길이다. 그 틈으로 내달리자, 전투의 괴성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 끔찍한 지옥에서.
타닥타닥!
“쭉 가면 뭐가 나와?”
“제 3황궁의 후문이 나올 것이라. 딜라이나의 처소에서는 조금 멀어지지만, 시아오시를 먼저 합류시킨 다음 그들을 찾는 게 맞겠다.”
딜라이나와 쌍둥이 황자에게 호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혹여 없다면 시아오시 한 명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될 터. 신병 확보 후 바로 마법부로 돌아오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어? 이안아, 막다른 길인데?”
“엎드려.”
타앗!
이안의 명령에 베릭이 넙죽 등을 보였다. 그걸 밟고 담을 넘자, 바로 3황궁의 지하 감옥 입구가 보였다. 굳게 걸린 창살과 방패로 무장한 문지기들이 잔뜩 경계하며 이안에게 창을 겨누었다.
“누군가! 이쪽은 황궁 지하 감옥이니, 돌아가라!”
“나는 이안 히엘로, 마법부의 장관이다. 새벽에 게일 저하의 처소에 들어온 침입자를 찾으러 왔다.”
“…송구하오나, 허락할 수 없습니다. 현재 경비태세 1급에 따르는 위험 상황으로, 지하 감옥의 재소자들이 탈출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투구를 열며 난감한 표정을 보였다. 저 멀리 들려오는 굉음이 점차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리저리 휩쓸리며 퍼지는 전투가 이곳까지 들이닥치려는 듯이.
지이잉.
이안이 마력을 개방하며 문지기에게 경고했다.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칭찬해 마땅하나, 상황을 정확히 보라. 그대들의 상관 이름은?”
“와, 와이번입니다.”
“잘 됐군. 그자는 현재 마법부에서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나에게 뜻을 모은다 하였으니, 현재 지휘권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죄인 한 명만 데리고 갈 것이다.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내 이름을 고발하라.”
문지기들이 서로 힐끔거리며 침묵했다. 종잡을 수 없는 황궁 상황에서 판단이 안 서는 모양이다.
“황궁의 혼란을 정리할 중요한 인물이다. 거절한다면 철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밖에.”
“다 부순다? 엉? 박살 낸다?”
“자, 잠깐! 증표를, 증표를 주십시오.”
이안이 자신의 정복 겉옷을 벗어서 넘겨주었다. 누군지 모를 피로 흠뻑 젖어있었으나, 이만하면 증표로 맡기기에는 충분했다.
철컥!
“드시지요.”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열렸다. 이안과 베릭은 경비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로 내려갔다. 햇볕 한 줌 들지 않고, 곰팡내가 가득한, 음습한 곳. 바깥과 완전히 단절되어 다른 세상 같다.
끼이익.
이안은 어둠 속에서 쓰러져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사지가 결박당한 채 웅크려 있는 시아오시. 눈이 가려져 있었지만, 잿빛 머리칼로 알아볼 수 있었다.
“풀어.”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쫑긋. 죽은 듯 가만히 있던 그의 귀가 움찔거렸다. 경비가 안대를 풀자, 색이 다른 두 눈동자가 바로 이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
“시아오시. 걸을 수 있겠는가.”
“야야야. 안녕안녕.”
이안은 랜턴을 들어 시아오시를 밝혔다. 피멍이 들어있는 뺨과 팔 하나를 가로지르는 자상. 시아오시는 랜턴 빛이 너무 밝은지, 눈을 찡그렸다.
“…여긴 어찌.”
“어찌는 무슨 어찌. 주인이 노예 찾으러 왔거늘. 그나저나, 상처가 깊다.”
수상한 명령이었으나, 시아오시의 신변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꼴이 왜 이런가? 게일에게도 단단히 일렀는데.
“…….”
“말하라.”
“사내가 피를 보겠다 하여, 스스로 그은 것입니다.”
짐작이 맞았다. 게일은 후에 이안에게 꼬투리를 잡게 하려고 시아오시에게 상처 입길 바란 것이다. 그렇다면 뺨은? 이안이 경비를 바라보자, 그는 제 발 저린 것처럼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저희는 고문 안 했습니다. 그저 후송하여 이곳에 바로 가두었지요.”
콰아앙!
그때, 어렴풋이 들리는 폭발음. 지하 감옥에서 이리 크게 들릴 정도면 규모가 꽤 클 것이다. 이안은 베릭에게 눈짓하여 시아오시를 일으키라 지시했다.
스윽.
“…저는 이제 어쩌면 됩니까?”
명령이 없다는 것. 감옥에 있는 동안, 다른 것보다 그게 견디기 어려웠다. 태어났을 때부터 노예였기에 삶의 모든 순간이 명령이었으니까. 먹고, 자고, 쉬고, 일하는 인생 자체가 누군가의 지시로 이루어졌다. 한데 그게 없으니 마치 이정표가 부서진 기분이지 않나.
“무기는 주로 무얼 쓰지?”
“…투기장에서는 보통 맨손으로 싸웁니다.”
“지금 그랬다간 의미 없이 죽을 것이다. 나가서 혼란을 헤치고 데려올 사람이 있다.”
“…단검.”
단검? 이안이 경비를 돌아봤다. 혹여, 소지한 단검이 있는지. 경비는 화들짝 놀라며 허리춤을 더듬거렸다.
“그, 제가 가끔 과일 깎아 먹을 때 쓰는 것이 있는데.”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접이식 나이프다. 시아오시는 묵묵히 그걸 받아들었고, 베릭은 질색이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 저걸로 사람을 어떻게 죽여?”
“…….”
“푹 찌르면 과일 냄새 나겠네! 시아야, 그러지 말고 긴 거 들어. 그러면 저기, 대충 휘둘러도 뎅강뎅강 가능하니까.”
“되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시아오시, 가는 동안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보고하라.”
“…예.”
타닥타닥!
이안은 시아오시를 데리고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어둠 속에서는 잿빛이었던 시아오시의 눈동자가, 확연히 빛을 달리했다. 입구를 관리하던 문지기들이 허둥지둥거리며 소리쳤다.
“문을 열면 되겠습니까? 나가실 거면 서두르십시오!”
“전투가 이쪽까지 번졌습니다. 출입문을 아예 봉쇄할 것입니다!”
이안과 베릭이 지나쳐 온 전투가 여기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솟구쳤고, 부서지며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문을 열라는 듯이 손짓하며 뛰었다.
타앗!
“으아아악! 죽여라!”
“단 한 놈도 살리지 마라!”
“저자들의 피가 바리엘의 자양분이 될 것이니!”
“버러지 같은 새끼들. 어디 바리엘을 입에 올리나!”
콰앙! 쾅!
챙! 콰지지직!
바닥에 흥건한 피가, 마치 건물을 태우는 저 불씨와 같다. 이안의 옷이 더러웠던 이유가 저것이로구나. 시아오시는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동요하지 않고서 나이프를 꽉 잡았다.
“피 보는 걸 싫어한다 하였지.”
“…괜찮습니다.”
“이야호오오! 죽여!”
촤아아악!
“으아아악!”
“그래. 지금은 괜찮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
베릭이 이안에게 덤벼드는 병사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등을 뚫고 나온 칼날을 한 번에 빼낸 다음, 다시 옆구리를 베었다.
시아오시는 인상을 찡그리며 꿈틀거리는 병사를 내려다봤다. 즉사했더라면, 고통스럽지 않을 터인데.
“죽어라아아!”
그때, 이안에게 덤벼드는 또 다른 병사. 베릭이 쳐내려고 했으나, 시체가 칼끝에 걸리고 말았다. 이안은 금안을 개방하며 마력을 응축했다.
지이잉. 지잉.
콰직!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빠르게, 시아오시가 막아냈다. 한 손으로 머리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눈두덩이에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
도축하듯, 일격에 숨을 끊어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급소를 정확히 알고, 그걸 공격하는 몸짓에 군더더기가 없다. 병사는 비명 한 번 못 지른 채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풀썩-
“…….”
“…….”
“…하아.”
묵직하고 간결하며, 재빠르다. 나이프를 회수하는 손길에서도 그 힘이 느껴졌다. 베릭은 입을 쩍 벌린 채 시아오시를 쳐다봤고, 이안 역시 만만찮게 당황하여 침묵했다. 시아오시만 웃옷에 나이프를 문지르며 한숨 쉴 뿐이다.
“…안 가십니까?”
“…가지.”
“야아아아! 시아! 너 뭐야! 너 뭐 하는 새끼야!”
“시끄럽다, 베릭. 정신 사나우니 돌지 마라.”
“아니, 이안아. 너도 방금 봤지? 슉, 콰직! 으억! 그거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나도 알려줘! 아니다, 너 지금 나랑 한번 붙자!”
지이잉!
베릭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시아오시에게 매달리자, 이안이 금안을 개방했다. 닥치고 따라오지 않으면 혼쭐이 날 줄 알라는 듯이. 베릭은 정신을 퍼뜩 차리고 눈을 말똥말똥, 깜빡였다.
“내가 실수할 뻔했네. 그치?”
“두 번 경고는 없어. 베릭.”
“에이, 무섭게 왜 그래? 그러면 우리 이거 다 끝나고 한판 뜰까? 시아오시! 시아오시이!”
콰직!
시아오시는 베릭을 무시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그리고 이안의 앞길을 막는 자들을 깔끔하게 죽였다. 피를 보는 것이 유쾌하진 않다만, 주인의 명이 있으니 이것 또한 감당할 수 있다.
이안은 베릭과 시아오시가 만들어내는 길을 뒤따르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 곧, 딜라이나의 황궁에 당도하리라.
* * *
“딜라이나 님! 딜라이나 님!”
“큰일 났습니다! 딜라이나 님!”
딜라이나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기침했다. 어쩐지 꿈자리가 사나워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그녀가 화장대 앞에서 단장을 받는 도중, 시종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평소 어지간해서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자가, 저리 호들갑을 떨어대다니. 시종장은 숨을 쌕쌕거리며 보고했다.
“마, 마리브 황자, 황자께서 폐하의 직인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아, 게일 저하의 처소에 침입자가 들었는데…….”
“말을 똑바로 하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경비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궁 입구를 막으려는 듯 온갖 무거운 가구를 끌어왔다.
“마리브 저하와 게일 저하께서 황제 폐하의 직인을 두고 전투를 벌이는 중이라 합니다. 각 가문들의 기사와 병력이 모두 입궁하여 대치 중입니다.”
“그게, 무슨…….”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다. 황제 폐하의 직인을 얻기 위해서라니? 그렇다면 폐하는?
“마법부에서 출궁을 막아서 나갈 길이 없습니다. 우선 여기서 몸을 숨기고 계심이-”
“아르센! 진!”
딜라이나는 바로 황자들의 침실로 뛰어갔다. 마리브와 게일이 칼을 겨누었다면, 불똥이 당연히 그들에게도 번질 게 분명했으니까.
벌컥!
문을 열자, 아르센과 진이 소파에 앉아 있다. 아르센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는데,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