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173
제173화. 진, 귀한 아이야
은발에 푸른 눈 그리고 왼쪽 이마부터 오른쪽 턱까지 베인 상처. 이안이 기억하는 다음 황제의 얼굴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늘 함께했던 쌍둥이의 미래가, 이 순간 갈라진 것이다. 진의 얼굴을 가르듯이.
“마리브 저하, 물러서십시오.”
이안은 마리브에게 경고했다. 저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다. 저 아이가 있어서 훗날의 자신이 태어난 것이다. 다른 의미로는 진정한 가족이었으며, 마리브 따위가 해칠 수 없는 존엄한 존재라.
솨아아아-
자연적인 바람과 이안의 마력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흐름이 시원하게 맞물렸다. 이안은 진을 바라보며 두 손을 뻗었다. 자신에게 오라는 듯이.
“…….”
눈물을 뚝뚝 흘리던 진이 딜라이나를 돌아봤다. 당황해 굳어있는 그녀의 품에는 여전히 아르센이 안겨있다. 어미의 품에, 그의 자리는 없다.
타앗!
“…진!”
“……!”
딜라이나의 외침을 뒤로하고, 진은 마리브의 검을 지나쳐 달려갔다. 쿵쿵, 세차게 울리는 심장 소리가 정신을 뒤흔드는 기분이다. 돌아보면 누군가 붙잡을 것 같아서, 아이는 이를 꽉 물고 힘차게 뛰었다. 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눈앞이 흐려졌으나, 괜찮다.
그가 안길 곳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꽈아악.
이안은 달려오는 진을 맞이하여 무릎을 꿇었다. 깊숙이 파고드는 포옹이 절박하였다. 저를 살려달라고, 어미와 형제에게 버림받은 저를 도와달라고.
“괜찮으십니까?”
이안은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왼쪽 이마부터 오른쪽 턱까지 베인 상처가 깊다. 벽안의 눈동자에서는 연신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안 경.”
“눈물을 거두세요. 저하께서는 귀한 분이십니다.”
다정하게 달래는 말에 아이는 결국 눈물을 크게 터트렸다. 토닥이는 이안의 손길이 유독 부드럽다. 저도 그러했으니까. 황제라고 한들 어찌 인생에 상처가 없겠는가. 자신이 숨어서 울 때 나움이 위로했던 것처럼 이안도 진의 눈물을 달래주는 수밖에.
“이안. 진을 내놓아라.”
그때, 마리브의 검이 이안을 겨누었다. 진의 목숨은 딜라이나가 내놓은 대가다. 세력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해서 진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했다.
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살기를 알아채고 움찔거렸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배신도 모자라 훼방까지 놓겠다?”
“억측이십니다. 지금 사태는 저하께서 폐하의 직인을 탈취하여 생긴 일 아닙니까?”
“닥쳐라. 네가 게일과 작당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녀석을 정리하고도 남았다. 이리 올 것까지도 없었지.”
스릉.
이안이 진을 안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살랑거리는 머리칼. 금발과 은발이 함께 흔들렸다. 그들이 같은 곳에 서 있다는 걸 보여주듯.
“제가 아니었다면, 되려 마리브 저하가 정리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건방진!”
“꺄아악!”
채앵! 챙!
마리브의 고함에 병사들이 검을 빼 들었다. 딜라이나가 아르센을 보호하며 엎드렸고, 베릭과 시아오시 역시 공격 태세를 취했다.
“…….”
시아오시는 단검을 손에 쥔 채로 진과 아르센을 힐끔거렸다. 은발에 푸른 눈동자. 분명히 전날 게일의 처소에서 봤던 그 아이다. 쌍둥이라 당황했으나,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 구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아르센이라 하였지. 저 황자.’
간악하다.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위험을 감지하게 하는 자. 아르센도 시아오시를 알아본 것일까? 표정이 일순 묘하다. 착각인지 몰라도.
스윽.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던 마리브가 돌연 검을 거두었다. 대신, 엎드린 딜라이나의 목덜미를 노리며 진에게 소리쳤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숨을 반드시 끊어야 하니. 진, 네가 오지 않는다면 대신 네 어미를 죽일 것이라.”
“꺄아아악!”
딜라이나는 거의 혼절할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진이 몸을 움찔거렸으나, 이안은 듣지 말라는 듯이 뒤통수를 손으로 감았다.
“이, 이안 경.”
“그 누구도, 저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저자들의 비명보다 저하의 안위가 더 무겁고, 소중합니다.”
이안의 중얼거림에 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 아닌가. 황실의 암묵적인 저주 덩어리로 여겨져 살아왔거늘.
마리브는 검을 까딱거리며 대놓고 진을 꼬드겼다.
“아르센이 죽으면 진, 너로 인해 죽은 것이다. 신탁이 그대로 이루어지겠구나.”
얼토당토않은 협박이로다. 이안이 피식 웃자, 진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위급하지만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는 듯이 느껴져서.
“검은 든 것은 마리브 저하이신데 어찌 진 저하가 하신 일이란 말입니까? 바리엘의 명운을 모두 제 손으로 끝내려 하시니. 대단하시어, 백성들이 참으로 칭송하겠습니다.”
이안은 그리 말하면서도 신탁을 다시 조사해야겠노라 생각했다. 바리엘의 명맥을 이어가는 건 진이거늘, 왜 그에게 신탁의 저주가 내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리브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망설임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래? 그대들이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앙!
인근의 담이 박살 나며 흙먼지가 휘몰아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마리브는 호위를 받으며 뒤로 물러섰다.
뿌연 시야에서 드러나는 것은 검은색 무광의 거대한 갑옷. 베릭은 눈을 반짝이며 흥분했다.
“그거다! 그거!”
하이만 뱅크의 상징, 보안을 책임지는 마력석 갑옷이었다. 일당백 그 이상을 보장하며, 어느 전투든 승기를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게일의 세력임은 확실했다.
“마리브 저하!”
“몸을 피하십시오!”
“게일이다! 맞서라!”
마리브가 게일을 찾고 있듯, 그 역시 마리브를 찾고 있었나 보다. 공격은 곧장 마리브에게 쏟아졌고, 삼대장 중 하나인 리아마는 마력을 개방해 방어진을 구축했다.
콰아아앙! 쾅!
채앵! 챙!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천지가 흔들렸다. 묵직한 파동이 빠르게 터지며 사방을 울렸고, 두려움에 찬 비명이 묻혔다.
이안은 베릭과 시아오시에게 눈짓했다.
“베릭, 시아오시!”
“오오케이!”
“…….”
타앗!
목표로 했던 쌍둥이 황자의, 정확히는 차기 황제의 신병 확보를 이루었다. 다시금 전투에 휘말리기 전, 서둘러 마법부로 돌아가자는 지시였다.
두 사람은 단번에 달려가 쓰러져 있는 딜라이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죽기 싫으면 힘 빼!”
“꺄아아악!”
베릭은 딜라이나를 둘러업고 뛰었으며, 시아오시는 아르센을 안았다. 그사이, 이안은 진과 함께 먼저 정원을 빠져나갔다. 마리브의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았으나, 그들을 막을 순 없었다.
“어딜 가시오!”
“저하, 눈 감으세요.”
지이잉. 지잉.
퍼엉!
순식간에 나가떨어지는 병사의 머리. 진은 눈을 꼭 감은 채 이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일전에 마력구를 만졌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어쩐지 몽글몽글해지는.
“이안아아! 이거 너무 무거워!”
“베릭! 내 앞으로 와서 뛰어라!”
“아쒸, 무겁다니까!”
진을 앞뒤로 호위하기 위함이었다. 베릭이 아득아득 달려와 그들 앞에서 뛰었고, 이안은 창공에 빛을 쏘았다.
피이잉! 펑!
토미와 나키나가 신호를 본다면 마중 나오리라.
한참을 그리 달리는 와중.
진은 낯선 기운에 슬쩍 눈을 뜨고 말았다.
타닥타닥!
이안의 어깨 너머, 시아오시의 품에 안겨 뒤따르는 아르센과 시선이 마주쳤다. 형은 당최 무슨 생각인지 모를 냉랭한 눈빛으로 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찌나 살기가 가득한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다.
시아오시는 진의 표정을 보고서 아르센의 눈빛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실례합니다.”
하여, 보호하는 척 아르센의 얼굴을 손으로 덮어버렸다. 시야가 차단된 아이는 입매를 비틀었으나, 그뿐이다.
“이안 님!”
“토미, 나키나! 뒤에 붙는 자들이 있는지 확인하라!”
토미와 나키나가 하늘을 날아 이안 무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추격대가 없다는 걸 일러준 다음, 마법부의 안전지대로 안내했다.
“이안 님이 오신다!”
“이안 님! 이쪽입니다! 세상에, 황자 저하들도!”
“괜찮으십니까? 피, 피가 너무….”
“웃옷은 또 어디갔습니까?”
“황자 저하의 얼굴이! 의사! 의사를 불러!”
“아니. 베릭, 이놈아! 딜라이나 님을 그리 들어?”
“무거운 걸 어떡해?!”
보호막으로 들어서자마자, 베릭은 딜라이나를 던지다시피 내려놓았고, 이안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진을 안은 채 바로 의무실에 들어갔다. 마법사들이 우왕좌왕 그들을 둘러싸고서 소란을 피워댔다.
“아이고, 어찌 이 연약한 얼굴에…….”
“진 저하이시다. 상처를 소독하라.”
“어떤 미친 새끼가 저하 얼굴에 이런 짓을!”
“마리브 저하의 소행이니.”
“헙. 그렇군요. 그, 음, 이리 오십시오. 진 저하.”
처음이었다. 사달이 났을 때, 아르센 보다 먼저 보살핌을 받는 것이. 진은 저도 모르게 이안의 소매를 꽉 붙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미소를 보고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괜찮습니다. 저하. 모두 믿을 만한 자들이니,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사들의 손에 이끌려 들어갔고, 이안은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밖으로 나왔다. 로만드로가 널브러진 베릭의 얼굴에 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커억, 진짜 죽겠다아아!”
“네가 하루에 처먹는 고기가 더 무거울 것이라.”
“소화 다 됐어. 아, 진짜. 미친. 차라리 백 명 죽이는 게 쉽겠다.”
이안은 마법부 안쪽을 쭉 둘러봤다. 그사이 피난 온 자들이 더욱 늘어나 있었다. 어수선한 상황 가운데, 혼자 멀뚱히 서 있는 아르센.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다가왔으나, 헤일로 인해 가로막혔다.
“이안 장관님. 삼대장의 마력 흐름이 확인되었습니다. 리아마는 딜라이나 님의 궁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느껴졌고-”
“그곳에서 직접 보고 온 참이라, 맞다.”
“제이럿은 입궁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문제는 베올스입니다만.”
헤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결과가 영 이상하여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폐하의 처소에서 갑자기 3황궁으로 갔다가, 다시 2황궁으로 가는 등. 굉장히 빠르게 이동하였습니다. 폐하를 모시고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동선인지라, 해석 불가입니다.”
이안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뭔가를 깨달았는지, 작게 탄성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이안 님?”
이안은 헤일이 부르는 걸 뒤로하고 뭔가를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둘러봤다.
벽에 걸린 수많은 그림.
손으로 문질러가며 하나하나 확인했다.
‘아들에게 직인을 빼앗길 만큼 위급한 상황. 황제라면 당연히 저만 알고 있는 비밀 통로가 있을 게 분명하다. 내가 그러했듯.’
이안도 크로니의 공격을 받았을 때, 저만의 비밀 통로를 이용했었다. 100년이라는 간극이 있는 만큼, 완전히 똑같은 방식은 아닐 터. 하지만 원리나 구조는 비슷할 것이라.
“무엇을 찾으십니까?”
“…베릭!”
“아, 왜! 설마!”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베릭이 바닥을 뒹굴뒹굴 굴렀으나, 어쩔 수 없다. 이안이 그에게 뭔가를 속삭이며 지시하는 동안, 아르센은 한쪽에 앉아 계속해서 이안을 지켜봤다.
“…….”
그리고 그런 그를 감시하는 시아오시.
얽히고 얽힌 시선이 마법부에 내려앉았으나,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소란이 점점 거세졌기에.